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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싱가포르
1. 개요2. 전근대: 싱가푸라(테마섹)
2.1. 싱가푸라 왕국2.2. 믈라카 술탄국과 조호르 술탄국
3. 근대
3.1. 영국령 해협식민지3.2. 일본령 쇼난도(소남도)
4. 현대
4.1. 영국령 싱가포르 식민지4.2. 싱가포르 주(말레이시아)4.3. 싱가포르 공화국
4.3.1. 리콴유 내각4.3.2. 고촉통 내각4.3.3. 리셴룽 내각4.3.4. 로렌스 웡 내각

1. 개요[편집]

싱가포르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전근대: 싱가푸라(테마섹)[편집]

전근대 싱가포르는 말레이인의 땅이었고, 말레이어로 싱가푸라(Singapura) 또는 테마섹(Temasek)이라 불렸다.

2.1. 싱가푸라 왕국[편집]

13세기 말부터 싱가포르 섬에는 싱가푸라 왕국이 형성되었다.

싱가푸라는 힌두교불교가 공존하는 나라였으며,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번영을 누렸다.

14세기 말 싱가푸라 왕국은 파라메스와라 왕의 치세에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위치한 마자파힛 제국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고, 마자파힛 군대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어 폐허로 전락했다.

이후 파라메스와라는 말레이 반도의 믈라카로 도피하여 왕국을 재건했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함으로써 믈라카 술탄국을 세웠다.

2.2. 믈라카 술탄국과 조호르 술탄국[편집]

믈라카 술탄국은 해상무역을 통해 국력을 회복한 후 마자파힛 군대를 물리치고 옛 수도였던 싱가푸라를 수복했으나, 정작 싱가푸라를 도시로서 재건하는데는 관심이 없어서 방치했고 이는 믈라카 술탄국의 후신인 조호르 술탄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믈라카-조호르 시대의 싱가푸라는 수백년 동안 인구밀도가 극도로 희박한 변방의 어촌에 머물렀고, 심지어는 해적 등의 범죄자들이 은신처로 삼기도 했다.

3. 근대[편집]

3.1. 영국령 해협식민지[편집]

수백년 동안 버려진 상태였던 싱가푸라를 도시로서 재건한 인물은 19세기 영국의 탐험가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였는데, 그가 조호르 술탄으로부터 싱가푸라 섬을 사들인 후 개발함으로써 방치된 외딴섬 싱가푸라는 영국의 무역항 싱가포르로서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까지 포괄하는 해협식민지의 수도가 되었고, 화교가 노동자로서 유입되어 원주민인 말레이인 인구를 압도하게 되었으며, 인도계 이민자 역시 유입되었다.

영국 치하에서 싱가포르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며 대도시로 발달했으나,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3.2. 일본령 쇼난도(소남도)[편집]

1942년 일본군에 점령된 싱가포르는 쇼난도(소남도)[1]로 개칭되었고, 1945년까지 일제의 군정 통치가 이어졌다.

4. 현대[편집]

4.1. 영국령 싱가포르 식민지[편집]

1945년 2차 대전 종전으로 인해 일본군이 물러난 이후 영국이 다시 싱가포르를 차지했는데, 1946년부터는 싱가포르를 다른 해협식민지들과 분리하여 영국 정부 직할 식민지인 싱가포르 식민지로 승격시켰다.

1955년에는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로 총선이 치러졌는데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전선이 승리하여 인도계 정치인 데이비드 마셜이 싱가포르 식민지의 초대 총리[2]로 취임했다.

데이비드 마셜 총리는 계파 갈등으로 인해 1년만에 사임하고 중국계 정치인 림유헉이 제2대 총리로 취임했는데, 림유헉 총리가 이끄는 노동전선은 1959년 총선에서 또다른 중국계 정치인 리콴유가 이끄는 좌익 정당 인민행동당에 대패하며 정권이 교체되었다.

리콴유의 인민행동당 내각은 말레이 반도의 독립국인 말라야 연방, 보르네오 섬 북부의 또다른 영국령 식민지인 사라왁, 사바와 협상하여 새로운 연방국가인 말레이시아를 건설하기로 합의했고 이에 따라 1963년 싱가포르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었다.

4.2. 싱가포르 주(말레이시아)[편집]

1963년부터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인 우월주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말레이시아의 집권여당 통일 말레이 국민기구(UMNO)에게 있어서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는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또한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이 말레이시아 본토(말레이 반도)의 중국계 다수 지역에 공천하여 말레이시아 연방의회 의석을 확보하기까지 하자, 인종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UMNO를 위협하게 되었고, 결국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축출되는 형식으로 독립하여 싱가포르 공화국이 되었다.

4.3. 싱가포르 공화국[편집]

4.3.1. 리콴유 내각[편집]

1965년 싱가포르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리콴유를 초대 총리로 하는 싱가포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싱가포르의 여당인 인민행동당은 좌익 정당으로 여겨졌으나, 1970년대에 리콴유가 사회주의자들을 당내에서 축출하면서 우경화되어 권위주의 우파 성향의 개발독재 정당이 되었다.

리콴유 치하의 싱가포르는 독재 국가였으나 믈라카 해협이라는 무역의 요지에 위치한 지리적 입지를 살려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4.3.2. 고촉통 내각[편집]

1990년 리콴유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고촉통이 제2대 총리로 취임했으나, 이후에도 리콴유는 선임장관이라는 공직을 역임하며 사실상의 상왕으로서 통치했다.

4.3.3. 리셴룽 내각[편집]

2004년 고촉통이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여전히 실세였던 리콴유의 아들인 리셴룽이 제3대 총리직에 오르면서 싱가포르는 부자 세습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리콴유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고촉통에게 보상으로 선임장관직을 물려준 후 고문장관에 취임하여 상왕 정치를 계속했고, 사망 직전인 2011년에야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고촉통 선임장관 역시 함께 물러나도록 함으로써 리셴룽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리셴룽은 명실상부한 싱가포르의 최고권력자로서 군림하며 2024년까지 장기집권했다.

4.3.4. 로렌스 웡 내각[편집]

2024년 리셴룽이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로렌스 웡이 제4대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은 총리직 사퇴 직후 선임장관에 취임하며 부친 리콴유가 했던 것처럼 상왕 정치를 시작했고, 이에 따라 로렌스 웡은 고촉통처럼 부자세습 이전의 징검다리 총리 역할에만 만족하고, 리셴룽의 아들 리홍이로의 세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1] 쇼와(소화)의 남쪽 섬이라는 의미다.[2] 지금의 싱가포르 공화국 총리직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