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2. 명단[편집]
2.1. 역대 황제[편집]
2.2. 제위 요구자(멸망 이후)[편집]
[1] 에노 백작 보두앵 6세이자 플랑드르 백작(플란데런 백작) 보두앵 9세(바우더베인 9세).
1205년 불가리아군에 포로로 잡힌 후 같은 해에 옥사했다.[2] 형 보두앵이 포로로 잡힌 1205년부터 섭정을 맡다가 1206년에 정식으로 즉위했다.[3]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의 분가.[4] 프랑스 국왕 루이 6세의 손자.
보두앵 1세의 여동생이자 앙리의 누나인 욜랑드와의 결혼으로 제위 계승권을 확보하여 즉위했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황제로서 통치를 시작하기도 전에 동로마 유민 국가인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에 포로로 잡혀 옥사했다.[5] 보두앵 1세의 여동생이자 앙리의 누나, 피에르의 황후.
남편 피에르가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에 포로로 잡힌 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여 섭정 또는 실질적인 여제로서 통치했다.[6] 피에르와 욜랑드의 차남.
형 필리프가 제위 계승을 거부하고 서유럽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 머무르자 형을 대신하여 즉위했다[7] 피에르와 욜랑드의 삼남이자 로베르의 동생.
재위 초반에는 나이가 어려서 장 드 브리엔이 대신 실권을 행사했고, 그가 사망한 1237년부터 단독 통치를 시작했다.[8] 예루살렘 왕국의 전 국왕이자 보두앵 2세의 장인으로서 공동 황제가 되어 통치했다.[9] 보두앵 2세의 아들.[10] 필리프 1세의 딸.[11]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의 아들이자 카트린 1세의 남편, 발루아 가문의 시조.[12] 카트린 1세와 샤를의 딸.[13] 카페 왕조의 방계인 앙주카페 왕조(앙주시칠리아 왕조)의 방계 가문.방계의 방계[14] 카트린 2세의 남편으로,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필리포 1세였다.[15] 카트린 2세와 필리프 2세의 아들.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같은 이름을 쓴 후대 통치자가 없기에 넘버링 없이 그냥 '타란토의 로베르토(Roberto di Taranto)'라 불린다.[16] 로베르 2세의 동생으로,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필리포 2세였다.[17] Jacques des Baux, 필리프 3세의 동생.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자코모 델 발초(Giacomo del Balzo)였다.
1205년 불가리아군에 포로로 잡힌 후 같은 해에 옥사했다.[2] 형 보두앵이 포로로 잡힌 1205년부터 섭정을 맡다가 1206년에 정식으로 즉위했다.[3]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의 분가.[4] 프랑스 국왕 루이 6세의 손자.
보두앵 1세의 여동생이자 앙리의 누나인 욜랑드와의 결혼으로 제위 계승권을 확보하여 즉위했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황제로서 통치를 시작하기도 전에 동로마 유민 국가인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에 포로로 잡혀 옥사했다.[5] 보두앵 1세의 여동생이자 앙리의 누나, 피에르의 황후.
남편 피에르가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에 포로로 잡힌 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여 섭정 또는 실질적인 여제로서 통치했다.[6] 피에르와 욜랑드의 차남.
형 필리프가 제위 계승을 거부하고 서유럽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 머무르자 형을 대신하여 즉위했다[7] 피에르와 욜랑드의 삼남이자 로베르의 동생.
재위 초반에는 나이가 어려서 장 드 브리엔이 대신 실권을 행사했고, 그가 사망한 1237년부터 단독 통치를 시작했다.[8] 예루살렘 왕국의 전 국왕이자 보두앵 2세의 장인으로서 공동 황제가 되어 통치했다.[9] 보두앵 2세의 아들.[10] 필리프 1세의 딸.[11]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의 아들이자 카트린 1세의 남편, 발루아 가문의 시조.[12] 카트린 1세와 샤를의 딸.[13] 카페 왕조의 방계인 앙주카페 왕조(앙주시칠리아 왕조)의 방계 가문.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같은 이름을 쓴 후대 통치자가 없기에 넘버링 없이 그냥 '타란토의 로베르토(Roberto di Taranto)'라 불린다.[16] 로베르 2세의 동생으로,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필리포 2세였다.[17] Jacques des Baux, 필리프 3세의 동생.
타란토 공작으로서는 자코모 델 발초(Giacomo del Balzo)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