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넘어옴
분류
6.25전쟁 Korean War | |
![]() | |
기간 | |
1950년 6월 25일 4시 20분 ~ 현재 (1953년 7월 27일 이후 정전 상태) | |
장소 | |
한반도 | |
원인 | |
북한군의 기습 남침 | |
교전국 및 교전세력 | |
유엔군 | 공산군 |
의료 지원국 | |
1. 개요[편집]
2. 전개[편집]
대한민국 국군 다수의 휴가 등 여러 문제로 대비하지 못하여 3일 만인 28일에 서울특별시가 북한군에 점령되고, 한강 대교 폭파 등으로 지속적인 행정구역별 패배 및 함락을 지연시켜,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로 대한민국 수도 임시 변경, 낙동강 방어선으로 밀려나기까지 약 한 달이 소요되었다.
9월 15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역전되어 3개월 만인 9월 28일에 서울 탈환 후, 이승만 정부의 요구에 따라, 10월 1일에 38도선을 넘어 북진 통일을 추진하여, 10월 초에 평양직할시 점령, 압록강까지 도달하였다.
같은 달 25일,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의 지속적인 후퇴로, 다음 해 1월 4일, 북한-중국 공산군에게 서울을 재점령당했다가 재탈환 후 38도선 부근에서 수 개월 동안 영토의 큰 변화 없이 전투가 계속되는 중, 1951년에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협상이 2년 넘게 지연이 되는 동안, 남북은 서로 더 많은 영토를 추가로 점령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우다가, 이승만의 휴전 반대에도 1953년 7월 27일, 유엔국과 공산국에 의해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9월 15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역전되어 3개월 만인 9월 28일에 서울 탈환 후, 이승만 정부의 요구에 따라, 10월 1일에 38도선을 넘어 북진 통일을 추진하여, 10월 초에 평양직할시 점령, 압록강까지 도달하였다.
같은 달 25일,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의 지속적인 후퇴로, 다음 해 1월 4일, 북한-중국 공산군에게 서울을 재점령당했다가 재탈환 후 38도선 부근에서 수 개월 동안 영토의 큰 변화 없이 전투가 계속되는 중, 1951년에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협상이 2년 넘게 지연이 되는 동안, 남북은 서로 더 많은 영토를 추가로 점령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우다가, 이승만의 휴전 반대에도 1953년 7월 27일, 유엔국과 공산국에 의해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3. 여담[편집]
- 북한에서는 이 전쟁을 '조국 해방의 날 전쟁'이라 하며, 역사서에는 '남한의 침략(북침)에 의해 발발한 전쟁', 휴전 협정을 '조국 해방의 날 전쟁 승리' 등이라고 허위 기재되어 있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