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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고대 베트남[편집]
2.1. 반랑(문랑)[편집]
반랑(문랑)의 군주들은 웅왕(홍브엉)이라는 독자적인 칭호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는 18명의 웅왕이 재위했으나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신화적 존재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다.
대수 | 왕호 | 휘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1 | 낀즈엉브엉 (경양왕) | 록툭 (녹속) | 기원전 2879년 | 기원전 2792년 | |
2 | 훙히엔브엉 (웅현왕)/ 락롱꾸언 (낙룡군) | 숭람 | 기원전 2792년 | 기원전 2524년 |
2.2. 어우락(구낙)/툭 왕조(촉가)[편집]
대수 | 왕호 | 휘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1 | 안즈엉브엉 (안양왕) | 툭판 (촉반) |
2.3. 남비엣(남월)/찌에우 왕조(조가)[편집]
2.4. 쯩(징) 자매 정권[편집]
대수 | 휘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1 | 쯩짝 (징측) | 40년 | 43년 | |
쯩니 (징이) |
2.5. 시씨(사씨) 정권[편집]
대수 | 휘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1 | 시니엡 (사섭) | 187년 | 226년 | |
2 | 시휘 (사휘) | 226년 | 227년 |
2.6. 후 찌에우 왕조(후조조)[편집]
대수 | 휘 | 재위 기간 | 비고 |
1 | 찌에우꾸옥닷 (조국달) | 248년 | |
2 | 찌에우어우 (조구) | 248년 |
2.7. 전 리 왕조(전이가)[편집]
전 리 왕조는 544년부터 548년까지는 반쑤언(만춘), 548년부터 602년까지는 티엔둑(야능)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대수 | 시호 | 휘 | 재위 시작 | 재위 종료 | 비고 |
1 | 전리남제 | 리비 (이분) | 544년 | 548년 | |
2 | 도량왕 | 리티엔바오 (이천보) | 548년 | 555년 | |
조월왕 | 찌에우꽝푹 (조광복) | 548년 | 571년 | ||
3 | 후리남제 | 리펏뜨 (이불자) | 555년 | 602년 |
2.8. 마이 왕조(매조)[편집]
3. 대구월 ~ 대월[편집]
3.1. 딘 왕조(정가)[편집]
3.2. 전 레 왕조(전여가)[편집]
3.3. 리 왕조(이가)[편집]
3.4. 쩐 왕조(진가)[편집]
3.5. 다이응우(호 왕조)[편집]
3.6. 후 레 왕조(후여가)[편집]
3.7. 떠이선 왕조(서산가)[편집]
4. 대남국(응우옌 왕조)[편집]
4.1. 역대 황제[편집]
대수 | 재위 기간 | 비고 | |||
1 | 세조 | 응우옌푹아인 (완복영) | 1802년 ~ 1820년 | ||
2 | 성조 | 응우옌푹끼에우 (완복교) | 1820년 ~ 1841년 | ||
3 | 헌조 | 응우옌푹뚜언 (완복선) | 1841년 ~ 1847년 | ||
4 | 익종 | 응우옌푹티 (완복시) | 1847년 ~ 1883년 | ||
5 | 공종[6] | 없음[7] | 응우옌푹응쩐 (완복응전) | 1883년 | |
6 | 응우옌푹창 (완복승) | 1883년 | |||
7 | 간종 | 응우옌푹하오 (완복호) | 1883년 ~ 1884년 | ||
8 | 응우옌푹민 (완복명) | 1884년 ~ 1885년 | |||
9 | 경종 | 응우옌푹비엔 (완복변) | 1884년 ~ 1889년 | ||
10 | 응우옌푹찌에우 (완복소) | 1889년 ~ 1907년 | |||
11 | 응우옌푹호앙 (완복황) | 1907년 ~ 1916년 | |||
12 | 홍종 | 응우옌푹뚜언 (완복창) | 1916년 ~ 1925년 | ||
13 | 응우옌푹티엔 (완복전) | 1925년 ~ 1945년 |
4.2. 추존 황제[편집]
[1] 진나라 출신으로 본래 진시황의 신하였으나 초한쟁패기에 어우락(구낙)을 정복한 후 자립하여 베트남 최초로 황제를 칭했다.[2] 사후에 받은 시호가 아니라 즉위 이전에 후작으로서 책봉받으며 받은 봉호가 술양후였다.[3] 국성인 리씨(이씨)가 아니라 찌에우씨(조씨)임에도 불구하고 왕을 칭하며 리티엔바오(이천덕)과 그 후계자인 리펏뜨(이불자)와 대립했다.[4] 사후에 받은 시호가 아니라 생전에 자칭한 칭호였다.[5] 마이씨(매씨)였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구체적인 본명은 알 수 없다.[6] 폐위되어 사망 직후에는 묘호를 받지 못했으나 아들 타인타이 황제(성태제)가 제10대 황제로 즉위한 덕분에 공종 묘호를 받으며 복권되었다.[7] 즉위하고 3일만에 폐위되어 연호를 제정하지 못했기에 당호인 '죽득당(육덕당)'에서 따와서 죽득 황제(육덕제)라 불린다.[폐제] 8.1 8.2 8.3 8.4 폐위된 후 다시 복권되지도 못했기에 묘호가 없다.[말제] 마지막 황제라 묘호가 없어서 말제라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