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한글 자모 |
1. 개요[편집]
2. 예[편집]
반시옷으로 쓰였던 우리말은 가을(ᄀᆞᅀᆞᆶ), 겨울(겨ᅀᅳᆶ), 마음(ᄆᆞᅀᆞᆷ), 마을(ᄆᆞᅀᆞᆶ), 윷(ᅀᅲᆺ)[3] 등이 있다. 그 밖에 단독형에서는 /ㅅ/이었지만 모음과 모음 사이(어중)에 오면서 유성음화되어 ᅀ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두어 개"라는 표현이 그 예로, '두서>두ᅀᅥ>두어'의 과정을 겪은 것이다.
日母로 시작하는 한자음에도 썼는데 그 중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것을 대충 추리면 兒(ᅀᆞ) 弱(ᅀᅣᆨ〮) 若(ᅀᅣᆨ〮, ᅀᅣ〯) 壤(ᅀᅣᇰ〯) 穰(ᅀᅣᇰ) 讓(ᅀᅣᇰ〮) 然(ᅀᅧᆫ) 熱(ᅀᅧᇙ〮) 染(ᅀᅧᆷ〯) 辱(ᅀᅭᆨ〮) 乳(ᅀᅲ〯, ᅀᅲ〮) 儒(ᅀᅲ) 柔(ᅀᅲᇢ) 蹂(ᅀᅲᇢ, ᅀᅲᇢ〮, ᅀᅲᇢ〯) 肉(ᅀᅲᆨ〮, ᅀᅲᇦ) 閏(ᅀᅲᆫ〮) 二(ᅀᅵ〮) 而(ᅀᅵ) 耳(ᅀᅵ〯) 人(ᅀᅵᆫ) 仁(ᅀᅵᆫ) 忍(ᅀᅵᆫ〯, ᅀᅵᆫ〮) 認(ᅀᅵᆫ〮) 日(ᅀᅵᇙ〮) 任(ᅀᅵᆷ, ᅀᅵᆷ〮) 妊(ᅀᅵᆷ, ᅀᅵᆷ〮) 入(ᅀᅵᆸ〮) 仍(ᅀᅵᇰ) 정도[이유]이다. 인간(ᅀᅵᆫ간), 일용(ᅀᅵᆯ용), 숫자 이(ᅀᅵ), 윤월(ᅀᅲᆫ월) 등의 문헌상의 출현이 발견된다. 음가가 소실되는 과정을 겪으며 대체로 'ㅇ'으로 바뀌었으나 'ㅅ'으로 바뀌기도 한 고유어 표기와 달리 한자음 표기의 'ㅿ'은 'ㅅ'으로 바뀐 예가 전무하다.
중부 방언과 달리 남부 방언에서는 'ㅅ'으로 바뀐 예가 많이 보인다.(‘무ᅀᅮ: 무수, 무시’, ‘여ᅀᆞ: 여시, 여수’ 등) '이제야 한다'와 같은 강세 보조사 '-야' 역시 본래 '-ᅀᅡ'였다가 특이하게 '야'가 된 예인데, 동남 방언과 서남 방언에는 '-사'로 남아있다(ex. '이제사'). 더 예외적인 예로 'ᄒᆞᄫᆞᆯ(獨)'에 '-ᅀᅡ'가 붙어 형성된 'ᄒᆞᄫᆞᅀᅡ'는 현대 국어에서 '혼자'로 나타난다.
日母로 시작하는 한자음에도 썼는데 그 중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것을 대충 추리면 兒(ᅀᆞ) 弱(ᅀᅣᆨ〮) 若(ᅀᅣᆨ〮, ᅀᅣ〯) 壤(ᅀᅣᇰ〯) 穰(ᅀᅣᇰ) 讓(ᅀᅣᇰ〮) 然(ᅀᅧᆫ) 熱(ᅀᅧᇙ〮) 染(ᅀᅧᆷ〯) 辱(ᅀᅭᆨ〮) 乳(ᅀᅲ〯, ᅀᅲ〮) 儒(ᅀᅲ) 柔(ᅀᅲᇢ) 蹂(ᅀᅲᇢ, ᅀᅲᇢ〮, ᅀᅲᇢ〯) 肉(ᅀᅲᆨ〮, ᅀᅲᇦ) 閏(ᅀᅲᆫ〮) 二(ᅀᅵ〮) 而(ᅀᅵ) 耳(ᅀᅵ〯) 人(ᅀᅵᆫ) 仁(ᅀᅵᆫ) 忍(ᅀᅵᆫ〯, ᅀᅵᆫ〮) 認(ᅀᅵᆫ〮) 日(ᅀᅵᇙ〮) 任(ᅀᅵᆷ, ᅀᅵᆷ〮) 妊(ᅀᅵᆷ, ᅀᅵᆷ〮) 入(ᅀᅵᆸ〮) 仍(ᅀᅵᇰ) 정도[이유]이다. 인간(ᅀᅵᆫ간), 일용(ᅀᅵᆯ용), 숫자 이(ᅀᅵ), 윤월(ᅀᅲᆫ월) 등의 문헌상의 출현이 발견된다. 음가가 소실되는 과정을 겪으며 대체로 'ㅇ'으로 바뀌었으나 'ㅅ'으로 바뀌기도 한 고유어 표기와 달리 한자음 표기의 'ㅿ'은 'ㅅ'으로 바뀐 예가 전무하다.
중부 방언과 달리 남부 방언에서는 'ㅅ'으로 바뀐 예가 많이 보인다.(‘무ᅀᅮ: 무수, 무시’, ‘여ᅀᆞ: 여시, 여수’ 등) '이제야 한다'와 같은 강세 보조사 '-야' 역시 본래 '-ᅀᅡ'였다가 특이하게 '야'가 된 예인데, 동남 방언과 서남 방언에는 '-사'로 남아있다(ex. '이제사'). 더 예외적인 예로 'ᄒᆞᄫᆞᆯ(獨)'에 '-ᅀᅡ'가 붙어 형성된 'ᄒᆞᄫᆞᅀᅡ'는 현대 국어에서 '혼자'로 나타난다.
3. 이름[편집]
오늘날 한글 자모의 유래가 된 훈몽자회에는 '而'로 실렸는데, 'ᅀᅵ'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5]
훈민정음에는 '반치음'(反齒音)으로 지칭되었는데, 이는 '아음'(牙音, 오늘날로는 연구개음), '설음'(舌音, 오늘날로는 치경음 비음과 파열음)과 같이 음의 속성을 나타낸 말이라 글자의 이름은 아니다. 이는 당에서 송 시기 때 정립된 중국 음운학에서 자음을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7음(音)으로 나눈 것을 따른 것이다(중고음의 성모 부분 참조). 애초에 훈민정음에서는 글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아울러 훈민정음에서는 반설음(反舌音) ㄹ과 함께 ㅿ을 이체자(異體字)로 분류하였다.
여타 아음, 순음 등은 해당 자음자가 여럿 있지만 반치음 글자는 'ㅿ'뿐이고[6] 국어학에서는 주로 음소로서의 /ㅿ/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반치음'이라고 자주 부르는 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치음과 시옷을 합친 '반시옷'을 단순히 ㅿ을 이르는 말, '반치음'은 '훈민정음'에서 ‘ㅿ’을 이르는 말로 정의하였다.
1908년 국문연구의정안에서 이어지는 현행 안을 따르면 'ᅀᅵ으ᇫ'이 될 것이다.
훈민정음에는 '반치음'(反齒音)으로 지칭되었는데, 이는 '아음'(牙音, 오늘날로는 연구개음), '설음'(舌音, 오늘날로는 치경음 비음과 파열음)과 같이 음의 속성을 나타낸 말이라 글자의 이름은 아니다. 이는 당에서 송 시기 때 정립된 중국 음운학에서 자음을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7음(音)으로 나눈 것을 따른 것이다(중고음의 성모 부분 참조). 애초에 훈민정음에서는 글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아울러 훈민정음에서는 반설음(反舌音) ㄹ과 함께 ㅿ을 이체자(異體字)로 분류하였다.
여타 아음, 순음 등은 해당 자음자가 여럿 있지만 반치음 글자는 'ㅿ'뿐이고[6] 국어학에서는 주로 음소로서의 /ㅿ/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반치음'이라고 자주 부르는 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치음과 시옷을 합친 '반시옷'을 단순히 ㅿ을 이르는 말, '반치음'은 '훈민정음'에서 ‘ㅿ’을 이르는 말로 정의하였다.
1908년 국문연구의정안에서 이어지는 현행 안을 따르면 'ᅀᅵ으ᇫ'이 될 것이다.
4. 발음[편집]
4.1. 일모(日母)[25]의 표기[편집]
위에서 말한 것처럼 ㅿ은 한자음을 적을 때에는 일모(日母)를 적는 용도로 쓰였다.
음운학이 정립되던 수당 시기 일모(日母)의 음가는 ȵ으로 생각된다.[26] 그러나 이 음의 음가가 불안정해서인지 한자가 전파된 각 지역마다 [ȵ]의 음가가 상당히 변하며 지역 차가 커졌다. 그중 일부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음운학이 정립되던 수당 시기 일모(日母)의 음가는 ȵ으로 생각된다.[26] 그러나 이 음의 음가가 불안정해서인지 한자가 전파된 각 지역마다 [ȵ]의 음가가 상당히 변하며 지역 차가 커졌다. 그중 일부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베트남어 및 일본어 오음(吳音): [ȵ] 음가가 그대로 보존
- 중국 일부 도시의 방언: z
- 한국 한자음: j
아주 단순하게 변화를 설명하자면 원래 중국어의 일모는 ㄴ 계통의 /ȵ/, 또는 /ȵʑ/로 재구되는 소리였는데 뒤에 ㅈ 계통의 소리인 마찰음 /ʑ/ 계통으로 변화했고 훈민정음의 창제 시기의 중국어는 이 발음이었다.[27] 이후 /ʑ/ 계통 소리가 접근음이 되는 과정을 겪었다. 중국어에서 이 변화는 한국의 조선 시대 후기에 일어난 비교적 최근의 변화로, 21세기 중국에서는 일모에 해당하는 자음이 접근음이 표준이라고 하지만 마찰음으로 발음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일본 한자음에서는 오음과 한음이라는 두 종류의 한자음에서 변화 이전과 이후를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日'이라는 글자는 ニチ(nichi)와 ジツ(jitsu)라는 한자음을 둘 다 갖고 있고, '人'이라는 글자는 ニン(nin)과 ジン(jin)이라는 한자음을 둘 다 갖고 있다.[28]
또한 일부 한국어 방언에서 일모가 'ㄹ'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4.2. 소수설: ㅅ 불규칙 활용을 위한 표기[편집]
소수설로는 조선 각지 방언의 ㅅ 불규칙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김동소 외) 즉, 어느 지역에서는 [ㅅ]으로 발음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발음하지 않는 어휘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별도의 표기법을 만들어 내었다는 주장이다. 소수설이 있는 이유는
5. 반치음의 소실[편집]
탈락 시기에 대해서는 두시언해의 간행 시기를 전후하여 소실되기 시작하여 16세기 후반에는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용비어천가(1445년), 월인천강지곡(1447년), 석보상절(1447년), 훈민정음 언해본(1459년), 초간 두시언해(1481년)에는 ㅿ이 관찰되나 선조판 소학언해(1586년)와 두시언해(1632년)’에는 이전에 ㅿ과 같이 쓰였던 단어들이 모두 ‘ㅇ’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1481년~1586년 사이에 소멸되었다고 보면 된다.
문헌상으로는 18세기까지 나타나지만, 이때까지 남은 표기는 과거의 서적을 재간하면서 오래된 표기가 남은 경우나 아니면 외국어를 표기한 사례에 국한된다(예: 듸ᅀᅦᆯ[31]). 한국어 외의 표기, 특히 일본어 표기에는 좀 더 이후 시기에까지 쓰였다(첩해신어 등).
ㅅ 불규칙 활용은 역사적으로 대부분 반치음 말음 용언의 흔적이다. '짓다' 등.[32]
초성으로서의 ㅿ이 제 음가를 가지던 시기에도 종성의 소리는 ㅅ으로, 이후 ㄷ으로 더 일찍부터 합쳐졌다. 훈민정음 창제 당대에는 ㅅ 받침과 구분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문헌상으로는 18세기까지 나타나지만, 이때까지 남은 표기는 과거의 서적을 재간하면서 오래된 표기가 남은 경우나 아니면 외국어를 표기한 사례에 국한된다(예: 듸ᅀᅦᆯ[31]). 한국어 외의 표기, 특히 일본어 표기에는 좀 더 이후 시기에까지 쓰였다(첩해신어 등).
ㅅ 불규칙 활용은 역사적으로 대부분 반치음 말음 용언의 흔적이다. '짓다' 등.[32]
초성으로서의 ㅿ이 제 음가를 가지던 시기에도 종성의 소리는 ㅅ으로, 이후 ㄷ으로 더 일찍부터 합쳐졌다. 훈민정음 창제 당대에는 ㅅ 받침과 구분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6. 기타[편집]
- 간간이 외국어의 [z][33]를 표기하고자 반시옷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1948년 <들온말 적는법>(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특히 'ᅋ(ㆄ)', 'ᅄ(ㅸ)', 'ㅿ', 'ᄙ'은 [f], [v], [z], [l] 발음을 표기할 때 사용해 보자고 1948년 자로 <들온말 적는법>에서 실제로 규정되기까지 하였다. 새국어생활 제14권 제2호(2004년 여름) 2.3. <들온말 적는법> 그러나 이미 사라진 소리를 외국어 표기만 위해 되살려 봤자 구별해서 적기 어려우리라는 반발이 컸기에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24자만을 쓰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 옛한글 입력기를 설치했으면 shift+ㅁ으로 입력할 수 있다.
- 교육 과정에는 이 자음의 발음을 어떻게 하라는 규정은 딱히 없어서 일선 학교에서 고전 시가 등을 낭독할 때 별별 소리가 다 나오기도 한다. 위 추정대로 [z]로 발음하는 사람부터 'ㅈ', 'ㅅ'으로 읽거나 아예 그 부분만 빼놓고 읽는 사람까지… 예를 들어, 'ᄀᆞᅀᆞᆶ(가을)'을 발음할 때 앞의 'ᄀᆞ'는 다들 그냥 '가', '거'에 가깝게 발음하지만, 뒤의 'ᅀᆞᆶ'은 [zʌl], [d͡ʑʌl], [sʌl], [t͡ɕʌl], [ʌl] 등이 다 나온다는 얘기.
- 서예에서 쓸 때는 삼각형을 한번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厶처럼 왼쪽과 아래쪽 변을 그리고 오른쪽 변을 위에서 아래로 그린다.
- 대부분의 글꼴에서 조금 이질적으로 표현된다. 명조 글꼴에서도 붓글씨의 모양이 나타나지 않고 꼭지 달린 삼각형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홍보 문구에서 ㅅ을 삼각형 모양으로 쓰기도 하는데, 그게 이 반시옷이랑 닮아 반시옷을 아는 자들은 흠칫하기도 한다.
[1] 마찰음으로 보았을 때[2] 접근음으로 보았을 때[3] 반시옷이 어두에서 쓰인 유일한 사례다.[이유] 兒(ᅀᆞ→아)를 제외한 모든 한자음들이 /i/나 /j/로 시작한다. 이 한자들은 현대 중국어 보통화의 한어병음상으로는 전부 r로 시작하도록 표기하는데, 이유는 19세기까지만 해도 관화에서는 r를 세게 발음해서, 이 음가가 그대로 내려왔다면 오늘날 한어병음상 r로 시작하는 낱말을 죄다 j로 써야했을 것이다. 옛날에 원나라 때 마르코 폴로가 들은 바 일본이라는 먼 나라를 오늘날 "르번궈(日本國)"가 아니라 지팡구라고 기록하게 된 이유도 이렇다. 이 낱말들은 현대 일본어에서는 대개 じ 또는 に 그리고 여기에 や행을 작게 써서 합친 발음(지, 니, 주, 뉴 등)이고, 베트남어에서는 nh로 시작하는 것들이다. 표준 중국어 한어병음으로 兒, 二, 而, 耳 등은 er로 어두가 아닌 어말이 r이다.[5] 훈몽자회에서는 'ㅋ', 'ㅌ'과 같이 당시에 종성 위치에서 소리가 나지 않던 자음은 '키'(箕), '티'(治)라고 하였다. 애당초 '기역'(其役), '시옷'(時衣)과 같은 것은 자음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자음의 발음법을 소개하기 위함이 더 컸는데, '읔'(소리는 [윽])과 같이 'ㅋ'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굳이 예로 제시할 이유가 없었다. 'ㅿ' 역시 <훈민정음>에 따르면 종성에서 'ㅅ'으로 중화된다고('ㅅ'으로 쓸 수 있다) 설명하고 있으니 자체적인 종성 음은 없었던 것이고 훈몽자회에서 '으ᇫ'에 해당하는 부분을 적지 않은 것이다.[6] 일례로 순음 글자는 'ㅁ, ㅂ, ㅃ, ㅍ' 4개가 존재한다. 반치음과 마찬가지로 대응 글자가 1개뿐인 것은 반설음 'ㄹ'이 있는데, 'ㄹ'은 '리을'이라는 글자 이름도 있고 음운론적으로도 유음 등 달리 표현할 말이 많으므로 'ㄹ'을 언급할 때 '반설음'이라고 지칭하는 일은 별로 없다.[7] 이외에 [zi]발음을 별도로 표기하기 위해 ᅀᅴ로 표기했다.[8] J.Scott(1893)[9] H.B. Hulbert(1903)[10] G.J. Ramstedt(1939)[11] 小倉進平(1944), 河野六郞(1945), 李崇寧(1956), 魚德溶(1960), 崔鉉培(1961), 李乙煥(1961), 劉昌惇(1964), 김석득(1965), 朴炳采(1968), 李基文(1972), 都守熙(1975), 金龍卿(1975), 崔明玉(1978), 吳鐘甲(1981), 金斗泳(1984), 박창원(1985), 허웅(1985), 孫上洛(1987), 김영황(1990), 崔鶴根(1991), 김태현(1991), 류렬(1992), 김형주(1996), 崔春泰(1996), 金廉河(1998), 김동소(2002), 高淑子(2003), 김무림(2004)[12] 앞서 말하듯이 이 음가로 추정하는 학자가 제일 압도적이다.[13] 方種鉉(1940)[14] 金亨奎(1953)[15] 南廣佑(1962)[16] 徐延範(1982)[17] 金明圭(1961), 황희영(1979)[18] 權在善(1979)[19] 박동규(1981)[20] 白寅斌(1981)[한자어] 21.1 21.2 한자어 한정[22] 李潤東(1988), 조운성(1999)[24] 姜存宣(1989)[25] 중국 음운학에서 중국어 중고음(수나라, 당나라의 발음)의 성모(聲母, 두자음)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삼십육자모(三十六字母) 중 하나[26] 단 ȵʑ로 재구한 학자들도 여럿 있으나 다른 성모들은 전부 하나의 자음으로 구성되었는데 日母만 중고한어 시기 자음군이 존재했다고 인정하긴 어려울 것이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니면 자음군이 아니라 선비음화 마찰음일 수 있다.[27] 한국어에서는 삼짇날(3월 3일)에 'ㅈ'이 나타나는 것이 이 흔적이다.[28] ザ행 대부분은 z으로 발음하나 ジ는 구개음화로 d͡ʑi로 발음한다. 자세한 건 요츠가나 참고.[29] 현대 한국어의 초성 이응처럼 음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IPA 기호. 현재 폐지되어 있으나 비공식적으로 자주 통용된다. IPA에 따르면 그냥 빈칸으로 쓴다. [ ] 이러는 식으로.[30] 훈민정음에서는 이러한 'ㄹ', 'ㅿ', 'ㆁ'을 '이체자'로 부른다. 한자학에서 쓰는 '이체자'와는 의미가 다르다.[31] 옛날에는 '잔듸(잔디)'처럼 구개음화를 피하기 위해 ㅣ를 ㅢ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32] 드물게 수도권에서 '줏다 → 줍다'처럼 본래 반치음 말음이었다가 ㅂ 불규칙 활용으로 변화한 예도 있다.[33] 같은 종류의 발음을 내는 일본어의 ざ행과 러시아어의 з 역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