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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1]
Reino de Portugal e dos Algarves
Regnum Portugalliae et Algarbiae
Kingdom of Portugal and the Algarves
파일:포르투갈 왕국 국기.png
국기(1834-1910)
In hoc signo vinces
이 표지로 말미암아 그대는 승리를 거두리라[2]
Vis Unita Maior Nunc et Semper
단결은 이제와 항상 영원히 가장 강력한 힘이다[3]
상징
국가
애국의 찬가
(Hymno Patriótico, 1808-1826)
헌장의 찬가
(Hymno da Carta[4], 1826-1910)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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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년 왕조 성립
1581년 필리프 1세 즉위
1640년 ~ 1668년 포르투갈 독립전쟁
1815년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으로 체제 변경
1822년 브라질 독립독립전쟁 발발
1825년 연합 해체
1828년 ~ 1838년 포르투갈 내전
1910년 멸망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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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현재의 포르투갈과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
코임브라 (1139년 ~ 1255년)
리스본 (1255년 ~ 1808년, 1821년 ~ 1910년)
리우데자네이루 (1808년 ~ 1821년)[5]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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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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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제(1139~1822/1823~1826/1828~1834)
입헌군주제(1822~1823/1826~1828/1834~1910)
국가원수
정부수반
주요 국왕
아폰수 1세(1139~1185)
디니스 1세(1279~1325)
주앙 1세(1385~1433)
아폰수 5세(1438~1481)
주앙 2세(1481~1495)
마누엘 1세(1495~1521)
주앙 4세(1640~1656)
주앙 5세(1706~1750)
마누엘 2세(1908~1910)

1. 개요2. 상징
2.1. 국기
3. 역사
3.1. 건국 과정3.2. 보르고냐 왕조3.3. 아비스 왕조3.4. 압스부르구 왕조(이베리아 연합)3.5. 브라간사 왕조
4. 정치
4.1. 국왕4.2. 총리4.3. 의회
5. 식민지

언어별 명칭
Reino de Portugal
Regnum Portugalliae
기타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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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ugal
Portugal
Portugal
Portugal
Portogallo
Portugal
برتغال (Burtughāl)
Poytugal
Ureno
پرتغال (Portoğâl)
පෘතුගාලය (Pṛtugālaya)
Portugis, Portugal
Portugál
葡萄牙 (Pútáoyá)
/ 佛郎機, 波爾杜葛爾 (명대)
博都雅 (청대 초기)
포르투갈
葡萄牙 (Porutogaru)

1. 개요[편집]

1139년부터 1910년까지 포르투갈을 지배한 왕국.

1243년 알가르브 지방까지 정복한 이후에는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을 칭했고, 1815년부터는 브라질 식민지를 본토와 동급으로 격상시켜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왕국을 칭했다가, 1824년 브라질 독립 이후부터는 다시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했다.

2. 상징[편집]

2.1. 국기[편집]

파일:포르투갈 왕국 국기.png

3. 역사[편집]

3.1. 건국 과정[편집]

프랑스 카페 왕조 방계인 부르고뉴-카페 가문 출신의 엔히크 드 보르고냐는 헤콩키스타에 참전하여 레온 왕국의 포르투갈 백작으로 서임되었다.

엔히크의 아들 아폰수는 1139년 레온 왕실에 맞서 포르투갈 왕국을 선포했고, 이로써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었다.

3.2. 보르고냐 왕조[편집]

포르투갈의 첫번째 왕조.

현재 포르투갈 최남단인 알가르브 지방까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수복하여 알가르브 왕국을 설치했는데, 알가르브 왕위는 포르투갈 왕위에 종속된 상태였기에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3.3. 아비스 왕조[편집]

보르보냐 왕조의 남성 직계 혈통이 단절되자 카스티야 국왕 후안 1세에게 시집 간 베아트리스 공주가 포르투갈 여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카스티야에 종속될 가능성을 우려한 포르투갈 귀족들은 보르고냐 왕조의 사생아였던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을 왕으로 추대했고, 그가 카스티야군을 격퇴하면서 포르투갈은 주앙 1세와 그 후손들인 아비스 왕조가 지배하게 되었다.

주앙 1세 시대부터 포르투갈 왕실은 지중해 무역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항해사들을 적극 후원했고, 이는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고 최초의 식민제국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비스 왕조 치하의 포르투갈은 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을, 아프리카에서는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아시아에서는 오만과 인도 아대륙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식민지로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세바스티앙 왕이 모로코 원정을 떠났다가 전사하고, 그 뒤를 이은 숙부 엔히크 왕 또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6] 아비스 왕조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3.4. 압스부르구 왕조(이베리아 연합)[편집]

아바스 왕조 직계 단절 이후 스페인 합스부르크(압스부르고) 왕조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국왕 필리프 1세로 즉위하면서 이베리아 전체가 압스부르고 왕조에 의해 통일되었는데, 이 시기를 이베리아 연합이라 한다.

이 당시 포르투갈을 지배한 압스부르구[7] 왕조는 왕들이 모두 필리프[8]라는 이름을 사용했기에 필리피나 왕조[9]라 불리기도 했다.

3.5. 브라간사 왕조[편집]

아비스 왕조의 사생아의 후손인 브라간사 공작 주앙이 스페인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포르투갈 국왕 주앙 4세로 즉위하면서 포르투갈은 독립을 회복할 수 있었다.

4. 정치[편집]

4.1. 국왕[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포르투갈 국왕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총리[편집]

4.3. 의회[편집]

5. 식민지[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포르투갈 제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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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알가르브 왕국과 동군연합 이전에는 포르투갈 왕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2] 1139년 아폰수 1세 시기에 잠깐동안 쓰인 표어로,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스어로는 "ἐν τούτῳ νίκα(이로써 승리하리라)"라고 표현되었다.[3] 라틴어로, 가톨릭교도라면 쉽게 알겠지만 '영광송'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의 변형이다. 이외에도 시기마다 다양한 표어가 사용되었다.[4] 왕국 시기 포르투갈어 철자법에 따른 표기이다. 공화정 수립 후 개정된 현대 철자법에 따른 표기는 Hino da Carta이다.[5]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피난했다.[6] 엔히크는 본래 가톨릭 추기경이었기에 자손을 낭길 의사가 전혀 없었는데, 조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왕조가 단절될 위기가 오자 불가피하게 환속하여 왕위를 계승했다.[7] 압스부르고의 포르투갈식 발음.[8] 스페인어로는 펠리페.[9] 어감이 필리핀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 당시 포르투갈의 필리피나 왕조와 스페인령 필리핀은 둘다 펠리페 2세의 이름에저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