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1 | [[분류:동로마 제국]][[분류:로마 제국 계승론]] |
|---|
r2
| 2 | [include(틀:상위 문서, top1=동로마 제국, top2=로마 제국 계승론)] |
|---|
| 3 | [include(틀:로마 관련 문서)] |
|---|
r1
| 4 | [목차] |
|---|
| 5 | == 개요 == |
|---|
| 6 |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으로서 가졌던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를 다루는 문서. |
|---|
| 7 | == 국호: '[[동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 == |
|---|
r20
| 8 | 지금도 서구권에서는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보다는 '비잔티움 제국(Byzantine Empire)'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쓰이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표현이 해당 국가가 존속하던 당대에 사용된 적은 없었다. |
|---|
r1
| 9 | |
|---|
r36
| 10 |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도 100년 이상 지난 1557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인 역사학자 히에로니무스 볼프가 '비잔티움 역사집'이라는 저서를 편찬하면서 만들어낸 용어로, 동로마가 존속하던 당시에는 [[동로마인]]들 스스로는 물론 [[두 황제 문제|로마 황제의 정통성을 다투던]] 신성 로마 제국 측도 사용한 적 없는 신조어였다. |
|---|
r23
| 11 | |
|---|
| 12 | 물론 '동로마 제국'이라는 국호 역시 당대에 사용된 적이 없는 신조어라는 점에 있어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큰 차이가 없긴 하다. |
|---|
| 13 | |
|---|
r45
| 14 | 하지만 [[고대 로마]]의 시대 구분에 있어서 당대인들의 인식과는 상관 없이 [[로마 왕국]][* 당대에 사용된 공식 국호는 불명이다.] - [[로마 공화국]][* 공식 국호는 Senatus Populusque Romanus(로마 원로원과 인민, [[SPQR]]).] - [[로마 제국]][* 적어도 [[원수정]] 시대까지는 공화정 시대와 같은 국호를 사용했다.]이라는 구분이 통용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비록 당대에 없던 방위명이 붙었을지언정 로마와의 연속성이 반영된 동로마 제국이라는 표현은 해당 국가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아예 로마와의 연관성을 찾기 힘든 비잔티움 제국만큼 어색하지는 않다. |
|---|
r1
| 15 | == [[고대 로마]]에서 [[동로마]]로 이어진 연속성의 요소 == |
|---|
r22
| 16 | == 당대인들의 인식 == |
|---|
r1
| 17 | === [[동로마인]]들의 인식 === |
|---|
r37
| 18 | [[동로마 제국]]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이라 칭했으며, [[로마인]]의 땅을 뜻하는 [[로마니아]]라는 국호 역시 사용했다. |
|---|
| 19 | |
|---|
r45
| 20 | 또한 [[동로마인|동로마 제국의 시민권자]]들은 혈통에 상관 없이 스스로를 로마인[* 코이네 그리스어: 로마이오이, 중세 그리스어 로메이.]라 불렀고, 제국의 공용어인 중세 그리스어는 [[로마어]](로메이카)라 했다. |
|---|
r37
| 21 | |
|---|
r45
| 22 | 이는 서방의 [[카롤루스 제국]] 및 [[신성 로마 제국]]이 형성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라서, [[동로마인]]들은 서방 제국이 [[제국]]을 칭하는 것까진 용인해도 로마 제국을 칭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고, 서방 제국 측이 '[[그리스인]]의 제국' 운운하는 국서를 보내는 것은 [[두 황제 문제|외교적 도발로 간주되었다.]] |
|---|
r37
| 23 | |
|---|
| 24 | 또한 서방 제국 측이 [[로마인의 황제]]를 칭하는 것에 맞서기 위해 동로마 황제들은 이보다 더 급을 높여서 '로마인의 황제이자 전제자'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
|---|
r1
| 25 | ==== 동로마인들의 [[로마시]]에 대한 인식 ==== |
|---|
| 26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동로마의 로마시에 대한 인식)] |
|---|
r25
| 27 | === 외국인들의 인식 === |
|---|
r19
| 28 | ==== 서방 기독교 세계의 인식 ==== |
|---|
r45
| 29 | 800년 [[카롤루스]]의 [[대관식]] 이전까지는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도 동로마가 로마라는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
|---|
r4
| 30 | |
|---|
r45
| 31 | 서방의 [[게르만]] [[왕국]]들은 동로마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아리우스파]]를 믿으며 종교적으로 대립하면서도, 동로마가 로마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았고 이는 해당 국가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
|---|
r4
| 32 | |
|---|
r45
| 33 | 서방에서 동로마가 로마임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처음 나타난 것은 800년 카롤루스의 [[신성 로마 황제|서방 황제]] [[대관식]]이었는데, 그 대관식 역시 갑자기 서로마 황제위를 부활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게 아니라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6세를 폐위시킨 이리니가 [[남성]]만이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수 있다는 불문율을 깨고 [[여제]]로 즉위한 상황을 황제위가 비어있는 공위 상태로 간주하고 벌인 일이었다. |
|---|
r4
| 34 | |
|---|
r32
| 35 | 동로마에서 이리니가 폐위되고 남성 황제 니키포로스 1세가 즉위한 이후에도 카롤루스가 황제위를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그 역시 동로마를 완전히 무시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니키포로스의 후계자 미하일 1세 랑가베스와의 평화 조약에서 본인의 '황제' 지위는 인정받되 '[[로마 황제]]'는 동로마 황제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을 맺었다. |
|---|
r7
| 36 | |
|---|
| 37 | 물론 이러한 타협이 영구적으로 지속된 건 결코 아니라서 해당 조약의 당사자들이 모두 죽고 없어진 이후에는 서방 제국 측도 다시 공공연하게 로마 제국을 칭하기 시작했는데, 서방의 [[신성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외교 관계가 우호적일 때는 동로마가 로마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다가도 외교적으로 대립할 때는 '그리스인의 제국'이라 부르면서 도발을 일삼았다. |
|---|
r30
| 38 | |
|---|
r45
| 39 | [[1204년]] 서방 가톨릭 영주들로 구성된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세운 [[라틴 제국]]은 스스로 '''[[로마니아 제국]]'''을 칭했는데, 이는 [[동로마인]]들 스스로가 자국을 '''로마니아(로마인의 땅)'''이라 부르던 것을 십자군이 수용한 것이었다. |
|---|
r30
| 40 | |
|---|
r45
| 41 | 만약 십자군이 동로마가 로마임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면 위에서 말한 '[[그리스인]]의 제국' 내지는 '[[그리스]]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겠지만, 그들 역시 동로마의 로마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고, 동로마의 로마 정체성을 긍정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의 정통성 확보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
|---|
r30
| 42 | |
|---|
r44
| 43 | 그리고 4차 십자군의 실질적인 맹주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스스로 '''[[로마 제국]] 3/8의 주인'''이라 자처했는데, 굳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역들을 열거하지 않고 로마를 들먹이며 3/8이라는 숫자를 집어넣은 것은 곧 동로마의 로마 정체성을 긍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정통성 역시 강조하는 효과를 본다는 점에서 라틴 제국이 로마니아 제국을 칭한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
|---|
r45
| 44 | ==== [[슬라브]] 및 동방 기독교 세계의 인식 ==== |
|---|
| 45 | ==== [[이란]] 및 [[이슬람]] 세계의 인식 ==== |
|---|
| 46 | 초기 [[동로마 제국]]과 동시대에 존속했으며 [[라이벌]] 관계였던 이란계 국가인 [[사산조 페르시아]]는 [[동로마]]를 분열 이전의 [[로마 제국]]과 동일한 국체로 파악하여, 자국어로 [[로마]]를 뜻하는 [[룸]](Rum)이라 불렀다. |
|---|
| 47 | |
|---|
| 48 | 이러한 역사 인식은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라이벌로 떠오른 [[이슬람 제국]] 역시 계승하여 동로마를 계속 룸(Rum), 즉 '로마'라 지칭했는데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슬람]] [[경전]] [[쿠란]]의 30번째 수라(장)인 [[아르 룸]](Ar-Rum, 로마 장)[* [[알 룸]](Al-Rum)이라고도 한다.] 동로마를 룸이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
|---|
| 49 | |
|---|
| 50 | 이는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이 아랍인에게서 [[튀르크인]]으로 옮겨간 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튀르크인들이 동로마 영토였던 [[아나톨리아]]를 정복하고 [[룸 술탄국]]을 세운 사례나,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1453년)|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카이세리 룸([[로마 황제]])를 [[로마 제국 계승론|자칭]]한 사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
|---|
r29
| 51 | == 민족, 언어, 문화 연속성에 관한 오해 및 반박 == |
|---|
r31
| 52 | === [[라틴]], [[그리스]] 정체성과 로마 연속성의 관계 === |
|---|
r21
| 53 | ==== [[라틴 민족|라틴인]] 대신 [[그리스인]]이 주도하니까 로마가 아니다? ==== |
|---|
r46
| 54 | 그리스인은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이전부터 남이탈리아에 마그나 그라이키아라는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한 상태였고, 기원전 3세기경 로마의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도 상당수의 그리스계 주민들이 라틴화되지 않고 남이탈리아에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기원전 1세기 초 동맹시 전쟁 직후에 [[로마 시민권]]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모두 로마 시민권자가 되었다. |
|---|
r38
| 55 | |
|---|
| 56 | 즉, [[로마 제국]] 이전의 [[로마 공화정]] 시대부터 로마는 이미 상당수의 그리스계 시민권자를 포용한 국가였다. |
|---|
| 57 | |
|---|
| 58 | 또한 기원전 2세기경에 이르면 [[그리스]] 본토마저 로마에 정복당했고, 기원전 1세기경에 이르면 [[지중해]] 일대의 헬레니즘 국가들마저 로마령이 되었으며, 3세기에는 카라칼라 황제의 안토니누스 칙령을 통해 그리스인을 포함한 제국 내에서 태어난 모든 자유민들이 법적으로 로마인의 신분을 확보하게 되었다. |
|---|
r39
| 59 | |
|---|
| 60 | 즉, 그리스인들은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면서 뜬금없이 라틴인 대신 동방 제국을 차지하게 된 게 아니라, 기원전부터 3세기까지 점진적으로 로마 시민권을 확보하여 제국이 동서로 나뉘기 이전부터 로마인이 된 상태였다. |
|---|
| 61 | |
|---|
| 62 | 물론 공화정 시대부터 제정 초기까지 제국을 주도하던 민족이 라틴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
| 63 | |
|---|
| 64 | 그러나 이러한 라틴인의 정치적 주도권 역시 군인 황제 시대에 이르러선 트라키아인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아랍인 황제]] 등 비라틴 황제들이 여럿 등장하며 제국의 동서 분열 이전에 이미 약화된 상태였다. |
|---|
| 65 | |
|---|
| 66 | 또한 분열 직후에 바로 동로마 황제 자리를 그리스인들이 독점하기 시작힌 것도 아니라서, 제국 초기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일리리아인 혈통에 [[라틴어]]를 모어로 사용했다.]를 비롯한 비그리스 혈통의 동로마 황제들이 여럿 있었고, 제국 중기에는 아르메니아 혈통의 [[마케도니아 왕조]]가 장기집권하기도 했다. |
|---|
r6
| 67 | ==== [[라틴어]] 대신 [[그리스어]]를 사용하니까 로마가 아니다? ==== |
|---|
r40
| 68 | 라틴인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정 시대부터 그리스어는 이미 귀족 및 상류층의 필수 교양이었고, 제국 동부에서는 일반 시민들도 라틴어보다 그리스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
|---|
| 69 | |
|---|
| 70 | 또한 서로마 멸망 이후의 동로마 제국에서 반포된 [[로마법 대전]]은 처음에는 라틴어로 작성되었다가 10세기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그리스어 완역본이 나왔다. |
|---|
| 71 | |
|---|
| 72 | 7세기 이라클리오스의 공용어 전환 조치로 동로마가 라틴어를 공용어에서 배제하고 그리스어만을 사용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로마군]]에서 사용하는 군사 용어에 한정된 조치였고 실제 동로마에서 라틴어의 사용이 드물어지고 그리스어가 단독으로 사용되는 건 이보다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난 변화였다. |
|---|
r6
| 73 | ==== 라틴 문화 대신 그리스 문화가 주류니까 로마가 아니다? ==== |
|---|
r5
| 74 | === [[로마 신화|로마 다신교]]와 [[기독교]]의 연속성이 국가 연속성과 직결된 문제인가? === |
|---|
r8
| 75 | 국교로서 숭상받는 [[종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건 맞다. |
|---|
| 76 | |
|---|
| 77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교의 변화, 그리고 종교적 단절이 곧 국가 정체성의 단절까지 불러왔다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
|---|
| 78 | |
|---|
| 79 | 일단 동로마의 기독교화는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다가 [[서로마]]가 망하고 동로마만 남은 시점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하나의 로마 제국으로 공존할 당시부터 이미 진행되던 일이다. |
|---|
| 80 | |
|---|
r43
| 81 |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밀라노 칙령]]은 서방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에 의해 공동으로 반포되었고, 기독교 국교화를 선언한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 역시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와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공동으로 선언한 것으로 동서 로마가 최종적으로 분할되었다는 395년보다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
|---|
r8
| 82 | |
|---|
r43
| 83 | 만약 [[로마 신화|로마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화한 것이 곧 로마 정체성을 버린 것이라면 같은 논리로 서로마 제국 역시 로마 제국이 아닌 건 마찬가지지만, 정작 동로마를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던 [[근세]] 이후 [[서유럽]] 학자들도, 그리고 기독교를 만악의 근원 취급하고 로마의 쇠퇴가 기독교 때문이라 외치던 [[근대]] 계몽주의자들도 [[476년]]을 로마가 멸망한 해로 잡았지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이나 국교화된 380년을 로마 멸망 시점으로 여기진 않았다. |
|---|
r11
| 84 | ==== 국교 변경 이후에도 연속성이 이어진 타국의 사례 ==== |
|---|
r42
| 85 | 4세기에 기존의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는 [[로마 제국]] 하나만이 아니었다. |
|---|
r11
| 86 | |
|---|
r43
| 87 | 우선 아르메니아의 아르샤쿠니 왕조는 로마의 기독교 공인보다도 10년 넘게 이른 시기인 301년에 조로아스터교에서 기독교로 국교를 변경했고, 조지아의 이베리아 왕국[* 여기서 말하는 '이베리아'(Iberia)는 지금의 조지아 동부를 가리키는 고대 지명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와는 상관 없다.]과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도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380년) 이전에 기존 국교에서 기독교로 갈아탔다. |
|---|
r11
| 88 | |
|---|
| 89 | 하지만 이러한 국교 변경이 곧 기존의 국가 정체성과 완전히 결별했다고 간주하고 기독교화 이전의 아르샤쿠니 왕조, 이베리아 왕국, 악숨 왕국과 기독교화 이후의 해당 국가들을 서로 다른 나라로 구분하는 관점은 해당 국가의 역사학계에서도, 타국의 역사학계에서도 단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었다. |
|---|
r12
| 90 | |
|---|
| 91 | 이는 로마보다 늦게 기독교를 받아들인 [[중세]] 게르만 왕국들이나 슬라브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라서, 그러한 국가들 역시 기독교 국교화를 기점으로 해서 국가 정체성 자체가 뒤바뀌었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
|---|
| 92 | |
|---|
| 93 | 중세 게르만, 슬라브 국가들은 기독교를 자국의 국교로 삼은 이후에도 기독교화 이전의 이교도 군주들을 계속 자국 왕실의 조상으로 여겼고, 슬라브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는 아예 이교도 군주였던 류리크의 혈통이 기독교를 국교화하고도 한참 지난 17세기 초까지 이어지다가 해당 인물의 자손이 끊기자 왕위 계승을 놓고 대규모 내전을 겪기까지 했다. |
|---|
r13
| 94 | |
|---|
r43
| 95 | 일각에서는 여기에 대해 세속화와 종교 다양화가 일어났음에도 [[성공회]] 국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정확히는 [[잉글랜드]])의 사례를 반론이라며 제시하고 있다. |
|---|
r13
| 96 | |
|---|
| 97 | 그러나 잉글랜드의 사례 역시 적합한 반론이라고 할 수 없다. |
|---|
r43
| 98 | 종교 개혁 이래 성공회가 잉글랜드의 핵심적인 정체성이 된 건 맞지만, 정작 그렇게 [[가톨릭]]과 단절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자국이 이전의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라고 하진 않았고 헨리 8세라는 넘버링 역시 가톨릭을 믿던 헨리 1~7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
|---|
r13
| 99 | |
|---|
| 100 | 물론 여기에 대해 성공회나 가톨릭이나 둘다 기독교인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재반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
| 101 |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 이후부터 19세기 가톨릭 해방 이전까지 가톨릭이 잉글랜드 내 교구 설치 및 성직자 파송도 용인받지 못하고 사실상 이교도 취급을 받은 걸 감안하면, 그렇게 가톨릭이라는 종교 정체성과 단절하면서도 국가 정체성까지 버리지 않은 잉글랜드를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로마라는 정체성은 버리지 않은 동로마에 대입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다. |
|---|
r18
| 102 | ==== 로마 다신교, 철학과 기독교의 연속성 담론과 국가 연속성 담론의 관계 ==== |
|---|
r43
| 103 | 일각에서는 로마 다신교에 대한 허탄함과 회의가 기독교 확산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와, [[고대 로마]] 철학이 기독교를 위한 길을 닦아놓았는지 여부를 로마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결부해서 찬반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
|---|
r14
| 104 | |
|---|
| 105 | 그러나 해당 문제는 어디까지나 기독교 신학 내지는 철학 분야에서 다룰 문제이지, 국가 정체성의 연속성을 논하는데 필수적인 문제는 아니다. |
|---|
| 106 | |
|---|
r17
| 107 | 위에서도 말했지만 국교가 국가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국가의 정체성이 단절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며, 이런 식의 연속성 잣대를 로마 철학보다도 기독교와 접점이 없는 다른 기독교 국가들의 고유 종교, 철학에도 들이대면서 해당 국가들의 연속성을 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
r1
| 108 | == 관련 문서 == |
|---|
| 109 | * [[동로마 제국]] |
|---|
r2
| 110 | * [[동로마 제국/역사]] |
|---|
r3
| 111 | * [[로마 황제]] |
|---|
| 112 | * [[로마 제국 계승론]] |
|---|
| 113 | * [[로마인의 황제]] |
|---|
| 114 | * [[두 황제 문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