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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제4대 장관회의 주석 | |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 초대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Ио́сиф Ста́лин | Joseph Stal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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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Joseph Vissarionovich Stalin) |
본명 | 이오세브 베사리오니스 제 주가슈빌리 (იოსებ ბესარიონის ძე ჯუღაშვილი) |
출생 | |
사망 | |
묘소 | |
재임기간 | 초대 서기장 |
제4대 인민위원장 | |
제4대 장관회의 주석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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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
1. 개요[편집]
[1] 1879년생 이라는 설도 존재한다.[2] 1960년 모스크바 연방시에 편입되어 현재는 모스크바 연방시의 일부이다.[3] 1952년 19차 당 대회에서 서기장직을 폐지하고 '서기국 서기'로 남았다.[4] 일명 케케 겔라제.[5] 둘 모두 스탈린이 태어나기 전 어릴때 사망했다.[6] 일명 카토 스바니제.[7] 볼셰비키 계열 정치인이었던 표도르 세르게예프(Фёдор Сергеев, 1883–1921)의 아들로 표도르 세르게에프의 사후 스탈린의 양자로 들어갔다. 스탈린의 장남인 야코프 주가슈빌리와 같이 독소전쟁에 참전했고 수용소에 수감됐으나 사망한 야코프와 달리 본인은 탈출에 성공했다.[8] 일각에서는 스탈린이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러시아 정교회의 탄압을 중지한 것과 엮어서 스탈린이 전쟁의 승리를 기도하며 정교회 성당을 몰래 다녔다는 식의 출처가 불분명한 낭설을 퍼뜨리기도 하나, 러시아 정교회의 부활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러시아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스탈린 실제로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다시 임명할 때 사도헌장을 고의로 무시한 채 세웠으며 정교회의 탄압을 완화한 뒤에도 즈나니예(Всесоюзное общество «Знание»)와 같은 무신론 단체를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