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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언어별 명칭[편집]
3. 역사[편집]
3.1. 고대 네아폴리스[편집]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이탈리아에 건설한 도시 파르테노페가 지진으로 무너진 후, 인근에 도시를 재건하면서 신도시를 뜻하는 네아폴리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나폴리의 시초였다.
네아폴리스는 로마의 남이탈리아 진출 과정에서 가장 먼저 로마에 복속된 남이탈리아 도시 중 하나였고, 삼니움 전쟁 당시에는 네아폴리스 공방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네아폴리스는 로마의 남이탈리아 진출 과정에서 가장 먼저 로마에 복속된 남이탈리아 도시 중 하나였고, 삼니움 전쟁 당시에는 네아폴리스 공방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3.2. 중세[편집]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네아폴리스는 오도아케르 왕국과 동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동로마 제국에 복속되었다.
랑고바르드 왕국의 침공으로 동로마의 이탈리아 지배권이 흔들리게 되자 네아폴리스는 점차 자치권을 강화하다가 661년에 나폴리 공국이 형성되었고, 나폴리 공국은 동로마가 노르만족에게 패하여 이탈리아에서 축출당한 1071년 이후에도 존속했다.
1137년 나폴리 공국이 노르만계 국가인 시칠리아 왕국에 정복당한 이후 나폴리는 시칠리아령이 되었는데, 이후 시칠리아의 왕조는 독일계 호엔슈타우펜 왕조[2]를 거쳐 프랑스 카페 왕조의 분가인 앙주-카페 왕조로 교체되었고,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이 일어나자 시칠리아에서 축출당한 앙주-카페 왕조의 카를로 1세가 나폴리 왕국을 세웠다.
나폴리 왕국은 공식적으로는 계속 시칠리아 왕국을 칭했으나, 실질적으로 시칠리아 섬을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사실상 수도인 나폴리의 이름을 따서 나폴리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랑고바르드 왕국의 침공으로 동로마의 이탈리아 지배권이 흔들리게 되자 네아폴리스는 점차 자치권을 강화하다가 661년에 나폴리 공국이 형성되었고, 나폴리 공국은 동로마가 노르만족에게 패하여 이탈리아에서 축출당한 1071년 이후에도 존속했다.
1137년 나폴리 공국이 노르만계 국가인 시칠리아 왕국에 정복당한 이후 나폴리는 시칠리아령이 되었는데, 이후 시칠리아의 왕조는 독일계 호엔슈타우펜 왕조[2]를 거쳐 프랑스 카페 왕조의 분가인 앙주-카페 왕조로 교체되었고,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이 일어나자 시칠리아에서 축출당한 앙주-카페 왕조의 카를로 1세가 나폴리 왕국을 세웠다.
나폴리 왕국은 공식적으로는 계속 시칠리아 왕국을 칭했으나, 실질적으로 시칠리아 섬을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사실상 수도인 나폴리의 이름을 따서 나폴리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3.3. 근세[편집]
15세기 시칠리아 왕국을 지배하던 아라곤 왕국의 트라스타마라 왕조가 나폴리 왕위까지 차지하면서, 나폴리는 다시 시칠리아 왕국과 같은 왕을 모시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나폴리 왕위 자체는 시칠리아 왕위와 별도의 명의로 세습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라곤 왕국과 그 후신인 스페인 왕국의 지배를 받던 나폴리 왕국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로 넘어갔다가, 카를로스 3세 시대의 스페인에 반환되어 다시 스페인 국왕이 겸직하게 되었는데, 카를로스 3세 사후 스페인 왕위와 또다시 분리되어 스페인 왕위를 세습한 장남 카를로스 4세가 아닌 차남 페르디난도 4세가 나폴리 국왕으로 즉위하여 보르보네 디 나폴리 왕조[3] 또는 보르보네 델레 두에 시칠리에 왕조[4]를 형성했다.
아라곤 왕국과 그 후신인 스페인 왕국의 지배를 받던 나폴리 왕국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로 넘어갔다가, 카를로스 3세 시대의 스페인에 반환되어 다시 스페인 국왕이 겸직하게 되었는데, 카를로스 3세 사후 스페인 왕위와 또다시 분리되어 스페인 왕위를 세습한 장남 카를로스 4세가 아닌 차남 페르디난도 4세가 나폴리 국왕으로 즉위하여 보르보네 디 나폴리 왕조[3] 또는 보르보네 델레 두에 시칠리에 왕조[4]를 형성했다.
3.4. 근대[편집]
18세기 말 프랑스 제1공화국 군대가 나폴리를 점령한 후 고대 도시 파르테노페의 이름을 딴 파르테노페아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오래 가지 못하고 나폴리 왕국에 의해 탈환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초 나폴리는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에게 다시 점령되었고,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나폴리 국왕 주세페 1세로 즉위했다.
주세페 1세는 이후 스페인 국왕 호세 1세로 즉위하면서 나폴리 왕위에서 물러나고, 나폴레옹의 26 원수 중 하나인 조아킴 뮈라가 나폴리 국왕 조아키노 1세로 즉위했는데, 나폴레옹 전쟁 이후 조아키노 1세가 축출되면서 본래 국왕이었던 페르디난도 4세가 복위했다.
시칠리아 국왕을 겸임한 상태였던 페르디난도 4세는 1816년에 공식적으로 나폴리 왕위와 시칠리아 왕위를 하나로 합쳤고, 이에 따라 양시칠리아 왕국이 형성되었다.
이후 나폴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양시칠리아의 수도 역할을 했으나, 1861년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주세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에 점령당한 후, 가리발디에 의해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고, 이후에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비록 이탈리아 통일로 인해 나폴리는 수도의 지위를 상실하긴 했지만, 남이탈리아에서 나폴리가 가진 위상을 고려한 이탈리아 사보이아 왕조는 이탈리아 왕세자의 작위를 나폴리 공작으로 삼았고, 통일 이탈리아의 제3대 국왕으로 즉위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본래 사보이아 왕조의 거점이었던 북이탈리아가 아닌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9세기 초 나폴리는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에게 다시 점령되었고,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나폴리 국왕 주세페 1세로 즉위했다.
주세페 1세는 이후 스페인 국왕 호세 1세로 즉위하면서 나폴리 왕위에서 물러나고, 나폴레옹의 26 원수 중 하나인 조아킴 뮈라가 나폴리 국왕 조아키노 1세로 즉위했는데, 나폴레옹 전쟁 이후 조아키노 1세가 축출되면서 본래 국왕이었던 페르디난도 4세가 복위했다.
시칠리아 국왕을 겸임한 상태였던 페르디난도 4세는 1816년에 공식적으로 나폴리 왕위와 시칠리아 왕위를 하나로 합쳤고, 이에 따라 양시칠리아 왕국이 형성되었다.
이후 나폴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양시칠리아의 수도 역할을 했으나, 1861년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주세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에 점령당한 후, 가리발디에 의해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고, 이후에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비록 이탈리아 통일로 인해 나폴리는 수도의 지위를 상실하긴 했지만, 남이탈리아에서 나폴리가 가진 위상을 고려한 이탈리아 사보이아 왕조는 이탈리아 왕세자의 작위를 나폴리 공작으로 삼았고, 통일 이탈리아의 제3대 국왕으로 즉위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본래 사보이아 왕조의 거점이었던 북이탈리아가 아닌 나폴리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