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마스코트 선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사에서 넘어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영국
1. 개요2. 선사시대3. 고대4. 중세
4.1. 잉글랜드웨일스
4.1.1. 로만 브리튼 이후 시대4.1.2. 잉글랜드
4.1.2.1. 앵글로색슨 칠왕국4.1.2.2. 잉글랜드 왕국
4.1.3. 웨일스
4.1.3.1. 로만 브리튼 소왕국4.1.3.2. 웨일스 공국4.1.3.3. 잉글랜드령 웨일스 공국
4.2. 스코틀랜드
5. 근세
5.1. 튜더 왕조 단절 이전
5.1.1. 잉글랜드 왕국
5.1.1.1. 장미 전쟁5.1.1.2. 튜더 왕조의 절대왕정
5.1.2. 스코틀랜드 왕국
5.2.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동군연합5.3. 잉글랜드 연방5.4. 왕정복고 시대5.5. 명예 혁명과 입헌군주제의 확립
6. 근대
6.1. 조지 시대6.2. 빅토리아 시대6.3. 에드워드 7세 시대6.4. 조지 5세 ~ 에드워드 8세 시대6.5. 조지 6세 시대
7. 현대
7.1. 엘리자베스 2세 시대7.2. 찰스 3세 시대

1. 개요[편집]

영국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2. 선사시대[편집]

3. 고대[편집]

3.1. 켈트족의 정착[편집]

민족이라 부를 수 있는 집단 가운데 영국 땅에 가장 먼저 정착한 이들은 켈트족이었다.

그들 가운데 그레이트브리튼섬에 정착한 이들이 고대 브리튼인이 되고, 아일랜드섬, 맨섬 등으로 이주한 이들은 게일인 또는 고이델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 외에는 픽트족이라 불리는 민족이 그레이트브리튼 섬 북부의 스코틀랜드에 정착했는데, 픽트족도 켈트족에 속하는지 여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3.2. 로마 시대[편집]

3.2.1.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만 브리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기원전 1세기경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마군이 갈리아 전쟁 도중 지금이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 발을 디디면서 브리튼인들과 군사적 충돌이 빚어졌으나, 당시 로마군은 본격적으로 브리튼(브리타니아)를 정복할 의사가 없었기에 브리튼인들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본격적인 브리타니아 정복은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 기간인 서기 43년에 시작되었고, 그 뒤를 네로 황제는 이케니족 여왕 부디카가 브리튼인들을 규합하여 일으킨 반로마 봉기를 진압했다.

네로 사후 네 황제의 해라는 내전을 거쳐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오늘날의 잉글랜드웨일스에 해당되는 지역을 완전히 평정했고, 2세기 오현제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음으로써 로마령 브리타니아(로만 브리튼)과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의 경계를 확정지었다.

이후 일부 황제들이 칼레도니아까지 정복하려 하기도 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는 거두지 못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기준으로 하는 국경은 5세기 초 로마군 철수 직전까지 유지되었다.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로마 제국에서 일시적으로 독립한 갈리아 제국이 브리타니아까지 지배하기도 했고, 4세기 초에는 카라우시우스(Carausius)라는 군벌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두 자칭 제국은 오래 가지 못하고 로마에 다시 복속되었다.

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브리타니아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유럽 대륙 영토를 방어하는 것도 벅찬 상태에 몰린 서로마군이 410년 철수하면서 로마의 브리타니아 지배는 종식되었다.

3.2.2. 칼레도니아[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칼레도니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고대 스코틀랜드는 칼레도니아(Caledonia)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초기 주민은 픽트족이 다수였으나, 3세기부터 히베르니아(아일랜드 섬)에서 이주해온 스코트족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중세 이후에는 스코틀랜드라 불리게 되었다.

칼레도니아의 픽트족과 스코트족은 4세기 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지속적으로 하드리아누스 방벽 너머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으로의 남하를 시도했고, 410년 서로마군 철수 이후에는 본격적인 침공에 들어갔는데 이는 브리튼인들이 앵글로색슨족에게 원조를 요청하여 잉글랜드가 앵글로색슨계 국가가 되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3.2.3. 히베르니아[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베르니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독립국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아일랜드 섬을 고대 로마인들은 히베르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서로마군 철수 이후 히베르니아의 게일인 역시 브리타니아 속주(로만 브리튼) 침공을 감행하여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 침공에 원인을 제공했다.

4. 중세[편집]

4.1. 잉글랜드웨일스[편집]

4.1.1. 로만 브리튼 이후 시대[편집]

Sub-Roman Britain

5세기 초 서로마군 철수 이후부터 6세기까지 이어진 혼란기.

서로마군 철수 이후 브리튼인들은 칼레도니아의 픽트족과 스코트족, 히베르니아의 게일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유럽 대륙의 게르만계 민족인 주트족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주트족은 이를 기회로 삼아 자신들에게 구원을 요청한 브리튼인들을 역으로 공격하며 브리타니아에 정착하려 했고, 또다른 게르만계 민족인 앵글족과 색슨족[1] 가세함에 따라 게르만계 민족들과 켈트계 민족들이 뒤엉켜서 끝없는 전쟁을 벌이는 난세가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인들이 게르만 군대를 일시적으로 밀어붙인 적도 있었으나, 전체적인 추세는 게르만 세력의 우세로 흘러갔고, 이에 따라 로만 브리튼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은 앵글로색슨의 땅인 잉글랜드가 되고, 브리튼인들이 가까스로 독립을 유지한 지역은 웨일스가 되었다.

4.1.2. 잉글랜드[편집]

4.1.2.1. 앵글로색슨 칠왕국[편집]
4.1.2.2. 잉글랜드 왕국[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잉글랜드 왕국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1.3. 웨일스[편집]

4.1.3.1. 로만 브리튼 소왕국[편집]
서로마군 철수 이후부터 웨일스 땅에는 귀네드 왕국, 더베드 왕국, 포이스 왕국 등 로만 브리튼 유민들이 세운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했는데, 이는 13세기 귀네드 왕국이 웨일스를 통일하고 웨일스 공을 칭하면서 종식되었다.
4.1.3.2. 웨일스 공국[편집]
4.1.3.3. 잉글랜드령 웨일스 공국[편집]

4.2. 스코틀랜드[편집]

4.2.1. 통일 이전[편집]

4.2.2. 스코틀랜드 왕국[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스코틀랜드 왕국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근세[편집]

5.1. 튜더 왕조 단절 이전[편집]

5.1.1. 잉글랜드 왕국[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잉글랜드 왕국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1.1.1. 장미 전쟁[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장미 전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1.1.2. 튜더 왕조의 절대왕정[편집]

5.1.2. 스코틀랜드 왕국[편집]

5.2.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동군연합[편집]

5.3. 잉글랜드 연방[편집]

5.4. 왕정복고 시대[편집]

5.5. 명예 혁명과 입헌군주제의 확립[편집]

6. 근대[편집]

6.1. 조지 시대[편집]

6.2. 빅토리아 시대[편집]

6.3. 에드워드 7세 시대[편집]

6.4. 조지 5세 ~ 에드워드 8세 시대[편집]

6.5. 조지 6세 시대[편집]

7. 현대[편집]

7.1. 엘리자베스 2세 시대[편집]

7.2. 찰스 3세 시대[편집]

[1] 이들 민족의 융합을 통해 앵글로색슨족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