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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회 의장 (1792~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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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년 8월 30일 ~ 1825년 12월 29일)

프랑스의 화가이자 신고전주의 양식을 정립한 근대 미술의 거장이다. 로코코 양식의 화려함에 반기를 들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절제된 미학을 부활시켰으며, 명확한 선과 엄격한 구도를 통해 도덕적 메시지와 애국심을 강조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자코뱅파의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하며 정치적 선전 미술을 주도했고,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수석 화가가 되어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2. 생애[편집]

1748년 8월 30일 파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774년 로마상을 수상하며 이탈리아에서 고전 예술의 정수를 흡수했다. 1784년 발표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로 유럽 화단의 중심에 섰으며, 1793년 혁명기의 비극을 담은 《마라의 죽음》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이후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나폴레옹을 만난 뒤 1804년 황제의 수석 화가로 임명되어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 걸작을 제작했다. 1815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했으며, 1825년 12월 29일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