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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
2.1. 노예제 문제2.2. 정치적 갈등2.3. 링컨의 당선2.4. 전쟁의 발발
2.4.1. 남부의 분리독립2.4.2. 섬터 요새 전투
2.5. 전쟁의 전개
2.5.1. 초기 전황 (1861-1862)2.5.2. 전환점들2.5.3. 북부의 전략
2.6. 주요 전투
2.6.1. 게티즈버그 전투2.6.2. 빅스버그 포위전2.6.3. 셔먼의 바다로의 행군
2.7. 전쟁의 종결
2.7.1. 1864년 대선2.7.2. 리 장군의 항복2.7.3. 링컨의 암살
3. 영향
3.1. 사상자3.2. 노예제 폐지3.3. 연방주의의 승리3.4. 경제적 변화3.5. 재건 시대
4. 군사적 측면
4.1. 기술 혁신4.2. 참호전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American Civil War
남북전쟁
미국 내전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내전이다. 북부아메리카 합중국(미합중국)과 남부아메리카 연합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이며 미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2. 배경[편집]

2.1. 노예제 문제[편집]

남북전쟁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남부는 목화 재배를 중심으로 한 플랜테이션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흑인 노예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반면 북부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유 노동을 기반으로 한 경제 체제를 발전시켰다.

2.2. 정치적 갈등[편집]

1850년대 들어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었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의 통과, 드레드 스콧 판결, 존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2.3. 링컨의 당선[편집]

1860년 공화당 후보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 주들은 이를 자신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링컨은 선거 유세 중 노예제의 확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2.4. 전쟁의 발발[편집]

2.4.1. 남부의 분리독립[편집]

링컨의 당선 직후인 1860년 12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남부 주들이 연방에서 탈퇴하기 시작했다. 1861년 2월까지 7개 주가 탈퇴하여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4.2. 섬터 요새 전투[편집]

1861년 4월 12일, 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의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링컨은 즉각 75,000명의 의용군 소집을 명령했고, 이에 4개 주가 추가로 연방에서 탈퇴하여 남부연합에 가담했다.

2.5. 전쟁의 전개[편집]

2.5.1. 초기 전황 (1861-1862)[편집]

초기에는 남군이 우세했다. 제1차 불런 전투(1861년 7월)에서 남군이 승리하면서 북부는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남군은 로버트 E. 리 장군과 토머스 "스톤월" 잭슨 장군 등 뛰어난 지휘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2.5.2. 전환점들[편집]

1862년 앤티텀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였으며, 이 전투 이후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할 수 있었다. 1863년 7월의 게티즈버그 전투는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 전투에서 리 장군의 북부 침공이 저지되면서 남군은 다시는 전략적 공세를 취할 수 없게 되었다.

2.5.3. 북부의 전략[편집]

북부는 아나콘다 계획이라 불리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는 남부를 해상에서 봉쇄하고 미시시피 강을 장악하여 남부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이었다.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서부 전선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며 미시시피 강을 장악했다.

2.6. 주요 전투[편집]

2.6.1. 게티즈버그 전투[편집]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전쟁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약 51,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리 장군의 두 번째 북부 침공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2.6.2. 빅스버그 포위전[편집]

1863년 5월부터 7월까지 계속된 빅스버그 포위전에서 그랜트 장군이 승리하면서 북군은 미시시피 강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부연합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2.6.3. 셔먼의 바다로의 행군[편집]

1864년 윌리엄 T. 셔먼 장군은 애틀랜타를 점령한 후 조지아주를 가로질러 사바나까지 진군하며 남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했다. 이 작전은 총력전의 개념을 보여주었다.

2.7. 전쟁의 종결[편집]

2.7.1. 1864년 대선[편집]

1864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이 재선에 성공했다. 초기에는 전쟁 피로감으로 링컨의 재선이 불투명했으나, 셔먼의 애틀랜타 점령 등 군사적 성공이 링컨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2.7.2. 리 장군의 항복[편집]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주 애포매톡스 코트하우스에서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하면서 사실상 전쟁이 종결되었다. 그랜트는 관대한 항복 조건을 제시했다.

2.7.3. 링컨의 암살[편집]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며칠 후인 1865년 4월 14일, 링컨은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당했다. 이는 재건 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영향[편집]

3.1. 사상자[편집]

남북전쟁은 약 62만 명에서 75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으며, 이는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민간인 사상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3.2. 노예제 폐지[편집]

전쟁의 결과 수정헌법 제13조가 통과되어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약 400만 명의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3.3. 연방주의의 승리[편집]

남북전쟁은 주권 대 연방 권한의 문제를 해결했다. 전쟁의 결과 연방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고, 탈퇴권이 부정되었다.

3.4. 경제적 변화[편집]

전쟁 이후 북부의 산업화가 가속화되었고, 남부는 경제적으로 황폐화되었다. 재건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변모했다.

3.5. 재건 시대[편집]

전쟁 이후 재건 시대(1865-1877)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남부는 연방에 재편입되었고, 수정헌법 제14조수정헌법 제15조가 통과되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민권과 투표권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4. 군사적 측면[편집]

4.1. 기술 혁신[편집]

남북전쟁은 최초의 근대전으로 평가받는다. 철도를 이용한 병력 수송, 전신을 통한 통신, 철갑선의 등장, 소총의 발달 등이 전쟁 양상을 변화시켰다.

4.2. 참호전[편집]

특히 전쟁 후반부에는 참호전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5.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