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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윈저 왕조 제4대 국왕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파일:엘리자베스2세.webp
출생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메이페어 브루턴 거리 17번지[1]
사망
2022년 9월 8일 (향년 96세)[2]
묘소
재위기간
[ 펼치기 · 접기 ]
가문
이름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Elizabeth Alexandra Mary)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여동생 마거릿
배우자
에든버러 공작 필립 (1947년 결혼 / 2021년 사망)
자녀
장남 찰스 3세, 장녀 , 차남 앤드루, 삼남 에드워드
종교
신체
163cm, O형(Rh-)
군사 경력
복무
최종 계급
대위[5] (영국 육군)
주요 보직
참전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조상3.2. 자녀
4. 여담
4.1. 즉위와 관련된 여담4.2. 재위 기간 관련4.3. 성격4.4. 패션4.5. 정치4.6. 대중문화4.7. 가족 관련4.8. 외교와 해외 방문4.9. 사망 이후의 여담4.10. 그 외

1. 개요[편집]

내 삶이 길건 짧건 내 평생을 그대들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서 선포합니다.
I declare before you all that my whole life whether it be long or short shall be devoted to your service.

1947년 4월 21일 공주[6] 시절 남아프리카 연방[7] 케이프타운에서 21세 생일을 맞이하여 연설한 내용 중[8]
영국영연방 왕국 윈저 왕조제4대 국왕.

25세이던 1952년 2월 6일부터 2022년 9월 8일까지 70년 214일[9]간 재위한 군주로서,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며, 특히 여왕으로서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하였다.[10]

2. 생애[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엘리자베스 2세/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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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 관계[편집]

3.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조지 6세
(George VI)
조지 5세
(George V)
에드워드 7세
(Edward VII)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sesse Dagmar af Danmark)
테크의 메리 공녀
(Princess Mary of Teck)
테크 공작 프란츠
(Franz, Herzog von Teck)
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
(Princess Mary Adelaide of Cambridge)
제14대 스트래스모어와 킹혼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4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제13대 스트래스모어와 킹호른 백작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Claude Bowes-Lyon, 13th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
프랜시스 스미스
(Frances Smith)
세실리아 캐번디시벤팅크
(Cecilia Cavendish-Bentinck)
찰스 캐번디시벤팅크[11]
(Charles Cavendish-Bentinck)
루이자 버나비
(Louisa Burnaby)

3.2.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배우자/자녀
1남
찰스 3세
(Charles III)
1녀
프린세스 로열 앤
(Anne, Princess Royal)
마크 필립스
슬하 1남 1녀[13]
2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Prince Andrew, Duke of York)
3남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Duke of Edinburgh)
소피 리스존스
슬하 1남 1녀[15]

4. 여담[편집]

4.1. 즉위와 관련된 여담[편집]

  •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에 오를 예정이 아니었던 인물이었다. 원래 왕위 계승자는 에드워드 8세였으나, 그가 월리스 심프슨과의 결혼을 이유로 퇴위하면서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즉위했고, 그 결과 장녀였던 엘리자베스가 후계자가 되었다.
  • 즉위 당시 엘리자베스는 케냐를 국빈 방문 중이었으며, 아버지의 서거 소식을 현지에서 접했다. 공주로 나갔다가 여왕으로 귀국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 즉위 후에도 오랫동안 '공주 시절의 삶이 갑자기 끝났다' 고 회고했으며, 즉위 직후부터 평생 공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는 점이 강조된다.

4.2. 재위 기간 관련[편집]

4.3. 성격[편집]

  • 엘리자베스 2세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졌으며, 공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절제된 태도를 유지했다.
  • 개를 매우 좋아했으며, 특히 웰시 코기를 평생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재위 기간 동안 수십 마리의 코기를 키웠다.
  • 말 타기와 승마에도 능했으며, 이는 어린 시절부터 귀족 교육의 일환으로 익힌 것이었다.
  • 사생활에서는 비교적 소탈한 성격이었다는 증언이 많으며, 농담을 즐겼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4.4. 패션[편집]

  • 엘리자베스 2세는 항상 눈에 띄는 색상의 옷을 입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군중 속에서도 쉽게 식별되기 위함이었다.
  • 복장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공적 역할의 일부로 여겨졌으며, 색상 선택에도 의미를 두었다는 분석이 있다.
  • 가방을 이용해 수행원에게 신호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며, 이는 왕실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사실로 알려져 있다.

4.5. 정치[편집]

  • 영국 군주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 역시 공개적인 정치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나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입장을 암시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총리와의 정례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되며, 이 자리에서의 발언 내용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4.6. 대중문화[편집]

  •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제임스 본드와 함께 등장하는 연출에 직접 참여했다.
  •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제작되었으며, 대표적으로 더 크라운이 있다.

4.7. 가족 관련[편집]

  • 남편 필립 공과의 결혼 생활은 7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이는 영국 왕실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 자녀 중 찰스 3세는 왕위 계승자로서 오랜 기간 대기해야 했으며, 이 역시 여담으로 자주 언급된다.
  • 다이애나 스펜서 사망 당시 왕실의 대응은 대중의 비판을 받았고, 이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국민 연설로 수습되었다.

4.8. 외교와 해외 방문[편집]

  • 재위 기간 동안 100개국 이상을 방문했으며, 이는 외교적 상징성이 큰 활동이었다.
  •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은 없으나,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4.9. 사망 이후의 여담[편집]

  •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이후 영국 내에서는 공화제 논의가 다시 언급되었으나, 단기간 내 체제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 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중계되었으며, 수많은 국가 정상들이 참석했다.
  • 여왕의 사망은 한 시대의 종말로 받아들여졌으며, 대중문화와 언론에서 '엘리자베스 시대' 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었다.

4.10. 그 외 [편집]

  • 여권이 필요 없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는 모든 여권이 군주 명의로 발급되기 때문이다.
  • 운전면허증 없이도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 생전에 '은퇴' 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사망 직전까지 공식 업무를 수행했다.
[1] 당시 조지 6세 부부가 거주하던 아파트의 주소다.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더이상 남아있지 않으며, 현재는 중국 식당이 들어서 있다. #[2] 공식 사망 시각은 현지시각 15시 10분. 사망 발표 시각은 현지시각 9월 8일 18시 30분(서머타임 기준)경이며, 대한민국 표준시로는 9월 9일 2시 30분이다. 공식 사인은 노환.[3]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 of the Church of England)직을 겸하며 신앙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aith/Fidei Defensor)라는 호칭이 부여된다. 다만 잉글랜드 성공회일 뿐, 전세계 성공회 전체의 지도자는 아니다.[4]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 신자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며,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 왕족이 밸모럴 성에 거주할 때는 크래디 커크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5] 원칙적으로는 원수 계급이 주어져야 하지만, 여왕이라 부여받지는 못했다. 대신 국서인 필립 마운트배튼이 원수 계급을 수여받았다.[6] 이 당시에는 추정상속인(heir presumptive)이었으므로 웨일스 공 작위를 아버지가 정식으로 주지는 않았으며, 엄밀히 따지면 '왕세녀'라는 표현은 틀렸다.[7] 現 남아프리카 공화국[8] 실제로 그녀는 사망하기 이틀 전 신임 총리를 임명하고 접견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도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9] 25,782일[10] 종전에는 63년 216일 동안 재위한 빅토리아 여왕이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5년 9월 9일부로 엘리자베스 2세가 경신했다. 참고로 한국사에서 장수한 군주로 주로 꼽히는 고구려 장수왕의 재위 기간이 79년 2개월이다. 장수왕보다 오래 재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가야 수로왕이나 고구려 태조대왕은 157년, 93년 재위했다고 되어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 오래전이라 상대적으로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지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길다. 태조대왕은 동시기 중국 기록에선 또 다르게 쓰여 있어서 기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혹이 있으므로, 이런 초기 삼국시대 군주들을 제외하고 장수왕을 현실적으로 가장 장수한 군주로 꼽는 편이다. 뒤이어 발해 문왕(약 56년)이나 신라 진평왕(52년 6개월), 조선 영조(51년 6개월 6일), 고려 고종(45년 10개월) 등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한국사 2,000년 동안 존재했던 몇 백 명의 군주들과 비교해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오랫동안 재위한 셈이다.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했던 군주는 72년 3개월 동안 재위한 루이 14세다. 덧붙이자면 이 기록은 차기 군주나 대공, 에미르 등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 즉위해서 70년 가까이 재위하든지, 루이 14세처럼 어린아이 시절에 선왕을 여의고 즉위하여야만 깰 수 있는 기록인데 평균 수명이 계속 길어지고 있어 왕이 요절하는 경우가 더욱 드물어져 뒤를 잇는 왕도 고령의 나이에야 왕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에 사실상 경신되기 쉽지 않은 재위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의 권한을 지니고 행사한 군주이기도 하다. 루이 14세는 5살에 왕위에 올라 23살까지는 섭정을 두어, 실제로 왕권을 행사한 기간은 54년 정도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즉위할 당시부터 성인이었으므로 70년 내내 왕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루이 14세는 전제군주정, 그것도 절대왕정 시대의 '태양왕'이었고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못하는' 입헌군주정의 여왕이었다. 참고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는 에스와티니의 소부자 2세로 무려 82년 255일 동안 왕위에 군림했는데 이것도 영국의 식민지 시절을 포함해서 82년이다.[11] 영국의 제15•20대 총리 윌리엄 캐번디시벤팅크의 손자이다.[12]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13] 피터 필립스, 자라 틴달[14]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 요크의 유지니 공녀[15]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