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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명칭[편집]
로마노프(Romanov)라는 가문명은 로만(Roman)이라는 인물의 자손을 의미하는데, 일단 족보상 시조는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코빌라라는 인물이라 처음부터 로마노프라는 성씨를 쓰던 건 아니지만, 로만 유리예비치 자하린-코시킨의 손자이자 니키타 로마노비치 자하린-유리예프의 아들인 표도르 니키티치 로마노프 대부터 로마노프를 성으로 쓰기 시작하고, 표도르의 아들인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차르 미하일 1세로 즉위하면서 로마노프라는 성씨로 고정되었다.
미하일 1세 시대부터 루스 차르 및 러시아 황제위를 세습하던 로마노프 가문의 본가는 1762년 옐리자베타 여제가 사망하면서 단절되어, 모계로만 로마노프 혈통을 물려받고 부계 혈통상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에 해당되는 인물인 표트르 3세가 즉위하면서 정식 명칭이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Hostein-Gottorp-Romanov) 가문으로 바뀌었는데, 이후에도 홀슈타인-고토르프는 생략하고 그냥 로마노프라고만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표트르 3세 시대부터 이어진 지금의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 역시 그냥 로마노프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미하일 1세 시대부터 루스 차르 및 러시아 황제위를 세습하던 로마노프 가문의 본가는 1762년 옐리자베타 여제가 사망하면서 단절되어, 모계로만 로마노프 혈통을 물려받고 부계 혈통상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에 해당되는 인물인 표트르 3세가 즉위하면서 정식 명칭이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Hostein-Gottorp-Romanov) 가문으로 바뀌었는데, 이후에도 홀슈타인-고토르프는 생략하고 그냥 로마노프라고만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표트르 3세 시대부터 이어진 지금의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가문 역시 그냥 로마노프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3. 역사[편집]
3.1. 로마노프 본가[편집]
3.1.1. 황위 계승 이전[편집]
로마노프 가문의 시조인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코빌라는 본래 독일 올덴부르크의 귀족 출신으로, 14세기경 독일 기사단국(프로이센)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이를 그대로 믿을 경우 로마노프 가문은 혈통상 독일계 러시아인이라 할 수 있지만, 해당 인물에 대한 당대 기록이 전무하고 교차검증할 다른 사료도 딱히 없기 때문에 족보상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안드레이 코빌라의 자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성씨를 여러 차례 바꾸었는데, 로만 유리예비치 자하린-코시킨의 딸인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가 루스 차르 이반 4세의 황후(차리차)가 되어 차르 표도르 1세를 낳으면서 로마노프 가문은 루스 차르국 황실인 류리크 왕조의 외척이 되었고, 이는 로만 유리예비치의 증손자인 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가 류리크 왕조 단절 이후 차르로 추대되는데 중요한 명분으로 작용했다.
이를 그대로 믿을 경우 로마노프 가문은 혈통상 독일계 러시아인이라 할 수 있지만, 해당 인물에 대한 당대 기록이 전무하고 교차검증할 다른 사료도 딱히 없기 때문에 족보상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안드레이 코빌라의 자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성씨를 여러 차례 바꾸었는데, 로만 유리예비치 자하린-코시킨의 딸인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가 루스 차르 이반 4세의 황후(차리차)가 되어 차르 표도르 1세를 낳으면서 로마노프 가문은 루스 차르국 황실인 류리크 왕조의 외척이 되었고, 이는 로만 유리예비치의 증손자인 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가 류리크 왕조 단절 이후 차르로 추대되는데 중요한 명분으로 작용했다.
3.1.2. 로마노프 왕조(1613~1762)[편집]
류리크 왕조 단절 이후 벌어진 동란시대라는 난세를 수습하기 위해 소집된 젬스키 소보르(전국회의)에서 외척인 로마노프 가문의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17세의 어린 나이에 차르 미하일 1세로 추대되면서 황실로서의 로마노프 왕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하일 1세의 손자인 표트르 1세의 시대에 로마노프 왕조 치하 루스 차르국은 내정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이루고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고, 1721년에 이르러 라틴어 황제 칭호인 임페라토르를 도입하여 전러시아의 황제(임페라토르)를 칭함으로써 러시아 제국을 선포했다.
미하일 1세의 손자인 표트르 1세의 시대에 로마노프 왕조 치하 루스 차르국은 내정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이루고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하며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고, 1721년에 이르러 라틴어 황제 칭호인 임페라토르를 도입하여 전러시아의 황제(임페라토르)를 칭함으로써 러시아 제국을 선포했다.
3.2. 홀슈타인-고토로프-로마노프 가문[편집]
3.2.1.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1762~1917)[편집]
1762년 옐리자베타 여제의 사망을 끝으로 로마노프 본가가 단절되자,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수장이면서 표트르 1세의 외손자인 카를 페터 울리히가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로 즉위하면서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었다.
표트르 3세는 자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던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하나만으로 어떠한 이득도 없는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물러나는 등 실정을 거듭하다 민심을 잃어 폐위되었고, 그의 황후인 예카테리나 2세가 제위에 올랐으나, 예카테리나 2세 사후의 황제위는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 부부의 아들인 파벨 1세가 물려받았기에 부계 혈통상으로는 표트르 3세를 시조로 하는 왕조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전 니콜라이 2세 시대까지 이어졌다.
표트르 3세는 자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던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 하나만으로 어떠한 이득도 없는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물러나는 등 실정을 거듭하다 민심을 잃어 폐위되었고, 그의 황후인 예카테리나 2세가 제위에 올랐으나, 예카테리나 2세 사후의 황제위는 표트르 3세와 예카테리나 2세 부부의 아들인 파벨 1세가 물려받았기에 부계 혈통상으로는 표트르 3세를 시조로 하는 왕조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전 니콜라이 2세 시대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