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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李明博 | Lee Myung-bak
파일:new_mb.jpg
출생
오사카부 나카카와치군 가미무라 후쿠이도정3초메 52[2][3]
(現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미나미정 3-4-15)[4][5]
사저
현재지
신분
기결수 (2020년 11월 2일 ~ 2036년 11월 7일)[8]
재임기간
제17대 대통령
서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10]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1]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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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등록기준지
부모
아버지 이충우, 어머니 채태원
형제자매
이상은, 이상득
누나 이귀선,[14] 이귀애[A]
남동생 이상필[A]
여동생 이윤진[17]
배우자
자녀
장녀 이주연, 차녀 이승연,
삼녀 이수연, 장남 이시형
학력
포항영흥국민학교 (졸업)
포항중학교 (졸업)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야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 / 학사)
병역
종교
신체
175cm[20], 70kg, B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약칭
MB,
청계(淸溪)[21]

1. 개요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중 유일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 현재 생존한 대한민국 전현직 대통령 중 최고령이다.[2] 가미촌은 1955년에 오사카시에 통합되었고, 동시에 후쿠이도(福井戶)정은 가미후쿠이도(加美福井戶)정으로 바뀌었다. 이후 1974년에 현재의 가미미나미(加美南)정으로 통폐합되었다. 지금 이름인 가미미나미(加美南)정과 혼동되어 존재했던 적이 없는 가미미나미후쿠이도(加美南福井戸)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MB도 모르는 오사카 출생지(JBC 뉴스)[3] 1945년 8.15 광복 직후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실질적인 고향은 경북 포항이다. 포항 덕실마을에 이명박 전 대통령 생가가 위치해 있다. 주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길 512-7이며, 2007년 포항에서의 경선 연설 중에도 자신의 고향이 포항이라 말한 바 있다.[4] 야후 재팬의 관련 질문[5] 현재는 이카루가 유업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구글 지도 링크[6] 이명박/자택 참조.[7] 미결수일 때는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되었고, 형이 확정된 뒤 분류작업을 받고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원칙적으로는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옮기는 것이 맞지만, 경호 때문에 서울동부구치소에 계속 머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져 안양교도소로 이감하기로 교정당국이 결정했다.[8] 2020.10.29.자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에 의하여 기결수가 되었고, 판결 선고 이전 구속기소에 따른 미결구금일수 355일(2심 법정구속 전후로 6일 재구속기간 포함)을 확정된 징역 17년에서 공제하면 다음과 같으나, 선고된 벌금을 노역으로 대체한다면 출소 일자가 3년 늦춰진다. 만약 살아서 형기를 모두 채운다면 94세의 나이로 출소하게 될 예정이고, 후자를 택할 경우 2039년 11월 7일에 97세의 나이로 출소하게 될 예정이다.[9] 그 유명한 어맹뿌 짤이 바로 이 서명에서 나온 것이다.[10] 2020년 1월 27일 이후로 게시글이 없다. 사실상 폐쇄된 상태이다.[11] 유튜브 초창기였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홍보용으로 사용한 계정. 그 해 12월 당선자 기자회견 영상 이후 올라온 영상이 없어 사실상 폐쇄된 상태이다.[12] 2008년부터 대통령 퇴임 직전까지 사용한 계정.[13] 국당공파(菊堂公派)-문정공파(文貞公派) 39세 '상()' 자 항렬. 족보 이름은 이상정(李相定)으로, 독립운동가 이상정과는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14] 1931~2010.[A] 15.1 15.2 6.25 전쟁 당시 피난 중에 사망했다.[17] 본명은 이말분이었으나 개명했으며,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야간] [19] 소망교회 은퇴장로.[20] 현재는 고령으로 인해 키가 줄어 173cm이다. #[21]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으나, 서울시장에 재임하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려대학교 동문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꿔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