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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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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소재지 | |||
하위 행정구역 | |||
면적 | 11,091km² | ||
인구 | 1,477,582명 | ||
인구밀도 | 133명/㎢ | ||
당위원회 책임비서 | |||
인민위원장 | 채일룡 | ||
057 | |||
KP-07 | |||
북한 강원도의 위치 |
1. 개요[편집]
2. 지리[편집]
남쪽으로 갈수록 더 따뜻하지만, 산간 지방은 제외. 남한의 철원군과 비슷하거나 더 춥다. 또 남한에 비해 강수량이 적은 북한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고성군 장전(長箭)의 연간 강수량은 1,519.9mm에 달하며, 이는 남한의 다우지역인 서귀포시, 섬진강 하구에 버금가는 양이다. 때문인지 함경도, 평안도 지방 등 냉대기후의 지방에서는 재배 자체를 못 하는 곶감이나 밤 등이 강원도 영동[2]에선 나서 북한 내에서 특산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태풍도 북중러 국경까지 가는 현상들이 늘어나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태풍도 북중러 국경까지 가는 현상들이 늘어나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3. 역사[편집]
1945년 남북분단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강원도/역사 문서 참조.
8.15 광복 이후 삼팔선, 6.25 전쟁 등을 거쳐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를 양분하는 과정에서 경기도, 황해도와 함께 쪼개졌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38선이 그어질 당시 남한에 인천, 수원, 개성[3] 등을 포함한 알짜배기를 몽땅 뺏긴 경기도나, 반대로 남한 입장에서 보자면 38선 시절 옹진반도와 연백평야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북한으로 넘어간 황해도와는 달리 거의 양분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서부전선은 38선 아래로 내려가고,[4]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은 38선 이북으로 올라가면서 현재는 광복 전 강원도 면적의 약 1/3만 북한이 차지하고 있다.[5]
38선 분단 때 나름대로 쓸 만한 중심지였던 철원군 대신, 1946년 소련 군정 치하에서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경남도에서 그래도 규모가 좀 되는 도시이면서 지역 사투리도 강원도 사투리 계통에 속하는 등[6] 문화적으로 가까운 원산시와 그 주변의 문천(지금의 문천시+천내군), 안변(지금의 안변군+고산군+법동군)을 강원도로 편입시키고, 북쪽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를 38선에 가까운 철원에서 원산으로 옮겨두었다. 그래서 강원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까 했는데... 오히려 원산도 발전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원산이 남, 북측 강원도를 통틀어서 가장 큰 도시긴 하다(36만명). 참고로 남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인 춘천시의 인구는 약 28만 명이고, 최대 도시인 원주시는 약 35만명이다.
8.15 광복 이후 삼팔선, 6.25 전쟁 등을 거쳐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를 양분하는 과정에서 경기도, 황해도와 함께 쪼개졌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38선이 그어질 당시 남한에 인천, 수원, 개성[3] 등을 포함한 알짜배기를 몽땅 뺏긴 경기도나, 반대로 남한 입장에서 보자면 38선 시절 옹진반도와 연백평야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북한으로 넘어간 황해도와는 달리 거의 양분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서부전선은 38선 아래로 내려가고,[4]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은 38선 이북으로 올라가면서 현재는 광복 전 강원도 면적의 약 1/3만 북한이 차지하고 있다.[5]
38선 분단 때 나름대로 쓸 만한 중심지였던 철원군 대신, 1946년 소련 군정 치하에서 행정구역 개편으로 함경남도에서 그래도 규모가 좀 되는 도시이면서 지역 사투리도 강원도 사투리 계통에 속하는 등[6] 문화적으로 가까운 원산시와 그 주변의 문천(지금의 문천시+천내군), 안변(지금의 안변군+고산군+법동군)을 강원도로 편입시키고, 북쪽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를 38선에 가까운 철원에서 원산으로 옮겨두었다. 그래서 강원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까 했는데... 오히려 원산도 발전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원산이 남, 북측 강원도를 통틀어서 가장 큰 도시긴 하다(36만명). 참고로 남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인 춘천시의 인구는 약 28만 명이고, 최대 도시인 원주시는 약 35만명이다.
4. 특징[편집]
북한에서도 낙후된 지역이다. 1990년대 이전 북한 경제력이 괜찮았을때는 휴양지로 알려졌고,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졌을때는 남한관광객들이 어느정도 오고가는 관광지로 이용되었다. 그 덕택에 2000년대 북한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괜찮았던 지역이었지만, 그것도 남북관계가 꼬이면서 끊겼고, 새로운 활로로 중국 관광객을 좀 받는다지만 시원찮은 것으로 보인다.
교통 상태도 열악하다. 철도가 거의 없고, 금강산선 같이 전쟁 중 완파해서 사라진 철도도 있으며, 남은 철도(강원선·금강산청년선·청년이천선 등)도 거의 군사용으로 쓰고 잘 운행도 안 한다. 버스도 원래 하루 4번 운행하게 정했으나 휘발유 부족(...) 등의 까닭에 운행을 하는둥 마는둥하며, 심지어는 이레 동안 배차가 아예 없을 때도 있다.왜 만든겨
게다가 북한군 군사력의 60%가 휴전선 가까이 집중해있다보니 북한 강원도의 군사시설과 주둔군의 수는 엄청난 편이다.남한 강원도랑 똑같네 아무리 그래도 북쪽보단 남쪽 강원도가 더 발전했다. 이런 군사시설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주변 개발은 어불성설에 가까워 북한 강원도의 낙후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농사도 지어봐야 대부분 산악지대니 기대할 만큼의 이익은 안 나오는 실정이다. 평강군이랑 철원군이 강원도의 곡창지대인데, 김일성이 철원군을 얻으려고 애썼으나 결국 빼앗겨서[7] 실제로 3일이나 울었다고 한다!
이러한 낙후성은 고향이 강원도[8][9]인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그나마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광지로 발돋움하며 다양한 사회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교통 상태도 열악하다. 철도가 거의 없고, 금강산선 같이 전쟁 중 완파해서 사라진 철도도 있으며, 남은 철도(강원선·금강산청년선·청년이천선 등)도 거의 군사용으로 쓰고 잘 운행도 안 한다. 버스도 원래 하루 4번 운행하게 정했으나 휘발유 부족(...) 등의 까닭에 운행을 하는둥 마는둥하며, 심지어는 이레 동안 배차가 아예 없을 때도 있다.
게다가 북한군 군사력의 60%가 휴전선 가까이 집중해있다보니 북한 강원도의 군사시설과 주둔군의 수는 엄청난 편이다.
농사도 지어봐야 대부분 산악지대니 기대할 만큼의 이익은 안 나오는 실정이다. 평강군이랑 철원군이 강원도의 곡창지대인데, 김일성이 철원군을 얻으려고 애썼으나 결국 빼앗겨서[7] 실제로 3일이나 울었다고 한다!
이러한 낙후성은 고향이 강원도[8][9]인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그나마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광지로 발돋움하며 다양한 사회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5. 김정은 집권 후 발전 가능성[편집]
상술했듯 열악하기 그지없는 땅이었으나, 김정은이 집권한 뒤 관광 및 자연경관의 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유는 김정은의 고향이 강원도 원산시이기 때문. 낙후된 고향 땅이 내심 콤플렉스인지 김정은이 고향을 팍팍 밀어주고 있다. 내래 고향땅 개척 좀 하갓어 마침, 원산시도 그럭저럭 입지가 나쁘지 않다.
흔히들 아는 마식령 스키장이나 새롭게 열린 대관령목장의 20배가 넘는 농장인 세포군의 '세포등판', 그리고 호텔이나 관광지 등 인프라를 세우고 있다. 그런데 워낙 기본적인 인프라가 막장이라(...) 평양에서 원산을 잇는 고속도로도 있고 자가용을 탈 수도 있지만, 평양원산간 고속도로가 낡은 채로 남아있어 영 가기가 불편해보인다.
흔히들 아는 마식령 스키장이나 새롭게 열린 대관령목장의 20배가 넘는 농장인 세포군의 '세포등판', 그리고 호텔이나 관광지 등 인프라를 세우고 있다. 그런데 워낙 기본적인 인프라가 막장이라(...) 평양에서 원산을 잇는 고속도로도 있고 자가용을 탈 수도 있지만, 평양원산간 고속도로가 낡은 채로 남아있어 영 가기가 불편해보인다.
6. 여담[편집]
북한 사람들에겐 전방 지대인 데다 낙후되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인상도 있다고 한다. 특히 동해안 지방은 북한 내에서는 겨울철 기온이 가장 온화한(...) 지역으로 인식된다. 실제로도 원산은 서울과 겨울 기온이 비슷하여 온난 습윤 기후에 속한다.
탈북자들 출신 중 가장 적게 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기차나 걸어서 탈북하기엔 멀고 동해로 가도 북한 해군이 단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 그럼에도 탈북하는 강원도 출신 탈북자들의 동기를 보면 한국 방송, 라디오 전파를 듣고 왔다는 말이 많은데, 황해도처럼 남쪽과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 남한 방송의 수신이 비교적 쉽게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북강원도'라고도 불리는데 '강원북도'라고 하기에는 정식적인 행정구역으로 남한 쪽의 강원도와 분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10] 그 외에는 주로 북한 강원도라고 불린다.[11]
탈북자들 출신 중 가장 적게 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기차나 걸어서 탈북하기엔 멀고 동해로 가도 북한 해군이 단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 그럼에도 탈북하는 강원도 출신 탈북자들의 동기를 보면 한국 방송, 라디오 전파를 듣고 왔다는 말이 많은데, 황해도처럼 남쪽과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 남한 방송의 수신이 비교적 쉽게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북강원도'라고도 불리는데 '강원북도'라고 하기에는 정식적인 행정구역으로 남한 쪽의 강원도와 분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10] 그 외에는 주로 북한 강원도라고 불린다.[11]
7. 하위 행정구역[편집]

1946년의 행정구역 개편[12] 이후, 1952년 12월에 법동(法洞)·천내(川內)·세포(洗浦)·판교(板橋)·창도(昌道)·금강(金剛)·고산(高山)의 7개 군을 신설했고(김화군이 사라지고 연천군(漣川)을 폐지하여 1시 19군), 1953년 휴전협정체결에 따른 군사분계선으로 화천(華川)·양양(襄陽) 2개 군 전부와 양구(楊口)·인제(麟蹄) 2개 군의 대부분, 철원(鐵原)·평강(平康)·김화(金化)·창도(昌道)·금강(金剛)·고성(高城)군의 일부가 남한으로 넘어가 1시 15군이었다. 1954년에 창도군에서 김화군이 다시 갈라져 나오면서 16군이었다가 1972년 문천군(文川郡)을 폐지해 다시 15군이었으며, 1976년 문천군이 다시 나왔고, 1991년 시로 승격했다. 현재(2011) 행정구역은 2개 시, 15개 군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북 5도 체계 기준으로) 북한에 온전히 남은 군은 회양·평강[13]·이천·통천의 4군 뿐이다. 경술국치 이전엔 평해, 간성, 금성, 안협군이 더 있었다가(26군), 1914년 개편으로 각각 울진, 고성[14], 김화, 이천에 통합했다.[15] 이를 감안해 금성, 안협군을 더하면 북한에 남은 온전한 군은 조선 26군 중 6군.
반분된 군을 0.5로 환산하면 5.5/22 혹은 7.5/26으로 1/4 수준이고, 그나마 원산을 더해도 1시 2군을 더한 것이니 8.5/25나 10.5/29로 1/3 수준이다.
☆표는 1946년 9월에 함경남도 및 경기도[16] 에서 편입한 시·군, ★표는 1952년 12월에 신설한 시·군을 뜻한다.
조선향토대백과의 설명은 2008년 이전의 자료다. 그래서 그 이후의 북한의 보도, 투자 유치 설명 자료에서 언급되는 행정구역 변동을 반영하지 않는다. 평강군, 세포군 일대의 관할 영역이 조정된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과거의 행정구역으로 되돌리다시피하여 2001년 이전의 정보를 담은 위의 첨부지도와 상황이 거의 같다.
- 원산시(元山市) ☆
강원도의 도 인민위원회 소재지다. 원래는 함경남도 원산시였다가 소련군정기에 강원도에 편입하였다.
- 고산군(高山郡) ☆★
- 김화군(金化郡)
광복 당시 김화군 금성면·원북면 일원과 원동면·원남면의 대부분 지역, 임남면·창도면 일부에 해당된다. 6.25 전쟁으로 원래 군 중심지였던 옛 김화군 일대를 국군한테 털린 이후 1952년 12월 22일 군면리 대폐합 때 신설된 창도군에 편입시켜 군을 폐지했다가 1954년에 군 인민위원회를 옛 금성군 중심지인 금성으로 옮겨 김화군을 복군했다. 그리고 2001년 북한에 남은 옛 김화군 지역(근북면, 근동면)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강군으로 편입되면서 북한 김화군은 '김화'라는 이름과 다르게 옛 금성군 지역만 남게되었다. 한편 남한으로 넘어간 김화군 지역은 김화군을 유지하였다가 행정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1963년 철원군으로 편입되었다.
- 세포군(洗浦郡) ★
1952년에 평강군 세포면·유진면을 분리하고 회양군 난곡면 일부, 안변군 신고산면 일부를 통합하여 신설한 군으로 2001년에 옛 목전면 지역과 현내면 일부를 편입하였다. 1월 평균기온이 -9°C 정도로 남북 강원도를 통틀어 가장 추운 지역이다.
- 이천군(伊川郡)
- 철원군(鐵原郡)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군. 해방 이전부터 있던 군으로, 인공 수립이전 강원도의 인민위원회 소재지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분단 이전의 철원군 전역과 38선 이북의 포천군 대부분[18]을 관할하고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군역 대부분을 국군에 털리며[19] 사실상 북면과 구 삭녕군 지역만 남은 것을 철원보다도 털려서 일부만 남은 연천군의 잔여지역 일부와 이천군의 구 안협군 지역을 떼다 붙여 존속시켰다. 지금의 철원군은 마장면·인목면·내문면·어운면(12개리)·북면(3개리), 이천군 동면·안협면·서면(1개리), 연천군 삭녕면·서남면(4개리), 평강군 서면(1개리), 금천군 토산면(3개리)이다. 대충 조선시대 삭녕군[20]과 안협군[21]의 영역이다. 그런데 중심 시가지는 원래 철원이 아니었던 구 이천군 안협면 지역이었다.중심 시가지가 남한에 넘어간 관계로조선시대부터 철원이었던 곳에 태봉국 철원성 터가 있다. 하지만 휴전선이 정확하게 반분하여 관통하는 관계로 전 지역 비무장지대에 속하며 휴전선이 지나가기 이전에도 경원선이 태봉국 철원성 터를 지나갔다.
- 회양군(淮陽郡)
해방 이전부터 있던 군. 지금의 회양군은 회양면·상북면·하북면·사동면(13개리)·난곡면(18개리)·안풍면(3개리) 일대이다. 조선시대 도호부로 지정했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아래는 폐지된 행정구역들. 대다수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북진하여 남한의 수복지구가 된 곳으로, 전역이 휴전선 이남이 되거나 일부만 북한에 잔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행정구역들은 대부분 전쟁중 실시된 군면리 대폐합당시 폐지되어 잔여지역은 주변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다.[23]
화천군(華川郡)
8. 통일 이후[편집]
통일 이후에는 이북 5도청에서 쓰는 분단 직전의 행정구역으로 돌아가 남한 강원도랑 하나가 되거나, 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져 분도될 듯하다. 문제는 북한의 강원도가 워낙 인구 및 개발상태가 우울한 지라 분도될 경우 강원북도는 원산을 제외하면 그대로 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9. 관련 문서[편집]
[1] 한국이 황해도의 일부 지역(서해 5도)도 점유했지만, 이 지역은 경기도를 거쳐 인천광역시에 편입시켰다.[2] 북한 강원도 영서는 개마고원 다음가는 한랭지이다.[3] 38선이 그어질 당시만 해도 남한 땅이었으나, 6.25 전쟁 이후 휴전 과정에서 경계가 바뀌면서 북한으로 넘어갔다.[4] 덕분에 북한이 개성과 황해도를 몽땅 먹는다.[5] 북한에서도 강원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정작 강원도 명칭의 유래인 강릉과 원주는 모두 남한에 있다. 즉, 북한의 강원도는 '강'과 '원'이 없다.[6] 언어학적으로 중부 방언과 동북 방언의 경계선은 영흥군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원산과 문천은 영흥군 이남 지역.[7] 다 빼앗긴 것은 아니다. 다만 6.25 전쟁 이전 북한이 원래 철원군 전체를 가지고 있었던 데다, 철원군에서도 적절한 농경지는 남쪽에 있었기에...[8] 사실 출생지로는 이견이 많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본인 입장에서는 강원도를 고향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9] 그런데 정작 김정은은 지 애비처럼 자기 고향을 삼지연시라고 공식주작화했다. # 이유는 당연히 백두혈통 우상화 조작.[10] 사실 1986년 이후 한반도의 팔도가 남북도로 나뉘게 됐을 때부터 강원도는 분도가 되지 않았다.[11] 반면 북한은 대한민국이 통치하는 군사분계선 이남 부분 강원도를 "남강원도"로 부른다.[12] 함경남도에서 1시 2군, 경기도에서 2군 편입으로 1시 15군. 동년 12월에 영평군 폐지로 1시 14군.[13] 딱 1개 리(정연리)가 남한 관할이다. 당연히 1개 리만으로 평강군을 유지할 수 없어 철원군 갈말읍에 편입하여 관리한다.[14] 원래 1914년 개편 당시에는 고성군이 간성군에 편입해 간성군이란 이름이었다가, 1919년 군청을 간성면에서 고성면으로 옮기고 군명도 따라서 고쳤다.[15] 이후 1962년 12월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넘어갔다.[16]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향토대백과와 북측 자료를 직접 제시하고 있는 CNC 북한학술정보의 자료에 따르면 연천군과 영평군이 1946년 9월까지 명목상으로 경기도 소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링크 모두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공개한 것으로 연결되니 코렁탕 걱정은 없다. 참고로 첫번째 조선향토대백과 자료의 경우 네이버 지식백과측에서 영평군을 양평군으로 오기해 놨다.[17] 남한의 강원도 고성군 지역(수동면 제외)은 1914년 이전까지의 간성군이다.[18] 소군정시기 영평군이 해당지역에 설치되기도 하였으나, 1년 만에 폐지되고 연천군과 철원군에 분할 편입됨[19] 이 때문에 김일성이 며칠간 밥을 먹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20] 1914년에 연천군과 철원군에 분할 흡수시켜 사라진 경기도의 군. 해방 당시 연천군 삭녕면·북면·서남면, 철원군 내문면·마장면·인목면 일대였다.[21] 1914년에 이천군에 흡수시킨 강원도의 군. 해방 당시 이천군 안협면·동면·서면 일대였다.[22] 2010년에 비공식으로 최저기온 -30.5°C를 기록했었다.[23] 김화군의 경우, 북한의 군면리 대폐합 당시 대부분을 남한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아래 행정구역들과 마찬가지로 폐지되고 잔여지역은 신설한 창도군으로 이관하였다가, 금성 전투로 국군이 해당 지역에서 밀려나며 김화군이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남한 역시 수복한 김화군 남부에 잠시 김화군을 설치하였으나, 결국 폐지하고 철원군에 편입시키게 된다. 만약 해당 전투에서 국군의 금성 돌출부가 유지되었다면, 북한의 김화군은 그대로 폐지되고 남한의 김화군은 유지되었을수도 있다.[24] 북한에서는 두음법칙 무시로 인하여 린제군이라 불린다. 이는 아래 연천군도 마찬가지.[25] 38선 이남은 남측 강원도의 홍천군에 편입됨[26] 현재 대한민국 행정구역 기준으로 38선 이남인 서면, 현남면, 현북면 일부를 제외한 양양군 전역과 속초시 전역 및 고성군 남부 2면에 해당.[27] 부군면 통폐합 이전 영평군 지역[28] 대부분 옛 삭녕군 지역.[29] 원래 도청 소재지였던 춘천과 원주를 비롯한 다른 강원도 도시들이 모조리 38선 이남이 되며 38선 이북의 강원도 지역 중 제일 발전된 지역이었던 철원읍 지역이 행정 중심지 노릇을 했다. 철원읍 구시가지 지역 폐허에 남아있는 철원 노동당사 건물이 바로 이때 소군정에 의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