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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139년부터 1910년까지 포르투갈을 지배한 왕국.
1243년 알가르브 지방까지 정복한 이후에는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을 칭했고, 1815년부터는 브라질 식민지를 본토와 동급으로 격상시켜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왕국을 칭했다가, 1824년 브라질 독립 이후부터는 다시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했다.
1243년 알가르브 지방까지 정복한 이후에는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을 칭했고, 1815년부터는 브라질 식민지를 본토와 동급으로 격상시켜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왕국을 칭했다가, 1824년 브라질 독립 이후부터는 다시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했다.
2. 상징[편집]
2.1. 국기[편집]

3. 역사[편집]
3.1. 건국 과정[편집]
3.2. 보르고냐 왕조[편집]
포르투갈의 첫번째 왕조.
현재 포르투갈 최남단인 알가르브 지방까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수복하여 알가르브 왕국을 설치했는데, 알가르브 왕위는 포르투갈 왕위에 종속된 상태였기에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 포르투갈 최남단인 알가르브 지방까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수복하여 알가르브 왕국을 설치했는데, 알가르브 왕위는 포르투갈 왕위에 종속된 상태였기에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알가르브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3.3. 아비스 왕조[편집]
보르보냐 왕조의 남성 직계 혈통이 단절되자 카스티야 국왕 후안 1세에게 시집 간 베아트리스 공주가 포르투갈 여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카스티야에 종속될 가능성을 우려한 포르투갈 귀족들은 보르고냐 왕조의 사생아였던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을 왕으로 추대했고, 그가 카스티야군을 격퇴하면서 포르투갈은 주앙 1세와 그 후손들인 아비스 왕조가 지배하게 되었다.
주앙 1세 시대부터 포르투갈 왕실은 지중해 무역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항해사들을 적극 후원했고, 이는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고 최초의 식민제국인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비스 왕조 치하의 포르투갈은 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을, 아프리카에서는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아시아에서는 오만과 인도 아대륙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식민지로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세바스티앙 왕이 모로코 원정을 떠났다가 전사하고, 그 뒤를 이은 숙부 엔히크 왕 또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1] 아비스 왕조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카스티야에 종속될 가능성을 우려한 포르투갈 귀족들은 보르고냐 왕조의 사생아였던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을 왕으로 추대했고, 그가 카스티야군을 격퇴하면서 포르투갈은 주앙 1세와 그 후손들인 아비스 왕조가 지배하게 되었다.
주앙 1세 시대부터 포르투갈 왕실은 지중해 무역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항해사들을 적극 후원했고, 이는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고 최초의 식민제국인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비스 왕조 치하의 포르투갈은 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을, 아프리카에서는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아시아에서는 오만과 인도 아대륙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식민지로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세바스티앙 왕이 모로코 원정을 떠났다가 전사하고, 그 뒤를 이은 숙부 엔히크 왕 또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1] 아비스 왕조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3.4. 압스부르구 왕조(이베리아 연합)[편집]
3.5. 브라간사 왕조[편집]
아비스 왕조의 사생아의 후손인 브라간사 공작 주앙이 스페인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포르투갈 국왕 주앙 4세로 즉위하면서 포르투갈은 독립을 회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