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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역사
3.1. 전근대3.2. 러시아 제국 시대3.3. 러시아 내전(적백내전)3.4. 소련 시대3.5. 러시아 연방 시대
4. 지리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프리모리예 변경주(연해주)의 주도이자 최대도시.

고대부터 여러 한민족 국가[1] 및 퉁구스계 국가[2]들이 지배한 바 있으나 근대 이전까지는 이름 없는 촌락에 불과했고, 본격적으로 도시로 개발된 것은 러시아 제국이 1860년 베이징 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은 이후였다.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는 부동항이라는 입지 덕분에 러시아 제국 해군 및 소련 해군의 거점 도시로서 발달했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외국인의 방문이 잦아져서 보안 문제 때문에 해군 병력 상당수가 인근의 나홋카 및 포키노로 옮겨갔으나,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 자체는 러시아 연방의 극동 개발 거점으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하바롭스크를 제치고 극동 연방관구 전체의 수도 자리까지 가져왔다.[3]

2. 명칭[편집]

러시아어로 동방(보스토크)의 지배자(블라디크)를 뜻하며, 러시아 제국이 극동에 위치한 부동항이라는 지리적 입지에 주목하여 붙인 명칭이다.

별명으로는 동방의 이스탄불이 있는데 동로마 제국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4]를 확보하기 위해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오스만 제국 및 서방 연합국[5]을 상대로 크림 전쟁을 치렀다가 패배한 러시아 제국이 4년 뒤인 1860년 베이징 조약을 통해 확보한 극동 영토(연해주)에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을 모방한 신도시를 건설한 것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였기 때문이다.

3. 역사[편집]

3.1. 전근대[편집]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남부 일대에서 최초로 문명 사회를 형성한 것은 옥저 계열의 한민족 공동체인 북옥저[6]였고, 이후 고구려발해에 속했음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만, 그 당시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이렇다할 이름이 없는 촌락에 불과했다.[7]

발해 멸망 이후에는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에 속했으며, 원나라 멸망 이후에는 여진족이 부족 사회를 형성했다가 청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청나라 치하에서 연해주 일대는 만주의 일부로서 만주족 이외의 민족이 거주할 수 없는 봉금 지역이었으나, 정작 만주족 역시 대규모로 정착하진 않아서 블라디보스토크는 계속 작은 촌락으로 남았다.

3.2. 러시아 제국 시대[편집]

1860년 베이징 조약을 통해 연해주청나라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할양되자,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제국 해군의 군항으로 개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본토인 유럽 러시아 일대에서 극동 지방까지 병력과 물자를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부설했는데, 그 종착역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였기에 황태자 시절의 니콜라이 2세가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니콜라이 2세 즉위 이후 일어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일본 함대에 의해 괴멸당할 상황에 내몰리자, 러시아 정부는 발트해에 주둔하던 발트 함대로 하여금 극동까지 항해하여 러일전쟁에 참전하도록 했는데, 당시 발트 함대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였다.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끄는 발트 함대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거쳐 동쪽으로 항해를 지속한 끝에 동해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했으나,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해군의 기습을 받아 괴멸당했고, 일부 군함만이 가까스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하는데 그쳐 결국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

3.3. 러시아 내전(적백내전)[편집]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후 일어난 러시아 내전(적백내전) 당시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러시아 정권에 저항하던 백군의 최후 거점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였는데, 1922년 백군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제4의 로마로 선포하기까지 했으나[8], 같은 해에 적군 계열의 극동 공화국 인민혁명군[9]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3.4. 소련 시대[편집]

러시아 내전이 적군의 승리로 종식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 역시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소련 치하 블라디보스토크에도 한민족을 비롯한 여러 동아시아계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해당 민족들이 모두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계를 비롯한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3.5. 러시아 연방 시대[편집]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연방은 극동 개발의 거점으로서 블라디보스토크의 가치에 주목했는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극동 연방관구의 수도를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전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성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4. 지리[편집]

5. 관련 문서[편집]

[1] 북옥저, 고구려, 발해.[2] 금나라, 청나라 등.[3] 인구로는 여전히 하바롭스크가 극동 연방관구의 최대도시지만 블라디보스토크가 점차 인구로도 하바롭스크를 매섭게 추격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4] 이스탄불의 옛 이름.[5]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6] 단일국가가 아니라 여러 성읍국가의 집합이었다.[7]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 인구의 1/3밖에 안 되는 중소도시인 우수리스크가 발해 시대에는 솔빈부라는 정식 행정구역 명칭까지 받은 주요 도시로서 훨씬 높은 위상을 가졌다.[8] 15세기 후반 모스크바 대공국과 그 뒤를 이은 루스 차르국, 러시아 제국모스크바로마와 '제2의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뒤를 이은 '제3의 로마'로 선포하며 로마 제국 계승을 주장했는데, 러시아 제국 부흥을 추구한 백군이 그 연장선상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모스크바를 계승한 제4의 로마로 선포한 것이었다.[9] 극동 공화국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극동 지방에 만든 완충국으로, 극동 공화국 인민혁명군은 러시아 적군이 간판만 바꿔 단 거나 다름 없는 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