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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역사[편집]
2.1. 테오도시우스 왕조[편집]
2.1.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사망과 동서 분할[편집]
2.1.2. 호노리우스[편집]
2.1.3. 호노리우스 사망 직후의 혼란[편집]
2.1.4. 발렌티니아누스 3세[편집]
2.2. 최후의 순간[편집]
2.2.1.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편집]
2.2.2. 권신 리키메르[편집]
2.2.3. 권신 군도바두스(군도바트)[편집]
2.2.4. 율리우스 네포스[편집]
2.2.5.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와 제국의 멸망[편집]
2.3. 멸망 이후[편집]
2.3.1. 구 서로마 세력의 부흥운동[편집]
2.3.1.1. 율리우스 네포스[편집]
2.3.1.2. 시아그리우스의 수아송 왕국[편집]
2.3.1.3. 무어-로마 왕국[편집]
로마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들이 세운 여러 국가 또는 정치 집단을 총칭한다.
이들은 서로마의 북아프리카 영토를 재패한 반달 왕국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갔고, 동로마 제국의 고토 수복에도 협력하여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나, 지방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동로마 중앙정부와 대립하다가 강제 합병되었다.
이들은 서로마의 북아프리카 영토를 재패한 반달 왕국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갔고, 동로마 제국의 고토 수복에도 협력하여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나, 지방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동로마 중앙정부와 대립하다가 강제 합병되었다.
2.3.2. 동로마 제국의 고토 수복 운동[편집]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동로마 제국은 본격적인 국토 수복을 진행하여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정벌하고, 그 여세를 몰아 동고트 왕국 치하의 이탈리아와 서고트 왕국 치하의 이베리아 남부까지 수복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역병으로 인해 이탈리아 수복 과정이 2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쏟아부으며 고전했고,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이탈리아 영토는 랑고바르드족의 남하로, 이베리아 남부 영토는 서고트 왕국의 반격으로, 북아프리카 영토는 이슬람 제국의 팽창으로 인해 대부분 상실했다.
이에 동로마 정부는 남은 이탈리아 영토를 라벤나 총독부로 재편하며 방어선을 유지하려 했으나 그나마도 751년 라벤나 함락으로 실패했고, 남이탈리아 영토만이 1071년까지 제국령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역병으로 인해 이탈리아 수복 과정이 2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쏟아부으며 고전했고,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이탈리아 영토는 랑고바르드족의 남하로, 이베리아 남부 영토는 서고트 왕국의 반격으로, 북아프리카 영토는 이슬람 제국의 팽창으로 인해 대부분 상실했다.
이에 동로마 정부는 남은 이탈리아 영토를 라벤나 총독부로 재편하며 방어선을 유지하려 했으나 그나마도 751년 라벤나 함락으로 실패했고, 남이탈리아 영토만이 1071년까지 제국령으로 남아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