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1. 개요2. 칭호
2.1. 불가르 칸(카나수비기)2.2. 불가리아 크냐지2.3. 불가리아 차르
3. 명단
3.1. 불가리아 제1제국 군주
3.1.1. 불가르 칸/카나수비기(둘로 왕조)3.1.2. 불가르 칸/카나수비기(비왕조)3.1.3. 불가르 칸/카나수비기(크룸 왕조)3.1.4. 불가리아 크냐지(크룸 왕조)3.1.5. 불가리아 차르(크룸 왕조)3.1.6. 불가리아 차르(코미토풀리 왕조)
3.2. 동로마령 불가리아의 자칭 차르3.3.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3.3.1. 아센 왕조3.3.2. 비왕조3.3.3. 테르테르 왕조3.3.4. 비왕조3.3.5. 테르테르 왕조3.3.6. 시슈만 왕조
3.4. 불가리아 크냐지(1879~1908)3.5. 불가리아 왕국(불가리아 제3제국) 차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불가리아의 역대 군주들을 다루는 문서.

2. 칭호[편집]

2.1. 불가르 칸(카나수비기)[편집]

불가리아 제1제국기독교(정교회)로 개종하기 이전에 사용한 군주의 칭호.

본래 불가리아튀르크계 유목민인 불가르족의 나라로 시작했기에, 불가리아 제1제국 군주들 역시 유목 세계의 군주 칭호인 이라 불렸다.

다만 당대 불가르족이 그리스 문자를 차용하여 남긴 금석문에서는[1] 다른 유목 국가들도 널리 쓰는 '칸' 칭호보다는 카나수비기라는 독자적인 칭호가 더 자주 보이는데, '카나수비기'에서 '카나'는 '칸'과 동원어로 추정되지만 '수비기'의 어원은 불명이다.

2.2. 불가리아 크냐지[편집]

불가리아 제1제국보리스 1세기독교(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슬라브식 군주 칭호.

'크냐지'라는 칭호의 기원 자체는 기독교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지만, 먼저 기독교로 개종한 게르만계 국가들의 킹, 쾨니히 등의 칭호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칭호였기에 대놓고 이교도 군주라는 어감이 강한 (카나수비기) 대신 불가리아 군주의 칭호로 채택되었다.

어원이 게르만어파 언어에서 을 뜻하는 칭호와 동일한만큼, 당시 불가리아의 크냐지는 라틴어 렉스(Rex) 등 다른 언어에서 왕에 대응되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보리스 1세의 아들 시메온 1세차르를 칭한 이래 크냐지는 군주의 칭호에서 군주가 아닌 황족 또는 왕족의 칭호로 격하되었고, 이는 비슷하게 크냐지 칭호를 사용한 러시아 등 동슬라브 국가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점차 크냐지는 왕이 아니라 프린스 등 제후에 대응되는 칭호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차르 칭호를 사용하던 불가리아 제2제국이 1396년 오스만 제국에 멸망하고 500년 가까이 지난 1878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회복한 불가리아는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었기에 차르 칭호 대신 크냐지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때 '크냐지'라는 단어의 위상은 이미 왕이 아니라 제후에 대응되는 칭호로 격하된지 오래였으므로 당시 불가리아의 공식 국호는 '불가리아 공국', 불가리아의 크냐지는 '불가리아 공' 또는 '불가리아 공작'으로 번역된다.

2.3. 불가리아 차르[편집]

시메온 1세(시메온 대제) 이후의 불가리아 제1제국제2제국, 그리고 불가리아 왕국에서 사용된 군주 칭호.

본래 중세 불가리아의 차르 칭호는 시메온 1세가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황제를 칭하면서 시작된 황제의 칭호였고, 중세 시대 내내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어 이웃나라 세르비아러시아에도 황제의 칭호로서 수출되었다.

다만 1721년 러시아표트르 1세가 서구식 황제 칭호 임페라토르를 수입하여 러시아 제국을 선포하고 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를 칭하면서, 근대 러시아어에서 차르의 위상은 황제보다 낮고 보다는 높은 대군주 정도에 해당되는 애매한 칭호로 위상 격하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러시아의 차르 용법을 근대 불가리아가 받아들이면서 불가리아어에서도 '황제=임페라토르, 차르=대군주'라는 의미가 정착되었다.

따라서 중세 불가리아 제1차르국제2차르국이 각각 제1제국제2제국으로 번역되는 것과 달리 제3차르국은 세계 각국 언어에서 불가리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게 되었다.

3. 명단[편집]

3.1. 불가리아 제1제국 군주[편집]

3.1.1. 불가르 칸/카나수비기(둘로 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1
681년
2
3
4

3.1.2. 불가르 칸/카나수비기(비왕조)[편집]

둘로 왕조 단절 이후부터 크룸 왕조가 들어서기 전까지 왕위 세습이 이어지지 못하고 잦은 쿠데타내전으로 이 교체되는 혼란기가 지속되었다.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5
6
7
8
9
10
11
12
13

3.1.3. 불가르 칸/카나수비기(크룸 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14
15
16
17
18
852년
864년

3.1.4. 불가리아 크냐지(크룸 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18
864년
889년
19
889년
893년
20
893년
913년

3.1.5. 불가리아 차르(크룸 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20
913년
927년
21
22
23

3.1.6. 불가리아 차르(코미토풀리 왕조)[편집]

3.2. 동로마령 불가리아의 자칭 차르[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자칭

3.3.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편집]

3.3.1. 아센 왕조[편집]

3.3.2. 비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자칭

3.3.3. 테르테르 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12

3.3.4. 비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13
14
15

3.3.5. 테르테르 왕조[편집]

대수
제호
재위 시작
재위 종료
비고
16
17

3.3.6. 시슈만 왕조[편집]

3.4. 불가리아 크냐지(1879~1908)[편집]

대수
존호
성명
재위 시작
재위 종료
가문
비고
1
1879년
1886년
바텐베르크 가문
2
1886년
1908년

3.5. 불가리아 왕국(불가리아 제3제국) 차르[편집]


마지막 차르였던 시메온 2세는 소련과 불가리아 공산당에 의해 추방되어 망명했다가 냉전 종식 이후 귀국하여 불가리아 공화국 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는데, 2025년 현재까지 생존 중이다.

4. 관련 문서[편집]

[1] 아직 독자적인 문자인 키릴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이었기에 그리스 문자를 빌려 썼다. 여담으로 키릴 문자는 흔히 '러시아 문자'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 키릴 문자를 발명하여 사용한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불가리아(불가리아 제1제국)이다.[2] 864년부터 기독교(정교회)로 개종하고 '크냐지'를 칭하기 시작했다.[3] 초대 크냐지.
장남 블라디미르 라사테에게 양위하면서 자진 퇴위했다.
[4] 제2대 크냐지.
부왕 보리스 1세의 기독교화 정책을 거스르고 불가리아를 다신교(텡그리교) 국가로 되돌리려다 아직 살아있던 보리스 1세에 의해 폐위되었다.
[5] 제3대 크냐지.
913년부터는 불가리아인로마인의 차르를 칭하며 세계 최초로 차르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6] 초대 차르.[7] 제2대 차르.[8] 제3대 차르.[9] 제4대 차르.[10] 제5대 차르.[11] 제6대 차르.[12] 제7대 차르.[13] 제8대 차르.[14] 본명: 페터르 델랸.[15] 두클랴 국왕 콘스탄틴 보딘.[16] 본명: 페르디난트 막시밀리얀 카를 레오폴드 마리야 삭스코부르고츠키.[17] 독일 제국 구성국 왕실 중 하나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방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가문 출신이었다.[18] 본명: 보리스 클레멘트 로베르트 마리아 피우스 루드비그 스타니슬라우스 크사버 삭스코부르고츠키.[19] 본명: 시메온 보리소프 삭스코부르고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