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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엘리자베스 2세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교육2.3. 추정상속인이 되다2.4. 제2차 세계대전2.5. 필립과의 만남과 결혼2.6. 자녀 출산2.7. 즉위2.8. 대관식2.9. 여왕으로서의 삶2.10. 가족사의 위기2.11. 노블레스 오블리주2.12. 장수2.13. 말년2.14. 사망

1. 개요[편집]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서술한 문서.

2. 생애[편집]

2.1. 유년기[편집]

1926년 4월 21일 오전 2시 40분,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외가에서 요크 공작 앨버트 왕자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부인의 장녀로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왕위 계승 서열 3위였으며,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왕세자의 나이가 젊었기 때문에 여왕이 될 가능성은 낮았다.

이름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로 지어졌다. 어머니의 이름인 엘리자베스, 증조할머니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할머니인 테크의 메리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아버지 앨버트 왕자가 조지 5세에게 이름을 빅토리아로 지어야 하는지 문의했으나, 조지 5세는 원하는 대로 하라고 답했다. 가족들은 그녀를 '릴리벳'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대부모는 할아버지 조지 5세, 할머니 메리 왕비, 외할아버지 클로드 보우스라이언, 고모 프린세스 로열 메리, 이모 메리 엘핀스톤, 작은증조할아버지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였다. 1930년 8월 21일에는 여동생 마거릿 공주가 태어나 언니가 되었다.

1920년대에 건강이 악화되었던 할아버지 조지 5세는 자주 병문안을 왔던 엘리자베스를 매우 예뻐했다. 부모님이 해외 순방을 나가면 버킹엄 궁전에서 조부모와 함께 지냈는데, 평소 무뚝뚝하고 근엄하던 조지 5세가 엘리자베스를 등에 태우고 궁전 안을 말처럼 기어다녀서 시종들이 놀라워했다는 일화가 있다.

2.2. 교육[편집]

엘리자베스와 동생 마거릿은 당시 상류층 여식들이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늘고 있었음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딸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역시 어린 시절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은 것이 전부였고, 상류층 여성은 가정교사에게만 교육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정교사는 마리온 크로포드였으며, 그녀의 감독 아래 교육을 받았다. 7세 이전의 공주는 놀이 위주의 비교적 자유로운 유아기를 보냈다. 7세가 되던 해부터 문법, 작문, 수학, 예술 등 기본교육과 왕실 계보, 역사, 지리, 성경 등을 학습했다. 이튼 칼리지의 학장과 함께 역사를 공부했으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말할 줄 알았다.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종교 교육을 받아 신심 깊은 성공회 신자가 되었다.

가정교사는 궁전 내에 고위 공직자와 궁전 직원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걸 스카우트를 조직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궁전 밖 런던 시민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게 했다. 할머니 메리 왕대비 역시 교육에 관심이 많아 가정교사에게 편지를 보내 교육 내용을 지시하기도 했으며, 엘리자베스와 자주 만나 왕실의 역사와 예법을 가르쳐주었다.

2.3. 추정상속인이 되다[편집]


1936년 1월 20일, 할아버지 조지 5세가 사망하고 큰아버지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같은 해 말 미국인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고 동생 앨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넘겼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조지 6세로 즉위하면서 엘리자베스는 10세의 나이에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었다.

추정상속인이 된 후 엘리자베스는 여러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튼 칼리지의 부총장 헨리 머튼에게서 헌법사를 배웠고, 프랑스와 벨기에인 가정교사들로부터 프랑스어를 배웠다. 아버지 조지 6세는 딸의 후계자 교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왕위계승교육을 직접 실시했다.

2.4. 제2차 세계대전[편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런던을 공습하자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왕실에 캐나다로 망명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영국 왕실은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수도에 남아 국민들과 함께 국가적 재난을 이겨내기로 했다.

1940년 10월 13일, 14세의 엘리자베스는 처음으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다. 1942년 4월 20일에는 16세 생일을 맞아 근위보병연대 시찰로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에는 여군에 입대하여 보조 영토 서비스에서 군 트럭 정비와 운전 교육을 받으며 복무했다. 왕실 여성 멤버로는 처음으로 정비병으로 복무하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2.5. 필립과의 만남과 결혼[편집]

엘리자베스는 1934년 숙부 켄트 공작 조지 왕자와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나 공주의 결혼식에서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리포스 왕자를 처음 만났고, 1937년에 다시 만났다. 필리포스는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의 친손자로, 두 사람은 크리스티안 9세를 기준으로 7촌, 빅토리아 여왕을 기준으로 8촌인 먼 친척이기도 했다.

1947년, 21살이 된 엘리자베스 공주는 가족들과 함께 남아프리카 연방을 순방했다. 이곳에서 생일 기념 대국민 연설을 통해 "내 삶이 길건 짧건 내 평생을 여러분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서 선언합니다"라고 밝혔다. 이 연설은 엘리자베스 2세를 대표하는 연설로 평가받고 있으며, 훗날 엘리자베스 2세는 사망 직전까지 성실하게 공무를 수행하며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1947년 11월 20일, 엘리자베스는 필립 마운트배튼과 결혼했다. 본래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로 태어난 필립은 영국에 귀화해 에든버러 공작 작위를 받았다. 결혼식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으며,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2021년 4월 필립공이 사망할 때까지 73년 동안 지속되었다.

2.6. 자녀 출산[편집]

결혼 후 1년 만인 1948년, 첫째 찰스를 낳았고, 1950년에는 둘째 앤을 낳았다. 결혼한 지 5년도 안 되어 조지 6세가 사망하면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찰스와 앤 공주에게 많은 애정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1953년에는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함께 영연방으로 6개월에 걸친 순방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을 보였으며, 훗날 순방을 마친 후 궁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상봉하던 순간을 "아이들은 끔찍하게 예의가 발랐다. 나는 애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정말 몰랐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후에 "어떤 면에서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매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2.7. 즉위[편집]

국왕 조지 6세의 건강이 나빠져가자, 1951년 11월 14일에 엘리자베스 부부가 대리인으로 임명되어 1952년 1월, 영연방 순방을 떠났다. 그러나 첫 번째 국가인 케냐를 방문 중이던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암투병 도중 사망했다. 조지 6세의 사망에 따라 추정상속인이었던 엘리자베스가 해외에 나간 상태에서 왕위에 올랐다. 25세의 나이였다.

당시 묵었던 트리탑 호텔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이 여기서 묵는 동안 왕위를 계승했다'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걸려있다. 공주 신분으로 출국해 여왕 신분으로 귀국하게 된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2.8. 대관식[편집]


1953년 6월 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왕위를 계승한 순간부터 대관식 준비를 시작했지만, 16개월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다. 1066년 해럴드 2세의 대관식 이후 영국 대관식이 늘 열려왔던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이 열렸다.

수천 명의 시민은 행진 경로를 따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자리를 지켰다. 대관식 당일에는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새 여왕을 맞이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대관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이 어린 나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 대관식은 텔레비전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대관식 자체가 한 번도 촬영된 적이 없었고, 윈스턴 처칠 총리는 촬영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여왕은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관식은 최초로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영국에서만 약 2,000만 명이 시청했다.

2.9. 여왕으로서의 삶[편집]


빅토리아 여왕 이후로 최초로 맞이하는 여왕에 영국 국민은 대체로 환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사망 이후 51년 만에 여왕으로 즉위하였으며, 따라서 대영제국의 상징인 빅토리아 시대를 직접 경험했던 노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도 한 몫 했다.

왕위에 올랐을 당시에는 이미 현대적 입헌군주제가 자리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실권은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영향력을 통해 영국을 위해 힘쓰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탈식민화가 진행되며 영국의 권위가 실추되던 때 영연방을 지키기 위해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소속 국가들을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기간 동안 117개국을 순방하면서 역사상 가장 많이 여행한 국가 수장이 되었다. 7개국 참여체였던 영연방을 56개국이 속한 연합체로 바꿔놓았다. 1977년 여왕 즉위 25주년에는 영국 연방의 35개국 지도자들이 축하 연회에 참석하는 등 영국의 권위를 회복시킨 결과를 낳았다.

특히 1961년 아프리카 가나 방문은 대범한 외교술을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당시 소련과의 관계 발전을 모색하고 있던 가나의 은크루마 대통령은 영연방 탈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폭탄 테러 위협을 이유로 여왕의 가나 방문을 반대했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나는 영화배우가 아니에요. 나는 영연방의 수장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순방 일정을 강행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백인 여왕과 흑인 대통령의 사교댄스를 제안해 가나를 영연방에 남게 만들었다.

2.10. 가족사의 위기[편집]

장남 찰스 3세는 부인 다이애나를 두고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불륜을 저질렀다. 1997년 다이애나가 찰스와 이혼한 뒤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대중의 비난은 찰스와 엘리자베스 2세로 향했으며, 왕실 폐지론까지 불거졌다.

앤 공주는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한 뒤 재혼했으며, 차남 앤드루 왕자는 1996년 사라 퍼거슨과 이혼했다. 2022년 초에는 앤드루 왕자가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왕실 후원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2021년에는 해리 왕손의 아내인 메건 마클 왕손빈이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폭로해 또 한 차례 폭풍우를 겪었다.

2.11. 노블레스 오블리주[편집]

엘리자베스 2세는 공주 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전하여 성실히 복무했다. 윈저 성 대화재 당시 복구 비용으로 세금이 쓰이는 데에 국민적 질타가 커지자 스스로 왕실의 면세 특권을 폐지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 전 세계적 존경과 경의를 받았다.

2.12. 장수[편집]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기간 내내 15명의 영국 총리를 임명했다.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가장 많은 총리를 임명한 국왕이 되었다.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 가운데 4분의 1을 직접 만났다.

2012년 6월에 재위 6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는 64년 동안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이하는 군주가 되었다. 2015년 9월 9일 오후 5시 30분을 기점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을 넘어서 영국의 최장수 통치자로 기록되었다.

2022년 2월 6일에는 사상 최초로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이함으로써, 일본의 124대 쇼와 천황의 기록을 깼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군주들 가운데서 최고령 최장기간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 즉위 60주년을 맞아 실시된 영국의 가장 위대한 국왕이 누구인지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2.13. 말년[편집]

가장 큰 아픔은 2021년 4월 남편 필립공과의 사별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39년 14세 때 영국왕립해군사관학교 생도였던 필립공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74년간 해로했다. 필립공이 사망한 이후 엘리자베스 2세는 급격히 쇠약해졌다.

생존 당시 현직인 국가원수 중 가장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 총리 임명과 같은 공식 일정을 소화해 내며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2.14. 사망[편집]

2022년 9월 8일 현지시각 오후 3시 10분, 엘리자베스 2세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의 밸모럴 성에서 사망했다. 향년 96세, 노환으로 평온히 천수를 다하고 사망했다. 당시 여왕의 곁은 장녀 앤 공주와 개인비서 겸 스타일리스트 안젤라 켈리가 지켰다.

아들 찰스 3세와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 손자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도 급히 스코틀랜드로 떠났지만 여왕 사망 후에 도착하여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사후 발간된 보리스 존슨의 회고록과 왕실 전기에서 말년에 다발성 골수종에 걸려 투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6년에 태어나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장장 70년이라는 긴 재위 기간의 마침표를 찍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스코틀랜드에서 사망하면서 런던 브리지 작전 대신에 유니콘 작전이 즉각 실행되었다.

왕위 계승자인 찰스 왕세자는 즉각 국왕 자리를 이어받아 찰스 3세가 되었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2022년 9월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인 76%가 엘리자베스 2세 서거에 당황했다고 대답했다. 87%가 그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 중 한 명이었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