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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말레이시아
1. 개요2. 전근대
2.1. 말레이 반도(서말레이시아)2.2. 보르네오 북부(동말레이시아)
3. 근대
3.1. 유럽 열강의 진출3.2. 일제의 점령
4. 현대
4.1. 영국의 재식민화와 말라야 비상사태4.2. 말라야 연방의 독립4.3. 말레이시아(1963년~현재)
4.3.1. 말레이시아 건국과 싱가포르 축출
4.4. UMNO의 장기집권4.5. 2018년 총선과 정권교체4.6. 2022년 총선과 안와르 이브라힘 내각

1. 개요[편집]

말레이시아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전근대[편집]

근대 이전까지 말레이시아의 본토에 해당되는 말레이 반도 지역(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섬 북부에 위치한 동말레이시아는 단일국가로 통합되지 않고 따로 역사가 전개되었는데, 이는 현대까지 동말레이시아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2.1. 말레이 반도(서말레이시아)[편집]

말레이 반도의 말레이인들은 고대에는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불교를 믿었으나, 13세기 이후 이슬람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믈라카 술탄국을 비롯한 여러 이슬람 국가들이 세워졌다.

2.2. 보르네오 북부(동말레이시아)[편집]

보르네오 섬 북부에도 일찍부터 말레이인이 거주했지만, 다른 소수민족도 여럿 존재했다.

14세기부터는 보르네오 섬의 해안지대를 브루나이 술탄국이 통일하며 지역강국으로 군림했으나, 내륙 지역까지 브루나이의 행정력이 미치진 않았다.

3. 근대[편집]

3.1. 유럽 열강의 진출[편집]

16세기에 포르투갈이 믈라카 술탄국을 멸망시킨 것을 시작으로 유럽 열강의 말레이시아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에게 믈라카를 빼앗기며 경쟁에서 밀려났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일대를 식민지화하는 것을 묵인받는 대가로 말레이시아를 영국의 세력권으로 인정하면서, 대영제국의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말레이 반도의 여러 이슬람 군주국들을 보호령으로 만드는 한편, 보르네오 섬에서는 브루나이로부터 사바를 빼앗아 북보르네오 식민지로 만들었고, 사라왁 지역은 영국인 모험가 제임스 브룩이 브루나이 술탄에게 라자(Raja) 칭호를 받고 본국인 영국 정부를 끌어들여 사라왁 왕국을 세웠다.

3.2. 일제의 점령[편집]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남방 작전을 통해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한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에는 말라야 군정청을, 보르네오 섬 북부에는 북보르네오 군정청을 설치하여 지배했다.

4. 현대[편집]

4.1. 영국의 재식민화와 말라야 비상사태[편집]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말레이시아를 재식민화한 영국은 말레이 반도의 보호령들은 1947년에 말라야 연합이라는 하나의 보호령으로 통합하고, 보르네오 북부의 사라왁과 사바는 각각 왕령식민지로 만들었다.

말레이 본토에 세워진 말라야 연합은 보호령 체제 하에서 유지되던 토착 군주제를 폐지하려 했으나, 말레이인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1년만에 토착 군주들을 복위시켜 말라야 연방으로 전환했다.

말라야 연방 성립 이후에는 말라야 공산당이 반영 무장봉기를 일으켜 '말라야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나, 말라야 공산당은 다수 말레이인이 아닌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화교들이 주축이 되었기에 범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했고, 통일 말레이 국민기구(UMNO)를 비롯한 말레이 민족주의 세력은 영국과 함께 공산반란을 진압했다.

4.2. 말라야 연방의 독립[편집]

1957년에 말라야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는데, 독립 이후에도 영국과의 우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1960년에 말라야 비상사태를 완전히 종식시켰다.

4.3. 말레이시아(1963년~현재)[편집]

4.3.1. 말레이시아 건국과 싱가포르 축출[편집]

말라야 연방의 집권여당인 통일 말레이 국민기구(UMNO)는 아직 영국령으로 남아있는 사라왁, 사바, 싱가포르, 브루나이와의 통일을 추진했는데, 싱가포르의 리콴유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사라왁과 사바도 동참하여 1963년에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북부를 아우르는 통일국가인 말레이시아가 건국되었다.

다만 브루나이는 초기에는 말레이시아에 참여하는 듯 했으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가 중간에 마음을 바꿔 불참하면서 브루나이까지 포함하는 통일은 무산되었고, 1965년에는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가 연방에서 축출되어 구 말라야 연방 지역(서말레이시아)와 사라왁, 사바만이 말레이시아를 구성하게 되었다.

4.4. UMNO의 장기집권[편집]

말라야 연방 시대부터 여당이었던 통일 말레이 국민조직(UMNO)는 중국계 정당인 말레이시아 화인협회(MCA), 인도계 정당인 말레이시아 인도인 회의(MIC)와 사라왁, 사바 지역정당들까지 포괄하는 정당연합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을 구성하여 장기집권을 이어갔다.

1981년에 취임한 제4대 총리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한국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본받자는 룩 이스트(Look East)라는 구호와 함께 말레이시아를 2020년까지 선진국에 진입시키겠다는 와와산 2020(Wawasan 2020)[1]이라는 정책을 말레이시아 경제의 고도 성장을 이끌며 2003년까지 장기집권했으나, 권위주의적 독재 정치를 일삼았고 1997년 동남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에는 경제 정책을 놓고 대립하던 부총리 안와르 이브라힘에게 동성애 및 부패 혐의[2]를 씌워 투옥시키기도 했다.

마하티르에 의해 숙청당한 안와르 이브라힘의 부인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은 인민공정당(PKR)이라는 야당을 창당하고 중국계와 인도계의 지지를 받는 야당인 민주행동당(DAP)와 연합하여 반정부 운동을 전개했는데, 2008년 총선에서 말레이시아 건국 이후 최초로 UMNO가 주도하는 정당연합인 국민전선(BN)의 개헌선을 붕괴시키는 성과를 거두었고, 안와르가 정계에 복귀하여 총리 후보로 도전한 2013년 총선에는 득표율에서 야권 연합인 인민동맹(PR)이 BN을 추월하기도 했으나 게리맨더링으로 인한 소선거구 의석에서 밀려 BN의 과반 확보 저지에 실패하여 정권교체는 무산되고 안와르는 다시 투옥되었다.

4.5. 2018년 총선과 정권교체[편집]

2018년에는 UMNO의 거물인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 말레이시아 통일원주민당(PPBM)을 창당하여 야권 연합인 희망동맹(PH)에 합류했고, 같은 해 총선에서 승리하여 말레이시아 건국 이래 최초의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마하티르는 같은 연합 소속인 인민공정당(PKR)의 요구에 따라 옛 정적인 안와르 이브라힘을 석방하고 협력을 이어갔으나, 연립여당 간의 갈등과 측근인 무히딘 야신과의 대립으로 인해 2년만인 2020년에 실각하고 총리직은 무히딘 야신에게 넘어갔다.

무히딘 야신은 1년간 내각을 이끌다가 2021년에 실각하여 총리직은 다시 UMNO의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에게 넘어가서 UMNO는 총선 패배 이후 3년만에 총리직을 되찾았다.

4.6. 2022년 총선과 안와르 이브라힘 내각[편집]

2022년 총선에서는 안와르 이브라힘의 인민공정당(PKR)이 주도하는 희망동맹(PH)이 다시 승리하여 제1연합이 되었고, PH와 제2연합인 국민전선(BN)의 대연정이 성사되어 안와르 이브라힘 내각이 출범했다.
[1] 비전 2020(Vision 2020)이라 번역되기도 한다.[2]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로,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동성애 역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안와르의 동성애 혐의는 단순히 사법처리 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히기 위해 덮어씌운 누명이라는 설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