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포르투갈 왕국의 군주 칭호.
2. 역대 국왕[편집]
2.1. 보르보냐 왕조[편집]
2.2. 아비스 왕조[편집]
2.3. 압스부르구 왕조(필리피나 왕조)[3][편집]
2.4. 브라간사 왕조[편집]
2.5.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왕조[편집]
3. 왕위 요구자[편집]
3.1. 재통합 이전[편집]
3.1.1. 브라간사 왕조(미겔리스타)[편집]
포르투갈 내전 패배로 퇴위한 미겔 1세를 지지한 미겔주의자(미겔리스타) 계열 왕위 요구자.
3.1.2.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왕조(왕정 폐지 이후)[편집]
3.2. 브라간사 왕조(재통합 이후, 미겔리스타)[편집]
마누엘 2세는 자손을 남기지 못했기에 미겔 1세 계통(미겔리스타)의 두아르트 누누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이에 따라 미겔리스타 계통의 브라간사 왕조만이 포르투갈 왕위를 요구하고 있다.
[1] 카스티야 국왕 후안 1세의 왕비로서 재위 기간 내내 카스티야에 체류했고, 포르투갈 통치 역시 남편 후안 1세가 맡았기에 실제 포르투갈의 여왕으로 봐야할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2] 사생아로 간주되어 정식 국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 의해 폐위되었으나, 포르투갈 민족주의 역사관에서는 투사(o Lutador) 또는 독립주의자(o Independentista)라는 긍정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높이 평가받고 있다.[3] 스페인의 포르투갈 지배(이베리아 연합).[4]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5]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6]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7] 부부 공동 재위.[8] 브라질 황제 페드루 1세.[9] 마리아 2세의 왕위를 찬탈했으나 포르투갈 내전에서 패하여 퇴위했다.[10] 포르투갈 내전 승리로 1834년에 복위했고, 1837년부터는 남편 페르난두 2세와 공동으로 재위했다.[11] 마리아 2세의 남편으로서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고, 마리아 2세 사망 직후 퇴위했다.[12]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왕정 폐지.[13] 미겔 1세의 아들.[14] 미겔 자누아리우의 아들.[15] 1910년 왕정 폐지로 망명한 이후 1932년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여 브라간사-사셰-코부르구-고다 왕조는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