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표도로비치 로마노프에서 넘어옴
제호 | 표트르 3세 |
본명 | 독일어: 카를 페터 울리히 (Karl Peter Ulrich) |
러시아어: 표트르 표도로비치 로마노프 | |
재위 |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1739년 ~ 1762년 |
전러시아의 황제: 1762년 | |
생몰년 | 1728년 ~ 176년 |
가문 | |
아버지 |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 |
어머니 | 안나 페트로브나 여대공 |
1. 개요
1. 개요[편집]
러시아 제국의 제7대 황제이자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황제.
본래 부계 혈통상으로는 독일계 가문인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 출신으로, 본명부터가 카를 페터 울리히라는 독일식 이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노프 왕조의 부계 혈통이 단절된 덕분에 러시아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다.
정작 그렇게 황제가 된 뒤에는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시절 자신을 도와준 은인인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에게 진 개인적인 빚을 갚는답시고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7년 전쟁에서 어떠한 이득도 없는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물러나는 등의 실정을 거듭했고, 이로 인해 재위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황후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폐위당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는데, 그와 예카테리나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파벨 1세가 제위를 물려받았기에 본인은 일찍 폐위당하고 죽었음에도 그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러시아 제위를 세습하게 되었다.
본래 부계 혈통상으로는 독일계 가문인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 출신으로, 본명부터가 카를 페터 울리히라는 독일식 이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노프 왕조의 부계 혈통이 단절된 덕분에 러시아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다.
정작 그렇게 황제가 된 뒤에는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시절 자신을 도와준 은인인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에게 진 개인적인 빚을 갚는답시고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7년 전쟁에서 어떠한 이득도 없는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물러나는 등의 실정을 거듭했고, 이로 인해 재위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황후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폐위당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는데, 그와 예카테리나 2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파벨 1세가 제위를 물려받았기에 본인은 일찍 폐위당하고 죽었음에도 그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러시아 제위를 세습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