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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공화국 제10대 연방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Friedrich Merz
파일:메르츠 2024.jpg
본명
요아힘프리드리히 마르틴 요제프 메르츠
(Joachim-Friedrich Martin Josef Merz)
출생
재임기간
제10대 연방총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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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요아힘 메르츠(1923년생)
어머니 폴라 메르츠(1924년생)
배우자
샤를로테 메르츠[1] (1981년~)
자녀
장녀 카롤라 메르츠(1986년생)
장남 필리프 메르츠(1987년생)
차녀 콘스탄츠 메르츠(1989년생)
학력
본 대학교 / 마르부르크 대학교 (법학)
종교
병역
신체
198cm[2]
소속 정당
의원선수
5 (하원)
지역구
약력
CDU/CSU 원내대표 (2000-2002, 2022-현직)
기독교민주연합 대표 (2022-현직)

1. 개요2. 상세3. 생애
3.1. 출생과 성장3.2. 정치 활동
3.2.1. 메르켈과의 갈등 관계3.2.2. 연이은 당대표 낙선3.2.3. 당대표 당선 및 재임3.2.4. 제21대 연방 총선 승리3.2.5. 독일 연방총리 재임
4. 정치 성향5. 논란6. 여담

1. 개요[편집]

독일연방공화국 제10대 연방총리 취임 선서
독일의 제10대 연방총리.

2. 상세[편집]

제10대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당대표로, 전임 당대표인 앙겔라 메르켈이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아르민 라셰트 등 당내 온건파 또는 중도파와 달리 당내 강경파 또는 보수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유럽의회 의원, 기독교민주연합 부의장을 거쳐 2000년부터 2002년까지 CDU/CSU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의 당내 권력 투쟁에서 패한 후 한동안 민간 기업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 유럽 난민 사태가 촉발시킨 반이민 여론에 힘입어 정계에 복귀했으나 당대표 경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에게 패했다. 메르켈 퇴임 후 2021년 당대표 경선에 다시 도전하여 메르켈의 지원을 받은 아르민 라셰트와 '당내 온건 vs. 강경' 구도로 대결했으나 다시 낙방했다.

그러나 그후 총선에서 기민당이 패하고 연립정부 구성도 하지 못하며 야당으로 밀려나면서 아르민 라셰트 대표가 사임했고, 그 후임을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마침내 당대표의 자리에 올랐다. 당대표 취임 후 제1야당의 선명성을 내세우며 정부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고, 사민당-자민당-녹색당의 3당 연정이 내부 갈등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겪으면서 자당을 지지율 1위 정당으로 이끌었다. 다만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지율을 높이며 추격해오면서 극우의 득세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중. 일단은 AfD와 그 어떤 협력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리고 2025년 총선에서 기민당이 제1당이 되고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2025년 5월 독일 총리에 취임했다.

3. 생애[편집]

3.1. 출생과 성장[편집]

1955년 11월 11일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브릴론(Brilon)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2007년 탈당할 때까지 판사이자 기독교민주연합 당원이었고, 모친은 위그노 조상을 둔 브릴론의 저명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1975년 아비투어 시험을 마친 후 육군에 입대해 복무했고, 본 대학교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72년 기독교민주연합의 청년 조직에 가입했고[3],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판사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3.2. 정치 활동[편집]

3.2.1. 메르켈과의 갈등 관계[편집]

1989년 기민련 후보로 출마해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4년에는 호흐자우어란트군 선거구에 기민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연방의회에 등원했고, 금융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금융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에는 기민련 부대표로 선출되었고, 볼프강 쇼이블레 대표 체제에서 그림자 내각에 입각하는 등 쇼이블레의 총애를 받았다. 2000년에는 원내대표에 선출되었으나, 2002년 라이벌이자 당대표인 앙겔라 메르켈에게 원내대표직을 넘겨준 후에 별다른 요직을 맡지 못하다가 2009년 선거에서는 불출마하고 정계를 떠나 민간 경제·금융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러 기업의 이사회 구성원을 지냈다.[4]

헬무트 콜을 정계에서 은퇴시키고 볼프강 쇼이블레 대표를 물러나게 한 기부금 스캔들 이후 앙겔라 메르켈이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원내대표로 각각 선출되었다. 앙겔라 메르켈은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16년간 장기 집권에 성공한 지금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그저 얼굴마담 정도로 여겨졌고, 2002년 선거를 앞두고 메르츠가 소속된 안데스 그룹은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의 에드문트 슈토이버를 총리 후보로 밀도록 메르켈을 압박했다.[5] 하지만 그렇게 나선 2002년 선거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에게 접전 끝에 다시 한번 패하면서 입지가 위축되었다.

이 일종의 쿠데타 시도에서 메르켈에게 안데스 그룹의 존재가 알려졌고, 선거 직후 메르켈은 메르츠를 원내부대표로 밀어내고 직접 원내대표직을 겸임하면서 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메르츠의 자리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로부터 3년 뒤인 2005년 선거에서 7년만에 승리를 거두고 사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면서 총리직에 오른 메르켈은 메르츠를 아예 평의원으로 좌천시켰고, 메르츠는 결국 2009년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를 떠났다. 이후에도 메르켈과 지속적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2018년 대표 선거 당시에는 그들이 함께 일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메르츠가 주장했음에도 메르츠가 대표가 되면 메르켈이 물러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을 정도. #

3.2.2. 연이은 당대표 낙선[편집]

2018년 기민련 대표 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후계자로 사실상 지목하고 지지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당 사무총장(이후 국방장관), 옌스 슈판 보건장관과 당대표직을 놓고 경선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장기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볼프강 쇼이블레 연방의회 의장 등의 지원을 받으며 1차 투표에서 392표를 획득해 2위로 2차 투표에 진출했지만, 2차 투표에서 482:517로 접전 끝에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사무총장에게 패하면서 다시 한 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9년만의 정계 복귀에도 메르켈의 후계자와 혈전을 펼치면서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그러다 자신을 꺾고 2018년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했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가 2019년에 들어서면서 지도력 부족으로 당내 입지 위축에 시달리고, 결국 튀링겐 주총리 선출 논란에 휩싸이며 2020년 2월 사의를 표명한 뒤 물러나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에 2018년 경선에 이어 두 번째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크람프-카렌바우어 재임 시절부터 총리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의회 외교위원장과 3파전으로 경선에 참여했다.

2021년 1월에 치러진 이 당대표 선거에서 여론조사상 1위 자리를 지키고 1월 15일 진행된 1차 투표에서 아르민 라셰트를 단 5표차로 앞질러 1위로 2차 투표(결선)에 진출했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400명대의 대의원 확보에 실패한데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뢰트겐 위원장 지지표를 흡수하는 데 실패하면서 521:466로 패해 낙선하면서 또 다시 당대표가 되는 데 실패했다.

제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원래 자신의 지역구였던 호흐자우어란트군 선거구에 출마, 지역구 현역 의원이었던 파트리크 젠스부르크(Patrick Sensburg)를 밀어내고 기민련의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 이후 본선에서도 무난히 당선되어 12년만에 연방의회에 재입성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전반의 기민련 득표율 감소는 메르츠 역시 피해가지 못했고, 2017년 선거 대비 지역구 득표율이 7.5%, 정당투표율은 8.2%나 감소[6]하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3.2.3. 당대표 당선 및 재임[편집]

선거 패배로 아르민 라셰트 대표가 사임을 선언하고 물러남에 따라 2021년 12월 기민련 당대표 경선이 다시 치러지게 되면서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처음에는 당의 개편(당원의 선거 참여 등)을 주장하며 대표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당원 투표가 도입된 후 최종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자신과 함께 2021년 1월 대표 선거에도 도전했던 노르베르트 뢰트겐 연방의회 외교위원장, 4차 메르켈 내각의 연방총리청 청장이었던 헬게 브라운과 경쟁하게 된 상황.

사실 간접 선거로 진행된 1월의 대표 선거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을 정도로 원래부터 기민련 내에서 메르츠의 지지 기반이 존재하고 있었던 데다가 2021년 총선에서 친메르켈 성향의 중도파 대표 아르민 라셰트가 선거를 말아먹고 그야말로 몰락하면서 반메르켈 성향의 보수파 대표라 할 수 있는 메르츠의 기민련 당내 입지가 매우 커졌다. 현재 기민련 당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대표 선거는 지난번과 달리 대의원의 간접 선거가 아니라 기민련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대로 메르츠의 승리가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1차 선거에서 바로 과반을 획득하느냐, 아니면 간발의 차로 실패해 결선 투표로 가느냐 정도의 문제만 남아있는 셈.

결국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훌쩍 넘는 62.13%의 득표율로 압승해 결선 투표 없이 차기 대표로 내정되었고, 2022년 1월 22일 열릴 제34차 전당대회를 통해 공식 선출됐다. # 공교롭게도 자신을 정치적으로 몰락시킨 메르켈이 사라지자마자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셈.

2022년 1월 22일, 전당대회를 통해 아르민 라셰트의 뒤를 이어 공식적으로 당대표로 취임했다. #

대표 취임 이후 5일이 지난 27일, 현재 CDU/CSU 연방의회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랄프 브링크하우스가 직을 포기하기로 하면서 원내대표 직까지 겸임할 예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전 메르켈 당시 대표가 메르츠를 원내대표에서 밀어낼 때랑 비슷한 모습이라는 분석. #

극우 정당인 AfD와 지방정부 차원에선 연정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크게 논란이 되자 트위터를 통해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건대 CDU는 AfD와 지방정부 수준에서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발언을 철회했다. #

2025년까지 기민련 지지율이 1위로 유지되고 집권 연정의 지지세가 지지부진할 경우 차기 독일 총리로 등극할 가능성이 꽤 있는 인물이긴 하나 정책적으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자주 보이고 기민련의 역사에서 중도좌파적 정책을 대폭 수용하며 이례적으로 좌클릭했던 메르켈보다는 기민련의 보수적 정체성 회복을 내세운 비교적 선명한 우파이기 때문에 내외부 견제가 강한 편이기도 하다. 또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인 헨드릭 뷔스트나 마르쿠스 죄더 기사련 대표도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거의 70세인 고령인지라 마이너스 요인이다. 만일 메르츠가 총리가 된다면 재선 혹은 3선 시 80세를 눈앞에 두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 3월 22일 진행된 ZDF 여론조사에서 기사련 지지층뿐만 아니라 기민련 지지층에서조차 죄더 기사련 대표가 34%로 1등, 헨드릭 뷔스트 주총리가 29%로 2위였고 메르츠 현 대표는 20%로 3위에 그쳤다.

2024년 5월 7일 전당대회에서 89.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 당대표직을 연임하게 되었다.

2024년 9월 17일,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의 공동 발표에 따라 내년으로 예정된 연방의회 선거의 CDU/CSU 총리 후보자로 결정되었다.

2025년 2월, 일론 머스크의 독일 선거 개입을 비판하며 "이번 선거에서 일어난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정치적 대응이 될 수도, 법적 대응일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

3.2.4. 제21대 연방 총선 승리[편집]

제21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예상대로 기민련이 제1당이 되면서 사실상 차기 독일 총리행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과반 의석에는 미달하기 때문에 AfD를 제외한 모든 정당과 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얼마 뒤 사민당과 연정할 것을 발표,# 4월 9일에 사민당과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5월 5일 연방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표결에서 찬성 310표로 과반에 단 6표가 모자라 총리 인준안이 부결되면서 총리로 선출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한 정당들이 내세운 총리 후보자는 이들 정당이 지닌 과반 의석의 지지를 전제로 하기에, 이번 부결 사태는 연립여당의 총리 후보자가 의회 과반 득표로 총리가 되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절차'에도 실패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CDU/CSU사민당의 의석은 도합 328석으로 과반인데, 최소 18명의 의원이 반란표를 던진 셈.

총리 선출 투표 결과가 나온 뒤 각 정당은 논의 끝에 다시 표결을 하는 데 합의[7]했고, 재표결 결과 찬성 325표로 과반을 득표하면서 총리 인준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총리 선출 표결을 미루었다가는 정치적 불확실성만 커진다는 우려에 따라 신속한 재표결 및 가결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표결에서조차 최소 3표의 반란표가 나왔다.

3.2.5. 독일 연방총리 재임[편집]

2025년 5월 6일 치러진 2차 투표에서 총리 인준안이 연방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메르츠 내각을 출범시키고 독일의 제10대 연방총리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하지 못해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사전 합의된 총리 후보가 1차 투표에서 낙선하는 사태는 독일 연방공화국 출범 이후 최초의 일이다.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 대연정 의원 중 18표나 이탈한 것으로 향후 독일 정국의 불안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독일 주가도 폭락했다.

한편 이미 취임 전부터 사민당과의 대연정 추진으로 보수층이 이탈하며 24%선까지 내려앉았던 기민/기사 연합 지지율은 취임 직후 소폭 반등하며 27%까지 올랐고, AfD와의 지지율 격차도 2% 벌렸다.

하지만 취임한지 두달반이 지난 2025년 7월 27일 여론 조사에서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은 25%로 다시 AfD와 동률을 이루었다. 메르츠의 보수 정책 공약 실천이 미비하다는 실망감의 반영으로 풀이되었다.

집권 100일이 지난 2025년 8월 12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로 떨어졌고, 그의 국정운영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67%로 나타났다. 연정에 대한 지지율도 27%로 떨어졌다. 반면 AfD는 26%의 지지를 얻어 메르츠가 이끄는 CDU/CSU의 지지율을 2% 격차로 따돌리고 여론조사 1위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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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 성향[편집]


5. 논란[편집]

  •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피난한 난민들을 두고 '사회 복지 관광객'(welfare tourism)이라고 말했으며, 아랍계 이민자 학생들이 '작은 파샤(kleinen Paschas)'처럼 군다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가 있다. #1 #2 이러한 발언은 CDU 내에서도 비판을 불러일으켰는데, 토비아스 한스 자를란트 주 장관은 "이 논쟁에 대한 기여는 우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민련 당원으로서 우리는 서로 객관적이고 책임감 있게 토론해야 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부추기고 허위사실을 퍼뜨려서는 안 됩니다."고 메르츠를 비판했다.
  • 2023년 9월 4일 바이에른 주 길라모스(Gillamoos)에서 열린 축제에 참석하여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는 독일이 아니라 길라모스가 독일이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에 휩싸였다. 굳이 크로이츠베르크를 끌어들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민자들이 많고 다양성 존중하는 크로이츠베르크"와 "작은 바이에른 시골 마을 길라모스" 간의 대비를 이끌어내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난데없이 격하당한 크로이츠베르크 주민들과 베를리너들은 그야말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종주의적 배경도 강하게 들어갔을 법하기 때문에, 역풍을 맞기에 딱 좋은 실언을 한 셈이다.
  • 2025년 1월 31일 기민련은 연방의회에 유입 제한법(Zustrombegrenzungsgesetz)[12]을 발의했는데, 이에 AfD가 찬성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당론으로 유입 제한법의 찬성을 결정하였으나, 11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투표 이전부터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만약 사민당과 녹색당이 기민련의 이민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AfD와 협력할 수 있다며 압박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비록 법안이 부결되었으나, 당대표 취임 초기에 했던 극우 세력인 AfD와 절대 협력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발언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사민당과 녹색당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마저 차기 총선에서 대안당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비판하였다. 좌파당 원내대표인 하이디 라이히네크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메르츠를 나치의 집권을 용인한 프란츠 폰 파펜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한 독일 전역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와 기민련을 비판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
  • 2025년 10월, 1년 만에 이민자 유입을 60% 줄였다고 연방정부 정책을 자평하면서 "하지만 도시 이미지에 이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주 배경을 지닌 2천만 시민에 대한 모욕이라거나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메르츠 총리는 지난 20일 발언을 취소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철회할 게 전혀 없다. 오히려 거듭 강조한다"고 답했다. #
  • 2025년 11월 13일 브라질을 떠나 기쁘다고 언급해 브라질 폄훼 논란이 일었다. #

6. 여담[편집]

[1] 지방법원 법원장이다.[2] 역대 독일 총리 중 최장신이다. 종전 기록은 193cm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초대 북독일 연방 수상 및 초대 독일 제국 재상)와 헬무트 콜(제6대 독일연방공화국 총리)[3] 기민련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던 중인 1979년에는 기민련 청년 조직의 남성 정치인 전용 비밀 조직인 안데스 그룹(기민련 청년 조직의 구성원들이 칠레 방문에서 귀국하는 중 결성한 것에서 유래)의 일원이 되었다.[4] 대표적인 경력으로는 2016년에 맡은 블랙록의 독일 법인장이 있다.[5] CDU/CSU 역사 내내 기사련이 총리후보를 낸 선거는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총리후보로 나선 1980년 선거와 이 선거가 전부였다.[6] 당시에는 파트리크 젠스부르크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7]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재표결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서 암묵적으로 동의했으나,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당장 이번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며 총리 인준 부결 상황에 극딜을 날렸다.[8] 현재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구성한 이상 당내 온건파의 성향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등의 사상 추구는 대연정을 추구하기에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9] 정작 본인은 2020년 3월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10] 아르민 라셰트는 11%(...)로 슈판과 뢰트겐에게도 밀렸다. 반대로 정계 엘리트들 중에서는 메르츠가 18%로 3위를 기록하고 라셰트가 35%로 1위를 기록.[11] 프랑스와 영국은 이미 타우러스와 동급의 위력인 스톰 섀도우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바 있다.[12] 국경 상시 통제와 적법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외국인은 망명 신청 여부와 무관하게 입국을 차단하는 내용이 뼈대다. 메르츠 대표는 “좌우 가리지 않고 앞만 보겠다. 누구의 도움을 받든 이민정책 변화는 당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