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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2. 선사시대[편집]
3. 고대[편집]
3.1. 켈트족의 정착[편집]
3.2. 로마 시대[편집]
3.2.1.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편집]
기원전 1세기경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로마군이 갈리아 전쟁 도중 지금이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 발을 디디면서 브리튼인들과 군사적 충돌이 빚어졌으나, 당시 로마군은 본격적으로 브리튼(브리타니아)를 정복할 의사가 없었기에 브리튼인들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은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 기간인 서기 43년에 시작되었고, 그 뒤를 네로 황제는 이케니족 여왕 부디카가 브리튼인들을 규합하여 일으킨 반로마 봉기를 진압했다.
네로 사후 네 황제의 해라는 내전을 거쳐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늘날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해당되는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고, 2세기 오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음으로써 로마령 브리타니아(로만 브리튼)과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의 경계를 확정지었다.
이후 일부 황제들이 칼레도니아까지 정복하려 하기도 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는 거두지 못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은 5세기 초 로마군 철수 직전까지 유지되었다.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일시적으로 독립한 갈리아 제국이 브리타니아까지 지배하기도 했고, 4세기 초에는 카라우시우스(Carausius)라는 군벌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두 자칭 제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로마에 다시 복속되었다.
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브리타니아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유럽 대륙 영토를 방어하는 것도 벅찬 상태에 몰린 서로마군이 410년 철수하면서 로마의 브리타니아 지배는 종식되었다.
로마의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은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 기간인 서기 43년에 시작되었고, 그 뒤를 네로 황제는 이케니족 여왕 부디카가 브리튼인들을 규합하여 일으킨 반로마 봉기를 진압했다.
네로 사후 네 황제의 해라는 내전을 거쳐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늘날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해당되는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고, 2세기 오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음으로써 로마령 브리타니아(로만 브리튼)과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의 경계를 확정지었다.
이후 일부 황제들이 칼레도니아까지 정복하려 하기도 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는 거두지 못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은 5세기 초 로마군 철수 직전까지 유지되었다.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일시적으로 독립한 갈리아 제국이 브리타니아까지 지배하기도 했고, 4세기 초에는 카라우시우스(Carausius)라는 군벌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두 자칭 제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로마에 다시 복속되었다.
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브리타니아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유럽 대륙 영토를 방어하는 것도 벅찬 상태에 몰린 서로마군이 410년 철수하면서 로마의 브리타니아 지배는 종식되었다.
3.2.2. 칼레도니아[편집]
고대 스코틀랜드는 칼레도니아(Caledonia)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초기 주민은 픽트족이 다수였으나, 3세기부터 히베르니아(아일랜드 섬)에서 이주해온 스코트족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중세 이후에는 스코틀랜드라 불리게 되었다.
칼레도니아의 픽트족과 스코트족은 4세기 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지속적으로 하드리아누스 방벽 너머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으로의 남하를 시도했고, 410년 서로마군 철수 이후에는 본격적인 침공에 들어갔는데 이는 브리튼인들이 앵글로색슨족에게 원조를 요청하여 잉글랜드가 앵글로색슨계 국가가 되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칼레도니아의 픽트족과 스코트족은 4세기 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지속적으로 하드리아누스 방벽 너머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으로의 남하를 시도했고, 410년 서로마군 철수 이후에는 본격적인 침공에 들어갔는데 이는 브리튼인들이 앵글로색슨족에게 원조를 요청하여 잉글랜드가 앵글로색슨계 국가가 되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3.2.3. 히베르니아[편집]
4. 중세[편집]
4.1. 잉글랜드와 웨일스[편집]
4.1.1. 로만 브리튼 이후 시대[편집]
Sub-Roman Britain
5세기 초 서로마군 철수 이후부터 6세기까지 이어진 혼란기.
서로마군 철수 이후 브리튼인들은 칼레도니아의 픽트족과 스코트족, 히베르니아의 게일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유럽 대륙의 게르만계 민족인 주트족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주트족은 이를 기회로 삼아 자신들에게 구원을 요청한 브리튼인들을 역으로 공격하며 브리타니아에 정착하려 했고, 또다른 게르만계 민족인 앵글족과 색슨족[1] 가세함에 따라 게르만계 민족들과 켈트계 민족들이 뒤엉켜서 끝없는 전쟁을 벌이는 난세가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인들이 게르만 군대를 일시적으로 밀어붙인 적도 있었으나, 전체적인 추세는 게르만 세력의 우세로 흘러갔고, 이에 따라 로만 브리튼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은 앵글로색슨의 땅인 잉글랜드가 되고, 브리튼인들이 가까스로 독립을 유지한 지역은 웨일스가 되었다.
5세기 초 서로마군 철수 이후부터 6세기까지 이어진 혼란기.
서로마군 철수 이후 브리튼인들은 칼레도니아의 픽트족과 스코트족, 히베르니아의 게일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유럽 대륙의 게르만계 민족인 주트족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주트족은 이를 기회로 삼아 자신들에게 구원을 요청한 브리튼인들을 역으로 공격하며 브리타니아에 정착하려 했고, 또다른 게르만계 민족인 앵글족과 색슨족[1] 가세함에 따라 게르만계 민족들과 켈트계 민족들이 뒤엉켜서 끝없는 전쟁을 벌이는 난세가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인들이 게르만 군대를 일시적으로 밀어붙인 적도 있었으나, 전체적인 추세는 게르만 세력의 우세로 흘러갔고, 이에 따라 로만 브리튼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은 앵글로색슨의 땅인 잉글랜드가 되고, 브리튼인들이 가까스로 독립을 유지한 지역은 웨일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