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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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국 제27대 총리 | |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초대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 Benito Mussolin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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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베니토 아밀카레 안드레아 무솔리니 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 |
출생 | |
사망 | |
묘소 | |
재임기간 | |
제50대 외무장관 | |
제27대 총리 | |
제52대 외무장관 | |
제12대 아프리카 식민장관 | |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초대 두체 | |
1. 개요[편집]
Tutto nello Stato, niente al di fuori dello Stato, nulla contro lo Stato. 모든 것은 국가에 있고, 국가 외에는 어떤 것도 없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베니토 무솔리니 |
2. 생애[편집]
1883년 이탈리아 왕국 로마냐 지방에서 태어난 무솔리니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이탈리아 사회당 기관지 아반티의 편집장까지 역임했으나, 1차 대전 참전을 계기로 민족주의로 전향했다.
1919년에 이탈리아 전투 파시를 결성하고, 1921년에 국가 파시스트당으로 확대 개편한 후, 1922년 ‘로마 진군’이라는 쿠데타를 주도하여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23년에 다른 원내1당에게 이탈리아 의회 의석 1/3에 달하는 추가 의석을 부여하는 악법인 아체르보 법을 통과시키고, 192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원내 기반을 강화했으며, 1926년에는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금지함으로써 일당제를 형성했다.
대외적으로는 초기에는 친영, 친불, 반독 외교를 펼쳤으나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무력으로 병합한 이후 나치 독일과 가까워졌고, 나치 및 일본 제국과 방공협정을 맺고 추축국 결성에도 참여하다가 1940년부터 2차 대전에도 참전했다.
1943년에 연합군이 본토인 이탈리아반도에 상륙하자 실각하여 체포되었으나, 같은 해에 독일 국방군에 의해 구출되어 북이탈리아에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통칭 살로 공화국을 수립했다.
1945년에 이르러 살로 공화국마저 무너지자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계열 파르티자노(Partigiano)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1919년에 이탈리아 전투 파시를 결성하고, 1921년에 국가 파시스트당으로 확대 개편한 후, 1922년 ‘로마 진군’이라는 쿠데타를 주도하여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23년에 다른 원내1당에게 이탈리아 의회 의석 1/3에 달하는 추가 의석을 부여하는 악법인 아체르보 법을 통과시키고, 192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원내 기반을 강화했으며, 1926년에는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금지함으로써 일당제를 형성했다.
대외적으로는 초기에는 친영, 친불, 반독 외교를 펼쳤으나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하여 무력으로 병합한 이후 나치 독일과 가까워졌고, 나치 및 일본 제국과 방공협정을 맺고 추축국 결성에도 참여하다가 1940년부터 2차 대전에도 참전했다.
1943년에 연합군이 본토인 이탈리아반도에 상륙하자 실각하여 체포되었으나, 같은 해에 독일 국방군에 의해 구출되어 북이탈리아에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통칭 살로 공화국을 수립했다.
1945년에 이르러 살로 공화국마저 무너지자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계열 파르티자노(Partigiano)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1] Varano di Costa[2] 사인은 총살 (흉부 관통)[3] Alessandro Mussolini, 1854~1910.[4] 혼전성은 '말토니(Maltoni)'다.[5] Margherita Sarfatti, 참고로 유대인이다.[6] 갈레아초 치아노의 배우자이기도 하며, 장녀로 1995년까지 천수를 누리며 살다가 죽었다. 반면 남편인 치아노는 디노 그란디와 함께 무솔리니를 실각시켰으나, 무솔리니가 구출되고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건국되며 사형을 선고받았다.[7] 공식적인 장남으로 영화 제작자 및 평론가로 일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병역특혜는 커녕 공군 조종사로 입대해 싸웠다. 1997년까지 살며 천수를 누렸다.[8] 차남으로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나 1941년 P.108 폭격기 프로토타입을 시험하다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9] Regia Scuola Magistrale Maschile "Giosuè Carducci", Forlì. 조수에 카르두치의 형제가 교장으로 있던 전문학교다.[초등교직] 졸업과 동시에 초등교원 자격증 수여.[11] 청강생 신분으로 10주만 출석하고 그 이후로 무단 결석을 하여 제적 처리되었다. 들었던 수업은 정치경제학, 사회학 및 일반 철학이다. 소속된 학과는 따로 있지 않았고 그냥 사회정치과학대학 내에 있는 수업만 들었다.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소속된 학과가 없던 박원순과 비슷한 케이스다.[12] 불어 교육 전공.[중등교직] 수료와 동시에 중등교원 자격증 수여.[14] 박사 학위 논문: Preludio al Machiavelli (1924) = 마키아벨리 서막 (1924)[15] 그가 실각한 후 사르데나 근처에서 잡혀있었던 동안에 그는 서서히 종교에 복귀하기 시작했으며 1943년 12월 14일에 다시 참회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있다. 또한 1924년 6월 2일에 비오 11세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가톨릭 신앙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P. 101 of “Aiutatemi Tutti a Portare La Croce” by Malateta Enrico) 또한 가톨릭 복자인 에드비지 카르보니(Edvidge Carboni)의 말에 따르면 죽기 며칠 전에 불길에 휩싸여 있을 때 무솔리니는 그녀에게서 고해성사를 하였고, 연옥에 가기도 하였으며 1951년 미사에서 영성체를 한 후에 그의 영혼이 천국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P. 79, Edvige Carboni: The Perfume of God) [16] #[17] 무솔리니 집권기의 이탈리아 왕국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살로 공화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