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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유럽(r22 Bl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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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류:유럽의 황제]]
2[목차]
3== 개요 ==
4유럽식 [[황제]] 칭호는 [[로마 황제]]에서 비롯되었으며, 관례상 황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지만 그 구체적인 정의와 존재 양상을 보면 한자문화권의 황제 칭호와 무작정 일대일 대응시키긴 힘들다.
5== 역사 ==
6=== [[고대 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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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로마 제국]]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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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include(틀: 상세 내용, 문서명=로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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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유럽의 황제 칭호는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한자문화권 황제 칭호와 달리 [[로마 공화정]]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결합하여 공화정 체제 내에서 합법적인 독재를 구축하려는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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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그래서 [[로마 제국]]의 초기 정치 체제는 겉으로는 시민의 대표인 프린켑스(Princeps)가 다스리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주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세습까지 가능한 제정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이른바 원수정(Principatus) 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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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이러한 체제는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을 자식이 없을 때 전임 황제의 혈통과 무관하지만 유능한 자가 제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하여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오현제 시대의 전성기를 가능하게 했지만, 역으로 누구나 힘만 있으면 제위에 도전하여 국가를 내전에 빠뜨릴 위험성 역시 내포하고 있었고 그게 극대화되어 제국의 쇠퇴를 불러온 시기가 바로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군인 황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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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세기 말에 집권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은 바로 동방식 전제군주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공화정 시대의 잔재를 대폭 약화시킨 도미나투스(Domintus) 체제였고, 거기에 제국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선임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본인의 3명의 공동 황제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Tetrarchia)을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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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은 그가 자진 퇴위한 후 혈연 관계가 없는 공동 황제들 간의 내전으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내전의 승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 역시 도미나투스 체제를 통한 황제권 강화의 필요성은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비롯한 전임 황제들이 박해했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황제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황권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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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번외: 3세기의 자칭 독립 제국들 ====
19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이 흔들리던 3세기의 위기(군인 황제 시대)에는 여러 속주에서 황제를 참칭하는 반란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 대다수는 중앙정부를 직접 전복하려 시도하든, 자신 근거지에서 황제놀이를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립하든 로마 제국이라는 틀 자체를 깨려하지는 않았으나, 일부 군벌들은 아예 로마에서 벗어난 독립 제국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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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렇게 형성된 제국이 바로 갈리아 속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리아 제국과 동방 속주들을 장악하며 형성된 팔미라 제국인데, 이들이 장기간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면 로마가 유일한 황제국이라는 관념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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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그러나 두 제국 모두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주도한 재정복 전쟁으로 무너지며 단명한 반란정권에 그치고 말았고, 이후 사두정 시대에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 갈리아계 로마인 군벌 카라우시우스가 건국했다.]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로마에 재정복됨으로써 로마 이외의 황제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관념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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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중세 ===
25==== 제위 계승의 제1요건: 로마 제국의 정통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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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제국의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은 굳건하게 유일한 황제국으로서 존재했고, 서방 국가들도 그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좋든 싫든 유럽에서 황제는 곧 [[로마 황제]]요, 로마 황제가 아닌 황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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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따라서 동로마에 맞서 황제를 칭하려는 이민족 국가들도 좋든 싫든 로마의 정통성을 가져다가 황제를 칭해야만 했고, 처음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가 800년에 [[로마인의 황제]]를 칭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황제를 칭한 이민족 국가들은 국호에 로마를 집어넣거나[* 신성 로마 제국, 로마니아 제국([[라틴 제국]]).], 로마와 관련된 명칭이 들어간 황제 칭호[* 불가리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의 차르 등]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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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서방 세계의 부가적 요건: 교회의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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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서방 가톨릭 세계에서는 이와 별도로 교회의 인정, 정확히는 교황의 인정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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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고대 로마에서 직접 이어지는 제국이라 굳이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로마 제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방 가톨릭 세계의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은 태생부터 교황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에게 관을 씌워주며 시작되었기에 교회의 인정이 곧 제국의 존립 그 자체를 보증해주는 필수요소였으며, [[신성 로마 황제]]들은 황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교황으로부터 대관받기 이전까지는 왕을 칭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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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이 여러 영방국가의 집합에 불과한 상태가 되어 유명무실해지는 계기가 된 건 가톨릭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개신교가 제국 북부를 휩쓴 16~17세기 종교 개혁이었으니, 말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가톨릭 교회의 인정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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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번외: 중세 스페인의 자칭 황제들 ====
36레콩키스타가 진행 중이던 중세 스페인에서는 여러 가톨릭 왕국의 군주들이 '''전히스파니아의 황제'''를 칭했으나, 이들은 억지로라도 로마와의 연관성을 찾아서 칭제한 나라들과 달리 로마 제위 계승과 무관하게 칭제한 것이기에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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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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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서방: 신성 로마 제국의 선출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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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5세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로 선출된 막시밀리안 1세는 교황이 집전하는 대관식 이전까지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하던 관례를 깨고 선출 직후에 바로 황제를 칭했는데, 본거지인 오스트리아 외에도 저지대(지금의 베네룩스)를 비롯한 여러 영지를 획득하며 기세를 올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세에 눌린 교황이 마지못해 이를 인정하여, 교황 집전 대관식 없이도 황제를 칭할 수 있게 되었고, 아예 [[신성 로마 황제]]의 공식 칭호가 '''선출된 로마 황제'''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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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시밀리안 1세 사후에 선출된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대관받기는 했으나, 이는 황제로 즉위하고 수십년이 지난 1527년에 교황의 도시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교황에 대한 황제권의 우위를 확정지은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였으므로, 이때의 대관식은 오히려 교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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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카를 5세 이후의 황제들은 위와 같은 형식적인 대관식마저 치르지 않고 선거 직후에 바로 황제가 되었으며, 이는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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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동방 ====
45===== 오스만 제국의 카이세리 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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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 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카이세리 룸)을 칭하고, 동로마의 국교였던 정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정교도 신민들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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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이와 별도로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페르시아어로 '왕들의 주인'을 뜻하는 중동식 황제 칭호인 파디샤 역시 사용하고, 1517년부터는 이슬람 세계의 수장인 칼리파 칭호 역시 카이로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강탈하여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중근동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디샤이자 칼리파로서,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는 로마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두 거대 종교권에 걸친 제국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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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전러시아의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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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가 마지막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조이 팔레올로기나(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하고 차르를 칭했으며, 이반 4세 시대부터는 공식 국호 역시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루스 차르국으로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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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루스 차르국은 유럽의 주류 국가들과 이질적인 동방 국가인데다 칭호 역시 유럽의 국제어인 라틴어가 아닌 슬라브어 칭호인 차르고, 국력도 주변국들[* 오스만,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 국제 사회에서 제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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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개혁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고 대북방전쟁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연승행진을 이가면서 열강을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1721년에 기존의 차르 칭호 대신 서구식 칭호인 '''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황제)'''를 칭하며 명실상부한 황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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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근대 ===
56==== 나폴레옹의 등장과 변화 ====
57==== 19세기의 칭제 릴레이 ====
58==== 제정의 종말: 1차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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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유럽 문화권의 황제국 및 칭호 목록 ==
r5
60 * [[로마 제국]]: [[로마 황제]]
r7
61 * [[서로마 제국]]
62 * [[동로마 제국]]
r9
63 * [[니케아 제국]]
64 * 트라페준타 제국
r10
65 * 3세기 로마 제국의 지방정권[* 모두 로마계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이 아닌 독자적인 제국을 선포했다가 진압당했다.]
66 * 갈리아 제국
67 * 팔미라 제국
68 * 브리타니아 제국
r5
69 * 서로마 계승 주장 국가
70 * [[신성 로마 제국]]: [[신성 로마 황제]]
71 * 프랑스 제국: [[프랑스인의 황제]]
r7
72 * 프랑스 제1제국
73 * 프랑스 제2제국
r5
74 *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 황제]]
75 * 독일 제국: 독일 황제
76 * 동로마 계승 주장 국가
77 * 불가리아 제국: 불가리아 차르
r10
78 * 불가리아 제1제국
79 * 불가리아 제2제국
r5
80 * [[라틴 제국]]: [[라틴 황제]]
81 * 세르비아 제국: 세르비아 차르
82 * 오스만 제국: 카이세리 룸
83 * 러시아 제국: 전러시아의 황제
84 * 기타
r10
85 * 중세 스페인: 전히스파니아의 황제
r5
86 * 브라질 제국: 브라질 황제
r18
87 * 영국령 인도 제국: 인도 황제
88== 관련 문서 ==
89 * [[로마 제국 계승론]]
90 * [[로마인의 황제]]
91 * [[두 황제 문제]]
92 * [[제3의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