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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自由民主党 | Liberal Democratic Party | |
약칭 | 自民党(자민당), 自民(자민) |
슬로건 | 政治は国民のもの。 정치는 국민의 것. |
법인번호 | 4010005002276[4] |
등록연월일 | |
선행 조직 | |
통합한 정당 | (흡수 합당) |
주소 | |
성향 | 내부 계파: 초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5] 신보수주의[6] 우익대중주의[7][8]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국민보수주의 일본 국수주의[9] 사회보수주의[10] 온건 보수주의[11] 가부장적 보수주의[12] |
스펙트럼 | |
총재 | |
부총재 | |
간사장 | |
총무회장 | |
정무조사회장 | |
선거대책위원장 | |
국회대책위원장 | |
참의원 | 100석 / 248석 (40.3%) |
중의원 | 316석[19] / 465석 (68.0%) |
도도부현의회 | 1,284석 / 2,614석 (49.1%) |
시구정촌의회 | 2,098석 / 28,940석 (7.2%)[20] |
당 색 | 빨간색 (#D7003A) |
초록색 (#3CA324) | |
당원 수 | 1,028,662명 (2024년 12월 31일 기준) |
당가 | |
링크 | |
1. 개요[편집]
日本列島を、強く豊かに。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 다카이치 내각 슬로건 |
2. 이념 및 지지 기반[편집]
3. 역사[편집]
3.1. 창당: 보수합동[편집]
3.2. 1차 장기집권: 55년 체제[편집]
자유민주당은 창당 직후인 1955년부터 1993년까지 38년간 장기집권을 이어갔는데 이를 55년 체제라 한다.
3.3. 93년 총선과 정권교체[편집]
3.4. 사회당과의 연립내각 구성[편집]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가 93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재직을 사퇴한 이후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고노 요헤이는 정권교체로부터 불과 1년만인 1994년에 일본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를 끌여들여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자민당이 연립여당으로 복귀했다.
다만 원내1당임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은 원내2당인 일본사회당 위원장[25]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양보하여 고노 내각이 아닌 무라야마 내각이 출범했는데, 무라야마 내각 말기에 다시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하시모토 류타로가 당선되면서 결국 고노는 자민당 총재를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되진 못했고, 하시모토는 총리 자리까지 무라야마에게서 가져와 제1차 하시모토 내각을 출범시켰다.
다만 원내1당임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은 원내2당인 일본사회당 위원장[25]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양보하여 고노 내각이 아닌 무라야마 내각이 출범했는데, 무라야마 내각 말기에 다시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하시모토 류타로가 당선되면서 결국 고노는 자민당 총재를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되진 못했고, 하시모토는 총리 자리까지 무라야마에게서 가져와 제1차 하시모토 내각을 출범시켰다.
3.5. 2차 장기집권[편집]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다시 자민당 장기집권 시대가 열렸다.
3.6. 2009년 총선과 정권교체[편집]
3.7. 3차 장기집권[편집]
3.7.1. 아베 신조 내각[편집]
3.7.2. 스가 내각[편집]
3.7.3. 기시다 내각[편집]
3.7.4. 이시바 내각[편집]
3.7.5. 다카이치 내각[편집]
4. 선거 결과[편집]
4.1.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2. 참의원 통상선거[편집]
4.3. 통일지방선거[편집]
[1] 호소카와 모리히로[2] 개혁포럼21(오자와 이치로, 하타 쓰토무)[3] 오사카계[4] 출처[5] Muramatsu, Michio (1997). State and Administration in Japan and Germany: A Comparative Perspective on Continuity and Change. Walter de Gruyter. p. 117.[6] Hebert (2011). Wind Bands and Cultural Identity in Japanese Schools. Springer Science & Business Media. p. 44.[7]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재가 당 조직을 개혁한 이후부터. 그 이전까지 자민당은 풀뿌리 민주주의나 대중주의와는 거리가 먼 엘리트주의 정당이었다. 물론 관료적, 엘리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도 있기에 이런 성향도 일부 파벌의 일부 인원에 속할 뿐이다.[8] 출처: Ganesan (2015). Bilateral Legacies in East and Southeast Asia.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 67.[9] “Beautiful Harmony: Political Project Behind Japan’s New Era Name – Analysis”. 《eurasia review》. 2019년 7월 16일. The shifting dynamics around the new era name (gengō 元号) offers an opportunity to understand how the domestic politics of the LDP’s project of ultranationalism is shaping a new Japan and a new form of nationalism.[10] "Japan's capricious response to coronavirus could dent its international reputation". The Conversation. 24 April 2020. Retrieved 5 June 2020.[11] 21세기 일본에서 자민당 내 중도주의~중도우파들은 보통 ‘보수적 리버럴‘, ’리버럴적 보수‘, '온건보수'로 지칭된다.[12]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보수주의와 비슷한 의미이다. 복지국가와 국가의 적절한 경제 개입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지수회, 굉지회, 헤이세이 연구회 등 자민당 온건파 일부에서 나타난다. 반면에 세이와 정책연구회 같은 강경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이 더 강하다. 물론 계파나 개인마다 케바케라서 일반화하긴 어렵다.[A] 13.1 13.2 초기 자유민주당은 당명에서 보아하듯 리버럴의 자분도 있던 정당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일본 정계개편 과정에서 신당 사키가케 같은 개별 자유주의 세력을 형성해 빠져나가도 여전히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남았으나, 이들은 주로 자유보수주의, 온건 보수주의 성향으로 불린다.[15] 초기 자민당은 구미권 보수정당들 보다 국가의 경제개입 강도가 강해서 경제정책만 따지면 사회민주주의와도 유사하다고 보았다. 다만 자민당의 경제에 대한 통제 성향은 사민주의적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조합주의라고 평가받는다.[16] Japan's International Relations: Politics, Economics and Security. Routledge. p. 58. ISBN 978-1-134-32806-2.[17] 중도 ~ 중도우파 성향의 보수자유주의부터 극우 성향의 초보수주의까지 포괄하고 있으며, 2026년 현재는 강경파가 다시 주류로 복귀하고 온건파가 주류에서 밀려난 상황이다.[18] 현 내각총리대신[19] 지역구 249석, 비례대표 67석.[20] 자민당의 당세에 비해 의석 비율이 상당히 낮은데, 이는 무소속 비율이 71%나 되기 때문이다.[21] 예외는 일본사회당과의 연립내각 시기에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총리직을 양보했던 고노 요헤이, 민주당에게 원내1당을 내준 암흑기에 총재를 역임한 다나가키 사다카즈 뿐이다.[22] 원내1당을 자민당이 유지하긴 했다.[23] 일본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일본신당, 민사당, 신당 사키가케, 사회민주연합.[24] 내각총리대신: 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신당).[25] 일본사회당의 당수에 해당되는 직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