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9세는 자유주의와 이탈리아 내셔널리즘을 억압하며 교황령을 유지하려 했으나, 신생 이탈리아 왕국과 주세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교황령의 영역은 로마와 그 교외 지역으로 구성된 라치오 일대로 쪼그라들었다.
교황령은 프랑스 제2제국 군대를 주둔시키며 이탈리아 왕국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았으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제국군이 철수하자 이탈리아 왕국군이 로마에 진주, 주민투표를 통해 이탈리아 왕국으로의 합병을 의결하며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