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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3. 사후 기념사업과 논란

1. 개요[편집]

정뤼청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군(現 광주광역시)[1] 출신의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작곡가로, 한국식 이름인 정율성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일생[편집]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중화민국(現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하며 작곡가가 되었고,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의 당군이자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에서 복무했는데, 광복 이후에는 북한으로 귀국하여 조선인민군 소속으로 6.25 전쟁으로 참전했다가 다시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소속을 옮긴 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으로 완전히 귀화하여 중국인으로 살다가 1976년 중국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3. 사후 기념사업과 논란[편집]

정뤼청(정율성)은 어디까지나 출신지가 현재 기준으로 대한민국실효지배 영토에 속하는 지역일 뿐,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적 없고 최종적으로 중국 국적을 갖고 사망한 중국인인데다,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북한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복무하여 6.25 남침에 부역하기까지 했기에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정율성[2]이 해방 이전 중국에 거주할 당시 의열단 소속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라 주장하며 독립유공자 서훈까지 주장하고 있고, 정율성의 고향인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기념사업까지 벌이고 있지만, 정작 정율성의 독립운동을 입증할 당대 기록 등의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데다, 6.25 전쟁 당시 북한 및 중국에 부역한 행적만 계속 파묘되고 있기에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정뤼청 기념사업은 온갖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1] 광역시 승격 이전의 광주는 전라남도 소속이었다.[2] 최종 국적이 중국이므로 법적 본명은 중국식 이름은 정뤼청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정뤼청(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정율성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