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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통가 신화에 따르면 천신(天神) 에이투마푸투아의 아들이자 영웅인 아호에이투(Ahoeitu)가 처음으로 통가를 통일하여 초대 투이 통가(Tu'i Tonga)로 즉위했고, 역대 군주(투이 통가)들은 모두 그의 혈통을 물려받았다고 전해진다.
투이 통가 제국은 전근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한 국가였기에 후대 역사학자들에 의해 '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투이 통가'가 중국 황제나 로마 황제처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는 제국이라기 보다는, 자치권을 가진 여러 부족장(투이, T'ui)들의 맹주로서 투이 통가가 군림하는 부족 연맹 국가 또는 봉건제 국가에 가까웠는데, 15세기에 이르러서는 투이 통가 왕조의 방계 부족장인 '투이 하아타칼라우아'에게 정치적 실권이 넘어가 투이 통가는 쇼군에게 실권을 빼앗긴 일본 막부 시대의 천황처럼 종교적 권위만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후 17세기에는 '투이 하아타칼라우아'의 실권이 다시 '투이 카노쿠폴루'라는 또다른 방계 부족장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18세기 말부터 투이 통가 제국은 본격적으로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통가 전통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인구도 늘어났다.
1820년대에 실권자인 투이 카노쿠폴루의 계승권을 놓고 내전이 벌어지자 당시 투이 통가로 재위 중이던 라우필리통가는 직접 투이 카노쿠폴루 내전에 참전함으로써 투이 통가의 실권을 회복하려는 승부수를 띄웠으나, 1826년 벨라타 전투에서 투이 카노쿠폴루 타우파하우에게 패배했고, 내전에서 승리한 타우파하우는 1831년에 개신교 감리회로 개종하고 조지 투포우로 개명하면서 투이 통가의 권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던 통가 전통종교를 부정했으며, 1845년에 서구식 국왕(King) 칭호를 도입하고 조지 투포우 1세로 즉위하며 통가 왕국을 수립했다.
라우필리통가는 이러한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1851년 개신교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맞불을 놓았으나, 이미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별다른 효과는 없었고, 1865년 라우필리통가가 사망하자 조지 투포우 1세가 공식적으로 투이 통가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투이 통가 제국은 막을 내렸다.
투이 통가 제국은 전근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한 국가였기에 후대 역사학자들에 의해 '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투이 통가'가 중국 황제나 로마 황제처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는 제국이라기 보다는, 자치권을 가진 여러 부족장(투이, T'ui)들의 맹주로서 투이 통가가 군림하는 부족 연맹 국가 또는 봉건제 국가에 가까웠는데, 15세기에 이르러서는 투이 통가 왕조의 방계 부족장인 '투이 하아타칼라우아'에게 정치적 실권이 넘어가 투이 통가는 쇼군에게 실권을 빼앗긴 일본 막부 시대의 천황처럼 종교적 권위만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후 17세기에는 '투이 하아타칼라우아'의 실권이 다시 '투이 카노쿠폴루'라는 또다른 방계 부족장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18세기 말부터 투이 통가 제국은 본격적으로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통가 전통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인구도 늘어났다.
1820년대에 실권자인 투이 카노쿠폴루의 계승권을 놓고 내전이 벌어지자 당시 투이 통가로 재위 중이던 라우필리통가는 직접 투이 카노쿠폴루 내전에 참전함으로써 투이 통가의 실권을 회복하려는 승부수를 띄웠으나, 1826년 벨라타 전투에서 투이 카노쿠폴루 타우파하우에게 패배했고, 내전에서 승리한 타우파하우는 1831년에 개신교 감리회로 개종하고 조지 투포우로 개명하면서 투이 통가의 권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던 통가 전통종교를 부정했으며, 1845년에 서구식 국왕(King) 칭호를 도입하고 조지 투포우 1세로 즉위하며 통가 왕국을 수립했다.
라우필리통가는 이러한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1851년 개신교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맞불을 놓았으나, 이미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별다른 효과는 없었고, 1865년 라우필리통가가 사망하자 조지 투포우 1세가 공식적으로 투이 통가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투이 통가 제국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