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 개요[편집]
스웨덴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고대[편집]
3. 중근세[편집]
3.1. 바이킹 시대와 스웨덴 왕국의 형성[편집]
3.2. 초기 스웨덴 왕국[편집]
스웨덴 왕국은 가톨릭 교회를 받아들여 국교로 선포함으로써 북유럽 다신교와 결별하고 서구 가톨릭 문화권에 편입되었다.
3.3. 칼마르 연합[편집]
3.4. 스웨덴 독립전쟁[편집]
3.5. 바사 시대와 스웨덴 제국의 형성[편집]
구스타브 1세 바사는 루터파 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스웨덴 교회를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시켜 국왕 아래에 두고, 이를 통해 뫙권을 강화했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스웨덴은 발트해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여 이른바 '스웨덴 제국'을 형성했는데, 바사 왕조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30년 전쟁에 개신교 진영으로 참전하여 활약하며 '북방의 사자왕'이라 불렸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외동딸로서 즉위한 크리스티나 여왕 치세에도 스웨덴의 번영은 지속되었으나, 그녀는 가톨릭에 귀의하기 위해 스스로 왕위를 사촌인 칼 10세 구스타브에게 넘기고 교황령 로마로 이주했고, 이로써 구스타브 1세 시대 이래 이어진 바사 시대는 막을 내렸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스웨덴은 발트해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여 이른바 '스웨덴 제국'을 형성했는데, 바사 왕조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30년 전쟁에 개신교 진영으로 참전하여 활약하며 '북방의 사자왕'이라 불렸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외동딸로서 즉위한 크리스티나 여왕 치세에도 스웨덴의 번영은 지속되었으나, 그녀는 가톨릭에 귀의하기 위해 스스로 왕위를 사촌인 칼 10세 구스타브에게 넘기고 교황령 로마로 이주했고, 이로써 구스타브 1세 시대 이래 이어진 바사 시대는 막을 내렸다.
3.6. 팔츠-츠바이브뤼켄 왕조 치하의 스웨덴 제국[편집]
3.7. 자유의 시대[편집]
대북방전쟁 패배의 여파로 스웨덴의 왕권은 크게 약화되고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었는데, 이는 '자유의 시대'라 불리는 입헌군주제 시대를 불러왔다.
3.8. 구스타브 3세의 절대왕정 복고[편집]
4. 근대[편집]
4.1. 칼 13세와 베르나도트[편집]
구스타브 4세 아돌프 축출 이후 구스타브 3세의 동생이자 구스타브 4세의 숙부인 칼 13세가 왕으로 옹립되었는데,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기에 왕국을 유지하려면 양자를 들여야했다.
당시 유럽 최강국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였고 스웨덴과 프랑스 양국 관계도 우호적이었기에, 나폴레옹의 최측근이자 프랑스군 원수였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칼 13세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그는 노쇠한 왕을 대신하여 스웨덴을 통치하는 섭정까지 맡게 되었다.
베르나도트는 비록 프랑스 출신이었지만 스웨덴의 국익을 우선순위로 두고 판단하여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는 나폴레옹을 적대하는 대프랑스 동맹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나폴레옹의 몰락에 기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전후에는 친프랑스 국가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할양받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을 수립했다.
당시 유럽 최강국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였고 스웨덴과 프랑스 양국 관계도 우호적이었기에, 나폴레옹의 최측근이자 프랑스군 원수였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칼 13세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그는 노쇠한 왕을 대신하여 스웨덴을 통치하는 섭정까지 맡게 되었다.
베르나도트는 비록 프랑스 출신이었지만 스웨덴의 국익을 우선순위로 두고 판단하여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는 나폴레옹을 적대하는 대프랑스 동맹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나폴레옹의 몰락에 기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전후에는 친프랑스 국가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할양받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을 수립했다.
4.2.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과 베르나도테 왕조[편집]
4.3. 노르웨이의 독립[편집]
1905년 노르웨이가 덴마크 왕자 출신 호콘 7세를 국왕으로 옹립하면서 독립을 쟁취했는데, 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이기도 했기에 별다른 유혈사태 없이 노르웨이의 독립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의 해체가 이루어졌다.
4.4. 사회민주노동자당의 집권과 2차 대전[편집]
1차 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이 수권정당으로 부상했고, 1932년부터 페르 알빈 한손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
2차 대전 시기 사민당은 우파 , 정당들까지 끌어들여 거국내각을 구성했고,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덴마크, 노르웨이, 소련의 침공에 시달린 핀란드 등의 주변국들과 달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중립을 유지하며 전쟁의 참화를 피해가는데 성공했다.
2차 대전 시기 사민당은 우파 , 정당들까지 끌어들여 거국내각을 구성했고,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덴마크, 노르웨이, 소련의 침공에 시달린 핀란드 등의 주변국들과 달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중립을 유지하며 전쟁의 참화를 피해가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