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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가문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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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대관식을 받은 적이 없는 로마인의 왕이지만 사실상 황제

1. 개요2. 역사
2.1. 왕조 교체 이전: 프랑크 왕국의 궁재 가문2.2. 카롤루스 왕조의 통일 프랑크 왕국2.3.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카롤루스 가문의 단절

1. 개요[편집]

카롤루스 왕조메로베우스 왕조를 몰아내고 프랑크 왕국을 통치한 두 번째 왕조로, 카롤링거 왕조라고도 한다.

피피누스 2세 시대부터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궁재를 세습하다가 카롤루스 마르텔루스가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이슬람 군대를 격퇴하면서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종교적 권위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피피누스 3세교황의 승인을 얻어 왕조 교체를 실현한 후 카롤루스 대제의 치세에 당대 서유럽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로마 황제 대관식까지 치르는 등 절정에 달한 국력을 과시했다.

카롤루스 대제의 손자 세대에서 카롤루스 왕조의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 조약과 그 후속 조약들[4]을 거치면서 분열되고 가문 역시 단절되었으나, 모계 혈통으로는 후대 왕조인 카페 왕조유럽 각국의 왕조들로 이어졌기에 지금도 유럽 각국의 왕실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카롤루스 왕조까지 닫는다.

2. 역사[편집]

2.1. 왕조 교체 이전: 프랑크 왕국의 궁재 가문[편집]

카롤루스 가문은 본래 브라반트 지방의 영주였던 피피누스 1세를 시조로 하는 피피누스 가문으로, 피피누스 2세 시대부터 프랑크 왕국 중앙정계의 실력자로 부상하여 궁재를 세습하기 시작했다.

2.2. 카롤루스 왕조의 통일 프랑크 왕국[편집]

2.2.1. 피피누스 3세[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피피누스 3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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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년 피피누스 3세가 교황의 승인을 얻어 즉위하며 왕조의 서막을 열었다.

2.2.2. 카롤루스 대제[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롤루스 대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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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누스 3세의 뒤를 이은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800년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관을 받으며 이른바 '카롤루스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2.2.3. 루도비쿠스 1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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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카롤루스 가문의 단절[편집]

루도비쿠스 1세 사후 분할 상속 관습과 후계 구도의 혼란으로 인해 왕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870년 메르센 조약을 거치며 왕국은 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로 쪼개졌다. 이후 세력이 약화된 왕조는 동프랑크에서 911년, 서프랑크에서 987년 위그 카페의 즉위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 피피누스 3세프랑크 국왕 즉위.[2] 베르됭 조약을 통한 프랑크 왕국 분할.[3] 루이 5세의 죽음과 위그 카페프랑스 국왕 즉위.[4] 프륌 조약, 리베몽 조약, 메르센 조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