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치기 · 접기 ]
|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82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늦둥이였던 그에게 영토를 떼어주려던 부왕의 결정은 이복형들의 반발을 샀고, 이는 긴 내전으로 이어졌다. 부왕 사후 퐁트누아 전투에서 승리한 후, 843년 베르됭 조약을 체결하여 제국을 삼분하고 서프랑크(프랑스 지역)를 차지했다. 재임 기간 내내 바이킹의 끊임없는 침공과 내부 귀족들의 반란에 시달렸으나, 문화적으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후반기를 이끌며 학문과 예술을 장려했다. 875년 교황의 지지를 얻어 신성 로마 황제관을 썼으나, 877년 이탈리아 원정에서 돌아오던 중 알프스 산맥에서 병사했다. 사후 아들인 말더듬이왕 루이가 왕위를 계승했다.
[1] 문자 그대로 대머리라서 붙은 게 아니라, 출생 당시에는 물려받을 영지가 없어서 왕관이 없다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대머리라고 불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