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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배경[편집]
2.1. 노예제 문제[편집]
남북전쟁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남부는 목화 재배를 중심으로 한 플랜테이션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흑인 노예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반면 북부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유 노동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제를 발전시켰다.
2.2. 정치적 갈등[편집]
1850년대 들어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었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의 통과, 드레드 스콧 판결, 존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2.3. 링컨의 당선[편집]
2.4. 전쟁의 발발[편집]
2.4.1. 남부의 분리독립[편집]
2.4.2. 섬터 요새 전투[편집]
2.5. 전쟁의 전개[편집]
2.5.1. 초기 전황 (1861-1862)[편집]
초기에는 남군이 우세했다. 제1차 불런 전투(1861년 7월)에서 남군이 승리하면서 북부는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남군은 로버트 E. 리 장군과 토머스 "스톤월" 잭슨 장군 등 뛰어난 지휘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2.5.2. 전환점들[편집]
2.5.3. 북부의 전략[편집]
북부는 아나콘다 계획이라 불리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는 남부를 해상에서 봉쇄하고 미시시피 강을 장악하여 남부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이었다.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서부 전선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며 미시시피 강을 장악했다.
2.6. 주요 전투[편집]
2.6.1. 게티즈버그 전투[편집]
2.6.2. 빅스버그 포위전[편집]
1863년 5월부터 7월까지 계속된 빅스버그 포위전에서 그랜트 장군이 승리하면서 북군은 미시시피 강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부연합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2.6.3. 셔먼의 바다로의 행군[편집]
2.7. 전쟁의 종결[편집]
2.7.1. 1864년 대선[편집]
1864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이 재선에 성공했다. 초기에는 전쟁 피로감으로 링컨의 재선이 불투명했으나, 셔먼의 애틀랜타 점령 등 군사적 성공이 링컨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2.7.2. 리 장군의 항복[편집]
2.7.3. 링컨의 암살[편집]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며칠 후인 1865년 4월 14일, 링컨은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했다. 이는 재건 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영향[편집]
3.1. 사상자[편집]
남북전쟁은 약 62만 명에서 75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으며, 이는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민간인 사상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3.2. 노예제 폐지[편집]
전쟁의 결과 수정헌법 제13조가 통과되어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약 400만 명의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3.3. 연방주의의 승리[편집]
남북전쟁은 주권 대 연방 권한의 문제를 해결했다. 전쟁의 결과 연방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고, 탈퇴권이 부정되었다.
3.4. 경제적 변화[편집]
전쟁 이후 북부의 산업화가 가속화되었고, 남부는 경제적으로 황폐화되었다. 재건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변모했다.
3.5. 재건 시대[편집]
4. 군사적 측면[편집]
4.1. 기술 혁신[편집]
4.2. 참호전[편집]
특히 전쟁 후반부에는 참호전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