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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현황) 보기 [ 펼치기 · 접기 ]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대한민국 철도청
1000호대 초기 저항제어 전동차

서울地下鐵公社·大韓民國 鐵道廳
1000號臺 初期 抵抗制御 電動車
Seoul Metropolitan Subway Corporation
Korean National Railroad
Class 1000 First Rheostatic Control EMU
파일:external/farm8.staticflickr.com/9030346109_a41a8f0c9e_b.jpg
현역시절[1][2]
철도청 전동차(냉방화 후)[3]
철도청 차량 내부[4]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 전동차(냉방화 후)
차량 정보
열차 형식
구동방식
전기 동력분산식 전동차
편성
10량 1편성
편성수
총 57편성
(41편성 + 16편성)
생산량
총 563량
(403량 + 160량)
운행 노선
운행시기
1974 ~ 2028년 예정[11]
도입시기
1974년 (1차분(K))
1976 ~ 1979년 (2차분(K))
1980 ~ 1981년 (3차분(K))
1984 ~ 1986년 (4차분(K))
1974년 (1차분(S))
1977 ~ 1978년 (2차분(S))
1989년 (3차분(S))
제작회사
소유기관
운영기관
사용차량
차량배속
기지주박
중정비
(2년)
편성번호
1X01 ~ 1X41 (초기형)
1X88 ~ 1X94 (개조형)
101 ~ 116 (초기형)
111 ~ 116 (개조형)[15]
차량 제원
[ 펼치기 · 접기 ]
전장
19,500 ㎜
전폭
3,120 ㎜
전고
3,800 ㎜
궤간
차중
Tc
33.30 t
M
42.10 t
M'
46.10 t
T
33.00 t
대차
코일스프링 탑재 스윙볼스터 방식 대차
재질
마일드 스틸 용접 구조 연강판
급전방식
직류 1,500 V
교류 25,000 V 60 ㎐
신호장비
제어방식
동력장치
기어비
15:87
제동방식
발전제동 병용 전자직통제동
주전동기 출력
120 ㎾
최고속도
영업
110 ㎞/h
설계
가속도
2.5 ㎞/h/s
감속도
상용
3.0 ㎞/h/s
비상
4.0 ㎞/h/s
MT 비
6M 4T (Tc-M-M'-T-M-M'-T-M-M'-Tc)

1. 개요2. 편성3. 상세4. 분류
4.1. 한국철도공사 전동차 (상세·현황)
4.1.1. 1차분 (1974)4.1.2. 2차분 (1976~1979)4.1.3. 3차분 (1980~1981)4.1.4. 4차분 (1984~1986)
4.2.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현황)
4.2.1. 1차분 (1974)4.2.2. 2차분 (1977~1978)4.2.3. 3차분 (1989)
5. 보존6. 도입 당시 부정부패7. 모형화8. 여담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2호선에서 운행했던 시절#[16]
대한뉴스 제 998호 - 수도권 전기철도[17]
한국철도공사 공식 소개영상
서울교통공사 공식 소개영상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인 서울 지하철 1호선수도권 전철 1호선과 직통하는 경원선, 경인선, 경부선을 운행하기 위해 철도청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에서 도입한 전동차이다. 한국 최초의 통근형 전동차, 한국 최초로 생산한 전동차, 한국 최초의 도시철도 대형 전동차 등 오만 가지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전동차이다. 한국 도시철도 역사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다. 번호대로는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의 일부이다.

한국철도공사(철도청) 소유분과 서울교통공사(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서울메트로) 소유분으로 나뉘지만, 두 차량은 도색과 이름, 운영 회사만 다를 뿐 성능은 동일한 차량이다.[18]

2. 편성[편집]

2.1. 한국철도공사[편집]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 조성
10## (1)
Tc(운전실, ATS차상장치, 복선기)
12## (2)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3## (3)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8## (4)
T(무동력객차)
14## (5)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5## (6)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9## (7)
T(무동력객차)
16## (8)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7## (9)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1## (10)
Tc(운전실, ATS차상장치, 복선기)
  • ##: 01~41

2.2. 서울교통공사[편집]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 조성
10XX[A] (1)
Tc(운전실, ATS차상장치, 복선기)
11XX[A] (2)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3XX[A] (3)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5XX[A] (4)
T(무동력객차)
12XX[A] (5)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4YY[B] (6)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5YY[B] (7)
T(무동력객차)
11YY[B] (8)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3YY[B] (9)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0YY[B] (10)
Tc(운전실, ATS차상장치, 복선기)
과거 6량 편성 [ 펼치기 · 접기 ]
10XX[A] (1)
Tc(운전실, ATS차상장치, 복선기)
11XX[A] (2)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3XX[A] (3)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1YY[B] (4)
M(주제어기,주저항기,공기압축기,축전지,견인전동기(TM))
13YY[B] (5)
M'(팬터그래프,주변압기,주정류기,보조전원장치,견인전동기(TM))
10YY[B] (6)
Tc(운전실, ATS차상장치, 복선기)
  • 해당 편성: 101~116

3. 상세[편집]

당시 대한민국에선 전기동차 제작기술을 보유하지 않아[37], 일본 히타치사를 통해서 수입했다.[38] 하지만 한 번에 많은 편성을 도입하게 될 경우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여러 번에 걸쳐 도입하였고, 이로 인해 다양한 차량 제조사들이[39]등장하게 된다.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당시, 철도청은 일본에서 6량 21개 편성을, 서울지하철공사는 6량 10개 편성을 수입했으며, 이렇게 수입해 온 전동차를 수리, 분해, 결합 등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1976년 대우중공업에서 대한민국 제조 1호기 1X15편성 전동차를 제작할 수 있었고,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다양한 열차들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40] 그 후 계속 증차되어 1979년까지 총 6량 42개 편성이 도입되었다.

시운전은 1974년 4월 9일 오전 10시에 중앙선 청량리역~양평역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1973년 6월 20일에 산업선 전철 구간이 첫 개통되었는데, 그 구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지하철공사의 전동차는 1호선 서울역~종각역 구간에서 시운전이 이루어졌다.[41]

시운전 당시 기사 1
시운전 당시 기사 2
청량리~제천 간 개통 기사

처음에는 6량으로만 운행했으며, 철도청 소유 편성은 1981년부터 일부 편성에 대해 8량 증결을 거쳐 1986년 최종적으로 10량으로 증결되었다.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42] 운행을 위한 4량 편성, 안산선 구간 운행을 위한 6량 편성도 있었다. 한편 서울지하철공사 소유 편성은 15년 동안 6량 그대로 굴리다가 1989년이 돼서야 중간차를 일괄로 반입하여 10량 1편성으로 증결했다.[43]

당시 일본의 통근, 근교형 전동차의 사양을 적당히 섞어서 한국 사정에 맞게 부분 변형해 투입되었다. 101계를 필두로 도입된 전형적인 일본식 통근형 전동차의 4도어 형식 8개 출입문과 3-7-7-7-3 형태의 좌석 배치, 슬라이딩 방식의 미닫이 객실 간 출입문이 적용되어 있고, 마일드 스틸 차체와 직병렬조합 약계자 저항제어, SELD 제동 또한 전형적인 일본 국철 전동차의 영향을 받아 설계되었으나 고속주행에 조금 더 적합한 설계가 이루어져 있다.[44]

한동안 한국에서 운용되는 유일하게 관통형 전면부를 가진 열차였다. 원래 서울 지하철의 계획은 여러 편성의 전동차를 병결하여 운행하려고 했다. 이는 러시 아워 시간대에는 전동차 여러 편성을 붙여 많은 승객을 나르고, 평시에는 단편성으로만 운행해서 배차 운영을 유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하철이라는 물건이 너무 신기하였고, 지하철의 장점이 너무 부각되면서 예상했던 것에 비해 상당량의 승객이 넘칠 정도로 늘어나서 1980년대에 10량으로 증결했고 병결은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45] 원래 자주 열어 줄 계획이 있던 문이었던지라, 나중에 밀폐가 잘 안 되어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문제점이 있었다.

냉/난방 시설은 상당히 떨어진 편이었다. 1989년 서울지하철공사 중간차 반입분을 제외한 모든 전동차가 도입 당시 에어컨 없이 모두 선풍기만 존재했고, 이는 당시의 극심한 혼잡률과 함께 여름철 지하철 통근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신문에 심심하면 냉방화 요구가 기사나 독자 기고란에 올라올 정도였다. 결국 1987년부터 차내 냉방 장치를 에어컨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진행되어 대부분의 열차들에 에어컨이 달렸다.[46] 개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개조 차량은 냉방 성능이 매우 열악했으며, 일부 차량에서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냉각수가 열차 내부에 떨어지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였다. 게다가 저항제어 차량 특성 상 가감속시 엄청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하 구간의 찜통 더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냉방공조기가 설치된 천정 부분만 구조 특정상 에어컨이 없었다. 따라서 초기 개조 차량은 선풍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에어컨만 있었으나, 개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못하자 후기 개조 차량에는 에어컨과 보조 냉방으로 선풍기를 추가로 달았다.[47][48] 상부에 냉방 공조박스를 설치하면서 기존의 선풍기가 설치되었던 흡입구를 제거하고 선풍기와 연결된 구멍을 봉쇄하였다. 여담으로 펜터그래프가 설치된 일부 노약자 좌석 에는 구조 특정상 선풍기 박스가 돌출되었다.

겨울에도 혼잡하고 사람이 많은 데다 저항차 열 때문에 의외로 안 추웠다고 하나, 사람이 없을 한산한 시간대엔 추웠다고 한다.[49]

한국의 철도에서 최초로 자동 승강문을 탑재한 열차이다. 2번째는 새마을호.

경인선 때문에 파란색 초저항은 1980년대, 1990년대 인천에 거주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타봤을 열차인데, 열차 색깔이 짙거나 연하지도 않은 너무나도 원색에 가까운 새파란 색이다 보니, 1980년대, 1990년대 인천 인근의 어린이들은, 당시 동네에서 유명하던 학익동 인천 구치소[50]의 죄수복의 색깔과 매칭을 시켜서 "인천 구치소 열차" 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어린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파란색 인천행 열차로 유명했던 열차다.

4. 분류[편집]

도입 연식에 따라 4차(한국철도공사), 3차(서울교통공사)로 분류된다.
분류
제어방식
도입
1차분
저항제어
1974년 (21편성 126량)
전량 퇴역
2차분
1976~1979년 (21편성 126량)
전량 퇴역
3차분
1980~1981년 (41편성 68량)
전량 퇴역
4차분
1984~1986년 (41편성 83량)
전량 퇴역
1차분
저항제어
1974년 (10편성 60량)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시 도입된 차량
전량 퇴역
2차분
1977~1978년 (6편성 36량)
전량 퇴역
3차분
저항제어
1989년 (16편성 64량)
10량화에 따른 도입된 부수 객차
10편성 63량 운용

4.1. 한국철도공사 전동차 (상세·현황)[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차호별 상세설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현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철도청 터널도색
철도청 시절
한국철도공사 시절
(개조 후)
철도청은 1980~1981년 생산된 초저항 동력차와 초저항, 중저항의 무동력차를 긁어모아서 1999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개조했지만, 2003년 실시된 내장재 불연재화 개조 조차도 받지 못하고 2006년에 초저항 동력차의 내구연한이 만료되면서 폐차되었다.
파일:attachment/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DSC02565-2.jpg
노량진역에서의 1X55편성 초저항 부수 객차 1X36편성
한국철도공사 소속의 초저항 부수 객차는 2014년 8월 30일을 끝으로 운행을 종료하면서 사실상 은퇴했다. 편성 단위로 도입된 초저항이 모두 은퇴한 지 딱 10년 후에 부수 객차조차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4.1.1. 1차분 (1974)[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차호별 상세설명 문서의 2.1.1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1.2. 2차분 (1976~1979)[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차호별 상세설명 문서의 2.1.2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1.3. 3차분 (1980~1981)[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차호별 상세설명 문서의 2.1.3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1.4. 4차분 (1984~1986)[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차호별 상세설명 문서의 2.1.4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2. 서울교통공사 전동차 (현황)[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현황 문서의 2.1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사명 변경 및 대수선 전
대수선 및 사명 변경 후
지금도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에 드문드문 짬뽕편성으로 들어가 있다. 객차 중 이질적인 무광 질감에 낙창식 차창을 달고 있다면 100% 초저항 차량이다. 이들 차량은 모두 불연재 개조가 되어 있다. 110편성에 편입된 1610호는 접이식 의자 시범 사업으로 개조된 적도 있다. 또한 일부 편성을 개조 후 개조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다니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개조저항 전동차

4.2.1. 1차분 (1974)[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문서의 4.1.1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2.2. 2차분 (1977~1978)[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문서의 4.1.2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4.2.3. 3차분 (1989)[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문서의 4.1.3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5. 보존[편집]

철도박물관에 보존 중인 1X01 (1001호) TC칸[52]
한국철도공사는 1976년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전동차 2량(1115, 1315호)과 1974년 제작된 일본제 최초 도입분 1량(1001호)을 철도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한편 철도박물관에 1001호 전동차를 전시하기까지 철도 동호인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1998년 12월, 철도청은 일본제 최초 도입분 전동차 1X01편성을 퇴역시켰는데, 이 중 선두차 1001호와 동력차인 1301호 2량을 철도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해체 작업에서 제외시켰다. 실제로 2001년까지 구로차량사업소 한 켠에 유치되어 있었고, 철도청 역시 이 전동차를 철도박물관에 전시하려 했지만, 문제는 철도박물관 부지의 문제와 영 좋지 않은 차량 상태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 10월, 최초 국산 전동차인 1X15편성이 퇴역했는데, 철도청은 1X01편성 대신 1X15편성을 철도박물관에 전시하기로 보존 계획을 바꾸고, 기존에 보존 중이었던 1001호와 1301호를 대전정비창으로 옮겨 해체를 시작한다.[53] 한편 1X15편성 중 선두차 1115호와 동력차 1315호를 각각 1001호와 1301호로 차번을 수정하여 전시하였다.[54]
1115호를 1001호로 차량번호를 임의 수정하여 전시하던 시절 (2002년)
이 소식을 들은 동호인들은 철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거세게 항의하였고, 결국 정비창에서 해체 직전까지 갔던 1001호 전동차는 다시 철도청 구도색으로 재도색한 뒤, 2003년 6월에야 철도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었다.보존 과정

유일하게 출입문이 순정부품 그대로 유지되어 있으나, 하부는 부식방지 목적상 스테인레스판을 덧붙였다. 초기 냉방 개조 상태이므로 에어컨만 있고 선풍기는 없다.

2019년 7월, 1001호 전면부 상단 중앙에 열차의 목적지를 표시하는 롤지 행선기누군가가 기계째로 빼 버린 상태다. 비어 있는 상태를 채우기 위해 2021년 3월에 모조품을 설치하여 외관만 복원한 상태이다.
파일:class_1000.jpg
신정차량사업소에 정태 보존 중인 舊 101편성 (1002호)[55]
서울교통공사는 기증의 목적으로 101편성 전동차 6량 1편성을 통째로 신정차량사업소에 보존하고 있다. 아예 전용 유치 공간을 마련했을 정도로 이 차량에 대해 각별하다.[56]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관 및 관리 상태가 퇴역 당시의 상태와 거의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57], 다만 2020년대 현재는 철도박물관에 보존 중인 한국철도공사 차량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라고 한다. 지하철 개통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101편성을 복원/운행을 추진하는 사내 제안이 있었지만, 검토 결과 주전동기 등 주요 전장품이 취거된 상태로 차량 외형만 유지하는 상태여서 자력으로는 운행 불가 상태(정태 보존)라고 한다. 예비부품을 이용하면 운행 가능한 상태(동태 보존)로 복원할 수는 있지만 예산부족 및 관련 법령의 강화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구 245편성은 맨 앞차와 맨 뒷차에 초저항의 출입문으로 갈아끼워 넣었다. 기존 출입문의 크랙 현상이 심해 초저항 101편성의 출입문으로 교체됐다. 2호선에서 유일하게 작은 정사각형 창문의 출입문을 달고 운행했던 차량이다.
2014년경 신정지선 열차(구 245편성)의 출입문 도색 크랙 문제로 출입문 한 짝을 2호선 열차와 교체했는데, 도색을 전부 들어내고 열차 색에 맞게 재도색을 했기 때문에 이럴 거면 뭐 하러 문짝을 바꿨냐는 말이 있다. 2023년 7월에는 2호선 개조저항 전동차가 전부 폐차됨에 따라 출입문도 원상복구되었다. 이 외에도 노후화에 따라 간간이 도색이 벗겨지고 있는데, 적당한 시기마다 재도색을 진행하고 있다.

여담으로 일부 열차는 출입문이 순정부품이 아닌 1989년 부수객차 버전인 민무늬 스테인레스 실내마감으로 교체하였다.[58]

6. 도입 당시 부정부패[편집]

1호선 개통 당시 일본 회사에서 차량을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때 한국 측에서 일본제 전동차를 정가의 2배 이상이라는 바가지 가격[59]에 사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대신 일본 기업들은 이 수익금 중 일부를 바가지 계약에 대한 대가로 비밀리에 한국 측 관계자에게 환급(리베이트)을 해줬고 환급된 만큼을 민주공화당, 대통령 박정희와 당 재정위원장 김성곤그대로 꿀꺽해버렸다. 이때 리베이트로 넘어온 자금이 250만 달러로 현재 한화 가치로 172억 원 정도 한다. 그리고 한국에선 앞으로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정치자금성 뇌물 130만 달러를 일본 측에 돌려줬다.



한국에서는 언론통제와 입막음으로 이 서울지하철 스캔들이 은폐되었고, 정작 이 사건이 가장 크게 정국을 뒤흔든 건 일본이었다. 사건 4년 뒤 박정희와 갈등을 빚고 망명을 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이 부정부패 스캔들을 일본 측에 내부고발해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 큰 부정부패 사건이어서 정국이 뒤집어졌는데, 일본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실시해 불법적인 계약과 서울지하철 차관 리베이트, 서울지하철 전동차 구매 리베이트 등이 밝혀졌다. 당시 일본의 거물 정치인으로서 총리도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가 한국 측이 보낸 뇌물 130만 달러에 연루되어 있었는데, 이 스캔들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기시의 당 내 입지는 좁아들었고 결국 자민당 내 기시의 파벌이 쇠퇴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만다. 기시는 2년도 못 가 자기 라인의 거두 후쿠다 다케오가 힘을 못피고 당에서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결국 정치계를 은퇴하게 된다.

한편 동일한 시기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 의원 로비 폭로 등으로 코리아게이트 사태가 촉발되자 미국 정부는 한국 군사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해 뒷조사를 하는데 이때 서울지하철 리베이트 사건 역시 수사대상에 제대로 걸려든다. 미국 정부는 일본과 한국이 체이스 맨해튼, 마린 미드랜드 등 미국 은행들을 돈 세탁용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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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형화[편집]

한국철도 초저항 모형 블럭
2024년 8월 13일 수도권 전철 50주년을 맞이하여 엔스브릭코리아와 코레일유통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국철도 초저항 모형 블럭을 3000개 한정발매하였다. 설계의 한계상 출입문은 3배열 6개로 적용[60]된 점과 운전석 실내 재현도 생략된 점, 그리고 미니피규어를 앉힐 수 없는 점[61]이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실내 승객석 재현과 외형은 모형 블럭 치고는 퀄리티가 높은 편이다. 다만 높은 퀄리티 때문에 조립난이도가 좀 높은 편[62]이며, 전동차 1량 길이만 39cm로 크기도 큰 편이다.[63] TC차량 1량과 궤도, 구로역[64]작은 매점, 그리고 5명의 미니피규어와 일부 스티커 이렇게 한세트로 구성되었으며 도색은 개통당시 철도청 시절 청색계열의 도색으로 적용되었다.[65]

코레일 소속 역사내 재고가 있는 스토리웨이 편의점[66]이나 서울역, 부산역에 있는 철도굿즈 판매점(트레인 메이츠)에서 48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구입한다면 부가세와 배송비가 붙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50000~60000원 사이 가격을 형성한다. 중고로 48000원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온라인 주문한 경우. 따라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저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8. 여담[편집]

일본의 철도 동호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의 열차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도쿄 지하철 5000계나 이듬해 도입된 도큐 8500계와 매우 흡사한 식빵형 전두부를 지녔으며 그 외에도 일본 국철 101계, 103계, 301계, 115계(선두차 개조형) 등과도 비슷한 상자형 전두부 모양과 내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어방식 등 기술적 사양은 오히려 421계와 더 비슷하다. 지상전철화 구간이 모두 교류전원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철도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최초의 일본산 교직겸용 통근형 전동차이다.[67]

103계 전동차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외관은 오히려 도부 2000/5000/8000계 전동차와 닮았다.

9. 관련 문서[편집]

10. 둘러보기[편집]

열차번호 체계 [ 펼치기 · 접기 ]
편성번호 · 차량번호 체계 [ 펼치기 · 접기 ]
[1] 빨간색 열차는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소속, 파란색 열차는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소속이며 1980년에 8량화로 인해 1X11편성으로 바뀌었으며 1989년에 1111호로 개정되었다.[2] 냉방화 개조 전 시대로 보인다.[3] 왼쪽 전동차는 대한민국 철도청 구 역삼각 로고가 그려져 있지만 오른쪽 전동차는 대한민국 철도청 터널 로고가 그려져 있고, 1997년 8월에 왼쪽 전동차와 동일한 모습으로 도색되었다.[4] 퇴역 직전의 모습이며, 1990년대까지 선풍기에서 에어컨으로 냉방화 개조를 했고, 손잡이도 원형에서 삼각형으로 바뀌었다.[5] 선풍기가 달려있고 손잡이가 원형인 걸로 봐선 냉방화 개조 이전의 모습이며, 현재 신정기지에 보존중인 101편성도 선풍기가 달려있고 손잡이도 원형인 도입 초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6]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서울 지하철 1호선 구간[7] 용두역을 제외한 성수지선을지로순환선 성수~종합운동장 구간이 개통한 상태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운행했다.[8] 2003년 1호선 병점 연장 및 안산선 계통 폐지 전까지 운행.[9] 한국철도공사 개조저항만 해당됨. 중앙선 팔당 연장 전까지 용산 - 덕소 구간 운행.[10] 개조 없는 초저항은 2004년 7월 퇴역했다.[11] 정확히는 개조 후 개조저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다니고 있다. 개조 없는 초저항은 2002년 말 퇴역했다.[기지X] 개조 없는 초저항은 이문기지 개업 전에 퇴역했다.[13] 현재는 정비단으로 바뀌었다.[14] 현재는 본단이 고양기지로 옮겨지고 KTX 차량만 정비하고 있다.[15] 111편성일 경우 1011, 1311, 1411, 1511, 1611호만 해당되며 나머지는 전부 후기형 저항 객차이다.[16] 위 사진에 나오는 109편성(1018호)은 1980년 11~12월경에 찍힌 사진이다.[17] 대한뉴스 아나운서가 말미에 "우리의 국가적인 슬픔 속..."을 언급했는데 개통 당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으로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기 때문이다.[18] 이 사례는 21년 뒤 반복되는데 바로 서울지하철공사 4000호대 1차분과 성능이 비슷한 철도청 3000호대 1차분이 도입된다.[A] 19.1 19.2 19.3 19.4 19.5 19.6 19.7 19.8 XX=2(해당 편성-100)-1[B] 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YY=2(해당 편성-100)[35] 한 일본인이 한국 방문 당시 직접 녹음한 것이다. 당시 새마을호 등도 녹음했으나 안타깝게도 녹음본들을 찾지 못했다. 방송에 담긴 구간은 군포역명학역 구간으로 금정역은 이 당시에 없었다. 금정역은 안산선이 개통한 1988년에 개통하였다. 당시에도 자동안내방송은 있었는데 그때는 녹음테이프를 차장이 조작하여 송출하였다. 허나 저 운행 계통의 안내방송 테이프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육성으로 한 것이다.[36] 사진 오른쪽의 차량은 미카형 증기기관차. 전동차증기 기관차가 연결된 이례적인 모습이다. 증기 기관차는 진작에 60년대부터 영업운행에서 내려왔지만 70년대까지 입환용으로는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37] 증기 기관차객차, 화차 제작 기술이 전부였다. 디젤 기관차, 전기 기관차 자체제작 기술도 없던 시절이다.[38] 일본 차량 중 주로 레퍼런스 모델로 회자되는 게 103계 전동차인데, 디자인 도안(원문 11~12p)을 보면 사실상 빼박이다.[39] 일본차량제조, 가와사키 차량, 킨키차량, 도큐차량(이상 철도청), 히타치 제작소(서울지하철본부) 등. 그 후 전동차가 국산화되면서 증차분 및 부수차가 대우중공업현대차량(이후 현대정공)이 생산했다.[40] 훗날 현대정공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제조사업부를 인수 합병하고 현대로템으로 분리되면서 축척된 노하우로 철도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41] 다만 당시 서울역~남영역 절연구간의 전차선이 아직 설치되지 않아 디젤기관차를 통해 지하로 회송하였다.[42] 이 구간은 한때 디젤동차로도 굴렸었다.[43] 이 중에서 1989년산 중간차를 제외한 다른 부수차들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전량 퇴역하는데, 여기서 남은 1989년산 객차 중 소수는 신형 차량에 부수차로 재조성하고 이 외에 남은 부수차들을 개조해서 재조성한 게 바로 개조저항이다.[44] 의외로 그 당시 차량들 중에서는 고스펙이다. 당시 일본 국철의 통근형, 근교형 전동차의 최고 속도는 100km/h였다. 사철 차량들도 대부분이 최고 속도가 100-110km/h정도였다.[45] 지하철 개통 후 1980년대 말까지 서울의 지하철은 러시아워 기준 250%~300%의 혼잡률을 매우 흔하게 기록하던 때이다. 참고로 현재 서울 지하철에서 가장 혼잡한 2호선 사당~방배 구간의 러시아워 때의 혼잡률이 224% 정도이므로 250%~300% 정도이면 엄청난 수치임을 짐작할 수 있다.[46] 1993년경에 모든 차량에 에어컨 설치가 완료되었다.[47] 제조 업체에 따라 팬형 선풍기와 에어컨형 선풍기가 있었다.[48] 여담으로 서울교통공사의 초퍼제어 열차도 초기형은 에어컨만 있었으나 후기형은 보조 냉방장치를 추가했다.[49] 그래도 저항제어 특유의 열로 인해 그나마 나았다고 한다. 애초에 저항제어 방식 자체가 에너지 일부를 열로 갖다버리는 것이기 때문.[50] 당시 전국의 어린이들이 유머로 부르던 "나의 살던 고향은 인천 교도소~" 하고 부르던 노래에 등장할 정도로 구치소 하면 떠올릴 정도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구치소이다.[51] 나름 신 CI(신 CI가 붙지는 않았고 단지 역삼각 CI를 제거했지만), KTX, 서울시 버스 환승제와 함께했다.[52] 철도청 소속[53] 이 과정에서 1301호 전동차와 1115호의 반대편 선두차인 1015호, 동력차 1515호가 완전히 해체되었다.[54] 이 당시 1115호에 115를 지우고 001을 붙여 놓았는데 자세히 보면 15라는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55] 당시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편성이 0~9대로 표기하지 않았고 100x와 100y가 짝을 이루는 체계였으며 때문에 1001~1002호가 101편성이었다. 참고로 이 편성은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 소속이며, 일본 히타치 제작소 제작 차량이다.[56] 신정차량사업소 Y7유치선에 유치 중이다.[57] 주간제어기를 장착하면 운행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2009년에 이 전동차를 기지 내 다른 유치선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 적 있었는데, 이때는 혹시 모를 문제에 대비해 자력 운행을 하지 않고, 입환 기관차에 연결시켜 전동차를 옮겼다.관련 영상 관련 게시물[58] 초저항 현역 당시 출입문 도색 크랙 문제로 교체된 경우나 10량화 후 기관실이 딸린 전두부 2량을 제외한 8량 편성이 1989년 부수객차로 이루어져서 이를 통일하기 위해 교체된 경우가 있었다.[59] 1972년 당초 도입가액 84억엔이지만,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118억 엔으로 상승함.[60] 정 아쉽고 딱히 다른 블록에는 관심이 없으며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하나를 더 구입해서 4도어로 만들 수도 있긴 하다. 다만 당연히 그 블록의 원래 설계상 모습은 훼손되는 것과 2량 구입해서 만든다는 가정 하에 총합 96000원이나 든다는 점, 문 크기 때문에 실차 길이 비율보다 더 길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61] 좌석에 앉을 수 없을 뿐 이지, 서 있을 수 있도록 끼울 수 있다.[62] 또한 스티커가 아주 작아서 붙일 때 매우 정밀하게 붙여야 한다. 프린팅으로 나왔으면 괜찮았을 부분인데 아쉬울 따름.[63] 조립시간은 약 5시간 소요된다.[64] 재판매 버전은 인천역. 다만 구로역처럼 70~80년대 역명 디자인은 아니다.[65] 개통당시 시대 재현도 있지만 컬러(청색, 백색)블록의 조립편의도 배제할 수 없다.[66] 모든 스토리웨이 편의점이 열차블록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며 2026년 2월 기준 운정중앙역, 서울역, 평택역 등이 있다.[67] 일본에서 실제로 운행한 최초는 E501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