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
FC Internazionale Milano | |
정식 명칭 |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S.p.A. |
창단 | |
소속 리그 | |
연고지 | |
홈구장 |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Stadio Giuseppe Meazza) (80,018명 수용) |
라이벌 | |
구단주 | |
회장 | |
부회장 | |
CEO | |
스포츠 디렉터 | |
감독 | |
수석 코치 | |
주장 | |
부주장 | |
UEFA 랭킹 | 3위 출처 |
공식 웹사이트 | |
팬 커뮤니티 | |
약칭 | INT |
우승 기록 | |
1909-10, 1919-20, 1929-30, 1937-38, 1939-40, 1952-53, 1953-54, 1962-63, 1964-65, 1965-66, 1970-71, 1979-80, 1988-89, 2005-06[11], 2006-07, 2007-08, 2008-09, 2009-10, 2020-21, 2023-24 | |
1938-39, 1977-78, 1981-82, 2004-05, 2005-06, 2009-10, 2010-11, 2021-22, 2022-23 |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8회) | 1989, 2005, 2006, 2008, 2010, 2021, 2022, 2023 |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 |
UEFA 유로파 리그 (3회) | 1990-91, 1993-94, 1997-98 |
FIFA 인터컨티넨탈컵 (1회) | 2010 |
인터컨티넨탈컵 (2회) | 1964, 1965 |
클럽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
최고 이적료 방출 | |
최근 영입 | |
최다 출장 | |
최다 득점 | |
세리에 A 득점왕 (13회) | 주세페 메아차 (Giuseppe Meazza) - 31골 (1929-30) 주세페 메아차 (Giuseppe Meazza) - 25골 (1935-36) 주세페 메아차 (Giuseppe Meazza) - 20골 (1937-38) 이스트반 나이어스 (István Nyers) - 26골 (1948-49) 안토니오 앙헬리요 (Antonio Angelillo) - 33골 (1958-59) 산드로 마촐라 (Sandro Mazzola) - 17골 (1964-65) 로베르토 보닌세냐 (Roberto Boninsegna) - 24골 (1970-71) 로베르토 보닌세냐 (Roberto Boninsegna) - 22골 (1971-72) 알도 세레나 (Aldo Serena) - 22골 (1988-89) 크리스티안 비에리 (Christian Vieri) - 24골 (2002-03)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Zlatan Ibrahimovic) - 25골 (2008-09) 마우로 이카르디 (Mauro Icardi) - 22골 (2014-15) 마우로 이카르디 (Mauro Icardi) - 29골 (2017-18)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Lautaro Martínez) - 24골 (2023-24) |
1. 개요[편집]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밀라노. 홈구장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통산 세리에 A 20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차지했고,[15] 특히 2009-10 시즌에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트레블을 달성했다.
AC 밀란과 같은 경기장을 쓰는데, 정확한 공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Stadio Giuseppe Meazza)'로, 1980년 개명되었다. 주세페 메아차를 기리기 위해 구장의 명칭을 바꾸었는데 주세페 메아차는 AC 밀란이 아닌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낸, 최고 레전드 선수이기 때문에[16] AC 밀란의 팬들은 경기장의 명칭에 바뀌는 것과 바꿔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명되기 전의 공식 명칭은 경기장이 있는 지역구를 그대로 접목하여 '스타디오 산 시로(Stadio San Siro)'. AC 밀란 팬들이 인테르의 주세페 메아차와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짧아서'라는 게 결정적이다. 홈, 어웨이 경기 구분은 각 서포터들에게 분배하는 티켓 수를 달리 한다고 한다.
또한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중 유일하게 한 번도 세리에 B로 강등되지 않은 클럽이다. 다만, AC 밀란과 중간에 분리되다시피 한 클럽이라 세리에 A 개근 멤버에는 속하지 못한다.
통산 세리에 A 20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차지했고,[15] 특히 2009-10 시즌에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트레블을 달성했다.
AC 밀란과 같은 경기장을 쓰는데, 정확한 공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Stadio Giuseppe Meazza)'로, 1980년 개명되었다. 주세페 메아차를 기리기 위해 구장의 명칭을 바꾸었는데 주세페 메아차는 AC 밀란이 아닌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낸, 최고 레전드 선수이기 때문에[16] AC 밀란의 팬들은 경기장의 명칭에 바뀌는 것과 바꿔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명되기 전의 공식 명칭은 경기장이 있는 지역구를 그대로 접목하여 '스타디오 산 시로(Stadio San Siro)'. AC 밀란 팬들이 인테르의 주세페 메아차와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짧아서'라는 게 결정적이다. 홈, 어웨이 경기 구분은 각 서포터들에게 분배하는 티켓 수를 달리 한다고 한다.
또한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중 유일하게 한 번도 세리에 B로 강등되지 않은 클럽이다. 다만, AC 밀란과 중간에 분리되다시피 한 클럽이라 세리에 A 개근 멤버에는 속하지 못한다.
2. 공식 명칭[편집]
공식 클럽 명칭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다.[17] 이는 AC 밀란이 공식적으로 도시명을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쓰는 것에 반발해 이탈리아어를 쓴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영어식으로 '인터 밀란(Inter Mila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같은 밀라노가 연고지인 AC 밀란과 맞춰 부르려고 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보통 '인테르'로 줄여 부르며, 홈 팬들도 인테르라고 줄여 부른다. 이탈리아어 원 발음대로 하면 인테르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들 같은 경우 각 나라의 언어대로 읽는 것이 보통인지라 영어식으로 ter 발음을 테~가 아닌 터~로 하는 곳도 제법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인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아주 간혹 가다가 있다. '인테르 밀란'이나 '인터'라고는 딱히 부르지 않는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보통 '인테르'로 줄여 부르며, 홈 팬들도 인테르라고 줄여 부른다. 이탈리아어 원 발음대로 하면 인테르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들 같은 경우 각 나라의 언어대로 읽는 것이 보통인지라 영어식으로 ter 발음을 테~가 아닌 터~로 하는 곳도 제법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인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아주 간혹 가다가 있다. '인테르 밀란'이나 '인터'라고는 딱히 부르지 않는다.
3. 1군 스쿼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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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대 감독[편집]
5. 역대 시즌[편집]
6. 역사[편집]
초창기 영국인들이 주도해서 클럽을 창설한 AC 밀란이 영국인과 이탈리아인만을 클럽의 선수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이에 반대한 세력들이 AC 밀란을 탈퇴해서 모든 국가의 모든 선수들을 받아들이겠다며 창설된 팀이며 또한 직설적인 팀명[18]과 Fratelli del Mondo(세계의 형제들)라는 단어를 팀의 프랜차이즈 모토로 사용함에 따라서 정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 출신이 우대받았으며, 홈 구장의 공식 명칭도 193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에서 따왔다. 2년 연속 유러피언컵을 우승한 '위대한 인테르' 시절에도 공격수 산드로 마촐라와 이후 구단주까지 되는 자친토 파케티,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나 프랑코 바레시에 조금 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주세페 베르고미 역시 인테르의 이탈리아 출신이다. 게다가 역대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통계를 내 보면 인테르 소속이었던 선수가 두 번째로 많다. AC 밀란은 3위, 1위는 당연히 유벤투스.
그래도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 출신이 우대받았으며, 홈 구장의 공식 명칭도 193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에서 따왔다. 2년 연속 유러피언컵을 우승한 '위대한 인테르' 시절에도 공격수 산드로 마촐라와 이후 구단주까지 되는 자친토 파케티,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나 프랑코 바레시에 조금 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주세페 베르고미 역시 인테르의 이탈리아 출신이다. 게다가 역대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통계를 내 보면 인테르 소속이었던 선수가 두 번째로 많다. AC 밀란은 3위, 1위는 당연히 유벤투스.
6.1. 시즌별 일람[편집]
2006년 유벤투스가 칼초폴리로 몰락하자 인테르의 본격적인 독주가 시작되었다. 05-06 시즌부터 09-10 시즌까지 세리에 A 5연패를 차지하며 통산 18회 우승을 달성하자 팬들은 유니폼에 2번째 별이 생기는 것을 꿈꾸며 독주가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다. 인테르의 레전드 사네티도 "인테르의 유니폼에 별 2개가 박히면 그때 은퇴하겠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음 시즌인 10-11 시즌 스쿠데토를 AC 밀란에 내주더니 그 다음 시즌부터는 유벤투스가 완전하게 부활해버려 10-11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마지막으로 유로파 리그나 전전하는 중상위권 팀이 되어버린다. 이후 17-18 시즌부터 다시 챔스권까지 전력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으나 20-21 시즌에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컵을 연속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음 시즌인 10-11 시즌 스쿠데토를 AC 밀란에 내주더니 그 다음 시즌부터는 유벤투스가 완전하게 부활해버려 10-11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마지막으로 유로파 리그나 전전하는 중상위권 팀이 되어버린다. 이후 17-18 시즌부터 다시 챔스권까지 전력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으나 20-21 시즌에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컵을 연속으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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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시즌별 리그 순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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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명예의 전당[편집]
매년 공식 홈페이지에서 후보를 선정 후 투표한다.
후보가 되는 조건은 인테르에서 60경기 이상 출전, 트로피 하나 이상 수상, 은퇴 후 3년 이상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명예의 전당 선수를 선정하면서 특별상(Special Award)도 선정하였는데, 2018년에는 오랜 기간 인테르의 구단주였던 모타리 일가(안젤로 모라티, 마시모 모라티), 2019년에는 1986~1991년 동안 인테르의 수문장이었던 아스티툴로 말지오글리오가 Premio Brothers Universally United의 대표로 수상, 2020년에는 1984년부터 1995년 간 회장이었던 에르네스토 펠레그리니, 2021년에는 1963년부터 2001년 동안 부회장이었던 주세페 프리스코가 수상하였다.
7. 홈구장[편집]
8. 유니폼[편집]
9. 유명 선수[편집]
- 이탈리아 국적
- 주세페 메아차: 1927-1940, 1946-1947
- 마우로 비치클리: 1953-1963, 1966-1967
- 마리오 코르소: 1957-1973
- 아리스티데 과르네리: 1958-1967
- 아르만도 피키: 1960-1967
- 자친토 파케티: 1960-1978
- 산드로 마촐라: 1960-1977
-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1962-1974
- 줄리아노 사르티: 1963-1968
- 잔프랑코 베딘: 1964-1974
- 사울 말라트라시: 1964-1966
- 로베르토 보닌세냐: 1969-1976
- 가브리엘레 오리알리: 1970-1983
- 주세페 바레시: 1976-1992
-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1977-1988
- 발테르 쳉가: 1978-1994
- 주세페 베르고미: 1979-1999
- 프랑코 카우시오: 1984-1985
- 마르코 타르델리: 1985-1987
- 알도 세레나: 1978-1985, 1987-1991
- 살바토레 스킬라치: 1992-1994
- 로베르토 바조: 1998-2000
- 안드레아 피를로: 1998-2001
- 크리스티안 비에리: 1999-2005
- 프란체스코 톨도: 2001-2010
- 마르코 마테라치: 2001-2011
- 파비오 칸나바로: 2002-2004
- 마리오 발로텔리: 2007-2010
- 티아고 모타: 2009-2012
- 안드레아 라노키아: 2011-2022
- 안토니오 카사노: 2012-2013
- 페데리코 디마르코: 2014-2017, 2018-
- 알레산드로 바스토니: 2017-
- 니콜로 바렐라: 2020-
- 프란체스코 아체르비: 2023-
- UEFA
- 렌나르트 스코글룬드: 1950-1959
- 루이스 수아레스: 1961-1970
- 한지 뮐러: 1982-1984
- 칼 하인츠 루메니게: 1984-1987
- 로타어 마테우스: 1988-1992
- 안드레아스 브레메: 1988-1992
- 위르겐 클린스만: 1989-1992
- 마티아스 자머: 1992-1993
- 다르코 판체프: 1992-1995
- 데니스 베르캄프: 1993-1995
- 유리 조르카에프: 1996-1999
- 아론 빈터르: 1996-1999
- 로랑 블랑: 1999-2001
- 로비 킨: 2000-2001
- 클라렌스 세도르프: 2000-2002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2004-2006
- 데얀 스탄코비치: 2004-2013
- 루이스 피구: 2005-2009
- 패트릭 비에이라: 2006-2010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2006-2009
- 크리스티안 키부: 2007-2014
- 고란 판데프: 2009-2012
- 웨슬리 스네이더: 2009-2013
- 사미르 한다노비치: 2012-2023
- 마테오 코바치치: 2013-2015
- 네마냐 비디치: 2014-2016
- 이반 페리시치: 2015-2022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2015-2023
- 스테판 더프레이: 2017-
- 밀란 슈크리니아르: 2017-2023
- 로멜루 루카쿠: 2019-2021
- 하칸 찰하놀루: 2021-
- 덴절 뒴프리스: 2021-
- 에딘 제코: 2021-2023
- 얀 조머: 2023-
- 뱅자맹 파바르: 2023-2025
- 마르쿠스 튀랑: 2023-
- CONMEBOL
- 엑토르 스카로네: 1931-1932
- 자이르 다코스타: 1962-1967, 1968-1972
- 다니엘 파사레야: 1986-1988
- 하비에르 사네티: 1995-2014
- 호베르투 카를루스: 1995-1996
- 디에고 시메오네: 1997-1999
- 호나우두: 1997-2002
- 알바로 레코바: 1997-2008
- 이반 코르도바: 2000-2012
- 이반 사모라노: 1996-2001
- 아드리아누: 2001-2002, 2004-2009
- 에르난 크레스포: 2002-2003, 2006-2009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3
- 킬리 곤살레스: 2003-2006
- 훌리오 크루스: 2003-2009
-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2004-2006
- 에스테반 캄비아소: 2004-2014
- 다비드 피사로: 2005-2006
- 줄리우 세자르: 2005-2012
- 왈테르 사무엘: 2005-2014
- 막스웰: 2006-2009
- 마이콘: 2006-2012
- 필리페 쿠티뉴: 2008-2013
- 디에고 밀리토: 2009-2014
- 디에고 포를란: 2011-2012
- 프레디 과린: 2012-2016
- 마우로 이카르디: 2013-2020
- 가리 메델: 2014-2017
- 주앙 미란다: 2015-2019
-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2018-
- 알렉시스 산체스: 2020-2022, 2023-2024
- 아르투로 비달: 2020-2022
- CONCACAF
- 테이존 뷰캐넌: 2024-2025
- CAF
10. 영구 결번[편집]
11. 역대 엠블럼[편집]
12. 인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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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클럽팀 중에서 유일한 트레블 팀인 만큼, 세리에 A에서 평균 관중 수가 가장 많은 구단으로[21], 2015-16 시즌부터 2023-24 시즌까지 9시즌 연속 세리에A 평균 관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7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로 복귀한 2018-19 시즌에도 1위였는데 리그 기준 평균 61,149명, 최대 78,275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유럽 전체에서 평균 관중 순위 5위[22]에 랭크되었다. 또한 세 번째 빅 이어와 트레블을 달성했던 2010년의 전성기엔 유럽 전체 축구 구단 서포터 수 순위 8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23] # 꾸준한 인기와 성적에 힘입어 2023-24 시즌 유럽 전체에서 평균 관중 순위 3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24] #
인테르의 팬들은 흔히 인테리스티(Interisti) 혹은 인테리스타(Interista)로 자칭하며[25], 이 중 울트라스의 경우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의 북쪽 관중석을 차지하므로 흔히 쿠르바 노르드(Curva Nord)로 불린다.[26][27]
SNS상에선 페이스북 기준 약 2,800만 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인스타그램 기준으로는 1140만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2017년 발생한 프랑스 시위 과격 진압 사태의 피해자도 인테르 팬임이 밝혀졌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그를 면회하러 갔을 때 일반 환자복이 아닌 인테르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 본의 아니게 인테르는 이 사건에 연관되게 되었고 이 사람을 경기에 초청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다.
모란디 다리 붕괴사고의 희생자 중 콜롬비아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인테르 팬 클럽 콜롬비아 지부의 회장이었다. 그래서 인테르가 이 사람을 추모하기도 했다.
인테르를 응원하는 국내,외 유명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12.1. 인테르를 응원하는 유명 인사[편집]
12.1.1. 해외 유명 인물[편집]
- 안토니오 카사노 - 축구 선수
- 케빈 라사냐 - 이탈리아 본토 축구선수다.
- 타나나이 - 1995년생 싱어송라이터로 본명은 알베르토 코타 라무지노(Alberto Cotta Ramusino). 알레산드로 바스토니의 생일 잔치에 초대를 받아 함께 노래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 마다메 - 2002년생 싱어송라이터로 본명은 프란체스카 칼레아로(Francesca Calearo). 인테르 크리스마스 행사에 초대되어 와서 챔스 우승 공약으로 라우타로에게 피처링을 요청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 로제 빌라인 - 1989년생 밀라노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본명은 로자 루이니(Rosa Luini). 위의 타나나이, 마다메와 함께 20번째 리그 우승 기념 노래를 불렀다.
- 아마데우스 - 방송인. 2009년생 늦둥이 아들의 이름은 주제 무리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 마틸데 졸리 - 배우[31]
- 에이프릴 서머스 - 영국의 글래머 모델로 아내와 막 이혼한 상태였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에게 공개 구혼을 했고 그 뒤 인테리스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테르의 감독 교체 이야기가 돌 때 "만치니처럼 멋진 사람으로 데려와라."라고 말할 정도.
- 알리사 밀라노 - 미국의 배우
- 라도반 카라지치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재자
- 맥스 페찰리[32] - 가수. 인테르 헌정곡을 쓰기도 했다.
- 칸예 웨스트 - 자기 노래에 인테르 울트라스들을 피처링으로 참여시키기도 했다. 23-24시즌 인테르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직관하러 방문했으나 하필 얼굴 전체를 덮는 복면을 쓰고 온 탓에 팬들의 반응은 '뭐 보긴 했냐'
(...) - 크리스티얀 아슬라니 - 현역 인테르 선수 출신으로, 2025년 10월 기준 토리노 FC로 임대갔다. 잊을 만하면 인테르 사랑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한다. 여담으로 그의 생일은 3월 9일로 인테르 창단일과 같다.
- 니코 슐츠 - 독일의 축구선수. 이탈리아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테르를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 니콜로 마르티넹기 - 2024년 파리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 파올로 보놀리스 - 이탈리아의 MC. 잊을만 하면 올라오는 칼초폴리 떡밥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 이탈리아의 골프 선수, 2018 디오픈 우승#
- 몬티 이오안네 - 호주 태생의 이탈리아 럭비 선수#
- 마시모 피파레티 - 이탈리아의 웨이크보더#
-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 - 이탈리아의 서퍼#
12.1.2. 국내 유명 인물[편집]
13. 라이벌[편집]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Derby della Madonnina) | |
데르비 디탈리아 (Derby d'Italia) | |
더비 매치로 엮이는 라이벌로는 이탈리아의 세리에 A의 명문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이 있다. AC 밀란과의 관계가 경기에선 투닥거리긴 해도 중요한 일에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는 형제 같은 사이라면 유벤투스와는 이전부터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칼치오폴리 이후로는 서포터와 구단진들 모두 대놓고 상대방을 까내리며 적대적인 수준의 살벌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각각의 더비 매치에 대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그 외에 같은 네라주리 유니폼에 롬바르디아 주 지역 라이벌인 아탈란타 BC와도 엮인다. 예전에는 그리 치열하지 않았으나 아탈란타의 성적이 많이 올라오면서 점점 치열한 상위권 싸움을 벌이는 추세이다.
더비 성적은 당연하겠지만 각 팀의 감독이 누구인지, 또는 특별히 강한 선수가 있는지에 따라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2023-24 시즌 기준으로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는 인테르의 심자기 감독이 밀란의 피올리 감독을 인간상성 수준으로 잘 잡고 있다. 반면 데르비 디탈리아는 심자기 체제에서는 최종 성적은 유벤투스에 앞섬에도 불구하고 더비에서만큼은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인테르 소속으로 더비경기에서 맹활약한 선수로는 마우로 이카르디가 데르비 디탈리아에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고, 반대로 로멜루 루카쿠는 자신의 천적인 키엘리니의 존재로 데르비 디탈리아에서 자주 지워졌다.
한편 정반대로 친근한 관계인 구단도 있는데 바로 SS 라치오다. Inter-Lazio-nale라고 하면서 각 구단의 울트라들 끼리는 꽤나 친밀한 편이다.
더비 성적은 당연하겠지만 각 팀의 감독이 누구인지, 또는 특별히 강한 선수가 있는지에 따라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2023-24 시즌 기준으로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는 인테르의 심자기 감독이 밀란의 피올리 감독을 인간상성 수준으로 잘 잡고 있다. 반면 데르비 디탈리아는 심자기 체제에서는 최종 성적은 유벤투스에 앞섬에도 불구하고 더비에서만큼은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인테르 소속으로 더비경기에서 맹활약한 선수로는 마우로 이카르디가 데르비 디탈리아에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고, 반대로 로멜루 루카쿠는 자신의 천적인 키엘리니의 존재로 데르비 디탈리아에서 자주 지워졌다.
한편 정반대로 친근한 관계인 구단도 있는데 바로 SS 라치오다. Inter-Lazio-nale라고 하면서 각 구단의 울트라들 끼리는 꽤나 친밀한 편이다.
14. 응원가[편집]
14.1. C'è solo l'Inter[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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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Pazza Inter Amala[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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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를 대표하는 응원가 중 하나이며 인테르 자체를 상징하는 응원가다. 홈경기에서 킥오프 전에 울려퍼지는 응원가였으나 아쉽게도 2019/20시즌부터는 재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2022/2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FC 바르셀로나가 인테르에 밀려 떨어지자 스페인 축구 기자 후안마 로드리게스[39]가 자국의 축구 예능 방송 엘 치링기토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언급됐다.
참고로 노래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선수들이다. 2006년즈음 녹음한 것과 06/07시즌 우승 이후 녹음한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두 버전 모두 시작부 솔로잉은 바로 하비에르 사네티의 목소리이다.
14.3. Cuore Nerazzurro[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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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를 대표하는 응원가 중 하나로 1984년 이 카말레온티(i Camaleonti)의 헌정곡이다.
15. 여담[편집]
15.1. 레알 마드리드와의 관계[편집]
인테리스타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구단은 다름 아닌 레알 마드리드였다. 일명 '믿고 쓰는 레알산(믿쓰레)', '우리 친구' 등의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 유독 레알에서 부진했던 선수를 인테르가 영입하면 클럽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멋진 활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트레블의 주역 웨슬리 스네이더, 왈테르 사무엘,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레알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인테르에서 부활한 선수들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르 팬들 중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꽤 많았고, 레알 마드리드 팬덤에서도 인테르가 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르셀로나를 꺾은 바 있기 때문에 인테르의 이미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루카 모드리치 이적설로 두 구단 사이는 틀어지게 됐다.
모드리치의 에이전트가 인테르에게 먼저 모드리치에게는 자유 계약으로 풀릴 수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테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이었던 모드리치를 순순히 내줄 리가 없으니 일단 기다리면서 AS 모나코로부터 케이타 발데를 임대해 오는 것에 주력했다. 그리고 모드리치에게는 훈련에 무단 불참하면서 구단에 대들며 태업하게 유도하지도 않았다. 모드리치 본인도 일단 자신은 프로답게 전 팀과 좋게 이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 임대, 후 이적으로 하려고 했던 건 보상금 명목이었다. 당시 인테르가 FFP 징계를 받고 있던 게 가장 컸다.
모드리치와 에이전트 사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인테르를 불법적인 사전 접촉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 그리고 FIFA는 인테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하여 사건은 일단락됐다. #
그래도 이후 아슈라프 하키미를 비교적 싸게 인테르에 내주는 모습을 볼 때, 구단 간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그냥 단순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다.[40]
반면 마드리드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는 은근한 앙숙 관계에 있다. 인테르의 트레블 시즌인 09/10 시즌 당시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올라갔는데,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바르셀로나 선수단이 육로로 밀라노까지 원정을 와서 패배하고, 캄 노우에서는 세자르의 선방쇼 끝에 비기자 무리뉴가 필드 위에 있음에도 스프링클러를 틀어버린 일화가 있었다. 이후 잠잠하다가 당시 바르샤의 주전이었던 사비 에르난데스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만난 22-2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난타전 끝에 인테르가 1승 1무로 결정적인 우위를 가져 바르샤를 누르고 16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사비의 온갖 언플로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
2024-25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마드리드는 아스날에게 합산 스코어 5:1로 굴욕을 당했고 인테르는 4강에서 바르사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드리드 팬들은 인테르를 응원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인테르 공식 인스타 계정의 팔로워가 1300만 정도에서 1400만으로 대폭 늘었다.
모드리치의 에이전트가 인테르에게 먼저 모드리치에게는 자유 계약으로 풀릴 수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테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이었던 모드리치를 순순히 내줄 리가 없으니 일단 기다리면서 AS 모나코로부터 케이타 발데를 임대해 오는 것에 주력했다. 그리고 모드리치에게는 훈련에 무단 불참하면서 구단에 대들며 태업하게 유도하지도 않았다. 모드리치 본인도 일단 자신은 프로답게 전 팀과 좋게 이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 임대, 후 이적으로 하려고 했던 건 보상금 명목이었다. 당시 인테르가 FFP 징계를 받고 있던 게 가장 컸다.
모드리치와 에이전트 사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인테르를 불법적인 사전 접촉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 그리고 FIFA는 인테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하여 사건은 일단락됐다. #
그래도 이후 아슈라프 하키미를 비교적 싸게 인테르에 내주는 모습을 볼 때, 구단 간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그냥 단순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다.[40]
반면 마드리드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는 은근한 앙숙 관계에 있다. 인테르의 트레블 시즌인 09/10 시즌 당시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올라갔는데,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바르셀로나 선수단이 육로로 밀라노까지 원정을 와서 패배하고, 캄 노우에서는 세자르의 선방쇼 끝에 비기자 무리뉴가 필드 위에 있음에도 스프링클러를 틀어버린 일화가 있었다. 이후 잠잠하다가 당시 바르샤의 주전이었던 사비 에르난데스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만난 22-2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난타전 끝에 인테르가 1승 1무로 결정적인 우위를 가져 바르샤를 누르고 16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사비의 온갖 언플로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
2024-25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마드리드는 아스날에게 합산 스코어 5:1로 굴욕을 당했고 인테르는 4강에서 바르사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드리드 팬들은 인테르를 응원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인테르 공식 인스타 계정의 팔로워가 1300만 정도에서 1400만으로 대폭 늘었다.
15.2. AC 밀란과의 맞트레이드 건[편집]
15.3. 팬 사이트[편집]
15.4. 든든한 최후방과 최전방의 팀[편집]
골키퍼와 스트라이커 걱정을 하지 않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골키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발테르 쳉가 이후 잔루카 팔리우카, 세바스티앵 프레이를 거쳐 프란체스코 톨도-줄리우 세자르-사미르 한다노비치-안드레 오나나-얀 조머까지 잡음 없이 부드럽게 세대 교체가 이어졌고 모두 다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었다.[42]
골키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발테르 쳉가 이후 잔루카 팔리우카, 세바스티앵 프레이를 거쳐 프란체스코 톨도-줄리우 세자르-사미르 한다노비치-안드레 오나나-얀 조머까지 잡음 없이 부드럽게 세대 교체가 이어졌고 모두 다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었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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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스트라이커 및 최전방 공격수들 역시 화려해서, 1990년대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알바로 레코바,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아드리아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디에고 밀리토, 사무엘 에투,
15.5. 인테르의 천적[편집]
인테르는 세리에 역사를 통틀어서도 3손가락 안에 드는 강팀이었지만, 유독 몇몇 팀에 발목을 자주 잡혀 왔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대표적인 구단으로는 US 사수올로 칼초, 볼로냐 FC 1909가 있다.
사수올로는 2010년대 돌풍을 일으키며 중위권에 자리잡았는데, 특히 2014-15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총 10경기 2승 1무 7패로 엄청나게 약했다. 당시는 인테르에 있어서 암흑기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팀 체급상 이정도의 상성이 잡힐 정도는 아니었으나 불가사의하게 약했다. 2020년대 들어서 인테르가 다시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올라가면서 사수올로 공포증을 떨쳐냈으나, 22-23 시즌 및 23-24 시즌에도 각 1패, 2패씩을 적립했다. 23-24 시즌은 인테르의 20번째 스쿠데토 시즌이자 승점 100점을 노릴만한 성적이었음에도 리그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그것도 더블을 허용한 팀이 바로 사수올로다.[44]
볼로냐는 2020년대 들어서 중요한 때에 발목잡히는 관계에 있다. 특히 인테르의 레전드이기도 한 티아고 모타 감독이 볼로냐에 부임한 이후로 고전 중이다. 대표적인 경기는 2021-22 시즌 20R 볼로냐 원정인데, 시모네 인자기 감독이 대책없이 주전 골리 사미르 한다노비치 대신 이오누츠 라두를 출전시켰다가 결정적인 실책으로 1:2 패배를 적립했다. 마지막 5경기가 남은 상태에서 라이벌 AC 밀란에 근소하게 앞서 있었는데, 위 패배로 밀란에게 리그 우승 기회를 내주었다. 23-24 시즌에도 8R 경기에서 2:2 무승부로 초반부 선두 경쟁에서 내려와야만 했고, 심지어 코파에서는 볼로냐에게 1:2로 져서 16강에서 탈락하여 코파 3연패 기회를 놓쳤다. 사수올로에게는 꾸준히 약했다면, 볼로냐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에 약한 편.
사수올로는 2010년대 돌풍을 일으키며 중위권에 자리잡았는데, 특히 2014-15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총 10경기 2승 1무 7패로 엄청나게 약했다. 당시는 인테르에 있어서 암흑기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팀 체급상 이정도의 상성이 잡힐 정도는 아니었으나 불가사의하게 약했다. 2020년대 들어서 인테르가 다시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올라가면서 사수올로 공포증을 떨쳐냈으나, 22-23 시즌 및 23-24 시즌에도 각 1패, 2패씩을 적립했다. 23-24 시즌은 인테르의 20번째 스쿠데토 시즌이자 승점 100점을 노릴만한 성적이었음에도 리그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그것도 더블을 허용한 팀이 바로 사수올로다.[44]
볼로냐는 2020년대 들어서 중요한 때에 발목잡히는 관계에 있다. 특히 인테르의 레전드이기도 한 티아고 모타 감독이 볼로냐에 부임한 이후로 고전 중이다. 대표적인 경기는 2021-22 시즌 20R 볼로냐 원정인데, 시모네 인자기 감독이 대책없이 주전 골리 사미르 한다노비치 대신 이오누츠 라두를 출전시켰다가 결정적인 실책으로 1:2 패배를 적립했다. 마지막 5경기가 남은 상태에서 라이벌 AC 밀란에 근소하게 앞서 있었는데, 위 패배로 밀란에게 리그 우승 기회를 내주었다. 23-24 시즌에도 8R 경기에서 2:2 무승부로 초반부 선두 경쟁에서 내려와야만 했고, 심지어 코파에서는 볼로냐에게 1:2로 져서 16강에서 탈락하여 코파 3연패 기회를 놓쳤다. 사수올로에게는 꾸준히 약했다면, 볼로냐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에 약한 편.
15.6. 여담[편집]
- 2024년 7월 1일부로 코나미와 독점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여 EA스포츠의 EA SPORTS FC™ 25부터는 "롬바르디아 FC"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 축구 만화 및 게임인 캡틴 츠바사 시리즈에 나오는 브라질의 에이스급 에우조 겔티스가 이 팀의 골키퍼로 소속되어 있으며 이명은 "키퍼 머신" 으로 불린다. 전 일본 팀과 결승전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하며 프랑스 유스 팀의 나폴레옹 & 피에르 콤비의 슬라이더 캐논도 막아내어 3:0 으로 브라질의 승리로 이끌어내었다. 필살 세이브 기술인 다크 일루전은 말 그대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다가 공을 손 쉽게 막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츠바사의 사이클론이 아니면 골을 얻기에도 벅찬 상대이다.
16.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17. 둘러보기[편집]
[1] 이탈리아어로 검정-파랑(Nero-Azzurri). 아탈란타 BC도 사용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인테르가 유명하다.[2] 밀라노 방언으로 '사랑스러운 존재'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스포츠 기자 잔니 브레라가 붙인 애칭이다.[3] 이탈리아어로 '큰 뱀'을 일컫는다. 중세에 밀라노 및 롬바르디아 지역 전체를 통치했던 비스콘티 가문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밀라노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 같은 의미로 세르펜테(Serpente)라고 부르기도 한다.[4] 롬바르디아 방언으로 '허풍쟁이'라는 뜻이다.[5] #, #, #[6] 투자자들에게는 하워드 막스의 회사로 유명한 곳이다. 기존 소유주였던 쑤닝그룹이 2021년 5월에 차입한 3억 7,500만 유로를 만기에 상환하지 못하면서, 2024년 5월부로 소유권이 넘어갔다.#[7] 원래 인테르의 단장 출신이었으나, 오크트리로 소유권이 넘어간 이후 회장 지위에 올랐다.#[8] 인테르에서 영구 결번까지 지정된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자신이 뛴 대표 구단의 최고 위원까지 오른 인물.[9] 인테르의 공식 서포터즈인 Inter Club Korea 카페도 겸하고있다.[10] 세리에 A를 10회 이상 우승한 클럽은 엠블럼 위에 금별을 달 수 있으며, 거기서 10회 더 우승할 때마다 별도 하나씩 추가된다. 현재 세리에 A에서 금별을 달고 있는 클럽은 인테르를 포함해, 유벤투스(3개), AC 밀란(1개)까지 총 3팀밖에 없다.[11] 원래는 유벤투스가 우승팀이었지만 칼초폴리 스캔들로 우승을 박탈당했고 순위를 다시 재어 보니 인테르가 공식 우승팀이 되었다.[12] 세리에 A는 리그는 물론 코파 이탈리아에서 10번 우승한 팀에게도 유니폼에 별을 달아 주는데(리그는 금색, 코파는 은색) 인테르는 한 번 더 우승할 시 금별, 은별 모두 해당되는 두 번째 팀이자, 두 번째로 은별을 다는 팀이 된다. 참고로 현재 유벤투스만이 금별, 은별 모두 해당된다.[13] 한화로 약 1180억[14] 한화로 약 1650억[15] 세리에 A 우승 횟수는 유벤투스에 이어 2위이며, 챔스 우승 횟수는 AC 밀란에 이어 2위이다.[16] 물론 주세페 메아차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주세페 메아차가 말년에 AC 밀란에서도 뛰었기 때문이다.[1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라는 이름이 매우 기므로 보통 인터 밀란 혹은 인테르 밀란으로 불리거나 더 줄여서 인테르라고도 부른다.[18] 이탈리아어로 Internazionale는 '국제'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여담으로 09-10 시즌 인테르의 베스트 11에 지목된 선수들이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출신만 무려 8명에 육박했고 그중 이탈리아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19]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는 1988년 시작[20] 아르헨티나-이탈리아 복수국적자로, 아르헨티나 및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뛰었다.[21] 경기장 관중석 대비 관중 동원률은 유벤투스가 압도적이지만, 두 팀 경기장의 관중 동원력이 3만 명 이상 차이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22] 2018-19 기준 1위 도르트문트 80,820명, 2위 바르샤 75,208명, 3위 뮌헨 75,000명, 4위 맨유 74,498명, 6위 레알 60,967명.[23] 이탈리아 내에선 AC 밀란이 7위에 오르며 정상을 지켰다.[24] 1위 도르트문트 81,365명, 2위 뮌헨 75,000명, 3위 인테르 73,555명, 4위 맨유 73,459명, 5위 밀란 72,362명, 6위 레알 68,588명[25] 인테르 소속 선수들 내지 보드진, 스태프진도 이렇게 불리곤 한다. 인테리스티는 인테리스타의 복수형이다.[26] 반면 AC 밀란의 팬들은 남쪽에 앉으므로 쿠르바 수드(Curva Sud)라고 불린다.[27] 현 인테르 소속 선수 중에서 페데리코 디마르코가 쿠르바 노드 출신으로 유명하다.[28] 선천성 시각장애인이지만 음악과 축구를 아주 좋아하며, 특히 축구의 경우 혼자 직관도 간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인테르 선수들을 만나는 쇼츠들로 유명하다. 집에서 촬영하는 경우 자기 아버지가 함께 나오기도 하며, 틱톡 기준 약 1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다른 팀 선수들도 만날 때가 있으며, 인테르와 사이가 나쁜 유벤투스의 잔루이지 부폰과 조르조 키엘리니와도 만난 적이 있다.[29] 인테르의 레전드인 하비에르 사네티와도 친하다고 하며, 선수들이 훈련중인 훈련장에서 깜짝 공연을 한 적도 있다![30] 그의 1991년 히트곡 하늘을 향해 소리쳐(Urlando Contro il Cielo)는 득점 음악으로 쓰인다.득점 편곡[31] 2023년 챔피언스리그 4강이 밀라노 데르비로 확정되자 그간 인테르가 유럽 대항전에서 밀란에게 물만 먹었던 과거를 언급하며 이번에도 그리 되면 어쩌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우려와는 달리 인테르는 밀란을 이기고 결승전까지 진출.[32] 똑같이 맥스라는 애칭을 쓰는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와는 달리 이 사람의 본명은 마시모다.[33] 이 때 본인의 너무 잦은 부상으로 한몫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 시기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표하곤 한다.[34] 정작 인테르에서 뛸 때는 유벤투스에게 몰래 역제의를 한 것이 드러나 질타를 받기도 했다.[35]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인테리스타이다.[36]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고상아로 유명한 배우이다.[37] 골때녀에서 인테르 팬임을 밝혔으나 아직 본인의 SNS에서는 인테르를 팔로우하고 있지 않다.[38] 인테르가 전성기일 당시 부회장.[39] 당연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담당이다. 이런 그의 모습에 싫은 티를 팍팍 내는 바르셀로나 측 패널들의 모습이 백미.[40] 그리고 브라힘 디아스가 맨체스터 시티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상황만 봐도 페레스의 레알은 타 구단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페레스의 레알조차도 사이가 안 좋은 구단이 있는데 발렌시아 CF와 파리 생제르맹 FC이다. 발렌시아는 페레스 이전 미야토비치 사가와 최근의 비니시우스 인종차별 건으로 인해, PSG는 음바페 이적 사가로 인해 갈등이 있다.[41] 인테르의 트레이드 성적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96년도에는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이반 사모라노 영입을 위해 호베르투 카를루스에 현금까지 얹어줬고, 04년도에는 유벤투스에 낚여 파비오 칸나바로를 카리니, 돈과 맞바꾸고, 08년에는 히카르두 콰레스마를 업어오기 위해서 비토르 우구 고메스 파소스(펠레)에 약 2,000만 유로를 얹어줬다.[42] 단, 조머는 오나나보다는 사실상 한다노비치 세대에 가까운 선수지만 재정상 이유로 1시즌만에 오나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입단하자마자 조머 또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43] 이 둘은 실력과는 별개로 인성에 문제가 있는 편이었다. 전자는 자신의 아내이자 문제아인 완다 이카르디 때문에 생긴 문제들을 자기와 관련이 될 게 아니라며 방관하면서 팀 자체의 팀워크를 악화하였고, 후자는 첼시에서 언해피할 당시에 인테르 복귀가 아닌 극한의 라이벌리를 느끼는 유벤투스 FC와의 이적 문제 때문에 배신자라고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둘의 경우에는 실력과는 별개로 인테리스타들에게는 발작을 일으키는 금지어가 되었다.[44] 심지어 23-24 시즌 사수올로는 잘한 것도 아니고 19위로 강등당했다. 강등팀에게 우승팀이 2번이나 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