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뤼청 郑律成 | Zheng Lüche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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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1] | 정뤼청 (郑律成)[2] |
한국명 | 정율성 (鄭律成) |
영문명/병음 | Zheng Lücheng, Zhèng Lǜchéng |
아명 (兒名) | 정부은(鄭富恩) |
본관 | |
가명 | 유대진(劉大振) |
출생 | |
사망 | |
국적 | |
학력 | |
가족 | |
소속 | |
1. 개요[편집]
2. 일생[편집]
3. 사후 기념사업과 논란[편집]
정뤼청(정율성)은 어디까지나 출신지가 현재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실효지배 영토에 속하는 지역일 뿐,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적 없고 최종적으로 중국 국적을 갖고 사망한 중국인인데다 #,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북한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복무하여 6.25 남침에 부역한 기록도 존재하여 #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정율성[9]이 해방 이전 중국에 거주할 당시 의열단 소속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라 주장하며 독립유공자 서훈까지 주장하고 있고, 정율성의 고향인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기념사업까지 벌이고 있지만, 정작 정율성의 독립운동을 입증할 당대 기록 등의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데다, 6.25 전쟁 당시 북한 및 중국에 부역한 행적만 계속 파묘되고 있기에 #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정뤼청 기념사업은 온갖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율성[9]이 해방 이전 중국에 거주할 당시 의열단 소속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라 주장하며 독립유공자 서훈까지 주장하고 있고, 정율성의 고향인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기념사업까지 벌이고 있지만, 정작 정율성의 독립운동을 입증할 당대 기록 등의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데다, 6.25 전쟁 당시 북한 및 중국에 부역한 행적만 계속 파묘되고 있기에 #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정뤼청 기념사업은 온갖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1] 중국으로 귀화한 중국인이므로 한국식 이름이 아닌 중국식 이름이 법적 본명에 해당된다.[2] 중국어 간체자 표기.[3] 음력 7월 7일[4] 김성준(중국 연변대학 예술학원) 「작곡가 정율성 출생지에 대한 고증」, 한국음악사학회 『한국음악사학보』 37호, 2006., 53~74쪽 참조. 정율성 출생지는 양림동설, 금동설, 화순 능주설 등 분분했다. 정율성 유가족은 "양림동"이 출생지였다고 주장해서 광주양림휴먼시아2단지아파트 동벽(東壁)에 온갖 정율성 관련 기념물들이 붙어 있으나, 연구자들의 조사와 검증으로 불로동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5] 1929년에 신흥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부친의 1932년 사망 이후 경제적 곤란으로 신흥학교를 중퇴했다. 76년만인 2008년 3월 12일 전주신흥고등학교는 정율성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6] 1918년 ~ 2011년 (향년 93세), 한국명 정설송. 정율성 사후 주네덜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중국 대사 역임.[7] 1943년생, 한국명 정소제[8] 광역시 승격 이전의 광주는 전라남도 소속이었다.[9] 최종 국적이 중국이므로 법적 본명은 중국식 이름은 정뤼청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정뤼청(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정율성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