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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1] | |||||||||||||||||
출생 | ||||||||||||||||||
사망 | ||||||||||||||||||
재임기간 | 프랑스 통령정부 제1통령 | |||||||||||||||||
라인동맹의 수호자 | ||||||||||||||||||
재위기간 | 프랑스인의 황제[2] | |||||||||||||||||
이탈리아 국왕 | ||||||||||||||||||
프랑스인의 황제 (2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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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이름[편집]
3. 일생[편집]
3.1. 집안 배경[편집]
나폴레옹이 워낙 입지전적인 출세를 한 인물이라서 역설적으로 그의 집안은 귀족 축에도 못 끼는 미천한 집안이나 고기잡이로 근근히 삶을 꾸리는 어부 집안이었다는 오해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긴 했지만, 그의 가문인 보나파르트(Bonaparte) 가문[7]은 어디까지나 유럽 각국의 왕실이나 프랑스 본토의 대귀족 가문들과 비교했을 때 한미했을 뿐, 코르시카 현지에서는 대대로 특권 계급으로 군림해온 귀족 가문이었다.
나폴레옹의 부친 샤를 보나파르트(Charles Bonaparte)[8]는 제노바 공화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코르시카 독립군을 이끌던 장군 파스콸레 파올리의 부관으로 활약했으나, 제노바가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매각하고 프랑스군이 코르시카를 침공하자, 프랑스 측으로 전향하여 총독부 관료가 된 인물이었다.
프랑스 본토 출신도 아니었던 나폴레옹이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다니고 프랑스 육군 장교로 임용될 수 있었던데는 이러한 집안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나폴레옹의 부친 샤를 보나파르트(Charles Bonaparte)[8]는 제노바 공화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코르시카 독립군을 이끌던 장군 파스콸레 파올리의 부관으로 활약했으나, 제노바가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매각하고 프랑스군이 코르시카를 침공하자, 프랑스 측으로 전향하여 총독부 관료가 된 인물이었다.
프랑스 본토 출신도 아니었던 나폴레옹이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다니고 프랑스 육군 장교로 임용될 수 있었던데는 이러한 집안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3.2. 코르시카에서의 유년기[편집]
3.3. 사관학교 시절[편집]
3.4. 혁명 이전의 장교 생활[편집]
3.5. 혁명군 장교로서의 출세[편집]
3.6. 브뤼메르 쿠데타를 통한 집권[편집]
3.7. 황제 나폴레옹 1세[편집]
3.8. 세인트헬레나 유배[편집]
3.9. 사망 이후[편집]
4. 업적[편집]
5. 평가[편집]
5.1. 능력에 대한 평가[편집]
5.1.1. 군사적 능력에 대한 평가[편집]
5.1.2. 정치적 능력에 대한 평가[편집]
5.2. 국가/지역별 평가[편집]
5.2.1. 프랑스[편집]
프랑스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주로 우익 성향이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주로 좌익 성향이다.
6. 관련 문서[편집]
7. 둘러보기[편집]
[1] 이탈리아어로는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2] 군주 칭호의 정식 명칭은 '프랑스인의 황제(Empereur des Français)'이다. 기존 왕정의 군주였던 '프랑스 국왕(Roi de France)'의 칭호는 국왕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시사했다. 반면 프랑스인의 황제는 명목상 프랑스인의 총의로 추대된 존재로서, 명목상 공화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봉건제도가 폐기되고 공화정에 기반한 국민국가가 탄생했으며 황제는 그것을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이는 지극히 로마 제국스러운 칭호인데, 로마 제국 황제의 공식 명칭도 '로마인의 황제(Imperator Romanorum, Βασιλεύς Ῥωμαίων)'로 비록 군주제 국가가 되었어도 공화정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3] 혼전 성씨는 라몰리노.[4] 흔히 키가 작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 프랑스 남자의 평균 신장인 164cm보다 컸다. 그러나 158cm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5] 사망 당시 체중. 해당 자료에서 바지 사이즈를 고려하여 나폴레옹의 체중을 추정했는데 1800년에는 67kg였지만 1820년까지 체중이 계속 증가하여 90kg까지 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체중이 약 11kg 감소하여 사망 당시 79kg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6] 현대 이탈리아어에서는 이러한 프랑스어 표기를 수용해서 '나폴레오네 보나파르테(Napoleone Bonaparte)'라고 표기한다.[7] 본래 이탈리아계 가문이라서 부오나파르테(Buonaparte)라고 불렸다.[8] 본명: 카를로 부오나파르테(Carlo Buonapar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