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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라오스
1. 개요2. 고대3. 중근세
3.1. 란쌍 왕국3.2. 삼국 분열기
3.2.1. 비엔티안 왕국3.2.2. 루앙프라방 왕국3.2.3. 참파싹 왕국
4. 근대
4.1. 프랑스령 라오스4.2. 라오스 왕국(괴뢰국)
5. 현대
5.1. 프랑스의 재식민화와 라오스 왕국5.2. 라오스 왕국과 내전5.3. 라오 인민민주공화국

1. 개요[편집]

라오스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고대[편집]

라오스(Laos)의 주류 민족인 라오(Lao)족은 태국의 주류 민족인 타이(Thai)족의 친척뻘 되는 민족으로, 타이족과 함께 중국 남부에서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라오족은 므엉(Meuong)이라 불리는 여러 소국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중국베트남 기록에 아이 라오(Ai Lao, 애뢰) 또는 라오 꽈(Lao Qua, 노과)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아이 라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력이 외부에 처음 알려진 것은 중국 후한 시대였는데, 후한서 남만서남이열전 애뢰이전에 등장하는 애뢰가 시초로 여겨진다.

3. 중근세[편집]

3.1. 란쌍 왕국[편집]

라오 민족의 전설적 시조인 쿤 로(Khun Lo)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여러 군주들이 라오스 각지에 소국(므엉)을 형성했는데, 해당 국가들 중 하나인 루앙프라방의 군주 파응움이 처음으로 라오스를 통일하고 1356년에 최초의 통일국가인 란쌍 왕국을 세웠다.

란쌍 왕국은 루앙프라방을 수도로 삼아 200여년간 번영하다가 1560년에 현재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으로 천도했고, 1707년 이전까지 통일국가를 유지했다.

3.2. 삼국 분열기[편집]

1707년 란쌍 왕국에서는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나 북부의 비엔티안 왕국과 중남부의 루앙프라방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1713년에는 남부의 참파싹 왕국이 루앙프라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북부 비엔티안 왕국, 중부 루앙프라방 왕국, 남부 참파싹 왕국의 삼국 구도가 형성되었다.

3.2.1. 비엔티안 왕국[편집]

1707년 란쌍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비엔티안에서 건국된 왕국.

18세기 말부터 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는데, 1826년에 아누웡 왕의 주도하에 태국에 저항하는 독립전쟁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서 멸망했다.

이후에는 태국의 지배를 받다가 1893년 프랑스에 할양됨으로써 프랑스령 라오스의 일부가 되었다.

3.2.2. 루앙프라방 왕국[편집]

란쌍 왕국의 초기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을 수도로 삼아 1707년에 세워진 왕국.

베트남태국이라는 두 지역강국에 시달리다가 1880년대에는 중국 남부에서 청조에 맞서 일어난 반란군인 흑기군의 약탈까지 겪은 후, 1889년에 루앙프라방 국왕 우운 캄이 프랑스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소속 보호령인 프랑스령 라오스가 되었다.

3.2.3. 참파싹 왕국[편집]

1713년에 라오스 남부 참파싹 지방이 루앙프라방 왕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세워진 왕국.

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가 1904년 태국이 프랑스에 할양하여 프랑스령 라오스에 합병되면서 멸망했다.

4. 근대[편집]

4.1. 프랑스령 라오스[편집]

프랑스는 1889년 루앙프라방 왕국을 보호령으로 만든 후, 1893년 비엔티안 왕국의 옛 땅을 태국으로부터 할양받고, 1904년에는 참파싹 왕국마저 태국으로부터 할양받아 라오스 전역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역설적이지만 프랑스의 식민화를 통해 란쌍 왕국 멸망 이후 200여년간 지속되던 라오스의 분열 시대도 종식되었다.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왕국은 기존 왕실을 존치하며 간접 통치하고, 비엔티안 왕국과 참파싹 왕국의 옛 땅은 직할령으로 삼았다.

1940년 프랑스 본토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프랑스령 라오스를 비롯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관할하던 총독부는 비시 프랑스에 충성했는데, 1941년 일본 제국동남아시아를 침공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일본군의 점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일본과 프랑스의 이중 통치 구조가 형성되었다.

4.2. 라오스 왕국(괴뢰국)[편집]

1944년 프랑스 본토가 연합군과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해방되자, 1945년 라오스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일제히 쿠데타를 일으켜 총독부를 전복시키고 루앙프라방 국왕으로 하여금 라오스 왕국을 선포하게 했다.

이때 라오스 왕국은 공식적으로는 독립국이었으나 실제로는 일제의 괴뢰국에 불과했고, 같은 해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붕괴되었다.

5. 현대[편집]

5.1. 프랑스의 재식민화와 라오스 왕국[편집]

일제가 물러난 후 프랑스가 돌아와 재식민화를 시도하자 라오스에서는 라오 이싸라(Lao Issara)[1]라는 독립운동 단체가 반프랑스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프랑스는 1947년에 루앙프라방 국왕을 다시 라오스 전체의 왕으로 삼는 라오스 왕국을 다시 출범시킴으로써 자치를 인정함으로써 라오 이싸라를 회유하려 했다.

이때 라오 이싸라 우파는 대부분 라오스 왕국에 합류했으나, 라오 이싸라 좌파는 무장투쟁을 지속했고 1950년에 파테트 라오(Pathet Lao)[2]라는 새로운 무장 독립단체를 결성했다.

파테트 라오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수파누봉은 루앙프라방 왕국의 왕자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3] 왕정 타도를 부르짖는 인물이었다.

5.2. 라오스 왕국과 내전[편집]

1953년 프랑스군이 라오스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라오스 왕국은 완전 독립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파테트 라오는 프랑스에 협력했던 라오스 왕국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장투쟁을 지속하여 20여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라오스 내전이 전개되었다.

내전 도중인 1955년에 파테트 라오는 라오 인민당을 창당했고 수파누봉이 당 중앙위원회 주석을 맡았는데, 1972년에 라오 인민혁명당으로 당명을 개칭했다.

5.3. 라오 인민민주공화국[편집]

1975년에 이웃나라인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자 라오스 왕국 역시 파테트 라오에 의해 전복되었다.

파테트 라오는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했고,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이 각각 국가주석과 라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에 취임했다.

수파누봉과 카이손 폼비한은 초기에는 공산주의 경제를 추구했으나, 1986년부터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베트남의 도이머이에 영향을 받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1991년에는 수파누봉이 은퇴하면서 카이손 폼비한 서기장이 국가주석까지 겸임하게 되었으나, 불과 1년만인 1992년에 카이손 폼비한이 사망하면서 공산혁명 1세대 원로 대부분이 정치 일선에서 퇴장하고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4]

이후 라오스는 주기적으로 지도부 교체를 단행하면서 집단지도체제와 일당제를 유지하고 있다.
[1] 라오어로 '자유 라오'를 뜻한다.[2] 라오어: 빠텟 라오.[3] 다만 서자라서 왕위 계승권은 없었다.[4] 수파누봉은 이후에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1995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