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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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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사시대3. 고대 ~ 중세 초기
3.1. 할슈타트 문화와 노리쿰인3.2. 로마의 노리쿰 속주3.3. 게르만족과 훈족의 도래3.4. 동고트랑고바르드, 아바르
4. 중근세
4.1. 프랑크 왕국과 바이에른 공국4.2. 오스트리아 변경백국4.3. 오스트리아 공국4.4. 오스트리아 대공국4.5. 합스부르크 제국
5. 근대
5.1. 오스트리아 제국5.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5.3.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5.4.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5.5. 오스트리아 연방국5.6. 나치 독일 점령하 오스트리아
6. 현대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선사시대[편집]

3. 고대 ~ 중세 초기[편집]

3.1. 할슈타트 문화와 노리쿰인[편집]

고대 오스트리아는 켈트어파의 원향[1]이자 켈트족의 발상지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켈트 문화권의 모태가 된 할슈타트 문화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후 켈트족은 유럽 각지로 확산되며 분화되었고, 오스트리아 땅에 잔류한 켈트족은 노리쿰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3.2. 로마의 노리쿰 속주[편집]

로마는 오스트리아의 노리쿰인을 정복한 후 노리쿰 속주를 설치하여 지배했다.

3.3. 게르만족과 훈족의 도래[편집]

동서 로마 분열 이후 노리쿰 속주는 서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훈족을 피해 달아나던 게르만족이 몰려와서 정착했고, 곧이어 그들을 추격하던 훈족 역시 노리쿰 속주를 휩쓸었다.

5세기 중반 훈족이 몰락한 이후에는 여러 게르만 부족들이 경쟁하다가 동게르만족의 분파인 동고트족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3.4. 동고트랑고바르드, 아바르[편집]

동고트 왕국은 6세기까지 오스트리아 일대를 지배하다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동로마 제국에게 멸망했는데, 동로마군에 재정복된 이탈리아와 달리 오스트리아는 또다른 게르만족인 랑고바르드족이 차지했다.

이후 랑고바르드는 동로마의 방어 태세가 약화된 이탈리아로 남하하여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고, 그 틈을 노린 아시아계 유목민인 아바르 칸국이 오스트리아를 정복했다.

4. 중근세[편집]

4.1. 프랑크 왕국과 바이에른 공국[편집]

아바르 칸국이 프랑크 왕국에 정복당하면서 오스트리아 역시 프랑크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프랑크 왕국에 속한 공국 중에서도 바이에른 공국이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바이에른 공국은 9세기 말부터 우랄계 유목민인 머저르족(헝가리인)의 침공에 시달렸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상당한 군사 자율권을 가진 변경백을 책봉하여 오스트리아를 통치하게 하면서 오스트리아라는 이름이 비로소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4.2. 오스트리아 변경백국[편집]

오스트리아 변경백국은 동프랑크 ~ 독일 왕국 및 방ㄱ에른 공국이 헝가리 대공국의 침공을 저지하는 최전선이었고, 바벤베르크 가문이 통치했다.

4.3. 오스트리아 공국[편집]

12세기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에 의해 오스트리아 변경백국은 공국으로 승격되면서 본래 바이에른 공국과 대등한 공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바벤베르크 가문은 13세기 헝가리 왕국과의 전쟁 도중에 후사가 없던 공작이 전사하면서 단절되었고, 이후 오스트리아 공국을 두고 합스부르크 가문과 보헤미아 왕국(체코)의 프르셰미슬 왕조가 경쟁하다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4.4. 오스트리아 대공국[편집]

합스부르크 가문 치하의 오스트리아 공국은 다른 공국보다 격이 높은 대공국이라 자칭했는데, 초기에는 다른 가문들의 견제로 인해 인정받지 못했으나, 15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 로마 황제위를 사실상 독점하게 되면서 이를 셀프 승인(...)하여 오스트리아 대공국이라는 국호가 확정되었다.[2]

막시밀리안 1세의 치세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발루아-부르고뉴 가문[3]이 다스리던 저지대 국가[4]를 차지했고, 그의 손자 카를 5세는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던 식민제국스페인의 왕위까지 차지하여[5]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군주가 되었다.[6]

카를 5세의 영지는 적성국인 프랑스 왕국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동시에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었기에 동생 페르디난트 1세를 차기 황제인 로마인의 왕으로 선출되게 하고 오스트리아 대공 역시 물려줘서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제국령을 대신 관리하게 하고, 황제 본인은 스페인 및 저지대 통치에 집중했는데, 그가 퇴위한 후 아들 펠리페 2세가 스페인 및 저지대를 물려받고, 페르디난트 1세가 황제위를 계승하면서, 합스부르크는 카를과 펠리페의 스페인 합스부르크(압스부르고) 왕조와 페르디난트 1세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로 나뉘었다.

4.5. 합스부르크 제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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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6년부터 페르디난트 1세가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영지들은 1555년 카를 5세의 퇴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스페인 합스부르크(압스부르고) 가문 영지와 분리되었는데, 페르디난트 1세 계열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를 편의상 합스부르크 제국 또는 합스부르크 군주국이라 한다.

이때 합스부르크 제국 전체를 오스트리아라 부르는 용법이 널리 쓰이긴 했으나, 법적으로는 여전히 기존의 오스트리아 본토, 즉 오스트리아 대공국 일대만이 오스트리아였다.

5. 근대[편집]

5.1. 오스트리아 제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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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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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편집]

5.4.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편집]

5.5. 오스트리아 연방국[편집]

5.6. 나치 독일 점령하 오스트리아[편집]

6. 현대[편집]

6.1.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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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arte_Alliierte_Besatzungszonen_in_Österreich_von_1945_bis_1955.png

6.2.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편집]

[1] 특정 언어가 처음으로 발원했다고 추정되는 지역.[2] 다만 이렇게 대공국으로 격을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황제 선거권을 가지는 선제후국으로 만드는 것까지는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는 1806년까지 이루지 못했다.[3] 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방계였다.[4]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5] 스페인 국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라 불렸다.[6] 여기서 주의할 점은 어디까지나 합스부르크라는 가문의 영지가 확대된 거지, 오스트리아 대공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영역은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