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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이티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콜럼버스 이전 시대: 타이노인[편집]
3. 식민지 시대[편집]
3.1. 스페인령 산토도밍고[편집]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달했다.
스페인은 히스파니올라 섬에 산토도밍고 도독령이라는 식민지를 설치했고, 콜럼버스가 초대 도독으로서 통치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 이후 산토도밍고 도독령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일부가 되었다.
원주민인 타이노인은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에 식민지화 이후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했고, 스페인은 그 빈자리를 흑인 노예로 채움으로써 현재 흑인이 다수인 아이티와 흑백혼혈이 다수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인구 구성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스페인은 히스파니올라 섬에 산토도밍고 도독령이라는 식민지를 설치했고, 콜럼버스가 초대 도독으로서 통치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 이후 산토도밍고 도독령은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일부가 되었다.
원주민인 타이노인은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에 식민지화 이후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했고, 스페인은 그 빈자리를 흑인 노예로 채움으로써 현재 흑인이 다수인 아이티와 흑백혼혈이 다수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인구 구성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3.2. 프랑스령 생도맹그[편집]
4. 근현대[편집]
4.1. 아이티 혁명(아이티 독립전쟁)[편집]
1791년부터 프랑스령 생도맹그에서는 흑인 노예와 일부 자유 흑인, 물라토(흑백혼혈)들이 노예제와 식민지배에 맞서 혁명을 일으켰고, 투생 루베르튀르가 아이티 혁명군을 이끌었다.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로 프랑스의 통령(Consul)이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매제인 샤를 르클레르[1]를 비롯한 측근들을 파견하여 강경 진압을 펼쳤고, 1802년에는 아이티 혁명군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가 프랑스군에 체포되었다.[2]
투생은 프랑스 본토로 압송되어 1803년에 옥사했으나, 아이티 혁명군은 그의 후계자 장 자크 데살린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1804년에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로 프랑스의 통령(Consul)이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매제인 샤를 르클레르[1]를 비롯한 측근들을 파견하여 강경 진압을 펼쳤고, 1802년에는 아이티 혁명군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가 프랑스군에 체포되었다.[2]
투생은 프랑스 본토로 압송되어 1803년에 옥사했으나, 아이티 혁명군은 그의 후계자 장 자크 데살린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1804년에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4.2. 아이티 제1제국[편집]
1804년 아이티 독립 직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1세로 즉위하자, 아이티 독립군의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과 아이티가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티 황제 자크 1세로 즉위했다.
자크 1세는 초기에는 독립영웅으로서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철권통치로 민심을 잃었고 결국 즉위 2년만인 1806년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자크 1세는 초기에는 독립영웅으로서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철권통치로 민심을 잃었고 결국 즉위 2년만인 1806년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4.3. 분열기[편집]
자크 1세 사후 그와 독립전쟁을 함께했던 측근인 앙리 크리스토프와 알렉상드르 사베 페시옹이 각각 아이티 북부와 남부를 차지하여 아이티는 분단되었다.
4.3.1. 북아이티[편집]
4.3.1.1. 아이티국[편집]
4.3.1.2. 아이티 왕국[편집]
1811년 앙리 크리스토프는 스스로 아이티 국왕 앙리 1세로 즉위했다.
앙리 1세는 말년에 이르러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820년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그의 아들 자크 빅토르 앙리 크리스토프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같은 해에 남부의 지원을 받은 반란이 일어나 아이티 왕국은 멸망했다.
앙리 1세는 말년에 이르러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820년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그의 아들 자크 빅토르 앙리 크리스토프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같은 해에 남부의 지원을 받은 반란이 일어나 아이티 왕국은 멸망했다.
4.3.2. 남아이티(아이티 제1공화국)[편집]
4.4. 아이티 제1공화국(통일)[편집]
1820년 남부의 아이티 제1공화국이 북부의 아이티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아이티는 다시 통일되었다.
1821년에 히스파니올라 동부의 스페인령 산토도밍고가 스페인계 아이티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자, 아이티 대통령 장 피에르 부아예는 해당 국가의 지배층을 설득함으로써 1822년에는 히스파니올라 섬 전체를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825년에 프랑스가 아이티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 부아예 대통령은 이에 굴복했고, 배상금 납부를 위해 히스파니올라 섬 전체를 가혹하게 착취하며 독재 정치를 펼쳤다.
20년 이상 장기집권한 부아예 정권은 1843년 혁명으로 붕괴되었고, 이듬해인 1844년에는 히스파니올라 동부가 다시 아이티에서 독립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후 아이티에서는 여러 차례의 쿠데타로 대통령이 교체되다가 1847년에 제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포스탱 엘리 술루크가 1849년에 황제 포스탱 1세로 즉위하면서 아이티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다.
1821년에 히스파니올라 동부의 스페인령 산토도밍고가 스페인계 아이티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자, 아이티 대통령 장 피에르 부아예는 해당 국가의 지배층을 설득함으로써 1822년에는 히스파니올라 섬 전체를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825년에 프랑스가 아이티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자 부아예 대통령은 이에 굴복했고, 배상금 납부를 위해 히스파니올라 섬 전체를 가혹하게 착취하며 독재 정치를 펼쳤다.
20년 이상 장기집권한 부아예 정권은 1843년 혁명으로 붕괴되었고, 이듬해인 1844년에는 히스파니올라 동부가 다시 아이티에서 독립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후 아이티에서는 여러 차례의 쿠데타로 대통령이 교체되다가 1847년에 제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포스탱 엘리 술루크가 1849년에 황제 포스탱 1세로 즉위하면서 아이티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다.
4.5. 아이티 제2제국[편집]
4.6. 아이티 제2공화국[편집]
1859년에 타바라 공작 파브르 제프라르가 제정 폐지 및 공화정 회복을 선언하고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아이티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아이티 제2공화국은 잦은 쿠데타와 미군의 점령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00년 가까이 유지되었으나, 의사 출신 정치인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야당을 불법화하고 독재자로 타락하면서 무너졌다.
아이티 제2공화국은 잦은 쿠데타와 미군의 점령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00년 가까이 유지되었으나, 의사 출신 정치인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야당을 불법화하고 독재자로 타락하면서 무너졌다.
4.7. 아이티 공화국(뒤발리에 왕조)[편집]
1957년 대통령에 당선된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야당을 불법화하고 모든 권력을 독점한 독재자로서 통치하며 종신 집권을 이룩했고, 그의 집권기에 아이티는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최빈국이 되었다.
1971년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사망하자 불과 만 19세에 불과했던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부자세습이 이루어졌다.
장 클로드 뒤발리에는 아버지처럼 철권통치를 이어갔으나, 1986년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자 국외로 도피하여 뒤발리에 부자의 세습독재는 종식되었다.
1971년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사망하자 불과 만 19세에 불과했던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부자세습이 이루어졌다.
장 클로드 뒤발리에는 아버지처럼 철권통치를 이어갔으나, 1986년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자 국외로 도피하여 뒤발리에 부자의 세습독재는 종식되었다.
4.8. 아이티 제3공화국[편집]
1986년 뒤발리에 왕조 붕괴 이후 군부가 임시정부를 구성했다가, 1991년 대선에서 좌파 성향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리스티드는 군부와 대립하며 대통령직에서 축출되었다가 복귀하기를 2004년까지 반복했다.
이후 아리스티드의 후계자인 르네 프레발이 집권했는데, 프레발 재임기에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 안 그래도 최빈국인 아이티는 더욱 열악한 상황에 빠졌다.
프레발 이후에는 가수 출신 대통령 미셸 마르텔리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그 이후에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가 집권했다.
조브넬 모이즈는 2021년에 암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이후부터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되고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아이티는 전국각지에서 갱단이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날튀는 무정부 상태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리스티드는 군부와 대립하며 대통령직에서 축출되었다가 복귀하기를 2004년까지 반복했다.
이후 아리스티드의 후계자인 르네 프레발이 집권했는데, 프레발 재임기에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나 안 그래도 최빈국인 아이티는 더욱 열악한 상황에 빠졌다.
프레발 이후에는 가수 출신 대통령 미셸 마르텔리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그 이후에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가 집권했다.
조브넬 모이즈는 2021년에 암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이후부터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되고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아이티는 전국각지에서 갱단이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날튀는 무정부 상태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