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마스코트 선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역사
2.1. 독립 이전2.2. 섭정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2.3. 황제 아구스틴 1세2.4. 카사 마타 계획과 멸망2.5. 멸망 이후
3. 정치
3.1. 황제3.2. 섭정 평의회
3.2.1. 제1차 섭정 평의회3.2.2. 제2차 섭정 평의회
4. 영토
4.1. 행정구역4.2. 현재 국가/지역

1. 개요[편집]

Primero Imperio Mexicano.

1821년부터 1823년까지 존재했던 근대 멕시코 최초의 독립국이자 황제국.

독립운동가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멕시코 황제 아구스틴 1세로 즉위하여 통치했으나, 불과 2년만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반란으로 인해 멸망한 단명국가였다.

당대에 사용된 공식 국호는 그냥 멕시코 제국이었으며, 제1제국은 후대의 멕시코 제2제국과 구분하기 위해 붙었는데, 제2제국이 괴뢰국이었기에 지금도 멕시코 현지에서는 다른 설명 없이 그냥 멕시코 제국이라 하면 제1제국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역사[편집]

2.1. 독립 이전[편집]

스페인의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였던 멕시코에서는 1810년대부터 독립전쟁이 일어났는데, 초기 독립군의 구심점이었던 미겔 이달고 신부와 그 뒤를 이은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는 모두 스페인군에 의해 진압되어 이후에는 과달루페 빅토리아, 비센테 게레로 등 여러 독립군 지도자들이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였다.

이때 스페인군 장교로서 활약하며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군권을 장악한 인물은 기존 지배층이던 본토 출생 백인(페닌술라르)가 아니라 멕시코 출생 백인(크리오요)였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는데, 그는 1820년까지만 해도 스페인 국왕의 신하라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스페인 본토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자 이는 이투르비데를 비롯한 친스페인 크리오요 계급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투르비데는 1821년에 독립군 지도자 비센테 게레로와 협상하여 스페인 국왕을 명목상의 멕시코 황제로 하되 실질적인 독립을 획득하는 이괄라 강령이라는 독립 강령을 채택하며 독립군으로 전향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페르난도 7세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지만, 이미 멕시코 현지의 군권을 장악한 이투르비데가 독립군으로 전향한 상황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고, 마침내 1821년 8월 24일 멕시코는 300여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지배를 종식시키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2.2. 섭정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편집]

아구스틴 이투르비데는 1821년 8월 24일 독립 선포와 함께 이괄라 강령에 따라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를 명목상의 멕시코 황제로 추대한 후, 다른 멕시코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행정부에 해당되는 섭정평의회와 헌법 제정을 위한 의회를 구성했는데, 섭정평의회 의장을 맡은 인물은 당연히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였다.

그러나 페르난도 7세는 허울좋은 황제위를 받고 멕시코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멕시코 황제위는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2.3. 황제 아구스틴 1세[편집]

페르난도 7세가 황제위를 거부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섭정평의회 의장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는 1822년에 스스로 황제 아구스틴 1세로 즉위했다.

아구스틴 1세는 독립군 및 섭정 시절에 약속한 헌법 제정을 계속 뒤로 미루면서 전제군주로 통치했는데, 이는 그와 함께 독립전쟁을 지휘했던 독립군 지도자들이 지지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2.4. 카사 마타 계획과 멸망[편집]

1823년에 과달루페 빅토리아, 니콜라스 브라보, 페드로 셀레스티노 네그레테,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등의 독립군 지도자들이 카사 마타(Casa Mata) 계획이라는 이름의 쿠데타를 실행했고, 황제 아구스틴 1세 본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여기에 동참하면서 제국은 멸망 위기에 몰렸다.

결국 아구스틴 1세는 스스로 퇴위하여 신변안전이라도 보장받고자 했으나, 의회는 이를 묵살한 후 그의 폐위를 의결했고, 결국 황제는 일가족 및 일부 측근들과 함께 추방되어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대공국의 리보르노[1]로 망명했다.

2.5. 멸망 이후[편집]

망명 생활을 하던 아구스틴 1세는 불과 1년만인 1824년에 몰래 귀국하여 제국을 재건하고자 했으나, 멕시코 임시정부에 발각되어 체포된 후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이후 그의 장남인 아구스틴 헤로니모 데 이투르비데가 망명지에서 황제 아구스틴 2세를 자칭했으나, 그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66년에 사망했다.

3. 정치[편집]

멕시코 제1제국은 의회를 소집하고 헌법을 제정하여 입헌군주국이 될 것이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건국 직후부터 멸망할 때까지 헌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전제군주국으로 남았다.

3.1. 황제[편집]

3.2. 섭정 평의회[편집]

3.2.1. 제1차 섭정 평의회[편집]

  • 의장: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1821 ~ 1822)
  • 위원
    • 후안 오도노후 (1821)
    • 마누엘 데 라 바르세나 (1821 ~ 1822)
    • 호세 이시드로 야녜스 (1821 ~ 1822)
    • 마누엘 벨라스케스 데 레온 (1821 ~ 1822)
    • 안토니오 페레스 마르티네스 (1821 ~ 1822)

3.2.2. 제2차 섭정 평의회[편집]

  • 명단
    • 의장: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 호세 이시드로 야녜스
    • 미겔 발렌틴
    • 마누엘 데 에라스
    • 니콜라스 브라보
  • 임기: 1822

4. 영토[편집]

현재 멕시코 영토는 물론이고 텍사스, 캘리포니아미국 중서부 지역과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라는 중앙아메리카 5국을 포괄하는 거대 제국이었다.

이들 가운데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제국 멸망 직후인 1823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 독립했다가 지금과 같은 5개국으로 쪼개졌고,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의 북부 영토들은 1836년 텍사스 혁명[3]과 1846~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4], 1854년 개즈던 매입[5] 등을 거쳐 미국에 할양되어 제1제국 시대에 비해 절반 이상 쪼그라든 현재 멕시코 영토가 형성되었다.

4.1. 행정구역[편집]

4.2. 현재 국가/지역[편집]

[1] 현재 이탈리아 공화국 토스카나 주 리보르노.[2]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3] 멕시코령 텍사스에 거주하던 미국계 이민자들이 멕시코 대통령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의 군대를 격파하고 텍사스 공화국을 수립한 사건.[4] 텍사스 공화국이 미국에 정식 합병된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전쟁으로, 캘리포니아, 유타 등 멕시코 북부 영토의 대부분이 미국에 할양되었다.[5] 멕시코 대통령에 복귀한 산타 안나가 주멕시코 미국 대사 제임스 개즈던에게 북부 영토 일부를 매각하여 현대 미국-멕시코 국경을 완성한 사건.