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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관련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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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저 | |||
재임기간 | 제20대 대통령 | ||
서명 | |||
링크 | |||
1. 개요[편집]
2. 약력[편집]
- 1973. 2. 대광국민학교 졸업
- 1979. 2. 충암고등학교 졸업 (8회)
- 1991. 10.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 1994. 2.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94. 2.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1996. 2.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검사
- 1997. 2.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 1999. 2.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99.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제2부 주임검사
- 2001. 8.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2003. 2.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 2003. 제16대 대통령 선거 불법대선자금수사팀 검사
- 2005. 2.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검사
- 2006. 2.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 2008. 1.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실 파견검사
- 2008. 3. 제46대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청장
- 2009. 1. 대구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
- 2009. 8.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범죄정보2담당관
- 2010. 7.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2과장
- 2011. 8.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
- 2012. 7.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1부장
- 2013. 4. 제55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
- 2013. 4.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
- 2014. 1.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 2016. 1. 대전고등검찰청 검사
- 2016. 12.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실 수사4팀장
- 2021. 11.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후보
- 2022. 5. 10.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예정)
3. 생애[편집]
198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94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부임한 직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12]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하였고,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와 정면 충돌하여 직무배제 및 정직 1개월 징계처분을 받고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좌천당했다.
이후 지방에서 한직을 전전하며 검사로서 향후 커리어패스가 불투명해지는 듯했으나,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특별수사를 맡게 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재기하는 데 성공하였다. 해당 사건으로 인하여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었고, 동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등용되어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진행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검찰총장 취임 직후 발생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여권과 갈등을 빚어 2020년 말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의해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정직 사건을 겪었다. 이듬해 3월 3일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 및 박탈하려는 여권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대선주자로서 지지율이 폭등하였다. 이후 3월 4일에 검찰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하였다.
2021년 6월에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동년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신의 선거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여 11월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본인의 첫 공직선거를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대선으로 치르게 되었다.
이듬해에 실시된 20대 대선에서 역대 대선 최다 득표인 16,394,815표[13]를 받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단 0.73%p 차이[14] #라는 역대 대선 최소 득표율 차[15]로 꺾고 첫 공직선거 출마에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16]
이후 지방에서 한직을 전전하며 검사로서 향후 커리어패스가 불투명해지는 듯했으나,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특별수사를 맡게 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재기하는 데 성공하였다. 해당 사건으로 인하여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었고, 동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등용되어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진행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검찰총장 취임 직후 발생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여권과 갈등을 빚어 2020년 말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의해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정직 사건을 겪었다. 이듬해 3월 3일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 및 박탈하려는 여권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야권 대선주자로서 지지율이 폭등하였다. 이후 3월 4일에 검찰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하였다.
2021년 6월에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동년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신의 선거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여 11월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본인의 첫 공직선거를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대선으로 치르게 되었다.
이듬해에 실시된 20대 대선에서 역대 대선 최다 득표인 16,394,815표[13]를 받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단 0.73%p 차이[14] #라는 역대 대선 최소 득표율 차[15]로 꺾고 첫 공직선거 출마에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16]
3.1. 윤석열 정부[편집]
4. 대선 공약[편집]
5. 별명[편집]
6.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편집]
7. 비판 및 논란[편집]
8. 여담[편집]
9. 각종 타이틀[편집]
10. 가족[편집]
- 조부 윤호병 (1898~1946)
- 여동생 윤신원 (1964년생)[37]
- 장인 김광섭 (~1987) / 장모 최은순 (1948년생)
- 처형 김지영 (1969년생)
- 처남 김진우[38] (1970년생)
- 처남 김진한 (1974년생)
11. 선거 이력[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22 | 16,394,815 (48.56%) | 당선 (1위) |
역대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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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속 정당[편집]
13. 어록[편집]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그것을 어떻게 따릅니까? 그럼 이의제기해서 안 받아들여지면 그러면 그걸 따라야 된다는 겁니까?2013년 국정감사 중 #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참여하며 #
이번 수사는 법원을 죽이려는 수사가 아니다. 법원을 살리기 위한 수사다. 법원이 무너지면 검찰도 무너진다.2018년 10월,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
새로운 검찰을 기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은 시기에 검찰총장의 소임을 맡게 되어 막중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저희 검찰은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오로지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행사하겠습니다.2019년 7월, 검찰총장직에 취임하며 #
흔들어대도 몸무게가 100kg이라 안 흔들린다.2020년 4월, 여권의 윤석열 흔들기에 대해 #
그것도 선택적 의심 아니십니까? 과거에는 안 그러셨잖습니까?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2020년 10월 국정감사 중 #
검찰은 검찰 구성원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2020년 10월 국정감사 중 #
지금 진행 중인 소위 말하는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2021년 3월, 검찰 수사권 박탈 정책에 반대하며 #
제가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느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2021년 3월,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하며 #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개악과 파괴를 개혁이라 말하고, 독재와 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과 부패한 이권 카르텔에 의해 국민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을 것입니다.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중 #
열 가지 중 아홉 가지 생각은 달라도 한 가지 생각, 정권 교체에 생각을 같이 하는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중 #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 먼저 철수해야 한다.2021년 7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 #
현금 복지는 정책 목표를 딱 세운 뒤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지급 대상을 특정해야 한다. 세금을 걷어서 나눠줄 거면 일반적으로 안 걷는 게 제일 좋다.2021년 7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에 대해서 #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 입당 기자회견 중 #
젊은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그 사회는 죽은 거거든요.2021년 9월 19일, SBS 집사부일체 방영분 #
지금 코로나19로 4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최근 두 달동안 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50조 원의 돈을 썼습니다. 병상 하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건 국가가 아닙니다.2021년 12월 11일, 국민의힘 강원도 선대위 발대식 중 #
대통령은 사회 갈등을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하고 치유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권교체를 위해 제가 대선후보로 나선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기성세대가 잘 모르는 것은 인정하고, 청년세대와 공감하는 자세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처음 국민께서 기대했던 윤석열다운 모습으로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2022년 1월 3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남긴 문구
여성가족부 폐지
아니에요. 핵 맞고 나서 보복하면 뭐합니까?2022년 2월 3일, 대선후보들의 첫 4자 토론 중[48]
우리가 격투기 싸움 한다고 할 때 측면으로 옆구리도 치고 다리도 치고 복부도 치고 머리도 공격하면 다 방어를 해야 되는 것이다.
사드는 고고도니까 다층적인, 고고도 중고도 저고도 측면공격 다양한 방어체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드는 옆에서 칠 땐 못 쏜다는 건 당연하다. 다양한 중층적인 방어체계를 만들어야 한다.2022년 2월 3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첫 4자 토론 중 #
저는 정치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다. 누구에게도 부채가 없다.
오로지 저를 불러주시고 키워주신 국민 여러분께만 부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부당한 기득권에 맞서 과감하게 개혁할 수 있다.2022년 2월 15일, 선거유세 첫 날 서울 청계광장 출정식 중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의 권력은 유한하고, 책임은 무한합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1분 1초도 잊지 않겠습니다.2022년 2월 15일, 서울 청계광장 출정식
2022년 2월 18일, 대구 동성로 유세 중 #
민주당도 잘 되고, 국민의힘도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국민의힘을 지지해서 정부를 만들어주셨다가, 또 잘못하면 민주당으로 정부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게 민주주의고 국민주권 아닙니까.2022년 2월 19일, 경상남도 창원시 유세 중
종이와 잉크로 된 협약서 하나 가지고 국가의 안보와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2022년 2월 25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2차 법정 TV 토론 중 2021-2022년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서 한 발언
2022년 3월 10일, 당선 뒤 대국민 메시지
14. 논문[편집]
- 美國 Class Action에 있어 代表要件에 관한 硏究 (1988.02, 지도 교수 송상현)
15. 방송 출연[편집]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역할 | 비고 |
2021년 | ||||
6월 30일 | 게스트 | |||
7월 19일 | 게스트 | |||
7월 29일 | 뉴스워치 | 게스트 | ||
7월 30일 | 게스트 | |||
9월 19일 | 게스트 | |||
10월 30일 | 게스트 | |||
12월 3일 | 게스트 | |||
12월 7일 | 게스트 | |||
2022년 | ||||
1월 27일 | 게스트 | |||
2월 8일 | 게스트 | |||
4월 20일 | 게스트 | |||
1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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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에서 태어났으나 성장한 곳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이다. # 참고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는 최초로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대통령이기도 하다.[2] 제 20대 당선인 인수위원희 사이트다.[3] 문정공파 13세손, 시조 35세손 석(錫)◯ 항렬.[4] 부친 윤기중 교수의 출생지.[5] 강릉 최씨로 강원도 강릉시 출신. 前 이화여자대학교 교수.[6] 現 대광초등학교[7] 현재의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상의 기준으로는 현역 판정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20대 남성의 인구 수 감소가 가속화되는 현실을 반영하여 과거와 비교해서 안과의 판정 기준도 매우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안의 굴절이상도의 차이가 2.00D~5.00D 미만인 경우에는 현역 판정을 받고 입대를 하도록 되어있으며, 5.00D 이상인 굉장히 심한 부등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검 4급인 보충역 판정을 받도록 되어있어 지금은 부등시로는 신검 5급인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윤석열이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던 1979년 당시의 기준으로는 양안의 굴절이상도의 차이가 2.00D~3.00D 이상만 되더라도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윤석열은 부등시로 인해 운전면허도 못 땄던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군 복무에 부적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운전면허는 딸 수 있는데, 운전면허를 못 딸 정도의 부등시라면 사실상 한쪽 눈은 오히려 방해만 되는 상황이다. 참고로 육군의 자료에 따르면, 징병대상자의 현역 판정 비율은 1986년 기준 51%였고 2014년 기준으로는 91%, 2022년 추정치는 98%라고 한다. 통상 적정 수준의 현역 판정 비율은 83% 정도로 잡는다고 한다.[8] 종교는 불교지만, 다른 종교들과도 인연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개신교 사립학교인 대광국민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시절에는 명동성당에 출석하며 천주교 세례를 받고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을 부여받기도 했다. 윤석열 캠프 측 인사인 배준영은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이 "독실한 불자"라고 밝혔으며, 2021년 가을, BTN 뉴스 2분 26초에도 본인이 손수 "나는 불교 신자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그런데 어째서인지 언론에서는 보통 무교라고 언급된다.[9] 해당 수치는 윤석열 본인이 SBS 집사부일체에 나와서 밝혔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는 182cm의 최규하에 이어 두 번째로 키가 크며,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10] 중랑중학교 입학 후 2학년 때 부친의 직장이 있는 서대문구로 이사하면서 충암중학교로 전학하였다.[11] 7월 12일, 무소속 상태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12] 2009년부터 2012년 대선 시기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가정보원 등 여러 국가기관이 여당 대통령 후보 당선 등을 목적으로 여론조작을 행한 사건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의 수사 결과에 따라 당시 정권의 집권 정당성 자체가 부정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13] 득표율로는 48.56%.[14] 단 247,077표차. 웬만한 서울특별시 구 하나의 인구수보다도 적은, 굉장히 세밀한 표차인 것. 참고로 윤 후보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던 강남3구 중, 송파구 하나의 인구수만 해도 약 66만 명이다. 강남3구의 인구수는 도합 약 160만 명.[15] 20대 대선 상대 후보인 이재명 후보 또한, 좌우 양대 진영이 총결집하였던 18대 대선의 승자 박근혜 당시 후보가 얻었던 표보다도 더 많은 표를 얻으며, 역대 낙선자 중 최다 득표는 물론 역대 대선 득표수 2위를 기록하게 되었다.[16]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최초의 기록이며, 대한민국 헌정사 전체로 보면 박정희(5대 대선), 전두환(11대 대선) 이후 세 번째이며 비군인 출신으로서는 최초이다.[17] 최초의 서울대학교 출신 대통령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김영삼이다. 윤석열 이전에 서울법대 출신 대권주자로는 이회창, 이인제, 김진태, 이낙연, 최병렬, 원희룡이 있었으나 여섯 명 모두 대통령이 되는 데 실패했다. 윤석열처럼 검사 출신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박찬종은 의외로 법대가 아니라 상대 경제학과였다.[18] 노무현(경남 김해)→이명박(출생지는 일본 오사카지만 실질적인 고향은 경북 포항)→박근혜(대구)→문재인(경남 거제) 이후 20년만에 등장한 비(非)영남권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정사 전체로 보면 이승만(황해 평산), 윤보선(충남 아산), 최규하(강원 원주), 김대중(전남 신안)에 이어 다섯 번째 비영남권 출신 대통령이다. 만약 이재명(경북 안동)이 당선됐더라면 5번째 영남권 대통령이였다. 이로써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지역은 경기도, 인천, 울산, 부산, 제주도가 있으며 여기서 좀 더 세분화를 할 경우 충북, 전북, 대전, 광주가 추가된다.[19] 여담으로 현재까지 대통령이 가장 많이 배출시킨 지역은 대구•경북(박정희(구미), 노태우(대구), 이명박(포항), 박근혜(대구))과 부산•경남(전두환(합천), 김영삼(통영), 노무현(김해), 문재인(거제))으로 각각 4명의 대통령을 배출시켰다.[20] 이승만은 6.25 전쟁 당시 대통령이었으며 윤보선은 당시 정치인, 최규하는 외교관이었다. 김대중은 면제자였고 박정희,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는 6.25 전쟁 참전 군인이었고 노무현, 이명박은 6.25 전쟁 당시 어린아이였고 박근혜, 문재인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태어난 일명 '사변둥이'였다.[21] 1960~1963년생 대통령이 더 나오지 않는 한 윤석열은 제2공화국 때 태어난 유일한 대통령이 된다. 이에 해당하는 대권주자로는 안철수, 오세훈 등이 있다.[22] 부모가 한쪽만 생존한 사례는 노태우(1987년 12월 당선)의 모친 김태향(1907~1999), 김영삼(1992년 12월 당선)의 부친 김홍조(1909~2008), 문재인(2017년 5월 당선)의 모친 강한옥(1928~2019)이 있다.[23] 판사 출신 대통령으로는 노무현이 사법연수원 수료 후 대전지방법원에서 7개월간 판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고, 노무현은 판사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하여 변호사 경력도 있으며, 문재인도 그와 동업한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었다. 검사 출신의 다른 대통령 후보로는 박찬종, 홍준표가 있었으나 이들은 낙마했다.[24] 최초의 사정기관장 출신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전두환이었다.[25] 노태우부터 문재인까지 모두 국회의원에 한 번 이상 재임한 경력이 있고, 이중에 이명박은 서울특별시장 재임 경력도 있으나, 윤석열은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 선출직 공무원에 재임한 경력이 전무하다.[26] 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헌정 사상 유일한 소수점 단위 득표율 차이 대선이기 때문이다.[27] 참고로 2번째로 가장 적은 득표율 차로 이긴 대통령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을 1.53%p 차로 이긴 김대중이다. 민주화 이전 가장 적은 득표수 차로 당선된 대통령은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156,026표 차이로 당선된 박정희이지만 유권자수가 현재의 3분의 1인 15,278,285명에 불과했던 당시와 현재의 인구 차이를 고려한다면 제5대 대선은 제15대 대선(39만표 차)과 비슷한 차이이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더욱 종이 한 장 차이인 셈이다.[28] 참고로 낙선한 사람까지 포함시킬 경우 역대 대선 득표 2위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이재명 (16,147,738표), 3위는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박근혜 (15,773,128표)이다.[29] 2, 3, 4위 역시 똑같이 20대 대선의 이재명, 18대 대선의 박근혜와 문재인이었다. 이 4명의 경우는 모두 대통령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전국 단위 선거이며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 비해 10~20%p 가량 높아 가능하였다.[30] 박근혜 역시 무자녀였지만, 미혼이다.[31] 부등시로 전시근로역 판정. 박근혜는 성별이 여성이므로 병역 의무가 없었고, 이명박은 기관지 확장증으로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김대중은 병역법상 징병 대상이 아니었다. 김영삼 또한 징병 대상이 아니었으나 6.25 전쟁에 참전했다.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는 군 장교 출신이며, 최규하와 윤보선의 청년 시절에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고 이승만의 청년 시절의 대한제국은 모병제 국가였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둘 다 현역 병사로 군 복무를 이행했다.[32] 반려견 4마리, 반려묘 3마리로 총 7마리의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33] 참고로 우리나라 대통령 대부분은 반려견을 키웠다. 문재인 역시 반려견에 더해 반려묘도 키운다.[34] 이전까지는 역대 대통령 중 최장신인 최규하 (75kg). 신장은 최규하가 182cm로 1위, 윤석열이 178cm로 2위이다.[35] 2021년 6월 29일 정계에 입문한지 불과 8개월 9일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36]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이 두번씩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징크스를 말한다. (노태우,김영삼(보수)-김대중,노무현(민주)-이명박,박근혜(보수)-문재인(민주)). 만약 이재명이 당선됐다면 이 징크스는 유지되었을 것이다.[37] 연세대 불문과 졸업. 윤석열과는 달리 자녀가 있으며 윤석열 대신 부모 윤기중과 최정자를 돌보고 있다. 중앙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인 윤신원과는 동명이인이다. [38] 김건우로 알려져 있지만 김진우이다. [39]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
2위 후보와의 득표율 최저 격차 (0.73%)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40] 전두환 역시 공직 선거 첫 도전에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으므로 논외.[41] 대통령 퇴임 후에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 등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는 전혀 제한이 없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그런 사례는 윤보선 대통령 단 한명 뿐, 그외는 전무하다시피 하다.[42] 2021년 6월 29일 정계에 입문하였다. 6월 29일 행사가 대선출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정식 대선 출마 선언은 아직 하지 않은 상태이다.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언론에서 혼재해서 써서 그런데 대권 출마 선언이 아니라 정치 참여 선언을 한 것"이라며 "초년생으로서 정치 시작한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3] 7월 30일 국민의힘 전격 입당 의사를 밝혔고# 입당 의사를 밝힌 당일, 국민의힘 당사에 방문해서 입당 원서를 제출하며 공식적으로 입당했다. #[44] 국민의힘 합류와 관련하여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정치 참여 선언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정치 철학 면에서는 국민의힘과 제가 생각을 같이 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입당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명확한 답변은 내놓지 않았고# 2021년 7월 3일 권영세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과의 만찬 회동에서 빠른 입당을 요구받았으나 윤석열은 입당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제1야당에 입당하여 공정한 경선을 통해 기호 2번으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한동안 윤석열이 제3지대, 신당 창당을 노린다는 예측이 있기도 했으나, 애초에 본인의 마음에 있지도 않은 계획이며 제3지대 집권에 대해 "지금은 이상을 논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국민 요구와 수요에 부응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45] 윤석열의 강골 검사 기질을 처음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대중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발언이다. 이 발언으로 당시 야당(진보) 지지층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조국도 이 발언을 호평하는 트윗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은 그 조국과 맞붙으며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로 발돋움했고, 결국 2022년 보수 진영의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된다.[46] 이 7글자밖에 안 되는 문구 하나로 단숨에 20·30대 남성 지지율을 반등시켰고, 여러 남초 커뮤니티의 반윤 여론을 순식간에 돌려버렸으며, 친윤 여론을 형성하게 만들었다.[47] 놀랍게도 이 한줄공약 아이디어는 권성동 의원이 냈다고 한다.[48] 안보 주제로 토론 중 본인의 북한 선제 타격론에 심상정이 반박하며 보복 능력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의견에 반박한 말이다. 자세한 것은 대북 선제 타격 항목의 4번 문단 참고.[49] 2022년 1월 12일 이후 유튜브 쇼츠 공약 후반부에 매번 나온다. 또한 유세장에서 어퍼컷 세레머니와 함께 자주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50] 그동안 본인이 올렸던 페이스북 한 줄 메시지들을 2~3개씩 모아 다시 올리다가, 마지막 메시지로 '정권교체'를 올렸다.[51] 대선주자 빅 3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특집[52] 인턴기자 코너에 출연한다.[53] 대선후보 특집 2탄
2위 후보와의 득표율 최저 격차 (0.73%)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40] 전두환 역시 공직 선거 첫 도전에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으므로 논외.[41] 대통령 퇴임 후에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 등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는 전혀 제한이 없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 그런 사례는 윤보선 대통령 단 한명 뿐, 그외는 전무하다시피 하다.[42] 2021년 6월 29일 정계에 입문하였다. 6월 29일 행사가 대선출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정식 대선 출마 선언은 아직 하지 않은 상태이다.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언론에서 혼재해서 써서 그런데 대권 출마 선언이 아니라 정치 참여 선언을 한 것"이라며 "초년생으로서 정치 시작한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3] 7월 30일 국민의힘 전격 입당 의사를 밝혔고# 입당 의사를 밝힌 당일, 국민의힘 당사에 방문해서 입당 원서를 제출하며 공식적으로 입당했다. #[44] 국민의힘 합류와 관련하여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정치 참여 선언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정치 철학 면에서는 국민의힘과 제가 생각을 같이 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입당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명확한 답변은 내놓지 않았고# 2021년 7월 3일 권영세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과의 만찬 회동에서 빠른 입당을 요구받았으나 윤석열은 입당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제1야당에 입당하여 공정한 경선을 통해 기호 2번으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한동안 윤석열이 제3지대, 신당 창당을 노린다는 예측이 있기도 했으나, 애초에 본인의 마음에 있지도 않은 계획이며 제3지대 집권에 대해 "지금은 이상을 논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국민 요구와 수요에 부응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45] 윤석열의 강골 검사 기질을 처음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대중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발언이다. 이 발언으로 당시 야당(진보) 지지층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조국도 이 발언을 호평하는 트윗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은 그 조국과 맞붙으며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로 발돋움했고, 결국 2022년 보수 진영의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된다.[46] 이 7글자밖에 안 되는 문구 하나로 단숨에 20·30대 남성 지지율을 반등시켰고, 여러 남초 커뮤니티의 반윤 여론을 순식간에 돌려버렸으며, 친윤 여론을 형성하게 만들었다.[47] 놀랍게도 이 한줄공약 아이디어는 권성동 의원이 냈다고 한다.[48] 안보 주제로 토론 중 본인의 북한 선제 타격론에 심상정이 반박하며 보복 능력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의견에 반박한 말이다. 자세한 것은 대북 선제 타격 항목의 4번 문단 참고.[49] 2022년 1월 12일 이후 유튜브 쇼츠 공약 후반부에 매번 나온다. 또한 유세장에서 어퍼컷 세레머니와 함께 자주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50] 그동안 본인이 올렸던 페이스북 한 줄 메시지들을 2~3개씩 모아 다시 올리다가, 마지막 메시지로 '정권교체'를 올렸다.[51] 대선주자 빅 3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특집[52] 인턴기자 코너에 출연한다.[53] 대선후보 특집 2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