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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선사 시대[편집]
앙골라는 선사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해 온 지역으로, 초기에는 코이산 제어를 사용하는 수렵채집민인 코이산족이 거주했으나 서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농경민인 반투계 민족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반투족은 부족 사회를 유지하다가 14세기경부터 콩고 왕국(Kongo Kingdom), 은동고 왕국(Ndongo Kingdom) 등의 고대 왕국을 형성했는데으며, 그 중 은동고 왕국의 군주 칭호인 ‘응골라(Ngola)’에서 '앙골라(Angola)'라는 현재 국호가 파생되었다.
이러한 반투 왕국들은 초기에는 문자가 없어서 구전 전승으로만 역사를 전하는 선사 시대에 머물렀지만,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과 접촉하면서 로마자를 수용하여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반투족은 부족 사회를 유지하다가 14세기경부터 콩고 왕국(Kongo Kingdom), 은동고 왕국(Ndongo Kingdom) 등의 고대 왕국을 형성했는데으며, 그 중 은동고 왕국의 군주 칭호인 ‘응골라(Ngola)’에서 '앙골라(Angola)'라는 현재 국호가 파생되었다.
이러한 반투 왕국들은 초기에는 문자가 없어서 구전 전승으로만 역사를 전하는 선사 시대에 머물렀지만,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과 접촉하면서 로마자를 수용하여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3. 포르투갈의 지배: 포르투갈령 앙골라[편집]
1482년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콩고강 하류에 도착하면서 유럽 세력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은 루안다 지역을 중심으로 무역 거점을 구축하고, 현지 지도자들과의 동맹 혹은 충돌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특히 노예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앙골라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강제로 끌려갔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시기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공식화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식민 행정이 본격화되며 현지인의 토지 강탈과 강제 노동이 일상화되었다. 이에 대한 저항도 이어졌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올뎅 호베르투(Holden Roberto)가 이끄는 우익 성향 독립운동 단체인인 UPA와 좌익 성향 독립운동 단체인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1] 등이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시기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공식화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식민 행정이 본격화되며 현지인의 토지 강탈과 강제 노동이 일상화되었다. 이에 대한 저항도 이어졌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올뎅 호베르투(Holden Roberto)가 이끄는 우익 성향 독립운동 단체인인 UPA와 좌익 성향 독립운동 단체인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1] 등이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3.1. 앙골라 독립전쟁[편집]
1961년에 올뎅 호베르투(Holden Roberto)의 UPA를 비롯한 우익 독립운동 단체들이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이라는 이름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고 봉기하면서 앙골라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곧이어 좌익 성향의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도 봉기하며 앙골라 좌우 진영이 모두 포르투갈의 압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FNLA는 호베르투를 비롯한 친미파[2]와 조나스 사빔비(Jonas Savimbi)를 비롯한 친중파[3]가 대립하다 후자가 1966년에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연합(UNITA)라는 새로운 독립군을 구성하면서 분열되어, 앙골라 독립군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면서도 FNLA, MPLA, UNITA라는 세 독립군이 자기들끼리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혼란이 이어졌다.
포르투갈군은 이렇게 분열된 독립군을 상대로 야전에서는 꾸준히 승리를 거두며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진압하는 듯 했으나, 정작 포르투갈 본토에서는 식민지 유지에 집착하며 본토 산업의 발전을 도외시하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이스타두 노부) 정권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해졌고, 결국 1974년 포르투갈군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카네이션 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전복되면서 앙골라를 비롯한 식민지들의 독립은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1975년 포르투갈 제3공화국 정부가 앙골라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마침내 앙골라는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이 과정에서 FNLA는 호베르투를 비롯한 친미파[2]와 조나스 사빔비(Jonas Savimbi)를 비롯한 친중파[3]가 대립하다 후자가 1966년에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연합(UNITA)라는 새로운 독립군을 구성하면서 분열되어, 앙골라 독립군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면서도 FNLA, MPLA, UNITA라는 세 독립군이 자기들끼리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혼란이 이어졌다.
포르투갈군은 이렇게 분열된 독립군을 상대로 야전에서는 꾸준히 승리를 거두며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진압하는 듯 했으나, 정작 포르투갈 본토에서는 식민지 유지에 집착하며 본토 산업의 발전을 도외시하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이스타두 노부) 정권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해졌고, 결국 1974년 포르투갈군 청년 장교들이 주도한 카네이션 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전복되면서 앙골라를 비롯한 식민지들의 독립은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1975년 포르투갈 제3공화국 정부가 앙골라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마침내 앙골라는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었다.
4. 제1차 앙골라 내전: 인민공화국 VS 민주인민공화국[편집]
1975년 앙골라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으나 친소 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의 MPLA와 친미 우익 성향의 FNLA, 친중 마오주의 성향의 UNITA가 정부 구성 합의에 실패하여 앙골라 내전이 발발했다.
이들 가운데 MPLA가 수도 루안다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장악하며 주도권을 잡아 앙골라 인민공화국(RPA)를 수립했고, FNLA와 UNITA가 연합하여 앙골라 민주인민공화국(RPDA)를 수립했는데, 전자는 소련, 쿠바 등 제2세계의 지원을 받고 후자는 미국, 남아공 등 제1세계의 지원을 받아 냉전의 대리전이자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소련과 사이가 안 좋았던 중국은 앙골라 민주인민공화국을 지원했는데, 덩샤오핑이 집권한 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친중 마오주의 성향이었던 UNITA 역시 자본주의를 수용하며 사실상 FNLA와 이념 차이가 별로 없는 우익 계열 정당이 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되자 MPLA는 1992년에 공산주의와 일당제를 포기하고 앙골라 공화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면서 국제기구의 감시하에 FNLA와 UNITA도 참여하는 다당제 선거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따라 앙골라 내전 역시 일단락되는 듯했다.
이들 가운데 MPLA가 수도 루안다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장악하며 주도권을 잡아 앙골라 인민공화국(RPA)를 수립했고, FNLA와 UNITA가 연합하여 앙골라 민주인민공화국(RPDA)를 수립했는데, 전자는 소련, 쿠바 등 제2세계의 지원을 받고 후자는 미국, 남아공 등 제1세계의 지원을 받아 냉전의 대리전이자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소련과 사이가 안 좋았던 중국은 앙골라 민주인민공화국을 지원했는데, 덩샤오핑이 집권한 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친중 마오주의 성향이었던 UNITA 역시 자본주의를 수용하며 사실상 FNLA와 이념 차이가 별로 없는 우익 계열 정당이 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되자 MPLA는 1992년에 공산주의와 일당제를 포기하고 앙골라 공화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면서 국제기구의 감시하에 FNLA와 UNITA도 참여하는 다당제 선거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따라 앙골라 내전 역시 일단락되는 듯했다.
5. 앙골라 공화국[편집]
5.1. 제2차 앙골라 내전[편집]
1992년 앙골라 공화국 총선은 앙골라 독립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다당제 총선이었는데, MPLA와 UNITA, FNLA가 각각 원내 1, 2, 3당을 차지했다.
이때 제3당이 된 FNLA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으나 UNITA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MPLA 정권이 UNITA 지지자들을 향해 발포하여 학살을 자행하자, 격분한 UNITA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앙골라 민주인민공화국의 재건을 선포하면서 제2차 앙골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2차 내전은 초반에는 UNITA가 우세한 듯 했으나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고 고립되면서 MPLA가 전세를 역전시켰고 결국 2002년 조나스 사빔비가 전사하면서 MPLA의 승리로 종식되었다.
다만 MPLA는 UNITA를 완전히 불법화하면 3차 내전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여 내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UNITA의 존속과 선거 참여를 허용했고, 이에 따라 내전 종식 이후의 앙골라 정계는 MPLA가 장기집권하면서 UNITA가 꾸준히 제1야당을 확보하며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때 제3당이 된 FNLA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으나 UNITA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MPLA 정권이 UNITA 지지자들을 향해 발포하여 학살을 자행하자, 격분한 UNITA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앙골라 민주인민공화국의 재건을 선포하면서 제2차 앙골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2차 내전은 초반에는 UNITA가 우세한 듯 했으나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고 고립되면서 MPLA가 전세를 역전시켰고 결국 2002년 조나스 사빔비가 전사하면서 MPLA의 승리로 종식되었다.
다만 MPLA는 UNITA를 완전히 불법화하면 3차 내전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여 내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UNITA의 존속과 선거 참여를 허용했고, 이에 따라 내전 종식 이후의 앙골라 정계는 MPLA가 장기집권하면서 UNITA가 꾸준히 제1야당을 확보하며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5.2. 내전 종식 이후[편집]
2002년 내전을 승리로 이끈 MPLA의 주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은 2017년까지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했고 UNITA를 비롯한 야당의 선거 참여도 보장했으나 그의 치세는 권위주의 독재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산투스의 후계자로서 집권한 주앙 로렌수는 석유 수출과 재건 사업을 추진하며 경제적·사회적 회복을 추구하는 한편, 산투스 전 대통령의 일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를 근절하는 등의 정치 개혁도 주도하며 앙골라의 자유화를 추진했다.
2022년에는 내전 종식 이후 만년 제1야당에 머물던 UNITA가 앙골라 의회 의석의 40%를 확보하며 수권정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같은 해 대선에서 주앙 로렌수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MPLA 정권이 연장되었다.
이후 산투스의 후계자로서 집권한 주앙 로렌수는 석유 수출과 재건 사업을 추진하며 경제적·사회적 회복을 추구하는 한편, 산투스 전 대통령의 일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를 근절하는 등의 정치 개혁도 주도하며 앙골라의 자유화를 추진했다.
2022년에는 내전 종식 이후 만년 제1야당에 머물던 UNITA가 앙골라 의회 의석의 40%를 확보하며 수권정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같은 해 대선에서 주앙 로렌수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MPLA 정권이 연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