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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라오스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고대[편집]
3. 중근세[편집]
3.1. 란쌍 왕국[편집]
라오 민족의 전설적 시조인 쿤 로(Khun Lo)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여러 군주들이 라오스 각지에 소국(므엉)을 형성했는데, 해당 국가들 중 하나인 루앙프라방의 군주 파응움이 처음으로 라오스를 통일하고 1356년에 최초의 통일국가인 란쌍 왕국을 세웠다.
란쌍 왕국은 루앙프라방을 수도로 삼아 200여년간 번영하다가 1560년에 현재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천도했고, 1707년 이전까지 통일국가를 유지했다.
란쌍 왕국은 루앙프라방을 수도로 삼아 200여년간 번영하다가 1560년에 현재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천도했고, 1707년 이전까지 통일국가를 유지했다.
3.2. 삼국 분열기[편집]
1707년 란쌍 왕국에서는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 북부의 비엔티안 왕국과 중남부의 루앙프라방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1713년에는 남부의 참파싹 왕국이 루앙프라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북부 비엔티안 왕국, 중부 루앙프라방 왕국, 남부 참파싹 왕국의 삼국 구도가 형성되었다.
3.2.1. 비엔티안 왕국[편집]
3.2.2. 루앙프라방 왕국[편집]
3.2.3. 참파싹 왕국[편집]
4. 근대[편집]
4.1. 프랑스령 라오스[편집]
프랑스는 1889년 루앙프라방 왕국을 보호령으로 만든 후, 1893년 비엔티안 왕국의 옛 땅을 태국으로부터 할양받고, 1904년에는 참파싹 왕국마저 태국으로부터 할양받아 라오스 전역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역설적이지만 프랑스의 식민화를 통해 란쌍 왕국 멸망 이후 200여년간 지속되던 라오스의 분열 시대도 종식되었다.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왕국은 기존 왕실을 존치하며 간접 통치하고, 비엔티안 왕국과 참파싹 왕국의 옛 땅은 직할령으로 삼았다.
1940년 프랑스 본토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프랑스령 라오스를 비롯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관할하던 총독부는 비시 프랑스에 충성했는데, 1941년 일본 제국이 동남아시아를 침공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일본군의 점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일본과 프랑스의 이중 통치 구조가 형성되었다.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왕국은 기존 왕실을 존치하며 간접 통치하고, 비엔티안 왕국과 참파싹 왕국의 옛 땅은 직할령으로 삼았다.
1940년 프랑스 본토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프랑스령 라오스를 비롯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관할하던 총독부는 비시 프랑스에 충성했는데, 1941년 일본 제국이 동남아시아를 침공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일본군의 점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일본과 프랑스의 이중 통치 구조가 형성되었다.
4.2. 라오스 왕국(괴뢰국)[편집]
5. 현대[편집]
5.1. 프랑스의 재식민화와 라오스 왕국[편집]
일제가 물러난 후 프랑스가 돌아와 재식민화를 시도하자 라오스에서는 라오 이싸라(Lao Issara)[1]라는 독립운동 단체가 반프랑스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프랑스는 1947년에 루앙프라방 국왕을 다시 라오스 전체의 왕으로 삼는 라오스 왕국을 다시 출범시킴으로써 자치를 인정함으로써 라오 이싸라를 회유하려 했다.
이때 라오 이싸라 우파는 대부분 라오스 왕국에 합류했으나, 라오 이싸라 좌파는 무장투쟁을 지속했고 1950년에 파테트 라오(Pathet Lao)[2]라는 새로운 무장 독립단체를 결성했다.
파테트 라오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수파누봉은 루앙프라방 왕국의 왕자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3] 왕정 타도를 부르짖는 인물이었다.
그러자 프랑스는 1947년에 루앙프라방 국왕을 다시 라오스 전체의 왕으로 삼는 라오스 왕국을 다시 출범시킴으로써 자치를 인정함으로써 라오 이싸라를 회유하려 했다.
이때 라오 이싸라 우파는 대부분 라오스 왕국에 합류했으나, 라오 이싸라 좌파는 무장투쟁을 지속했고 1950년에 파테트 라오(Pathet Lao)[2]라는 새로운 무장 독립단체를 결성했다.
파테트 라오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수파누봉은 루앙프라방 왕국의 왕자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3] 왕정 타도를 부르짖는 인물이었다.
5.2. 라오스 왕국과 내전[편집]
5.3. 라오 인민민주공화국[편집]
1975년에 이웃나라인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자 라오스 왕국 역시 파테트 라오에 의해 전복되었다.
파테트 라오는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했고,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이 각각 국가주석과 라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에 취임했다.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은 초기에는 공산주의 경제를 추구했으나, 1986년부터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베트남의 도이머이에 영향을 받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1991년에는 수파누봉이 은퇴하면서 카이손 폼비한 서기장이 국가주석까지 겸임하게 되었으나, 불과 1년만인 1992년에 카이손 폼비한이 사망하면서 공산혁명 1세대 원로 대부분이 정치 일선에서 퇴장하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4]
이후 라오스는 주기적으로 지도부 교체를 단행하면서 집단지도체제와 일당제를 유지하고 있다.
파테트 라오는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했고,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이 각각 국가주석과 라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에 취임했다.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은 초기에는 공산주의 경제를 추구했으나, 1986년부터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베트남의 도이머이에 영향을 받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1991년에는 수파누봉이 은퇴하면서 카이손 폼비한 서기장이 국가주석까지 겸임하게 되었으나, 불과 1년만인 1992년에 카이손 폼비한이 사망하면서 공산혁명 1세대 원로 대부분이 정치 일선에서 퇴장하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4]
이후 라오스는 주기적으로 지도부 교체를 단행하면서 집단지도체제와 일당제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