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1804년 아이티의 사실상 독립을 확보한[1] 장 자크 데살린은 총독을 칭하며 통치했으나, 프랑스 통령(Consul)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며 프랑스 제국을 선포하자, 데살린은 이에 맞서 황제 자크 1세로 즉위하여 아이티 제국을 선포했다.
그는 선거를 통해 황제로 당선되는 절차를 거치며 다른 독립군 지도자와 민중의 지지를 확보했으나, 그의 치세는 군국주의와 착취, 폭정으로 점철되었다.
결국 재위 2년만인 1806년에 반란이 일어나 제국은 무너졌고, 자크 1세 본인은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아이티는 자크 1세의 독립군 동료였던 알렉상드르 사베 페시옹과 앙리 크리스토프에 의해 남부의 아이티 공화국과 북부의 아이티국[2]으로 분열되었고, 아이티의 재통일은 1820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다만 이렇게 단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 통치자들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독재자나 무능한 인물들이 많았기에 자크 1세는 독립영웅으로서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오늘날 아이티 공화국의 국가로는 그의 이름을 딴 '데살린의 노래'가 사용되고 있다.
그는 선거를 통해 황제로 당선되는 절차를 거치며 다른 독립군 지도자와 민중의 지지를 확보했으나, 그의 치세는 군국주의와 착취, 폭정으로 점철되었다.
결국 재위 2년만인 1806년에 반란이 일어나 제국은 무너졌고, 자크 1세 본인은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아이티는 자크 1세의 독립군 동료였던 알렉상드르 사베 페시옹과 앙리 크리스토프에 의해 남부의 아이티 공화국과 북부의 아이티국[2]으로 분열되었고, 아이티의 재통일은 1820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다만 이렇게 단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 통치자들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독재자나 무능한 인물들이 많았기에 자크 1세는 독립영웅으로서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오늘날 아이티 공화국의 국가로는 그의 이름을 딴 '데살린의 노래'가 사용되고 있다.
3. 정치[편집]
3.1. 황제[편집]
- 자크 1세[3] (1804 ~ 1806)
4. 사회[편집]
4.1. 민족[편집]
4.2. 언어[편집]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가 공용어였다.
4.3. 종교[편집]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전파된 가톨릭과 흑인 노예들의 민속신앙으로 시작된 부두교가 공존했다.
5. 관련 문서[편집]
[1] 프랑스가 아이티의 독립을 정식으로 승인하는 것은 1825년에 가서야 실현되었다.[2] 이후 아이티 왕국이 되었다.[3] 장 자크 데살린.[4] 흑인들과 혼혈들은 전문적인 의학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에, 다른 백인들은 다 죽이거나 내쫓더라도 의사들만큼은 흑인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살려둬야 했다.[5]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폴란드 분할로 멸망한 후,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군에 입대했으나 폴란드와 전혀 상관 없는 아메리카 식민지인 아이티의 독립을 막는데 파병되자, 탈영하여 아이티 혁명군에 가담한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