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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제임스 K. 포크

1. 개요2. 생애
2.1. 초기2.2. 정치 입문2.3. 1844년 대통령 선거2.4. 대통령 재임기
2.4.1. 취임과 공약
2.5. 영토 확장
2.5.1. 오레건 협정2.5.2. 미국-멕시코 전쟁2.5.3. 영토 확장의 의미
2.6. 국내 정책
2.6.1. 워커 관세법2.6.2. 독립 재무부 제도2.6.3. 스미소니언 박물관
2.7. 정치적 갈등
2.7.1. 노예제 문제2.7.2. 당내 갈등
2.8. 퇴임 후

1. 개요[편집]

제임스 K. 포크의 생애를 서술한 문서.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1795년 11월 2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메클렌버그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 새뮤얼 포크는 농장주였다.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17세에 담석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마취가 없던 시절이라 브랜디만 마시고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건강이 회복되었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1818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테네시주로 이주하여 법률을 공부했고, 1820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2. 정치 입문[편집]

1823년 테네시 주 하원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825년에는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4년간 재직했다.

하원에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했으며, 1835년부터 1839년까지 하원의장을 역임했다. 당시 잭슨의 제2차 미국 은행 반대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1839년 테네시 주지사로 당선되었으나, 1841년과 1843년 재선 도전에서 모두 패배했다.

2.3. 1844년 대통령 선거[편집]

민주당은 1844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틴 밴 뷰런을 후보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텍사스 병합 문제로 당내 갈등이 발생했다. 밴 뷰런이 텍사스 병합에 반대하자 남부 주들이 반발했고, 결국 포크가 타협 후보로 지명되었다.

포크는 최초의 "다크 호스(Dark Horse)" 후보로 불렸다. 유력 후보가 아니었던 인물이 갑자기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이 용어는 이후 정치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되었다.

선거에서 휘그당헨리 클레이를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포크는 "54-40 or Fight!(54도 40분 아니면 전쟁!)"라는 구호로 오레건 영토 전체를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2.4. 대통령 재임기[편집]

2.4.1. 취임과 공약[편집]

포크는 취임 연설에서 네 가지 주요 목표를 제시했다.
1. 관세 인하
2. 독립 재무부 설립
3. 오레건 영토 문제 해결
4. 캘리포니아 획득

놀랍게도 포크는 4년 임기 동안 이 네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미국 역사상 공약을 완전히 이행한 몇 안 되는 대통령 중 한 명이다.

2.5. 영토 확장[편집]

2.5.1. 오레건 협정[편집]

영국과 오레건 영토를 놓고 분쟁이 있었다. 포크는 선거 때 "54-40 or Fight!"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1846년 6월, 영국과 협정을 맺어 북위 49도선을 경계로 오레건 영토를 분할했다. 워싱턴주, 오리건, 아이다호 등이 미국 영토가 되었다.

2.5.2. 미국-멕시코 전쟁[편집]

포크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미국-멕시코 전쟁(1846-1848)이었다.

텍사스 공화국이 1845년 미국에 병합되자 멕시코가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텍사스의 남부 경계선을 놓고 분쟁이 발생했다. 멕시코는 누에세스 강을 경계로 주장했고,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경계로 주장했다.

포크는 재커리 테일러 장군에게 분쟁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도록 명령했다. 1846년 4월, 멕시코군과 미군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고, 포크는 의회에 전쟁을 선포할 것을 요청했다.

전쟁은 미국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윈필드 스콧 장군이 멕시코시티를 점령했고,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다음 영토를 획득했다.

- 캘리포니아
- 네바다
- 유타주
- 애리조나
- 뉴멕시코
- 콜로라도와이오밍의 일부

미국은 약 1,500만 달러를 멕시코에 지불했다. 이 전쟁으로 미국 영토는 약 130만 평방킬로미터 확대되었다.

2.5.3. 영토 확장의 의미[편집]

포크의 재임기에 미국 영토는 약 3분의 1이 증가했다. 현재 미국 본토의 윤곽이 거의 완성된 것이다. 태평양까지 영토가 확장되면서 미국은 명실상부한 대륙 국가가 되었다.

이를 명백한 운명론이라고 하는데, 미국이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사상이다. 포크는 이 이념을 실현한 대표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2.6. 국내 정책[편집]

2.6.1. 워커 관세법[편집]

1846년 워커 관세법을 통과시켜 관세율을 대폭 낮췄다. 이는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국제 무역을 활성화시켰다.

2.6.2. 독립 재무부 제도[편집]

1846년 독립 재무부법을 통과시켜 연방정부의 재정을 민간 은행이 아닌 정부가 직접 관리하도록 했다. 이는 앤드루 잭슨의 정책 노선을 계승한 것이다.

2.6.3. 스미소니언 박물관[편집]

1846년 스미소니언 협회 설립을 승인했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슨이 미국에 기증한 유산으로 설립된 이 기관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복합체가 되었다.

2.7. 정치적 갈등[편집]

2.7.1. 노예제 문제[편집]

멕시코에서 획득한 광대한 영토에서 노예제를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는 후에 남북전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갈등이었다.

윌모트 단서(Wilmot Proviso)는 멕시코에서 얻은 영토에서 노예제를 금지하자는 제안이었다. 하원에서는 여러 차례 통과되었으나 상원에서 번번이 부결되었다. 포크는 이 제안에 반대했다.

포크 자신도 노예 소유주였으며, 재임 중 노예제 확장을 묵인했다. 이는 후대에 그에 대한 평가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다.

2.7.2. 당내 갈등[편집]

포크는 민주당 내에서도 갈등이 많았다. 특히 차기 대통령 후보를 두고 당내 분열이 심했다. 포크는 처음부터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레임덕 현상이 일찍 나타났다.

2.8. 퇴임 후[편집]

포크는 1849년 3월 4일 임기를 마치고 테네시내슈빌로 돌아갔다. 그는 대통령직 수행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퇴임 후 단 103일 만인 1849년 6월 15일,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콜레라로 추정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퇴임 후 가장 빨리 사망한 대통령이다.

그는 생전에 "나는 대통령직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재임 중 쉬지 않고 일했으며, 4년 동안 휴가를 거의 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