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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차르국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ussianEmpire1700.png

1. 개요2. 국호3. 역사
3.1. 건국 이전: 모스크바 대공국제3의 로마3.2. 뇌제 이반 4세의 치세3.3. 표도르 1세의 짧은 치세와 류리크 왕조의 단절3.4. 동란시대3.5. 로마노프 왕조
4. 정치
4.1. 역대 차르4.2. 전국회의(젬스키 소보르)
5. 영토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Oryol_%28variant%29.svg.png
1547년부터 1721년까지 러시아를 지배한 국가.

본격적으로 차르 칭호를 사용하는 한편 우랄 산맥 너머의 시베리아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러시아를 유럽아시아에 걸친 대국으로 성장시킨 나라였고, 1721년부터는 서구식 황제 칭호인 임페라토르를 사용하며 러시아 제국으로 이어졌다.

2. 국호[편집]

초기에는 루스 차르국이라 했다가 후기에는 루스계 국가들을 가리키는 그리스식 명칭인 '로시아'를 수용하여 '로시야 차르국', 즉 러시아 차르국을 칭하게 되었다.

3. 역사[편집]

3.1. 건국 이전: 모스크바 대공국제3의 로마[편집]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던 소피아 팔레올로기나[1]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모스크바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칭했다.

이반 3세와 그의 아들 바실리 3세는 차르를 칭하긴 했지만, 주로 모스크바 대공 칭호를 사용하고 차르 칭호는 간헐적으로 사용하는데 그쳤는데, 바실리 3세의 아들 이반 4세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차르 칭호를 공식화하며 루스 차르국이 성립되었다.

3.2. 뇌제 이반 4세의 치세[편집]

뇌제(그로즈니)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반 4세는 차르 칭호의 사용을 공식화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했으며, 동쪽으로는 우랄 산맥 너머의 시비르 칸국까지 정벌하면서[2] 러시아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공포정치와 지나친 숙청을 일삼다가 자신의 직계 가족들마저 살해하는 바람에 키예프(키이우) 루스 시절부터 800여년 가까이 이어진 류리크 왕조가 단절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3.3. 표도르 1세의 짧은 치세와 류리크 왕조의 단절[편집]

이반 4세 사후에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인 표도르 1세가 차르로 즉위했으나, 그는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요절하여 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800여년을 이어온 류리크 왕조는 닷절되었다.

3.4. 동란시대[편집]

류리크 왕조의 후손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기에, 표도르 1세의 황후였던 이리나 고두노바는 임시로 여제가 되었다가 오빠인 보리스 고두노프가 차르로 즉위했다.

그러나 고두노프 가문은 800년 류리크 왕조를 대신할만한 정통성이나 권위가 전혀 없었기에,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동란시대라 불리는 난세가 펼쳐졌다.

3.5. 로마노프 왕조[편집]

4. 정치[편집]

4.1. 역대 차르[편집]

  • 류리크 왕조
    • 이반 4세
    • 표도르 1세
  • 동란시대
    • 이리니 고두노바
    • 보리스 고두노프
    • 가짜 드미트리 1세
    • 바실리 4세[3]
    • 표도르 2세[4]
    • 블라디슬라프 바사[5]
  • 로마노프 왕조
    • 미하일 1세 표도로비치
    • 알렉세이 1세
    • 표도르 3세
    • 이반 5세/표트르 1세

4.2. 전국회의(젬스키 소보르)[편집]

5. 영토[편집]

[1] 정확히는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폴리스 11세의 동생 토마스 팔레올로고스의 딸이었다.[2] 직접적인 정복 자체는 황제 본인이 이끄는 중앙국이 아니라 자치권을 가진 기마 군사집단인 쿠반 카자크(돈 카자크)가 수행했다.[3] 바실리 슈이스키.[4] 표도르 슈이스키.[5]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