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싱가포르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전근대: 싱가푸라(테마섹)[편집]
전근대 싱가포르는 말레이인의 땅이었고, 말레이어로 싱가푸라(Singapura) 또는 테마섹(Temasek)이라 불렸다.
2.1. 싱가푸라 왕국[편집]
2.2. 믈라카 술탄국과 조호르 술탄국[편집]
3. 근대[편집]
3.1. 영국령 해협식민지[편집]
수백년 동안 버려진 상태였던 싱가푸라를 도시로서 재건한 인물은 19세기 영국의 탐험가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였는데, 그가 조호르 술탄으로부터 싱가푸라 섬을 사들인 후 개발함으로써 방치된 외딴섬 싱가푸라는 영국의 무역항 싱가포르로서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까지 포괄하는 해협식민지의 수도가 되었고, 화교가 노동자로서 유입되어 원주민인 말레이인 인구를 압도하게 되었으며, 인도계 이민자 역시 유입되었다.
영국 치하에서 싱가포르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며 대도시로 발달했으나,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까지 포괄하는 해협식민지의 수도가 되었고, 화교가 노동자로서 유입되어 원주민인 말레이인 인구를 압도하게 되었으며, 인도계 이민자 역시 유입되었다.
영국 치하에서 싱가포르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며 대도시로 발달했으나,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3.2. 일본령 쇼난도(소남도)[편집]
4. 현대[편집]
4.1. 영국령 싱가포르 식민지[편집]
1945년 2차 대전 종전으로 인해 일본군이 물러난 이후 영국이 다시 싱가포르를 차지했는데, 1946년부터는 싱가포르를 다른 해협식민지들과 분리하여 영국 정부 직할 식민지인 싱가포르 식민지로 승격시켰다.
1955년에는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로 총선이 치러졌는데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전선이 승리하여 인도계 정치인 데이비드 마셜이 싱가포르 식민지의 초대 총리[2]로 취임했다.
데이비드 마셜 총리는 계파 갈등으로 인해 1년만에 사임하고 중국계 정치인 림유헉이 제2대 총리로 취임했는데, 림유헉 총리가 이끄는 노동전선은 1959년 총선에서 또다른 중국계 정치인 리콴유가 이끄는 좌익 정당 인민행동당에 대패하며 정권이 교체되었다.
리콴유의 인민행동당 내각은 말레이 반도의 독립국인 말라야 연방, 보르네오 섬 북부의 또다른 영국령 식민지인 사라왁, 사바와 협상하여 새로운 연방국가인 말레이시아를 건설하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1963년 싱가포르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었다.
1955년에는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로 총선이 치러졌는데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전선이 승리하여 인도계 정치인 데이비드 마셜이 싱가포르 식민지의 초대 총리[2]로 취임했다.
데이비드 마셜 총리는 계파 갈등으로 인해 1년만에 사임하고 중국계 정치인 림유헉이 제2대 총리로 취임했는데, 림유헉 총리가 이끄는 노동전선은 1959년 총선에서 또다른 중국계 정치인 리콴유가 이끄는 좌익 정당 인민행동당에 대패하며 정권이 교체되었다.
리콴유의 인민행동당 내각은 말레이 반도의 독립국인 말라야 연방, 보르네오 섬 북부의 또다른 영국령 식민지인 사라왁, 사바와 협상하여 새로운 연방국가인 말레이시아를 건설하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1963년 싱가포르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었다.
4.2. 싱가포르 주(말레이시아)[편집]
1963년부터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인 우월주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말레이시아의 집권여당 통일 말레이 국민기구(UMNO)에게 있어서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또한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이 말레이시아 본토(말레이 반도)의 중국계 다수 지역에 공천하여 말레이시아 연방의회 의석을 확보하기까지 하자, 인종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UMNO를 위협하게 되었고, 결국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축출되는 형식으로 독립하여 싱가포르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인 우월주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말레이시아의 집권여당 통일 말레이 국민기구(UMNO)에게 있어서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또한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이 말레이시아 본토(말레이 반도)의 중국계 다수 지역에 공천하여 말레이시아 연방의회 의석을 확보하기까지 하자, 인종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UMNO를 위협하게 되었고, 결국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축출되는 형식으로 독립하여 싱가포르 공화국이 되었다.
4.3. 싱가포르 공화국[편집]
4.3.1. 리콴유 내각[편집]
4.3.2. 고촉통 내각[편집]
1990년 리콴유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고촉통이 제2대 총리로 취임했으나, 이후에도 리콴유는 선임장관이라는 공직을 역임하며 사실상의 상왕으로서 통치했다.
4.3.3. 리셴룽 내각[편집]
2004년 고촉통이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여전히 실세였던 리콴유의 아들인 리셴룽이 제3대 총리직에 오르면서 싱가포르는 부자 세습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리콴유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고촉통에게 보상으로 선임장관직을 물려준 후 고문장관에 취임하여 상왕 정치를 계속했고, 사망 직전인 2011년에야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고촉통 선임장관 역시 함께 물러나도록 함으로써 리셴룽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리셴룽은 명실상부한 싱가포르의 최고권력자로서 군림하며 2024년까지 장기집권했다.
리콴유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고촉통에게 보상으로 선임장관직을 물려준 후 고문장관에 취임하여 상왕 정치를 계속했고, 사망 직전인 2011년에야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고촉통 선임장관 역시 함께 물러나도록 함으로써 리셴룽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리셴룽은 명실상부한 싱가포르의 최고권력자로서 군림하며 2024년까지 장기집권했다.
4.3.4. 로렌스 웡 내각[편집]
2024년 리셴룽이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로렌스 웡이 제4대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은 총리직 사퇴 직후 선임장관에 취임하며 부친 리콴유가 했던 것처럼 상왕 정치를 시작했고, 이에 따라 로렌스 웡은 고촉통처럼 부자세습 이전의 징검다리 총리 역할에만 만족하고, 리셴룽의 아들 리홍이로의 세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리셴룽은 총리직 사퇴 직후 선임장관에 취임하며 부친 리콴유가 했던 것처럼 상왕 정치를 시작했고, 이에 따라 로렌스 웡은 고촉통처럼 부자세습 이전의 징검다리 총리 역할에만 만족하고, 리셴룽의 아들 리홍이로의 세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