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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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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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
발생 국가 | |||
발생 위치 | |||
사고 유형 | |||
영향 | |||
피해 | 피폭자 | 약 22만 ~ 83만여 명 | |
사망자 | 30명 이상 | ||
재산 피해 | 약 7,000억 달러 | ||
1. 개요
1. 개요[편집]
1986년 4월 26일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키예프주(州)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4호 원자로 의 노심(爐心)이 용융,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되며 발생한 원전 사상 최악의 방사능 오염사고다. 사고는 당시 발전소 기술자들이 원자로를 4차례 시험 가동한 가운데 안전절차를 위반하면서 폭발 및 화재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됐다.
당시 노심에서 발생한 연이은 화재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확산됐는데, 이는 공기 흐름에 따라 상당히 먼 곳까지 누출되었다. 이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의 양은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위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에 4월 27일 주민들의 피난이 이뤄졌는데, 4월 28일 스웨덴 관측소에 의해 높은 방사능 수치가 탐지되고 나서야 소련 정부는 원전사고 발생을 시인했다. 그리고 1986년 말부터 두꺼운 콘크리트 속에 원자로 노심을 매장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명확치 않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1998년 약 35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방사능 누출에 따른 피해자는 수십 만∼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고, 실제로 기형아 출생률과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것으로 아려졌다. 또 체르노빌 원전에서 32km 내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원도 심하게 오염되는 등 주변 환경 피해도 속출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벨라루스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까지 번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원전건설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1995년 서방선진 7개국(G7)의 합의에 따라 총 31억 달러의 원조를 받고, 2000년 12월 체르노빌 원전을 영구 폐쇄하였다.
당시 노심에서 발생한 연이은 화재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확산됐는데, 이는 공기 흐름에 따라 상당히 먼 곳까지 누출되었다. 이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의 양은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위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에 4월 27일 주민들의 피난이 이뤄졌는데, 4월 28일 스웨덴 관측소에 의해 높은 방사능 수치가 탐지되고 나서야 소련 정부는 원전사고 발생을 시인했다. 그리고 1986년 말부터 두꺼운 콘크리트 속에 원자로 노심을 매장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당시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명확치 않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1998년 약 35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방사능 누출에 따른 피해자는 수십 만∼수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고, 실제로 기형아 출생률과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것으로 아려졌다. 또 체르노빌 원전에서 32km 내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원도 심하게 오염되는 등 주변 환경 피해도 속출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벨라루스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까지 번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원전건설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1995년 서방선진 7개국(G7)의 합의에 따라 총 31억 달러의 원조를 받고, 2000년 12월 체르노빌 원전을 영구 폐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