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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건국 신화2.2. 초기2.3. 기독교화2.4. 남아라비아 정복2.5. 이슬람의 등장과 악숨의 쇠퇴2.6. 구디트와의 전쟁과 멸망2.7. 멸망 이후
3. 정치
3.1. 군주
4. 영토5. 인문 환경
5.1. 민족과 언어5.2. 종교
6. 대외 관계
6.1. 쿠시 왕국 등 누비아 문명과의 관계6.2. 로마 제국과의 관계6.3. 아랍 국가 및 부족들과의 관계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0세기경까지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지방의 도시 악숨을 중심으로 하여 존속했던 국가.

전성기에는 에리트레아아라비아 반도 남부까지 지배한 강국이었으며, 3세기 페르시아(이란)의 종교인 마니[1]는 악숨을 로마, 이란(사산 제국), 중국과 함께 세계 4대 강국으로 평가하기도 했다.[2]

그러나 7세기 이슬람 제국의 아라비아 통일 이후에는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에리트레아마저 상실하고 내륙국으로 쪼그라들었고, 10세기경에 이르러 베타 이스라엘(에티오피아 유대인) 국가인 시미엔 왕국의 구디트 여왕에게 정복당하며 멸망했다.

2. 역사[편집]

2.1. 건국 신화[편집]

기원전 10세기경 이스라엘 왕국을 방문한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렇게 태어난 메넬리크 1세가 장성하여 언약궤를 받아 에티오피아 땅에 세운 나라가 바로 악숨 왕국이라 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기원전 3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악숨 왕국이라 할 수 있는 정치 집단이 등장했기에, 이는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13세기 이후 솔로몬 왕조의 에티오피아 제국이 정통성 강화를 위해 만들어낸 신화에 가깝다.

2.2. 초기[편집]

기원전 3세기경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등장한 악숨 왕국은 지금의 수단 공화국 일대에 위치한 쿠시 왕국을 압박하며 국력을 키우고, 인도양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기원전 1세기부터는 로마 제국과 국교를 맺었는데 로마의 인도 무역에 있어서 악숨은 로마의 파트너로서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2.3. 기독교화[편집]

로마 제국 치하의 유대(이스라엘) 지방에서 등장한 기독교는 악숨 왕국에도 전파되었는데, 4세기경 악숨의 에자나(Ezana) 왕은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380년 테살로니카 칙령)보다도 이른 시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악숨 교회[3]는 로마의 국교인 칼케돈파[4] 대신 로마령 이집트에서 크게 교세를 떨치던 합성론파(오리엔트 정교회) 신학을 받아들였는데, 이 때문에 두 나라는 같은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종파는 달라지게 되었다.

2.4. 남아라비아 정복[편집]

6세기 동로마 제국유스티니아누스 1세아라비아 반도 동남부 예멘에 위치한 유대교 국가 힘야르 왕국이 사산조 페르시아에 붙을까 우려하여 악숨으로 하여금 힘야르를 정벌하게 했다.

그리하여 악숨은 예멘을 비롯한 아라비아 동남부 일대를 정복하여 최대 강역을 확보했고, 그 여세를 몰아 아라비아 중부의 메카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다만 악숨의 메카 정복은 현지의 주류 부족인 쿠라이시족(바누 쿠라이시)의 완강한 저항에 가로막혀 실패했고, 악숨 군대가 메카에서 물러난 바로 그 해에 태어난 인물이 바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였다.

2.5. 이슬람의 등장과 악숨의 쇠퇴[편집]

7세기경 무함마드가 세운 이슬람 제국아라비아를 통일하면서 악숨은 남아라비아 영토를 상실했고, 뒤이어 해안 영토인 에리트레아 일대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며 악숨은 지금의 에티오피아 고원 일부만을 보유한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2.6. 구디트와의 전쟁과 멸망[편집]

말기 악숨 왕국은 베타 이스라엘(에티오피아 유대인) 국가인 시미엔 왕국과의 전쟁에서 열세에 몰렸고, 결국 10세기경 시미엔 왕국의 구디트 여왕에게 정복당하며 멸망했다.

2.7. 멸망 이후[편집]

구디트 여왕과 그 뒤를 이은 시미엔 왕국 군주들이 지배하에 악숨의 기독교 신앙은 탄압받고 유대교가 강요되는 등 에티오피아는 암흑기에 접어들었는데, 이는 12세기경 마지막 악숨 국왕 딜 나오드의 사위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마라 타클라 하이마노트가 자그웨 왕조를 세우면서 종식되었다.

그리고 13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자그웨 왕조보다 한술 더떠서 악숨 왕실의 부계 혈통을 계승했다 주장하는 예쿠노 암라크가 등장하여 에티오피아 제국을 세웠는데, 에티오피아 황실인 솔로몬 왕조가 실제 악숨 왕실의 후예가 맞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1974년 쿠데타로 인한 제정 폐지 이전까지는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3. 정치[편집]

3.1. 군주[편집]

악숨의 군주는 느구스()을 칭하며 통치했으며, 에티오피아식 황제 칭호 '느구서 너거스트(왕중왕)은 12세기 자그웨 왕조 시대부터 등장했다.

4. 영토[편집]

5. 인문 환경[편집]

5.1. 민족과 언어[편집]

악숨 왕국의 주류 민족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 남셈어군에 속하는 그으즈어를 사용하는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악숨 왕국이 멸망힌 이후 암하라어를 사용하는 암하라인과 티그리냐어를 사용하는 티그리냐인과 티그라이인, 티그레어를 사용하는 티그레인 등으로 분화되었다.

5.2. 종교[편집]

초기에는 고유의 에티오피아 다신교를 믿었으나 4세기 이후부터 기독교(에티오피아 터와흐도 정교회) 국가가 되었다.

6. 대외 관계[편집]

6.1. 쿠시 왕국 등 누비아 문명과의 관계[편집]

쿠시 왕국과 그 뒤를 이은 마쿠리아 왕국 등 누비아 문명권 국가들은 악숨 건국 직후부터 라이벌이었다.

6.2. 로마 제국[5]과의 관계[편집]

6.3. 아랍 국가 및 부족들과의 관계[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 마니교의 창시자.[2] 다만 당시 중국은 위진남북조시대라는 분열기라서 하나의 통일제국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당대 페르시아인으로서 가진 지식에만 의존한 평가임을 감안해야 한다.[3] 지금의 에티오피아 터와흐도 정교회.[4] 동서 대분열 이전의 가톨릭정교회.[5] 동로마 제국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