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42 vs r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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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74 | 일단 동로마의 기독교화는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다가 [[서로마]]가 망하고 동로마만 남은 시점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하나의 로마 제국으로 공존할 당시부터 이미 진행되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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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밀라노 칙령]]은 서방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에 의해 공동으로 반포되었고, 기독교 국교화를 선언한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 역시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와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공동으로 선언한 것으로 동서 로마가 최종적으로 분할되었다는 395년보다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 |
| 76 |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밀라노 칙령]]은 서방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동방 황제 리키니우스에 의해 공동으로 반포되었고, 기독교 국교화를 선언한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 역시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와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공동으로 선언한 것으로 동서 로마가 최종적으로 분할되었다는 395년보다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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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만약 로마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화한 것이 곧 로마 정체성을 버린 것이라면 같은 논리로 서로마 제국 역시 로마 제국이 아닌 건 마찬가지지만, 정작 동로마를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던 [[근세]] 이후 [[서유럽]] 학자들도, 그리고 기독교를 만악의 근원 취급하고 로마의 쇠퇴가 기독교 때문이라 외치던 [[근대]] 계몽주의자들도 [[476년]]을 로마가 멸망한 해로 잡았지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이나 국교화된 380년을 로마 멸망 시점으로 여기진 않았다. | |
| 78 | 만약 [[로마 신화|로마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화한 것이 곧 로마 정체성을 버린 것이라면 같은 논리로 서로마 제국 역시 로마 제국이 아닌 건 마찬가지지만, 정작 동로마를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던 [[근세]] 이후 [[서유럽]] 학자들도, 그리고 기독교를 만악의 근원 취급하고 로마의 쇠퇴가 기독교 때문이라 외치던 [[근대]] 계몽주의자들도 [[476년]]을 로마가 멸망한 해로 잡았지 기독교가 공인된 313년이나 국교화된 380년을 로마 멸망 시점으로 여기진 않았다. | |
| 79 | 79 | ==== 국교 변경 이후에도 연속성이 이어진 타국의 사례 ==== |
| 80 | 80 | 4세기에 기존의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는 [[로마 제국]] 하나만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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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우선 아르메니아의 아르샤쿠니 왕조는 로마의 기독교 공인보다도 10년 넘게 이른 시기인 301년에 조로아스터교에서 기독교로 국교를 변경했고, 조지아의 이베리아 왕국과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도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380년) 이전에 기존 국교에서 기독교로 갈아탔다. | |
| 82 | 우선 아르메니아의 아르샤쿠니 왕조는 로마의 기독교 공인보다도 10년 넘게 이른 시기인 301년에 조로아스터교에서 기독교로 국교를 변경했고, 조지아의 이베리아 왕국[* 여기서 말하는 '이베리아'(Iberia)는 지금의 조지아 동부를 가리키는 고대 지명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와는 상관 없다.]과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도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380년) 이전에 기존 국교에서 기독교로 갈아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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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84 | 하지만 이러한 국교 변경이 곧 기존의 국가 정체성과 완전히 결별했다고 간주하고 기독교화 이전의 아르샤쿠니 왕조, 이베리아 왕국, 악숨 왕국과 기독교화 이후의 해당 국가들을 서로 다른 나라로 구분하는 관점은 해당 국가의 역사학계에서도, 타국의 역사학계에서도 단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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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88 | 중세 게르만, 슬라브 국가들은 기독교를 자국의 국교로 삼은 이후에도 기독교화 이전의 이교도 군주들을 계속 자국 왕실의 조상으로 여겼고, 슬라브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는 아예 이교도 군주였던 류리크의 혈통이 기독교를 국교화하고도 한참 지난 17세기 초까지 이어지다가 해당 인물의 자손이 끊기자 왕위 계승을 놓고 대규모 내전을 겪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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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일각에서는 여기에 대해 세속화와 종교 다양화가 일어났음에도 [[성공회]] 국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정확히는 [[잉글랜드]])의 사례를 반론이라며 제시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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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92 | 그러나 잉글랜드의 사례 역시 적합한 반론이라고 할 수 없다. |
| 93 | 종교 개혁 이래 성공회가 잉글랜드의 핵심적인 정체성이 된 건 맞지만, 정작 그렇게 [[가톨릭]]과 단절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자국이 이전의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라고 하진 않았고 헨리 8세라는 넘버링 역시 가톨릭을 믿던 헨리 1~7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 |
| 93 | 종교 개혁 이래 성공회가 잉글랜드의 핵심적인 정체성이 된 건 맞지만, 정작 그렇게 [[가톨릭]]과 단절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자국이 이전의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라고 하진 않았고 헨리 8세라는 넘버링 역시 가톨릭을 믿던 헨리 1~7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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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95 | 물론 여기에 대해 성공회나 가톨릭이나 둘다 기독교인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재반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 96 | 96 |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 이후부터 19세기 가톨릭 해방 이전까지 가톨릭이 잉글랜드 내 교구 설치 및 성직자 파송도 용인받지 못하고 사실상 이교도 취급을 받은 걸 감안하면, 그렇게 가톨릭이라는 종교 정체성과 단절하면서도 국가 정체성까지 버리지 않은 잉글랜드를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로마라는 정체성은 버리지 않은 동로마에 대입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다. |
| 97 | 97 | ==== 로마 다신교, 철학과 기독교의 연속성 담론과 국가 연속성 담론의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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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일각에서는 로마 다신교에 대한 허탄함과 회의가 기독교 확산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와, [[고대 로마]] 철학이 기독교를 위한 길을 닦아놓았는지 여부를 로마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결부해서 찬반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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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100 | 그러나 해당 문제는 어디까지나 기독교 신학 내지는 철학 분야에서 다룰 문제이지, 국가 정체성의 연속성을 논하는데 필수적인 문제는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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