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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독일)에서 넘어옴
파일:독일 사회민주당 당기.png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1]
약칭
SPD(에스페데)
영어 명칭
Social Democratic Party of Germany
한국어 명칭
독일 사회민주당
슬로건[2]
Soziale
Politik für
Dich
(당신을 위한 사회 정치)
창당일
중앙당사
이념
연방 당대표
범유럽 정당
청년 조직
젊은 사회주의자의 SPD(JUSOS)
국제조직
120석 / 630석 (19.05%)
26석 / 69석 (37.68%)
주의회 의원
450석 / 1,891석 (23.7%)
14석 / 96석 (13.67%)
상징 색
당원 수
365,190명(2023년 9월)
기관지
전진(Vorwärts)
정책 연구소
당기
파일:독일 사회민주당 당기.pn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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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1875~1890)2.2. 당명 변경과 성장(1890~1914)2.3. 1차 대전 참전과 분열(1914~1918)2.4. 11월 혁명과 스파르타쿠스 동맹 봉기(1918~1919)2.5. 바이마르 공화국의 주요 정당(1919~1933)2.6.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지하 불법 투쟁(1933~1945)2.7. 연합군 군정과 재건(1945~1949)2.8. 서독 단독정부 수립과 만년야당 사민당(1949~1969)2.9. 사민당 장기집권(1969~1982)
2.9.1. 빌리 브란트 내각(1969~1974)2.9.2. 헬무트 슈미트 내각(1974~1982)
2.10. 제1야당 복귀(1982~1998)2.11. 게르하르트 슈뢰더 내각(1998~2005)2.12. 앙겔라 메르켈 내각과 세 차례의 대연정(2005~2021)2.13. 올라프 숄츠 내각(2021~2025)2.14. 프리드리히 메르츠 내각 참여(2025~현재)

1. 개요[편집]

독일의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

독일 제국 시대인 1875년에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SAPD)이라는 이름으로 창당되어 1890년부터 지금의 당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독일 사민당은 사회민주당(사민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이면서, 전세계 좌파 진영을 통틀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당이며, 독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당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가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서독의 수권정당이었으며, 1990년 재통일 이후의 독일에서도 게르하르트 슈뢰더올라프 숄츠라는 2명의 총리를 배출해낸 정당이다.

다만 이렇게 화려한 역사와는 달리 2025년 총선 이후부터는 원내3당으로 전락하여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2. 역사[편집]

2.1.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1875~1890)[편집]

독일 사회민주당은 아우구스트 베벨,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등이 이끄는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노동당과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전독일 노동자 협회가 합당하면서 창당되었고, 당시 사용된 당명은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SAPD)이었다.

중도좌파 정당으로 자리잡은 지금의 독일 사회민주당(SPD)과 달리, 당시의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SAPD)은 혁명적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극좌파가 득세하는 정당이었고, SAPD 당원들에 의한 황제 빌헬름 1세에 대한 암살 시도까지 여러 차례 벌어졌기에, 1878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해 제정된 반사회주의법에 따라 불법화되어 제도권 정당이 아닌 지하정당으로 존속했다.

2.2. 당명 변경과 성장(1890~1914)[편집]

1890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황제 빌헬름 2세와 갈등을 겪다 실각하고,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 체제의 잔재인 반사회주의법을 폐지하면서 합법화된 SAPD는 당명을 독일 사회민주당(SPD)으로 변경하고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점차 당세를 확대하여 1912년 총선에서는 창당 이후 최초로 제국의회 원내1당으로 등극하기도 했으나, 황제가 의회를 거치지 않고 내각을 구성할 수 있었던 당시 독일 제국 정치의 특성상 사민당은 내각 구성에서 배제되었고, 기존의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자고 주장하는 극좌파와 온건 개량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온건파의 계파 갈등으로 내홍을 겪었다.

2.3. 1차 대전 참전과 분열(1914~1918)[편집]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사민당은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세계 대전에 반제국주의 프롤레타리아 정당으로서 어떤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적절하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제국 정부에 협조적이던 온건파가 당권을 잡고 전쟁 찬성을 당론으로 밀어붙이자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의 극좌파가 탈당하여 스파르타쿠스 동맹(Spartakusbund)을 결성했다.

전쟁 중반기로 접어든 1916년에는 전쟁 공채를 추가 발행하는 것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사민당에 잔류한 세력간에 또다시 내분이 벌어졌고, 이때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카를 카우츠키 등이 탈당하여 독일 독립사회민주당(USPD)을 창당했고, 먼저 분당한 상태였던 스파르타쿠스 동맹도 USPD에 합류했다.

2.4. 11월 혁명과 스파르타쿠스 동맹 봉기(1918~1919)[편집]

1918년 독일 11월 혁명이 일어나자 정권을 유지할 능력도 의지도 잃어버린 상태가 된 황제 빌헬름 2세는 사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를 총리로 임명하며 사민당에 정권을 짬처리떠넘기고 네덜란드빤스런망명했고, 갑작스럽게 여당이 된 사민당은 공화정을 선포하고 11월 11일 협상국과 콩피에뉴 휴전협정을 체결하며 1차 대전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후 사민당 내각은 공화국 헌법 제정에 착수했으나 민주공화국 체제를 추구하는 온건파가 장악한 사민당과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을 추구하며 독일 공산당을 창당한 스파르타쿠스 동맹 간의 갈등이 격화되어 1919년 1월 스파르타쿠스 동맹 봉기가 발샘했는데, 사민당은 스파르타쿠스 동맹 봉기를 우익 준군사조직인 자유군단을 동원하여 강경하게 진압했고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내내 사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원인이 되었다.

2.5. 바이마르 공화국의 주요 정당(1919~1933)[편집]

스파르타쿠스 동맹 봉기가 진압된 후 공화국 헌법을 작성하여 공포했는데, 혁명 여파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수도 베를린 대신 지방 도시인 바이마르에서 헌법을 제정했기에 당시 헌법은 바이마르 헌법, 체제는 바이마르 공화국이라 불렸다.

바이마르 체제에서의 사민당 노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지지 기반으로 꾸준히 원내1당을 유지했으나, 단독 과반을 확보하진 못했기에 독일 중앙당, 독일 민주당, 독일 인민당 등 다른 정당들과 연립내각을 구성해야 했고, 이에 따라 자주 총리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1929년 대공황 발생 이후에 치러진 1930년 총선에서도 사민당은 원내1당을 유지했으나, 바이마르 체제를 부정하는 극우 나치당극좌 공산당이 각각 원내2당과 3당으로 약진하면서 위기에 몰렸고, 1932년 총선에서는 나치당에 원내1당을 내주면서 1912년 총선 이후 처음으로 원내2당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1933년에는 기어코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직에 오르면서 나치당에 여당 지위마저 내주게 되었고,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공산당을 금지하고, 중앙당과 국가인민당을 비롯한 다른 중도우파~우익 정당들을 회유하여 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 사민당은 불법정당으로 전락했다.

2.6.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지하 불법 투쟁(1933~1945)[편집]

1933년 수권법 통과로 나치 일당독재 정권이 완성되면서, 사민당은 불법화되어 상당수의 간부 및 당원들이 투옥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당원들은 지하에서 점조직으로 활동하거나 국외 망명 상태에서 반나치 저항 운동을 이어갔다.

2.7. 연합군 군정과 재건(1945~1949)[편집]

1945년 2차 대전 패배로 나치 독일이 멸망하고 독일 전역이 연합군 군정 하에 들어가면서, 나치당에 의해 불법화되었던 바이마르 시대의 정당들이 재합법화되었고 사민당도 합법정당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했다.

사민당은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삼아 빠르게 당 조직을 재건할 수 있었으나, 동부 소련군 점령 지역에서는 독일 공산당과의 합당을 강요받았고, 결국 동독 사민당이 공산당과 함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을 창당하면서 사민당은 서독 지역에서만 존속하게 되었다.

2.8. 서독 단독정부 수립과 만년야당 사민당(1949~1969)[편집]

소련군 점령 지역인 동독을 제외한 서방 연합군(미군, 영국군, 프랑스군) 점령 지역에서만 치러진 1949년 독일 연방총선에서 사민당은 콘라트 아데나워독일 기독교민주연합/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DU/CSU)에 참패했고, 이후 기민련/기사련(CDU/CSU) 내각이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서독 경제의 고도 성장을 이끌면서 사민당은 2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야당에 머물렀다.

2.9. 사민당 장기집권(1969~1982)[편집]

2.9.1. 빌리 브란트 내각(1969~1974)[편집]

1969년 서독 총선에서도 사민당은 기민련/기사련에 밀려 원내2당에 머물렀으나, 원내3당인 자유민주당과의 연립정부 협상을 성사시키면서 당시 사민당 대표였던 빌리 브란트를 총리로 하는 사민당 주도 내각을 성립시키는데 성공했다.

2.9.2. 헬무트 슈미트 내각(1974~1982)[편집]

1974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귄터 기욤 사건의 여파로 사퇴하자, 헬무트 슈미트가 총리직에 올라 사민당-자민당 연립내각을 이어갔다.

슈미트는 8년간 집권을 이어갔으나 1982년에 자민당이 사민당 대신 기민련과 다시 손을 잡으면서 실각하여 정권이 교체되었다.

2.10. 제1야당 복귀(1982~1998)[편집]

1982년 정권교체 이후 기민련헬무트 콜 총리가 장기집권하면서 사민당은 다시 제1야당이 되었고,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에 치러진 두 차례의 총선에서도 패배하며 만년야당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콜 총리의 장기집권이 지속되면서 그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사민당이 정통 사회민주주의 노선 대신 '제3의 길'이라 불리는 중도 노선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면서 1998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16년만의 재집권에 성공했다.

2.11. 게르하르트 슈뢰더 내각(1998~2005)[편집]

1998년 재집권에 성공한 사민당은 녹색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여,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를 맡고, 녹색당의 요슈카 피셔가 부총리를 맡아 '적록연합 내각'이라 불렸다.

2.12. 앙겔라 메르켈 내각과 세 차례의 대연정(2005~2021)[편집]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녹색당 연합은 기민련/기사련 연합에 패배하여 총리직을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에게 내줘야 했으나, 기민련과의 대연정 구성에 합의하여 양당이 공동으로 정부를 꾸리게 되었다.

이후 2009년 총선에서는 메르켈이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사민당은 오랜만에 다시 야당이 되었으나, 2013년 총선에서는 자민당이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면서 또다시 양당 간의 대연정이 구성되었고, 2017년 총선 이후에도 대연정을 지속했다.

2.13. 올라프 숄츠 내각(2021~2025)[편집]

2021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총리 후보로 나선 올라프 숄츠의 인기에 힘입어 기민련을 누르고 원내1당으로 올라섰고, 숄츠는 녹색당, 자민당과 함께 이른바 '신호등 내각'이라 불리는 연립내각을 구성하여 4년간 집권했다.

2.14. 프리드리히 메르츠 내각 참여(2025~현재)[편집]

2025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전통적인 라이벌이던 기민련은 물론이고 극우 대안당에도 밀려 원내3당으로 떨어졌으나, 기민련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연립내각 제안을 받아들여 또다시 기민련과 함께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1] 조치알데모크라티셰 파르타이 도이칠란트[2] 약칭인 SPD를 활용해서 만든 역두문자어 슬로건이다.[3] 1933년 아돌프 히틀러나치당 집권 후 강제 해산, 1945년 나치 독일 패망 후 재창당.[4] 2019년 독일의 유럽의회 선거/각 정당들의 입장(독일어)[5] 영어프랑스어 명칭은 유럽사회당(영어: Party of European Socialists·PES, 프랑스어: Parti socialiste européen·PSE)이지만 독일어 명칭은 독일 사회민주당과의 연계를 강조하기 위함인지 유럽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Europas)으로 표기하고 있다.[6] 기존에 속해 있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이 비민주적 정당의 가입을 허가하여 독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한 끝에 별도로 결성한 정당 연합이다. 다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달리 사회자유주의 성향에 가까운 정당들도 가맹시키고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탈퇴하였다.[7] 주 정부에서 연방평의회 의원을 지명하며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각 주 의회의 선거 이후 사민당이 가진 의석 수가 변동 가능성이 있다. 보통은 주 총리를 비롯한 주 정부의 각료들이 연방평의회 의원이 되는데, 독일은 주 정부까지 의원내각제이므로 이들은 모두 주 의회 의원이기도 하다. 사실 독일의 연방평의회는 의원들이 소속 정당보다는 소속 주가 더 중요하다.[8] 96석은 유럽의회에서 제공되는 독일 의석에 한정된다. 유럽의회 총 의석은 총 720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